소설리스트

197화.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197/246)

◈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국내의 C급 이하의 던전들 중 1/5가량은 국가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다만, 협회의 인력만으로는 완벽한 관리가 어렵다는 판단하에 개중 일부를 길드에 일정 기간 독점 임대를 내어주고는 했다.

피스가 관리하고 있는 ‘운석이 떨어지는 숲’ 역시 국가 경매를 통해 낙찰받고, 5년간 임대를 받은 던전.

현재는 임대 기간이 모두 끝난 상태로 다시금 경매를 통해 이후 기간에 대한 낙찰을 받아야만 한다.

- 레오가 운석이 떨어지는 숲에서 아다만티움을 발견했다고는 하나, 고작 파편 하나뿐이야. 이것만으로는 던전 내에 광산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인어른. 하지만 아다만티움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한 번쯤 배팅해 볼 만하진 않겠습니까?

경매장 내부.

수태광은 얼마 전에 준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다만티움은 던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금속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그걸 갖가지 마력이 깃든 보석과 합성한다면, 엑시스 웨폰에서 뛰어난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음엔 분명했다.

- 아다만티움이 탐이 나긴 하나, 어째 조금 찜찜하군. 아무래도 국내 1위의 우리 엑시스가 피스의 것을 가로채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 가로채다니요. 정당하게 경매를 통해 낙찰받는 것인데요? 게다가 던전 내 광산이 발견되면, 법적으로 협회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피스 측에선 여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죠.

회귀 전.

엑시스 웨펀이 딱 한 번 피스 웨펀에 잠시나마 밀렸던 적이 있었다.

당시, 피스 웨펀이 대량의 아다만티움을 통해 무기를 제조해 판매를 했었고, 아무리 기술력이 좋은 엑시스 웨펀이라도 무기의 원재료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비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스의 아다만티움 무기에 결함이 발견되면서, 다시금 엑시스 웨펀이 기술력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했다.

그 과정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피스가 가지고 있던 아다만티움을 처음부터 엑시스가 소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준우는 감히 판단했다.

엑시스가 대량의 아다만티움을 거머쥐게 된다면, 회귀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세계 랭킹 상위권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엑시스는 가족이며, 엑시스가 강해짐에 따라 가족 역시 안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준우는 자신의 장인이 꼭 아다만티움을 손에 쥐길 바랐다.

“운석이 떨어지는 숲,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경매 진행자가 소리쳤다.

웅성거리던 경매장 내부에 적막이 감돌았고, 가장 먼저 입찰한 사람은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민동식이었다.

“800억 나왔습니다. 더 있으십니까?”

평균적으로 C급 던전이 경매에서 낙찰되는 금액은 800~1,000억 선.

인건비와 각종 수수료 그리고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길드가 손해를 보지 않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5년 전, 민동식 역시 비슷한 금액으로 해당 던전을 낙찰받았었고, 이번에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던전 내 아다만티움 광산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를 테니까.’

이미 채굴까지 시작한 상황이다.

광산을 발견하게 된 건 약 2년 전.

채굴 작업을 위해 3년간 공사를 진행했고, 그 과정을 타 길드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온갖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꼭꼭 숨겨왔다.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5년이란 독점 임대 기간이 모두 지나가 버렸지만, 임대야 다시 받으면 그만이었다.

“900억! 엑시스에서 900억 나왔습니다!”

“……?”

한데.

느닷없이 엑시스가 C급 던전 경매에 입찰을 했다.

‘엑시스가 뭣 하러 C급 던전에 입찰을 해? C급 던전 정도면 엑시스 내에 차고 넘칠 텐데?’

민동식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여태 C급 던전엔 관심도 없던 엑시스가 갑자기 입찰을 해 온 것은 정말이지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대한 싸게 낙찰받아서 많은 이윤을 남겨야 했는데, 예상과 달리 초과 지출을 하게 된 셈.

“피스에서 1,000억 나왔습니다! C급 던전 중 역대 최고가입니다!”

‘1,000억. 생각지도 못한 큰 지출이지만, 던전 내의 아다만티움을 채굴할 수만 있다면 절대 손해는 아니야.’

민동식이 장내 분위기를 살폈다.

국내 1위와 2위 길드라는 엑시스와 피스의 경쟁이었기에, 그들은 딱히 이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상 승산이 있는 싸움도 아니고.

“에, 엑시스! 1,100억 나왔습니다!”

여유롭게 웃으며 입찰을 하는 수태광.

민동식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를 향했다.

‘C급 던전에 1,100억? 미친 거 아냐? 수태광 저 영감탱이가 노망이 들었나!’

이쯤 되니, 엑시스가 피스를 괜히 견제한다는 오해마저 들 지경이었다.

민동식 입장에선 엑시스가 굳이 필요도 없는 던전을 사들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았으니까.

“피스에서 1,200억!”

“엑시스 1,300억입니다, 1,300억!”

하지만.

입찰 경쟁이 과열될수록 민동식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혹시 수태광이 아다만티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미치지 않고서야 엑시스가 1,300억이라는 돈을 고작 C급 던전 사들이는 데 쓸 리가 없었다.

‘설마, 전준우 헌터가? 아냐, 그럴 리가 없다.

던전 내 아다만티움 광산을 은폐하기 위해 약 1년 동안이나 노력해 왔지 않은가? 아무리 전준우 헌터라도 그걸 간파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재수가 없게도 채굴 과정 중 인부들이 떨어뜨린 아다만티움 파편 하나를 레오가 발견했다는 사실이 단서가 된 걸 알면, 과연 민동식은 어떤 기분일까.

“피스 1,400억!”

제발 여기서 그만하자.

민동식은 간절히 바랐다.

돈으로 엑시스를 제압할 순 없다.

국내 1위가 괜히 국내 1위겠는가. 수태광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떻게든 낙찰받을 때까지 입찰을 할 모양새다.

‘아직 우리 피스의 기술력으론 이 이상의 지출을 감내하기엔 너무 모험인데! 수태광, 망할 영감탱이!’

여기서 더 입찰 경쟁이 과열됐다가, 갑자기 엑시스가 쏙 빠져 버리면?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에 낙찰을 받아야만 하는 피스다.

엑시스야 그렇게 된대도 자신들의 자본으로 어느 정도 구멍을 메울 수 있다지만, 피스의 경우엔 타격이 컸다.

“엑시스! 1,500억 나왔습니다!”

X발.

민동식의 입 모양이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더 질러야 할까.

아니면, 물러서야 할까.

아다만티움이 가진 잠재력이 있다지만, 사실상 이 이상 지출을 하게 되면 냉정하게 말해서 피스의 기술력으로는 불안한 게 사실이다.

‘자칫 이번 사업이 제대로 망할 수도 있는데. 갑자기 저 영감탱이가 왜 나서 가지고!’

민동식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이만한 지출을 감내하면서까지 모험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했다.

“1,500억, 엑시스 낙찰!”

경매가 끝이 났다.

수태광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피스가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입찰 경쟁을 할 때, 수태광은 확신했었다.

계산적인 민동식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토록 열정적일 리는 없다고.

‘던전 내에 분명히 광산이 존재하는 게야.’

확신 없이 시작했던 배팅.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이 생겼다.

C급 던전의 가치에 비해 자칫 몇백억을 손해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수태광에겐 그 정도 액수야 얼마든지 배팅해 볼 여력이 있기도 했다.

경매장 나서는 수태광의 뒷모습.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민동식이 수태광과 눈이 마주쳤다.

할 말이 있는 듯, 성큼성큼 다가간 민동식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천하의 엑시스가 1,500억을 들여서 C급 던전을 낙찰받다니요. 수태광 회장님께서 저희 피스를 견제하기 위해 너무 과하게 일을 벌이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민동식이, 아니, 민 회장. 나는 말입니다. 여태 엑시스를 운영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아랫사람을 견제해 본 적이 없어요.”

“…….”

“던전에 돈을 쓴 건, 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서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민동식은 수태광이 이러는 이유가 자신에 대한 악감정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언론에서 엑시스를 수없이 견제해 왔던 본인이고, 하물며 황장미와의 일도 있었으니까.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던전을요? 무슨 근거로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까?”

“우리 젊었을 적, 함께 전장에 섰던 적이 있었죠. 그때부터 난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아! 우리 민 회장이 안목 하나는 기가 막히지!”

“……예?”

“민 회장도 이 던전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입찰을 했던 거겠죠? 전 민 회장의 그 안목을 믿었을 뿐입니다.”

“…….”

“혹시라도 아주 나중에 이 던전에 투자할 생각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쇼. 저야 피스와 함께 할 마음이 있으니까요.”

“지, 진심이십니까? 저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으실 텐데, 어찌…….”

“이봐요, 민 회장.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요. 저 그리 감정적인 사람 아닙니다? 껄껄껄!”

만약, 피스가 투자를 해 온다면 엑시스 입장에서도 다소 과한 금액으로 낙찰받은 던전의 리스크를 일부분 메울 수가 있었다.

‘무난하게 던전을 낙찰받으려고 그간 타 길드에 꼭꼭 숨긴 채 채굴 준비를 해 왔을 거야. 그만큼 오랜 시간 투자를 해 왔으니, 내 제안을 마냥 흘려들을 수는 없을 터.’

채굴을 위한 시설을 철거하는 것보단, 차라리 엑시스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갑니다, 민 회장.”

수태광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경매장을 떠났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민동식의 머릿속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준우 헌터! 제길!’

수태광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었다.

아니, 확신까지 하고 있는 눈치다.

그리고.

그 확신을 줄 만한 자는 준우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아다만티움 광산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던전 출입을 허가해 준 자신의 탓인 것을.

민동식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 댈 뿐이었다.

* * *

엑시스가 운석이 떨어지는 숲 던전을 낙찰받았다.

던전 내 광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숨겨진 광산을 찾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피스는 그간 광산에 공들였던 시간과 자본이 아까워서라도 수태광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투자금이 나가긴 하겠지만, 투자 대비 효율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로써.

난생처음으로 엑시스와 피스의 협업이 이뤄졌다.

엑시스 입장에서도 피스가 일궈 놓은 채굴 시설을 철거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적으로 이득을 본 셈.

- 전 서방. 이번 건도 자네 공이 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게. 아무렴 자네 몫을 줘야 하지 않겠나?

준우는 수태광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협회 소속 헌터이기에 물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대신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얻어 내기로 했다.

- 일본의 신켄에서 블루 스톤을 국내로 들여올 때, 해당 항구 혹은 부두를 제가 원하는 지역으로 지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흐음. 그 이유는?

성물을 가지고 달아난 아이작을 잡기 위해서였다.

여태 해 왔던 것처럼 직접 찾아 나서는 게 아닌, 제 발로 놈이 찾아오게끔 함정을 설치하려는 것이다.

수태광 입장에선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설사 손해를 본다고 한들, 큰 공을 세운 사위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준우의 마지막 한 마디가 수태광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 장인어른께서 제게 힘을 보태 주신다면, 제가 협회 소속 헌터로서 꼭 잡고자 하는 자를 체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협회에서의 제 역할도 끝이겠지요.

그렇다는 건.

준우가 더 이상 협회에 몸담고 있을 이유도 없다는 뜻.

‘드디어 내 사위가 엑시스로 오는 날도 머지않았군!’

수태광은 흔쾌히 준우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술술 풀려 가는 요즘이었고, 겹경사가 이뤄지면서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까지 마련됐다.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수재혁이 정식으로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으니까.

식사 시작 전.

수태광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장남을 빤히 응시했다.

“아버지, 저희 결혼 허락해 주십쇼.”

이어, 수태광의 시선이 수재혁의 옆에 있는 낯익은 여인에게로 향했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엑시스와 함께 성장해 온 사람이자, 자신의 총애를 얻어 미술관장 자리까지 꿰차고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지. 내 김 관장을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김 관장은 다소 굳은 얼굴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앞서 수재혁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며 김 관장을 미리 언급하긴 했지만, 후폭풍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준우와 선화 결혼 때만 봐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스토리는 김 관장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자신의 결혼 생활 또한 마냥 편치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준우와 선화처럼 서로 깊이 사랑하는 수재혁과 김 관장이었기에.

“문득 옛날 일이 떠오르는구만. 김 관장 자네가 처음 비서실에 들어왔을 때 말이야. 그때, 자네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언젠가 곁에서 꼭 회장님을 모시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 실망시키면 되겠나? 내 곁이 아닌 재혁이 놈 곁이라니?”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수태광이 묵묵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가족들도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준우와 선화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갑자기 예전 일이 떠오르네. 선화랑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땐 진짜 그날 죽는 줄 알았는데.’

수태광에게 가족으로서 인정을 받고,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준우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건가?”

“아, 아버지!”

“재혁이 네 녀석에게 묻는 게 아니야. 김 관장에게 물은 것이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저는 아마…….”

“아마?”

“……끝까지 부마스터님 곁을 지킬 겁니다.”

“끄응. 이거 원, 상황이 꼭 어디서 한번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만 그래.”

순간, 준우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왠지 자신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서.

수태광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손에 쥔 술을 들이켠 뒤, 다시금 장남과 김 관장의 얼굴을 빤히 살펴본다.

“김 관장 자네가 솔직하게 말을 해 줬으니,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수태광의 목소리에 실린 무거운 기운에 온 가족이 숨을 죽였다.

김 관장이 여태 엑시스에 세운 공은 상당하다.

회장인 수태광에게 총애까지 받아 젊은 나이에 임원 자리까지 올랐으니, 가히 회장님 직속 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헌터 서바이벌 당시 수재혁이 수태광을 이기고 우승을 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수재혁이 원하는 것은 김 관장과의 결혼이었다.

길드 마스터 자리까지 내걸고 한 약속인데, 설마 수태광이 거절을 할까?

‘충분히 거절하실 수도…….’

준우는 가능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 상황이 불편하고, 참으로 불안했다.

“난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싫어하네, 김 관장.”

“예,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날 모시겠다고 약속했었지. 그 약속 꼭 지켜 주길 바라네. 비서가 회장 모시는 듯한 사이는 너무 딱딱한 것 같고, 시아비와 며느리 사이가 좀 더 낫지 않나 싶은데…… 크흠!”

“회, 회장님……!”

“아버지, 그 말씀은 저희 결혼 허락하신다는 뜻입니까?”

“서로 좋다는데 어찌하겠느냐. 그렇게 좋으면 해야지.”

의외의 대답에 준우와 선화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들 때보다 쉽게쉽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못내 부럽기도 했지만, 역시나 가장 놀라운 건 수태광이 다소 흔쾌히 허락을 했다는 점이었다.

‘후회는 한 번으로 족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겠지.’

수태광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향한다.

그곳엔 자신의 반대로 아픔을 겪었을 딸과 사위가 앉아 있었다.

‘결국 이렇게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것을. 그땐 내가 너무 어리석었던 게야.’

반대했던 결혼임에도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딸과 사위였다.

자신이 그때 반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혹시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있진 않았을까.

‘전 서방, 자네가 내게 많은 가르침을 줬네.’

수태광은 흐뭇하게 웃으며 또다시 술잔을 비웠다.

“회장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김 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새아가. 이제 호칭 정리도 다시 해야 할 듯싶은데.”

“……아버님?”

“썩 듣기 좋구나. 껄껄!”

수재혁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김 관장과의 결혼이 자신의 소원이었다고는 한들, 이렇게 허무하리만치 쉽게 풀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이렇게 유해지셨을 줄이야. 아버지께서 이렇게 변하신 이유는 역시……?’

수재혁이 수태광의 옆에 앉아 있는 준우를 응시했다.

‘장인어른! 최고십니다! 아주 호탕하십니다!’라고 소리치며 쌍따봉을 날리고 있는 자신의 매제였다.

아들들도 잘하지 못하는 애교까지 도맡아서 하고 있는 준우를 보고 있자니, 수태광이 변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수재혁이었다.

즐겁게 전환된 분위기 속에서 식사 시간이 흘러갔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수태광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상견례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게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결혼 전에 네 할 일은 다 끝내 놓았으면 좋겠구나.”

“‘왕친’ 영입 건 말씀하시는 거군요.”

엑시스가 아다만티움 광산을 손에 쥐게 되면서 계획 중인 사업 중 하나가 엑시스 웨펀의 ‘방어구’ 사업이다.

새로운 시작이랄까.

본래 무기만을 제조하는 엑시스 웨펀이었지만, 최고의 금속이라 할 수 있는 아다만티움을 이용해 사업 영역을 넓혀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왕친이라는 중국인이었다.

“재혁이 네가 기획한 사업이지 않느냐. 스카우트 팀에서 애를 좀 먹고 있는 것 같은데, 결혼 전에 얼추 모양새는 갖춰 놔야 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럼 제가 직접 움직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식전에 영입 정도는 끝내 놔야, 너도 마음 편히 신혼여행 다녀올 수 있을 테고 말이야.”

현재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는 왕친이다.

중국의 방어구 명인으로서 엑시스로 영입해 온다면 필히 이번 사업에 주축이 될 터인데, 많은 액수를 준대도 완강히 거절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왕친 영입이 빨리 끝나야, 결혼식도 빨리 올릴 수 있다. 그래야 신혼여행도 빠르게 갈 수 있고!’

수재혁이 히죽거리던 그때.

준우가 낯익은 이름에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왕친이라면, 아무래도 아들 때문에 영입을 반대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수재혁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아무래도 매제가 또 뭔가를 알고 있는 모양.

‘하여튼, 다재다능하단 말이야.’

식사가 끝난 뒤.

가족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준우 역시 자리를 뜨려는 순간.

수재혁이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형님?”

“자네도 내 결혼을 축복하겠지?”

“당연한 말씀을! 어느 누구보다 축복하고 있는 게 저 아니겠습니까? 저는 형님께서 하루빨리 선화와 저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사람입니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

수재혁을 좀 더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준우가 과장해서 소리쳤다.

“그래? 그럼 잘됐군.”

“뭐가요?”

“안 그래도, 박 비서에게 부탁해서 중국행 비행기 표 두 장을 마련해 놓으라고 지시해 뒀거든.”

“왕친 영입 건 때문이군요. 근데 왜 두 장이에요? 아아! 김 관장님이랑 같이 가려고 그러시는구나?”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누가 봐도 한 장은 내 거, 나머지 한 장은 자네 거잖아?”

“예……? 그, 그게 어떻게 갑자기 제 거가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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