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춤 한번 춰 주마
민동식은 준우에게 살가웠다.
피스가 관리하고 있는 던전임에도 불구, 준우가 원하는 대로 레오의 후각에 의지한 채 던전을 탐색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민동식이 이놈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데.’
주근깨 청년으로 둔갑한 수태광은 뒤를 따르며 민동식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수태광이 아는 민동식은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준우에게 이토록 친절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째 하는 짓이 전 서방을 스카우트하려는 모양새란 말이지.’
준우와 엑시스의 불화설에 대해선 수태광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허황된 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민동식이 준우를 스카우트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내 사위인데!’
준우에 대한 과한 친절은 둘째치고.
또 하나 수태광이 의아한 것은 민동식이 왜 여기 있느냐는 것이었다.
‘엑시스에 항상 뒤처지기는 하나, 그래도 피스의 수장이라는 놈이 C급 던전엔 무슨 일로 온 건지.’
수태광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레오를 선두로 던전을 탐색하던 준우에게 민동식이 넌지시 말했다.
“미스 황은 잘 지내십니까? 요즘 도통 뵙질 못해서.”
“많이 바빠 보이시기는 해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 가끔 연락을 하곤 하는데, 답장이 없더라구요. 그게 너무 바빠서 그랬던 거였다니, 이해를 해야겠지요.”
수태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열이 받았다기보단 기가 차서였다.
‘민동식이, 이 자식이 남의 와이프 안부는 왜 묻는 거야? 그리고 내 와이프가 진짜 바빠서 답장을 안 한 줄 아나? 멍청하긴. 그냥 네가 하도 귀찮게 하니까 싫어서 답장을 안 하는 거지, 쯧쯧.’
사실상, 아직 수태광의 와이프는 아니다.
재결합이 확정된 건 아니니 정확히는 ‘전처’ 였다.
수태광 본인은 이미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나저나, 요즘 전준우 헌터가 세간의 화제입니다. 자그마치 홀리 나이트와 접촉이 있었다죠.”
“우연한 만남이었을 뿐입니다.”
네크로맨시아 관련 사건은 영국 협회 측에서 최대한 은밀하게 다뤘기에, 민동식이 자세한 내막에 대해선 알 리가 없다.
‘날 떠보려는 건가?’
불화설에 대해선 준우 역시 알고 있었던 바였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쉽군요. 전준우 헌터 같은 국내 최고의 인재가 타국으로 가게 된다니. 국가적 손실이 아주 막대한 듯합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호오? 그렇다면, 국내에도 미련이 남아있다는 뜻이겠군요. 아무래도 엑시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거겠죠? 전준우 헌터의 장인이 수태광 회장이니…….”
대화를 듣던 수태광이 속으로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준우가 자신의 사위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당연히 협회에서 이직을 한다면 우리 엑시스로 와야지! 내 사위잖아?’
하지만.
준우의 대답은 수태광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확실히 거처를 정해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습니까! 이거 잘하면 오늘의 인연이 앞으로도 좋게 이어질지도 모르겠군요!”
민동식이 반색하며 쾌재를 불렀고.
수태광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엑시스가 아닌 다른 곳에 거처를 둘 수도 있다고? 지, 진심은 아니겠지? 암, 그렇고말고! 전 서방이 그럴 리는 없을 게야. 그냥 민동식이가 호의를 베풀었으니, 예의상 하는 말일 테지.’
황장미로도 모자라, 준우에게까지 치근덕거리는 민동식이 몹시 얄미웠지만, 지금의 수태광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민동식은 물론, 기자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재수 없게 목걸이나 재결합 관련 일들이 떠벌려진다면 프로포즈는 무산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
‘민 회장이 고작 C급 던전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타났을 리가 없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다, 뭔가가…….’
준우는 최대한 민동식의 비위를 맞춰주기로 했다.
탐색 중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민동식의 경호원들이 알아서 처리를 해주는 덕분에 딱히 준우가 나설 일은 없었다.
던전에 진입한 것치고 상당히 여유로운 상황.
민동식이 준우를 떠보듯 물었다.
“혹시, 저희 피스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죠.”
“피스 길드는 몇 년 전부터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금은 엑시스에 밀려 만년 2위 길드에 머무르고 있으나, 세대교체가 된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그래요?”
준우가 맞장구를 쳐주자, 민동식이 흥이 올랐는지 연거푸 말을 쏟아냈다.
전준우라는 인재가 탐이 나는 만큼,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스카우트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피스의 자랑.
또한, 피스의 미래와 포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준우에게 수태광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엑시스가 지자체와 협의하여 수도권에 아카데미를 설립한다고 하더군요. 국내 길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저희 피스 역시 수도권에 자체적으로 아카데미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일 텐데. 대단하시군요.”
“앞서 말씀드렸지요. 후학 양성에 온힘을 쏟고 있다고. 후배들이 곧 이 나라의 미래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핫!”
으쓱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민동식.
수태광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수도권에 아카데미는 무슨. 차라리 수도를 옮기는 게 더 빠르겠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민동식의 시선이 수태광에게로 향했다.
마른 몸을 가진 주근깨 사내, 아까부터 준우의 등 뒤를 따르던 자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분명히 제가 들었는데요. 수도를 옮기는 게 어쩌고 저쩌고. 저희 길드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리가. 환청이라도 들으셨나 봅니다.”
여태 잠자코 있었던 수태광이었지만, 이왕 입이 터졌겠다 딱히 물러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민동식의 말에 따박따박 대꾸를 했고, 그럴 때마다 준우는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전준우 헌터님과의 대화에 끼어들질 않나,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질 않나. 대체 이 친구는 누굽니까?”
“아……그게…….”
준우가 머뭇거리던 그때.
“나는 수태……크흡!”
수태광이 자신의 이름을 떠벌리려고 하자, 준우가 재빨리 그의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장인어른! 여기서 정체를 들키게 되면 장모님께 할 프로포즈는 그대로 말짱 꽝입니다!’
‘그러게 왜 계속 자네가 저딴 놈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게야!’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며 뜻을 주고받는 장인과 사위.
수태광이 황장미를 떠올리며 다시금 화를 억눌렀다.
“방금 분명히 수태광이라고…….”
“수, 수태광 회장님의 업적이자, 찬란한 기업인 엑시스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헌터입니다!”
“……아아?”
정체가 들킬세라, 준우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제 제자입니다. 일종의 경호 같은 거죠.”
“전준우 헌터님의 경호라. 전준우 헌터님께 굳이 이 자의 경호가 필요하겠습니까? 이미 국내에선 대적할 사람이 없을 텐데.”
“뭐, 그냥 현장 경험 같은 거 시켜주려고 데려온 거죠.”
민동식의 시선이 또 한번 수태광을 위아래로 훑는다.
하찮은 것이. 또 대화에 끼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이다.
“이 친구 아까부터 절 바라보는 표정이 좋지 않군요. 주근깨도 어느새 붉게 물든 것이, 뭔가 잔뜩 참고 있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던전 안에 화장실은 없습니다만…….”
“엑시스에서 관리하는 던전엔 중간중간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던데. 아직 피스 길드는 헌터들에게 그 정도 배려는 없는 것 같군요.”
“던전을 공략하는 중요한 상황에 생리 현상 정도는 헌터 본인이 제 알아서 처리해야지요.”
“던전이라는 곳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곳입니다. 피스에선 매 모든 변수가 생길 때마다, 죄다 헌터 탓으로 돌리는 모양입니다.”
“아직 엑시스에 입사도 하지 않으신 분이, 엑시스에 애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 그야…….”
수태광이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준우가 그의 입을 가로막으며 냅다 소리쳤다.
“이 자식아! 입 안 다물어?”
“……?”
“네가 끼어들 대화가 아닌데, 왜 아까부터 계속 끼어들어서 대화를 끊지? 제자라는 녀석이 스승의 앞을 막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
“입 다물고 있어. 한 번만 더 주둥이 열었다간, 가만두질 않을 테니까.”
“……죄, 죄송합니다.”
수태광이 준우를 슬쩍 노려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준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갈이었다.
수태광과 민동식이 여기서 더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정말이지 정체를 들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히도 준우가 소리를 치는 바람에 민동식의 작은 의심도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S급 아티팩트의 얼굴 변형과 수태광의 마력이 조화를 이뤘으니, 당연히 변형 증거도 없을 테고.
- 나 : 장인어른, 용서하십쇼. 정체가 발각될까 봐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장인어른 : 이해하네.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지.
- 장인어른 : 그래도 입 다물라는 표현은 좀…….
- 나 :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민 회장을 속이기 위해선 강력한 뭔가가 필요했구요.
- 장인어른 : 알았네. 내 납득함세.
- 나 : 민 회장이 이 던전에 있는 이유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쇼.
은근슬쩍 문자를 주고받은 두 사람.
열이 받긴 하지만, 수태광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준우 헌터님 제자 분 성격이 꽤나 감정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죠. 그래도 심성은 착한 녀석입니다.”
“실력도 그만큼 좋으려나요. 기대가 되는 군요.”
민동식이 수태광을 뒤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애써 웃는 준우, 그런데 어째 사위가 이 상황을 묘하게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 착각일 게야. 암! 당연히 착각이어야지!’
입을 꽉 다문 수태광이 조용히 준우의 뒤를 따랐다.
답답하고 욱하는 상황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정체를 들키지 않고 목걸이를 찾아내는 것이었으니까.
***
양 갈래 길이 등장했다.
길을 안내하던 레오도 이 앞에선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여태 쫓던 향수 냄새가 옅어지기도 했지만, 양쪽 길에서 모두 비슷하게 향수의 냄새가 풍겨온 탓이다.
“양쪽 길 모두 같은 냄새가 난다라…….”
운석이 떨어지는 숲이라는 던전은 내부가 상당히 넓다.
한번 길을 잘못 들게 되면 최소 2시간을 소요해야 하며, 공략법상 양 갈래 길에서는 몬스터의 수 또한 많다고 되어 있다.
“최대한 정확한 길을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마냥 여유롭진 않다.
던전에 숨어든 래비토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만약 잘못됐다면 목걸이 또한 온전한 상태일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음, 저희 경호실 소속 헌터들이 한번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민동식이 말했다.
“피스 경호실 인원들 중에 탐색 계열 헌터가 있습니까? 전투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전투 쪽 특성을 가진 것 같던데.”
“저희 피스 길드의 헌터들은 입사가 결정된 순간부터 다양한 훈련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 특성과 관련된 능력이 아니더라도, 어떤 변수가 들이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해결해갈 수 있도록 여러 기술들을 가르치죠.”
“그렇군요.”
“단서를 찾고 표적을 찾는 일은 피스 소속 헌터라면 누구라면 누구나 배우는 것이고, 특히나 저의 경호원들은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자들로 꾸렸지요.”
자신의 경호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민동식.
그럴 만도 했다. 수태광 역시 엑시스 내 최고의 헌터들을 자신의 직속 기관인 경호실에 배치했으니까.
“래비토의 흔적을 찾아내도록.”
민동식의 명령에 피스 경호원들이 움직였다.
수태광은 얌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으나, 속은 그렇지 않았다.
‘피스가 언제부터 경호실을 따로 뒀다고, 쯧쯧.’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스는 경호실이란 개념이 따로 없었다.
물론 회장인 민동식의 호위를 하는 헌터들이 있기는 했지만, 경호실이라는 기관을 두어 조직을 나누진 않았다는 뜻이다.
‘민동식이, 따라쟁이 같은 놈.’
그랬다.
민동식은 수태광의 경호실이 부러웠다.
백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라고 하는 헌터들이 회장의 곁을 지킨다니, 과연 멋지지 아니한가.
‘매번 날 따라하기만 하니까, 네놈이 만년 2위인 거다.’
어깨를 으쓱인 수태광이 피스 경호원들을 응시했다.
그들은 제각기 탐색 관련 장비들을 꺼내 길드에서 학습한 대로 래비토의 단서를 추격하는 중이었다.
‘주 특성만 죽어라 연마해도 S급의 경지에 오르기 힘든데, 그 시간을 다른 기술을 배우는데 사용하다니. 비효율적이야. 차라리 엑시스처럼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재를 양성하는 편이 낫지.’
전투형은 전투 쪽만 파고.
탐색형은 탐색 쪽만 파면 되는 거다.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랄까.
피스가 맞는 것인지, 엑시스가 맞는 건인지는 모른다.
정답이라는 게 없는 길드 체계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피스가 만년 2위라는 사실이 엑시스의 방법이 옳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었다.
“오른쪽 길입니다.”
잠시 후, 탐색을 마친 경호원이 말했다.
민동식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준우를 바라본다.
“그렇다군요, 전준우 헌터님. 과연 대단하지 않습니까? 전투에도 부족함이 없는 이 자들이 탐색마저도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대, 대단하네요.”
“만약 전준우 헌터님께서 저희 피스로 오신다면, 저는 전준우 헌터님이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할 것입니다.”
“……고려해보겠습니다.”
준우는 경호실 인원의 판단을 따라 오른쪽 길로 이동했다.
여전히 제 자랑을 해대는 민동식이 아니꼬운 수태광이었지만, 일단은 목걸이를 찾아야 하니 입 다물고 조용히 따랐다.
‘탐색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양쪽 길 다 뚫어버리는 게 더 빠르겠네.’
수태광의 속마음이었지만, 그 또한 사실이긴 했다.
다만 정체와 함께 힘을 숨겨야 함에 그러지 못하는 것뿐.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
몬스터를 제압해가며 나아가자, 막다른 길이 보였다.
여기가 이 길의 끝이라는 뜻.
“어?”
준우가 길의 끝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화려한 장식들이 어우러진 목걸이 함이었다.
‘드, 드디어 찾았구나!’
눈치껏 준우가 목걸이 함을 손에 쥐었다.
원하는 것을 찾게 되었으니, 민동식 또한 준우에게 호감을 샀다는 마음에 우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목걸이 함이 싹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래비토가 안에 있는 내용물만 빼간 모양입니다.”
피스의 헌터들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했다며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전투하는 것도 밋밋하더니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구만, 무슨.”
수태광이 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민동식도 이번엔 찔리는 게 있었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질 못했다.
“흠, 흠!”
머쓱함에 괜히 헛기침만 해댈 뿐이다.
***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아까의 양 갈래 길 중 오른쪽 길에선 목걸이를 찾지 못했으니, 당연히 왼쪽 길엔 목걸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다면.
오른쪽 길에서의 장시간 전투로 피스 경호원들의 체력이 많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답답하고 느린 전투에 수태광이 쓴웃음을 짓는다.
“예전에 엑시스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태광 회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주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헌터는 다른 기술을 배워봐야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이번엔 혼잣말이 아니었다.
수태광은 민동식이 들으라는 듯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제 눈엔 눈앞의 경호원들이 전투 쪽에 특화된 만큼, 그쪽에 좀 더 집중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전 수태광 회장님의 가르침대로 훈련을 해왔거든요.”
“호오? 그러십니까? 그런데, 왜 여태 나서질 않으시고?”
민동식이 비꼬듯 말했다.
안 그래도 탐색이 실패서 준우의 호감을 사는데 실패한 마당에, 제자라는 놈이 딴지를 거니 짜증이 날 수밖에.
“그래서 이제 한번 나서볼까 합니다. 여지껏 참고 있었는데, 영 답답해서 원.”
준우가 수태광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흥분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응하라는 뜻.
수태광이 완고한 뜻을 보이자.
가까이 다가간 준우가 낮게 속삭였다.
“자, 장인어른. 여기서 능력을 사용하시면 정체가 금방 탄로 날 겁니다. 답답하긴 하시겠지만 좀만 더 참으시면…….”
고개를 내젓는 수태광.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전 서방, 칼을 좀 빌려주게나.”
“칼을요?”
불 속성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 수태광이다.
그런 그가 대뜸 칼을 빌려달라니.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장인어른께서 칼을 사용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말일세.”
“……?”
“소싯적에 칼춤 좀 췄다네.”
준우에게서 칼을 건네받은 수태광이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는 피스 헌터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그래, 어디 실력이나 한번 보자!’
민동식이 수태광의 뒤통수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