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는 조용히 살고 싶다 (3)
준우의 마음 같아서는 레오를 대신해 장난감 정리를 직접 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제 할 일을 다 해낸 다른 반려몬 아이들의 눈치가 보여 그럴 수만은 없었다.
‘살짝만 도와주자, 아주 살짝만.’
아티팩트 하나를 꺼낸 준우.
레오의 호기심으로 물든 시선의 준우의 손에 들린 아티팩으로 향했다.
일전에 차원문 내부에 반려몬 아이들의 수영장을 만들 때 사용했던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볼룸.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사물 모두의 부피를 조절할 수 있는 아티팩트다.
[ ‘볼룸’ 효과를 사용합니다. ]
[ 범위 내 사물의 부피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
최대한 많은 양의 장난감을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적당한 범위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장난감의 부피를 레오가 한 번에 여러 개를 입에 물 수 있을 만큼 줄였다.
볼룸 효과는 하루 3회만이 사용이 가능했고, 이어 두 번째 사용함으로써 차원문 내부에 있는 모든 장난감의 부피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내가 정리하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는 한데, 이 정도면 레오 네 능력으로도 금방 끝낼 수 있겠지?”
크릉!
레오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탐지견답게 후각이 특출난 레오였지만, 이동속도 역시 남다른 녀석이었다.
파앗 - !
지면을 박찬 레오가 구슬만 한 크기로 작아진 장난감을 열댓 개씩 입에 물어 옮기기 시작했다.
부피가 작아져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것쯤은 레오의 예민한 감각으로 얼마든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응……?”
그때였다.
차원문 내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렸더니, 오복이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유로운 표정들을 보아하니 제 할 일들인 집안일을 모두 다 깔끔하게 끝내고 놀러 온 모양.
하지만.
막상 놀기 위해 차원문 내부로 들어왔으나, 열심히 장난감 정리를 하고 있는 레오를 보고 있자니 마냥 그럴 수만도 없었다.
- 신병에게 최대한 잘해주고! 배려해주고! 양보해주고! 특히 서로 밥그릇 뺏지 말고! 알았나!
순간, 오복이들의 머릿속에 수린이 중대장이 했던 명령이 떠올랐다.
밥그릇 안 뺏는 건 당연한 거고.
신병에게 최대한의 배려와 양보는 물론,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펴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병에게 배려를!
오복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리고는 일제히 널브러진 장난감을 향해 쇄도했다.
크릉 - ?
레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도와 장난감 정리를 하는 오복이들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오복이들이 자신을 돕는 모습에서 레오는 불현듯 낯익은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간 오랜 현장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정.
전우애.
자신들의 일을 모두 끝내고 나타난 은실이와 말순이 역시 레오를 도와 움직였으며, 녀석들에게도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레오였다.
‘이 녀석들 봐라. 우리 애들이지만, 너무 착하잖아? 귀여운 짜식들.’
준우가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았고.
장난감 정리가 전부가 끝이 나자, 미리 준비해둔 간식을 반려몬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레오 이등병! 일과 다 끝났습니까!”
그때, 수린이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묘하게도 수린이의 목소리만 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떠는 레오였고, 그 이유는 역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중대장의 ‘강함’ 이었다.
“오옷! 아주 완벽하게 정리를 했는데! 우리 레오 일 진짜 잘하는구나!”
준우가 마지막 남은 볼룸의 사용횟수로 한 장소에 정리된 장난감의 크기를 원래대로 돌려놓은 상태다.
이로써 완전범죄가 성립되었다고나 할까.
“근데, 이게 이렇게 빨리 끝날 수가 없는데. 혹시……?”
수린이가 슬쩍 옆에 있는 반려몬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너희들이 도와줬니?’ 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쩝쩝쩝 -
말순이와 은실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간식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오복이들 역시 모르쇠로 일관하며 애꿎은 엉덩이만 박박 긁어댄다.
“그럼, 진짜로 레오 혼자서 이걸 다 정리했단 말이지?”
양심적으로 쉬이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든 레오였지만.
“잘했어, 레오! 이따가 표창장 줄게!”
탐지견 훈련 담당관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수린이다.
강한 자의 칭찬은 레오에게도 달가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자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역시나 즐거운 일이었다.
“표창장 수여식은 이따 밤에 하도록 하게씁니다!”
오늘의 일과는 여기서 끝.
레오가 자신을 도와준 반려몬 아이들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전했다.
그리고.
뒤늦게 차원문에 모습을 드러낸 미심이와 눈이 마주쳤다.
크릉 - ?
전우애를 느끼게 해준 다른 반려몬 아이들과는 달리.
유독 시큰둥한 표정으로 레오를 바라보는 미심이였다.
***
얼마 전.
수린이가 직접 만든 표창장 수여식이 있었다.
알록달록 꾸민 표창장에 레오의 얼굴까지 직접 그림으로 그려냈고, 유치원에서 배운 비즈 공예로 만든 목걸이를 부상으로 전달하기까지 했다.
중대장 수린이의 진두지휘 아래, 레오는 새로운 터전에서 나름 적응을 잘 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반려몬 아이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고, 수린이의 군대놀이에도 나름 재미를 느껴갔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향이 비슷해서 그런가. 둘이 좀 못 어울리는 것 같지?”
“둘 다 너무 예민하니까. 사람도 그렇잖아. 너무 서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친해지기 어렵다고. 뭐,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긴 하겠지만…….”
선화와 준우가 나름의 회의를 진행 중에 있었다.
회의의 주제는 레오가 새로운 가족이 되고 난 후, 유일한 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레오와 미심이의 서먹한 관계였다.
“강제로 우리가 친하게 지내라고 한다고 해서 그게 될 리도 없고. 결국엔 자연스레 되게끔 기다릴 수밖에 없나?”
“친해질 수 있는 계기 같은 것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흐음.”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 아이언과 함께 놀아주고 있던 동혁이가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매형,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좋은 생각이 뭔데?”
아까부터 귀를 쫑긋거리더니, 대화 내용을 다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제가 얼마 전에 아이언이랑 반려몬 카페 갔었거든요. 아이언도 엄청 낯 많이 가리는데, 거기서 ‘장애물 돌파’ 게임 하면서 다른 반려몬들하고 금방 친해지더라구요.”
“역시 친해지는 데는 함께 어울려 노는 게 최고인 건가.”
동혁이는 며칠 전부터 아이언과 함께 준우의 집을 자주 들락거리고 있었다.
선화가 인스타그램에 수린이의 군대놀이 영상을 올렸는데, 그게 썩 재미있게 보였던 모양이다.
“차원문 안에 장애물 코스 만들어보는 게 어때요?”
준우는 동혁이의 의견에 긍정적이었다.
강제로 레오와 미심이를 친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장애물 코스를 만들어 함께 협업하여 돌파하게끔 상황을 만들어주는 거다.
협동심도 기를 겸, 서로서로 도와가며 장애물을 넘다 보면 보다 더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중요한 건, 과연 애들이 재미있어 할까라는 건데.”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간식을 주는 건요?”
“어지간한 간식으로는 흥미를 안 보일걸. 우리 애들이 워낙에 입이 고급이라.”
“후후, 하지만 이 특제 영양 간식에는 관심을 보일걸요?”
동혁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일명, 예빈이가 만들어준 ‘사랑의 특제 영양 캔디’.
“우리 예빈이하고 장모님께서 아이언주라고 엄청 많이 만들어줬어요!”
캔디를 꺼내기 무섭게.
거실에 있던 모든 반려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혁이가 손에 쥐고 있는 영양 캔디로 쏠렸다.
‘오? 반응 좋은데?’
차원문 내부에서 놀고 있던 말순이와 레오도 달콤한 그 냄새를 맡았는지, 부리나케 거실 쪽으로 뛰어나왔다.
반려몬들에게 무해하며 맛 또한 일품이었다.
물론 준우가 직접 먹어보진 않았지만, 반려몬 아이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흥분의 도가니였고, 여태 그 어떤 간식을 보였을 때보다도 열정적인 분위기였으니까.
“장애물 코스 짜는 거야, 그리 어렵진 않을 테고.”
장애물이야 여러 개 뚝딱 만들어내면 된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사들여서 아이들의 협동심과 재미를 더해줄 것들로.
“처남이 영양 캔디만 좀 우리한테 나눠주면 준비는 금방 끝나겠네.”
“그냥 줄 수는 없고요.”
“응?”
동혁이가 씩 웃는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듯, 표정이 꽤나 얄궂다.
“우리 예빈이하고 장모님이 열심히 만든 캔디인데, 이걸 그냥 내어줄 수는 없잖아요?”
“지금 나하고 딜하려는 거?”
“뭔가를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조건을 걸어야겠죠.”
선화가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동혁이의 머리를 박박 쓰다듬는다.
“이야, 수동혁이 많이 컸다? 응?”
“나도 이제 어른이야. 머리 그렇게 쓰다듬지 말라고.”
“싫은데? 계속 쓰다듬을 건데!”
“아, 하지 말라니깐!”
동혁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다시금 준우를 응시했다.
손에 쥔 영양 캔디를 빙빙 돌리면서.
거래를 할 거냐, 말 거냐, 라는 뜻이다.
“좋아. 처남의 조건은?”
“저 대대장 시켜주세요.”
“뭐……?”
“대대장이요. 지금 매형이 대대장이잖아요.”
요 며칠 수린이와 반려몬 아이들과 함께 군대놀이를 하고 있던 동혁이었는데, 아무래도 입소한지 얼마 안 된 신병인지라 계급이 이등병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나, 내심 자신의 계급에 대해 불만이 잔뜩이었던 모양이다.
“대대장 자리가 탐나나?”
“수, 수린이가 중대장인데, 제가 그거보다 낮은 걸 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수린이 삼촌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조금 상한다는 거다.
조그마한 동혁이와 수린이가 삼촌, 조카 사이라는 것도 상당히 웃기지만, 동혁이가 자존심을 문제로 대대장 자리를 탐내는 것 또한 준우에겐 다소 웃긴 상황이었다.
“좋아. 처남에게 대대장 자리를 넘겨주지.”
“콜. 그럼 나도 영양 캔디를 넘겨주죠.”
대대장 자리를 탐냈다는 것.
그것은 곧 동혁이와 아이언도 이번 장애물 코스 놀이에 참여하겠다는 뜻과 같았다.
“대대장이 된 걸 축하해, 수동혁.”
선화가 놀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엄청나게 뿌듯한 표정이었다.
‘후후후! 내가 이제 대대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린이가 사이즈가 큰 준우의 전투복을 입고 있는 게 영 불편해 보여서, 선화가 며칠 전에 미니 전투복을 직접 제작해줬는데.
수린이를 포함한 모든 반려몬 아이들이 입고 있는 미니 전투복에 각각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동혁이의 자존심을 건든 것이었다.
수린이의 전투복에는 대위 계급장이.
동혁이의 전투복에는 이등병 계급장이 있었으니, 당연히 자존심이 상했을 수밖에.
하지만.
이제는 상하가 바뀐 상황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수동혁 대대장.”
“단결!”
“이 정도 진급 속도면, 곧 별도 달 수 있겠어.”
준우가 동혁이의 이등병 계급장을 떼어내고, 자신의 중령 계급장을 대신 부착해줬다.
‘아빠하고 큰형아가 군대 얘기해줄 때마다 그랬었지. 군대에선 계급이 높은 게 최고라고! 이제 여기선 내가 제일 짱이다!’
군대 얘기야 자주 들었다.
아빠와 형한테 숱하게 들어왔으니, 수린이보다 군대에 대한 지식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기도 했다.
“크흠!”
동혁이가 가슴팍의 중령 계급장을 자랑하듯, 위풍당당하게 반려몬들 사이로 걸어간다.
준우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선화를 향해 말했다.
“선화야. 혹시 대령 계급장도 하나 만들어줄 수 있어?”
“왜? 오빠하려고?”
“나도 나름 예비역인데, 미필자들 앞에서 이등병 딱지 달고 있을 수는 없잖아?”
“푸흡! 오빠도 그새 군대놀이에 빠진 거구나?”
준우도 어느샌가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즐겨하는 놀이인데, 가장으로서 함께 어울리는 것도 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뭐, 예전에 군 생활할 때 추억이 떠오르고 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장애물 코스 놀이를 군대 버전으로 한번 만들어볼까?”
“오! 컨셉 좋다! 지금 우리 집 상황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
“그치? 그게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네.”
준우는 곧장 장애물 코스 놀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수 있는 코스를 짜고, 상품을 배치하고, 수린이와 동혁이에게 놀이의 이름과 계획을 자세히 설명까지 해줬다.
수린이 역시 준우가 계획한 놀이에 흥미를 느꼈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요즘 수린이가 한창 빠져 있는 군대 컨셉이니까.’
며칠 전부터는 장래희망이 ‘군인’ 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수린이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집안에 수린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행정반에서 전파합니다. 모든 병사들은 지금 당장 연병장으로 집합해주세요오!”
참고로 연병장은 차원문 내부를 뜻했다.
전투복을 입은 반려몬 아이들이 연병장으로 달려갔고, 그 안에는 다소 근엄한 표정의 동혁이와 수린이가 서 있었다.
본가에서 아빠의 선글라스를 가져왔는지, 동혁이는 제 머리보다 사이즈가 훨씬 큰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준우가 보기에는 다소 어정쩡한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수린이는 선글라스를 낀 동혁이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선글라스 완전 머시따! 삼촌은 초등학생이라서 그런가? 역시 나보다 훠얼씬 낫구나! 나도 나중에 엄마한테 선글라스 사달라고 해야지!’
동혁이의 선글라스를 계속해서 힐끗 바라보는 수린이.
기왕이면 삼촌이 끼고 있는 것보다 더 멋진 걸로 사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후후후! 선글라스가 확실히 폼 나긴 하지. 아빠 걸 가져오길 잘했어!’
수린이의 시선을 느낀 동혁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대 발표를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흠, 흠!”
나름 이번 장애물 코스 놀이의 중책을 맡게 된 지라, 책임감에 걸맞은 무게감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었다.
“커흠!”
재차 이어진 헛기침에 반려몬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동혁이에게 시선을 집중했고.
“지금부터 유격훈련을 시작한다!”
동혁이가 비장하게 선글라스를 벗으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