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는 조용히 살고 싶다 (1)
영국에서 돌아온 후, 최근 들어 수린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이건형이 파병을 언급하면서부터 묘한 호기심이 일었는지, 귀국 첫날부터 유튜브를 통해 군대 관련 영상들을 살펴보고는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수린이는 군대라는 곳에 환상을 갖게 됐다.
“아빠! 나도 중대장 할래, 중대장!”
수린이가 드라마 남자 주인공에게 홀딱 빠져버린 탓이었다.
유튜브에서 드라마 다시 보기까지 진출한 수린이의 관심이 특전사 중대장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에까지 번졌달까.
“단결! 어때, 아빠? 나 경례 잘하지?”
“경례는 손 각도하고 위치가 중요해. 자, 손을 여기에 딱 두고 다시 한번 해봐.”
준우가 수린이의 자세를 다잡아줬다.
마치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으나, 수린이의 작고 귀여운 모습 때문인지, 계속해서 웃음이 나기만 하는 준우였다.
“다아아안결!”
“옳지, 잘하네. 우리 수린이 완전 중대장 같은데?”
“진짜로? 나 진짜 중대장 같아?”
수린이가 배시시 웃었다.
요즘엔 그 어떠한 칭찬보다 ‘중대장 같다’라는 표현이 최고로 먹힌다.
“아빠, 근데 불침번이 모야?”
“아빠, 경계 근무가 뭐 하는 거야?”
“아빠, 신병이 무슨 뜻이야?”
수린이는 드라마를 보면서 군대 관련 지식에 대해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준우에게 질문 폭격을 날렸다.
준우는 그런 수린이가 마냥 귀여워 세세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그는 미처 몰랐다. 수린이가 얼마나 군대라는 곳의 환상에 깊게 빠져 있는지를.
또 며칠이 지났다.
준우는 레오의 은퇴식 참여로 집을 비웠고, 선화와 수린이는 새로운 가족이 될 레오 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오! 이거 완전 멋있는데?”
어떻게 찾았는지는 몰라도, 수린이는 준우가 예비군 훈련 때 종종 입고는 했던 전투복을 어디선가 꺼내왔다.
아담한 수린이의 체구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큰 전투복이었지만, 수린이는 대충 전투복을 접어 입은 뒤 반려몬들을 집합시켰다.
“큼! 큼!”
드라마에서 봐 왔던 대로 무게를 잡으며 헛기침을 하는 수린이.
팔과 다리 길이는 물론, 기본적으로 옷 사이즈가 너무나도 많이 남아서 그런지, 무게감보다는 마냥 깜찍하게만 보였다.
목을 가다듬은 수린이가 소리쳤다.
말투와는 전혀 상반된 앳된 목소리로.
“병사들도 알겠지만, 이제 곧 우리 부대에 신병이 들어온다.”
컹컹-!
“중대장 말하는데, 누가 감히 말을 끊나!”
커헝…….
아직 수린이의 중대장 놀이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말순이가 민망함에 혓바닥을 내밀었다.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미심이는 수린이의 중대장 놀이에 맞춰 주려는 듯 각을 잡고 섰으며, 오복이들 역시 눈치를 보다가 일렬로 나란히 섰다.
“아무튼! 신병이 오면 배려를 해줘야 한다! 아빠가 그랬다! 신병이 처음 들어오면 아주, 아주 따뜻하게 보살펴 줘야 한다고!”
은실이가 고개를 까닥였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충 알겠다는 의미다. 다들 수린이의 맞장구를 마당에, 자신도 뭘 하긴 해야 했으니까.
“은실이 일병!”
끼이-?
“관등성명 똑바로 해야지!”
끼이이!
“그렇지. 은실이 일병이 오늘 불침번을 초번초를 서도록!”
끼이-?
준우에게 불침번 초번초라는 말까지 배운 수린이었으나, 정작 은실이 본인은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하지만 그냥 맞장구만 쳐 주면 될 것 같아서 고개는 끄덕였다.
불침번 순서는 은실이부터 오복이들, 미심이, 그리고 말번에 말순이가 지정됐다.
“아, 맞다! 경계 근무도 서야 되는데. 그, 그거는! 행정보급관님이 대신 짜 주신다고 한다!”
아직 군대가 서툴지만.
중대장 수린이에겐 조력자가 있었다.
참고로 행정보급관이 선화였다.
“아무튼! 아무튼! 신병에게 최대한 잘해 주고! 배려해 주고! 양보해 주고! 특히 서로 밥그릇 뺏지 말고! 알았나!”
반려몬들이 동시에 서로 다른 울음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는 크게!”
다시금 우렁찬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선화가 부엌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 그래도 나름 귀엽기는 했으니까.
“다들 잘 알아들은 것 같네! 오케이! 단결!”
수린이가 경례를 하자, 미심이가 꼬리에 각을 세운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오복이들은 수린이의 경례를 우수꽝스럽게 흉내냈고, 은실이도 날개를 접어 경례의 뜻을 보였다.
커헝-?
다만, 말순이만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수린이 중대장의 아침 점호가 끝이 났다.
자신이 입고 있는 준우의 전투복이 마음에 드는지 히죽 웃던 수린이가 시계를 바라본다.
“저녁 될라면 한참 멀었네. 아빠가 저녁이 되면 온다고 했는데, 히잉.”
아빠가 온다는 건, 새로운 가족이 함께 온다는 뜻이었으며.
수린이 중대장에겐 신병을 맞이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빨리 왔으면 조케따.”
아침부터 기합을 빡 줘서 그런가.
살며시 졸음이 오는 느낌이 드는 수린이었다.
* * *
헌터 협회 본청 대강당.
레오의 은퇴식이 예정된 장소였다.
“정대희, 레오 털에 저거 뭐야? 털에 뭐 묻은 거 같은데?”
탐지견 훈련 담당관이 옆에 있는 부하 직원을 향해 물었다.
레오의 파트너인 정대희가 길게 한숨을 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 묻은 게 아니라, 그냥 털이 좀 엉킨 겁니다.”
“엉켰으면 풀어야지.”
“담당관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레오 녀석 제 몸에 손대는 거 엄청 혐오한다는 걸.”
“그래도 오늘 은퇴식인데, 마무리는 예쁘게 해줘야 할 거 아냐? 파트너라는 녀석이 털 엉킨 거 하나도 못 풀어서야, 원.”
“담당관님도 못하실걸요.”
“못하기는 무슨! 내가 괜히 훈련 담당관이겠냐!”
담당관이 어깨를 으쓱이곤 단상 위로 향했다.
단상 위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레오가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레오야, 우리 오늘 사진도 찍어야 하니까 예쁘게 보이는 게 좋겠지? 털 얽힌 것만 좀 풀어 줄…….”
으르릉!
“아픈 거 아냐. 아주 잠깐이면 돼, 아주 잠깐이면.”
으르르릉!
이빨까지 드러내는 레오.
결국 담당관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단상 밑으로 내려왔다.
“쩝…….”
“그러게 제가 뭐랬습니까? 다른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레오 녀석은 워낙에 예민해서 손대는 거 싫어한다구요.”
“저 녀석은 마지막 날까지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일이 없네.”
담당관을 비롯한 본청의 모든 탐지견 훈련관들은 탐지견들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것이 훈련관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탐지견들 역시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때문에, 탐지견들에게도 좋고, 싫음이 있으니, 훈련관들은 그 역시 배려하고 존중해야만 했다.
“그래도 뭐, 여태 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지 않았습니까. 담당관님도 예전에 레오보고 훈련 잘하고, 현장 파트너 말만 잘 따르면 성격이야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고 하셨구요.”
“아쉬워서 그러지. 헤어질 때까지 녀석 등 한번 못 쓰다듬어 준 게 아쉬워서.”
그때였다.
행사장 안에 등장한 누군가가 단상 쪽으로 향했다.
그를 발견한 레오가 반색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댄다.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레오의 애교 섞인 몸짓이었기에, 담당관은 단상으로 향하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라리? 레오 쟤 왜 가만히 있냐?”
“전준우 대원이네요. 그러니까,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죠.”
남자의 정체는 준우였다.
준우가 때마침 레오의 얽힌 털을 풀어 주었고, 녀석과 잠시나마 놀아 주는 모습이 담당관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전준우 대원이 반려몬 전문가랍니다. 아마 본청에 있는 그 어떤 훈련관보다도 유능할걸요.”
“특수 본부 내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이 반려몬까지 잘 다뤄?”
“일전에 레오랑 현장에서 함께 만난 적이 있었어요. 파트너인 저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었는데, 그때도 전준우 대원이 나타나서 쉽게 해결을 해 버렸죠.”
“대단하네. 하긴, 그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이니 흔쾌히 레오를 입양한다고 했겠지.”
잠시 후 은퇴식이 시작됐다.
은퇴식은 그간의 세월을 협회와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대원들을 위한 예우였고, 레오 역시 협회 헌터들의 동료이자 대원으로서 이 행사를 누릴 자격이 충분했다.
“가장 먼저, 최고 탐지견 레오의 표창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최다 경력, 최우수 탐지견 등 여러 표창을 받은 레오에겐 협회장인 강재호의 최고의 탐지견 훈장까지 주어졌다.
여러 표창과 훈장은 레오 정도의 화려한 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고, 본청의 그 누구도 과하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레오는 그야말로 명견.
녀석의 활약이 그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지켜 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협회 본청 대원으로서 착실히 임무를 수행해 준 탐지견 레오에게 힘찬 박수와 함성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이 자신의 날이라는 것을 아는지, 레오 역시 리허설 때보다 위풍당당하게 단상 위에 서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동안 고생했어, 레오.’
준우가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경력이 많은 만큼, 나이도 가장 많은 노령견이었다.
아직 현장에서 뛸 정도의 여력은 남아 있으나, 협회 측에서 레오의 노후를 배려해 이만 은퇴를 결정한 것이었다.
사실상, 전성기 때보단 체력이 좀 떨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레오 본인이 이제는 쉬고 싶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었다.
“전준우 대원님. 기념사진 한번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사진요?”
“보통 이런 행사 마지막엔 사진 남겨 두거든요. 저희도 앞으로 전준우 씨가 레오의 보호자가 된다, 뭐 그런 걸 기록해야 하기도 하구요.”
“어렵지 않죠.”
행사의 마지막은 기념사진 촬영이었다.
준우는 레오와 함께 단상 중앙에 서서 함께 동고동락해 온 훈련관들과 기분 좋게 촬영을 마쳤다.
“이제 새로운 집으로 갈까, 레오야?”
크릉!
준우가 레오와 함께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어느새 그들의 앞에 펼쳐진 훈련관들과 후배 탐지견들의 도열.
“고생했다, 레오.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다.”
담당관이 짧지만, 진심 어린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 뒤로 레오의 동료였던 탐지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왈왈!
우렁차고 씩씩한 울음소리들.
마치, 레오를 향해 수고했다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탐지견들 중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했던 대선배인 레오를 향한 후배 탐지견들의 최고 예우랄까.
준우는 그 울음소리에서 레오를 향한 탐지견들의 존경심을 느꼈다.
“이야, 우리 레오 직장생활 잘했나 보다?”
으쓱해진 레오가 당당히 걷는다.
녀석은 다사다난했던 그간의 현장들과 훈련들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듯, 동료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고 있었다.
힘들었고.
뿌듯했고.
즐거웠던.
여러 나날들이 레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협회의 대원으로서 제 할 일을 충분히 해낸 본인이 내심 자랑스러운 느낌이 든다.
도열의 끝에서.
회상을 마친 레오는 생각했다.
아! 이젠 좀 쉬어도 되겠다.
여생은 조용히, 편안하게 한번 살아 볼까.
“가자, 레오. 우리 가족들이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레오는 그렇게 새로운 터전이 된 준우의 집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런 레오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뒤늦게 수린이의 군대놀이에 적응한 말순이였다.
컹컹!
말순이가 짖었다.
신병 받으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