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워커홀릭 (187/246)

◈ 워커홀릭

아이작이라는 놈은 아직 성장 중일 가능성이 크다.

회귀 전 나를 죽였을 당시와 시간 차가 꽤 컸으니, 그때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훨씬 더 약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회귀 전만큼 강하다고 한들, 중국의 블루 스톤 광산을 습격하긴 힘들겠지.’

광산의 경비는 삼엄하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가 광산을 사이에 두고 힘을 합친 상황에,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S급 헌터 다섯을 아이작 혼자서 감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쩌면, 회귀 전의 나도 내 옆에 S급 헌터 한 명쯤 더 있었더라면 죽는 경우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의 상황엔 중국과 러시아 정도로 전력이 막강하지 않음에도 불구, 여태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일본의 블루 스톤 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신켄의 전력보다도 아이작의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닐까.

‘회귀 전 이맘때에도, 블루 스톤 관련 이슈 중에 습격과 같은 문제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안일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당장 장인어른을 만나 신켄의 블루 스톤 광산에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릴 생각이었다.

‘아이작을 꾀어낼 미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장인어른의 힘도 좀 빌려야 하고…….’

일단, 큰형님께 살짝 언질을 줬으니 당장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우리 가족의 오늘 일정은 ‘몬스터랜드’였다.

세계 최초의 반려몬 동물원이며, 수린이가 무척이나 가고 싶어 하던 곳 중 하나였다.

물론, 선화도 동물원 부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몬스터랜드의 시스템과 운영 방식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었다.

왕실 파티 때, 루이스가 소개해 준 사람들 중 한 명이 몬스터랜드 관계자였고, 그의 배려 덕분에 선화는 몬스터랜드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종의 교류 같은 것이랄까.

“아침 식사 마치고 바로 몬스터랜드로 가시나요?”

“아마도요. 이 팀장님은요?”

“아아, 저는 서류 작업할 게 좀 있어서요. 영국 출장 끝나는 대로 곧장 일본으로 넘어가야 하거든요.”

“너무 일만 하시는 거 아닙니까?”

“예,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이건형은 근래 우리 가족과 계속 조식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유독 표정이 어두운 느낌이었다.

뭣보다 이건형이 이마에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일전에 수린이에게서 받은 걸 내가 그에게 줬던 건데, 두통에 효과가 좋다며 영국에선 좀처럼 밴드를 이마에서 떼질 않았다.

“혹시 아직도 두통이 심하세요?”

“심한 건 아닙니다. 그냥 고민거리가 좀 있어서.”

이건형이 괜찮다는 듯 웃었다.

회귀 전엔 주로 내 고민을 상담해 주던 그였다.

고마운 마음에 이번엔 내가 고민 상담을 해 주고 싶었으나, 어쩐지 느낌이 사적인 일인 것 같아 이내 마음을 거뒀다.

“어? 삼촌! 문자 와써요!”

그때였다.

이건형의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던 수린이가 불쑥 소리쳤다.

“여자 친구한테 온 거 같아요!”

“아, 아……?”

당황한 이건형이 냅다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핸드폰을 잠궈 놓는 스타일이 아닌 그인지라 이미 수린이가 팝업으로 떠오른 문자 내용을 봐 버린 듯했다.

“이름에 하트 붙어 있으니까, 여자 친구 맞죠? 우리 엄마하고 아빠도 서로 이름에 하트 붙여서 저장해 놨던데.”

“아, 아냐! 여자 친구 아냐.”

“에이! 여자 친구 맞는 거 같은데! 빨리 답장해요! 우리 엄마도 아빠가 답장 늦는 거 엄청 싫어해요!”

“……크흠!”

이건형이 살짝 등을 돌린 채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 비밀리에 사내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이미 사내엔 이건형의 연애 사실이 어느 정도 소문이 난 후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건형이 형님이 이맘때쯤 형수님한테 프러포즈했다가 까였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설마, 그거 때문에 고민인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프러포즈는 아니고 결혼을 언급했었다고 했다.

서로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거랄까.

이건형이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댄다.

고민이 깊을 때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하는 버릇 같은 거였다.

“삼촌! 머리 많이 아프면 오늘은 좀 쉬어요. 맨날 일만 하지 말구.”

“나, 나는 괜찮…….”

“그러지 말구! 오늘 우리 가족이랑 같이 몬스터랜드 가요! 신나게 놀고 나면 머리 아픈 것도 금방 사라질 거예요!”

“응?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괜히 끼어드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와 선화의 눈치를 살피는 이건형.

하지만, 선화는 오히려 좋아했다.

“괜찮으시면, 진짜 같이 가실래요? 수린이 말대로 가끔은 머리를 쉬게 해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영국 와서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만 하셨잖아요?”

“아닙니다, 제수씨. 괜히 제가 좋은 시간 방해하는 것 같아서요.”

“방해는요. 마침 잘됐어요! 우리 가족 사진 찍어 줄 사람도 필요했거든요. 팀장님께서 사진 찍어 주시면 딱이겠다!”

“아?”

“농담이에요, 농담! 조금은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런 얘기죠.”

“그, 그럼 그냥 호텔 방에서 혼자 쉬겠습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쉬기는 무슨.

절대 안 쉴 사람이다. 분명히 방 안에서 서류 작업하면서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있겠지.

“같이 가요, 이 팀장님. 서류 작업은 제가 다녀와서 도와드릴게요.”

“민폐가 아닐는지…….”

“전혀요. 오히려 멀리 보면, 계속 그렇게 머리 싸매고 있는 모습이 더 민폐입니다. 일하실 때 머리 제일 많이 쓰시는 분이, 이렇게 자주 머리가 아파서야 되겠습니까. 고민 해결하고, 머릿속부터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요?”

“설마 제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신 겁니까?”

“으음. 결혼이랑 관련된?”

“헛! 어, 어떻게?”

“제가 말입니다. 이 팀장님처럼 사람 기억을 읽어 내진 못해도, 눈을 보면 감정 정도는 캐치해 낼 수 있답니다.”

“그새 새로운 스킬이라도 익히신 겁니까?”

“…….”

“대단하군요! 준우 씨가 새로 익힌 그 스킬 역시, 앞으로 저희 협회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인데.

‘하여튼, 이 형님은 무슨 말만 하면 일이랑 연관 지어 생각한다니까.’

워커홀릭.

저거 진짜 병이다, 병.

* * *

회귀 직전, 이건형은 나와 마지막을 함께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던전 안에서 아이작이란 놈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건형과 마지막까지 나눴던 대화 중, 머릿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단연 그의 조언이었다.

- 워커홀릭. 그거 정신과적인 병명은 아니라는데, 그래도 꼭 한번 가 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죽어라고 출셋길만 좇다 보니, 내 가정 박살 난 건 한참 후에나 보이더라.

인생 선배로서, 결혼 선배로서의 조언이었을 거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평생 성공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그가, 이혼을 하게 된 후에 나에게 항상 습관처럼 했던 말이기도 했었다.

“엄마아아! 저기 봐 봐! 빅풋이다, 빅풋!”

“어머! 영국 몬스터랜드에선 빅풋을 길들이는 데도 성공했다더니, 진짜였구나! 얘는 성향이 좀 공격적이라고 해서 힘들 거라고 했었는데!”

“우리 가까이 가서 사진 찍자아!”

선화와 수린이가 몬스터랜드 내 커다란 발을 가진 원숭이처럼 생긴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달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그 옆의 이건형은 콜라를 쪽쪽 빨아 마시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빅풋, C급 몬스터죠. 주변의 사물을 던져서 투척하는 공격하는 형태를 주로 띄고 있구요.”

“…….”

“발이 크기도 하지만, 발바닥이 강철처럼 단단해 간혹 무기를 대신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때 저희 팀원 중 하나가 빅풋의 발에 맞아 중상을 당했었죠.”

“그런가요.”

“참고로 놈의 약점은 사타구니입니다. 저길 집중 공격하면 좀처럼 힘을 못 쓰는데…….”

누가 보면 몬스터랜드 관람하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줄 알겠다.

아직 한참 어린 새끼 빅풋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아니라, 공략법만 잔뜩 되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회귀 전 건형이 형님이 했던 말처럼 워커홀릭은 아주 질 나쁜 병임이 틀림없다. 설마, 나도 저 정도였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화는 오죽했을까.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일 얘기만 나였는데.

“한나 씨한테 프러포즈했다가 까이셨습니까?”

“푸학!”

이건형이 막 들이켰던 콜라를 뿜었다.

준우가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봐서 당황한 모양이다.

“프, 프러포즈는 아닙니다. 그냥, 미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고…….”

준우가 알기론 이건형의 결혼은 앞으로 3, 4년쯤 후에 이루어진다.

아마 그때가 엑시스로 이직했을 때였더랬지.

“……결혼을 한다면 언제쯤 하면 좋을까, 뭐 그런 얘기 정도만 했었습니다. 근데, 도대체 준우 씨는 저희가 연애하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완전히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특수 본부 내 사람들 거의 다 알걸요. 한나 씨가 이 팀장님이랑 사귄다고 워낙 티를 내고 다녔어야 말이죠.”

“……아, 그랬습니까?”

이건형이 히죽 웃는다.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만 떠올려도 마냥 좋은 듯하다.

‘언제는 연애엔 관심 없다더니.’

정한나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은 지는 꽤 됐다.

대충 이건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꿀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였겠지.

“이마에 계속 밴드 붙이고 다니는 이유가 결혼 때문인 거 맞죠? 고민하다 보니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 참! 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이 밴드 대체 뭡니까? 이마에 붙이고 있으면 뭔가 두통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던데…….”

“말 돌리지 마시구요.”

“……진짜 궁금했었습니다.”

수린이가 밴드에 마력을 좀 부여한 것이었다.

전부터 아빠 다치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잔소리보단 해결 방법을 직접 찾아냈다고나 할까.

많은 양의 마력이 부여된 게 아니라 상처를 직접 치료할 순 없겠지만, 이건형의 말마따나 두통 정도는 완화시킬 수 있는 효과는 지니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결혼은 아직 먼 얘기인 것 같고, 사실은 영국에 오기 전에 크게 싸웠습니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건형은 고민이 깊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인을 떠올리며 웃음 짓던 그의 얼굴엔 어느새 근심이 번져 있었다.

“싸운 이유가 뭔데요?”

선화가 대뜸 물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선화와 수린이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거다.

“말씀해보세요, 팀장님. 제가 또 나름 유부녀잖아요? 도움을 드릴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 그게…….”

“빨리 말해 봐요, 삼촌! 제가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두 여자가 이건형을 재촉했다.

어째 분위기가 드라마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선화를 따라 틈틈이 드라마로 각종 연애와 관련된 갈등을 접해온 수린이라 그런지, 나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선화야 더할 나위도 없고.

“사실, 제가 얼마 전부터 이직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미국의 ‘라이즈’ 길드에서 2군 공격대장 직책으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었거든요.”

라이즈 길드는 세계 랭킹에선 엑시스보다 더 밑이지만 미국 내에서는 3, 4위를 다투는 대형급 길드였다.

그 정도 길드라면, 확실히 협회에서 근무하는 것보단 커리어나, 연봉이나 월등히 좋기는 한데.

‘회귀 전엔 이런 일이 없었잖아? 내가 알기론 건형이 형님은 향후 3, 4년은 더 협회에 있다가, 엑시스 이직 시험을 보고 합격한 걸로 아는데…….’

어쩌면, 회귀 전보다 이건형의 활약이 더 많아져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내가 협회에 입사하게 되면서, 나와 얽혔던 대부분의 사건들엔 이건형의 능력이 작용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세계 다른 길드에서도 건형이 형님의 능력에 관심을 갖게 된 걸지도 몰라.’

“라이즈 길드급에서 스카우트를 해 왔다면, 다른 길드에서도 제안이 왔을 텐데요?”

“서너 군데에서 더 오긴 했었습니다. 그중에서 라이즈가 가장 커리어 쌓기엔 낫다고 판단했구요. 거기서 커리어를 쌓고, 나중에 다시 국내로 돌아와 엑시스로 이직하는 게 최고의 루트라고 생각하는데…….”

“근데. 라이즈 길드 2군 공격대의 주 업무가 아프간 파병인 거 알고도 그렇게 판단하셨다는 거죠, 지금?”

“알고 있습니다.”

“파병 한번 가면 최소 반년 이상인데.”

“괜찮습니다. 파병 경력이 차후 타 길드 이직할 땐 헌터로선 아주 좋은 커리어로 인정이 될 테니까요.”

“그건 팀장님이 살아 돌아왔을 때 얘기구요. 게다가 파병 커리어 인정받으려면 최소 2년은 경력을 쌓아야 하잖습니까.”

“하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와, 미친.”

“예? 방금 뭐라고……?”

“아, 아닙니다.”

식겁했다.

건형이 형님이 파병을 불사할 정도로 이렇게까지 워커홀릭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거기서 죽는 헌터들이 얼마나 많은데!’

영국 왕실 저항 세력에 네크로맨시아가 있다면.

아프가니스탄에는 ‘레보’라는 무장 이슬람 단체가 있다.

그들의 대규모 미국 테러로부터 시작된 아프간에서의 전쟁은 약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들어 레보가 고등급의 몬스터들을 유인해 무기로 활용함으로써 전쟁이 더욱 심화된 상황이었다.

일반인과 헌터, 그리고 몬스터.

너 나 할 것 없이 뒤섞여 전쟁이 지속되는 아수라장인 곳이며, 파병을 갔다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과연 몸 성하게 돌아올지 의문인 곳이기도 했다.

‘라이즈 길드 마스터가 테러 때 희생된 사망자의 유가족이라서 여태 지원을 하려는 거지, 어지간해서는 다른 대형 길드에서도 파병을 꺼리는 곳인데…….’

한때 회귀 전의 나만큼이나 지독한 워커홀릭에 시달렸다고 듣긴 했지만, 이맘때쯤의 그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자친구를 곰신 만들겠다는 거죠? 나이 서른 다 돼 가는데? 아니지, 잘은 모르지만 서른이 넘었을 거 아니에요?”

그때였다.

어느새 눈에 쌍심지를 켠 선화가 훅 들어왔다.

“고, 곰신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엄마, 곰신이 뭐야?”

“남자 친구 군대 보내고 기다리는 여자를 뜻하는 거야.”

“히잉, 그럼 여자 친구 오랫동안 엄청 심심하겠다.”

“그치, 수린아? 엄청 심심하고 외롭겠지?”

“엄마도 아빠 군대 가면 외로울 거 아냐?”

“당연하지! 엄마는 아빠 군대 가면 맨날 울지도 몰라.”

“수린이도 아빠 군대 가면 맨날 울 것 같아. 삼촌이 왜 여자 친구랑 싸웠는지 알겠네. 여자 친구 곰신 만들어서 울린 거였어!”

“아, 아니, 수린아, 일단 내 말 좀…….”

이건형이 죽이 잘맞는 모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옆에서 함께 노려보는 수린이의 눈빛은 덤이다. 우리 수린이는 과연 대화 내용을 다 이해하고 노려보는 걸까.

“하, 한나 씨와는 최대한 빨리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한나 씨를 많이 좋아하니까요. 그렇지만, 결혼을 하면 가정이 생길 거고, 가정을 꾸리려면 경제적으로도 지금보단 나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요?”

“연봉도 협회보단 길드 쪽이 더 대우가 좋고, 이왕 길드로 이직하는 거면 최대한 대형 길드 쪽으로 가는 게 역시 더 좋고, 그러기 위해선 커리어를 쌓아야…….”

“삼촌! 그래도 군대 가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그, 그래도 내 딴에는 그게 제일 빠르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거야. 삼촌이 가정을 가장 화목하게 이룰 수 있는 최단 기간의 방법이랄까?”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여자 친구는요?”

“이해해 줄 거라고 믿은 거지. 삼촌도 여자 친구와의 미래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고, 제 선택이 한나 씨와의 미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슬쩍 선화와 수린이의 반응을 살폈다.

두 사람이 잠시 시선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고개를 내젓는다.

“근데, 엄마. 아무리 삼촌이 예쁜 마음으로 그랬다고 하더라도, 싸운 거면 뭐가 잘못된 거 아냐?”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만약 팀장님이 파병 가서 잘못되면? 내가 여자친구였으면 걱정돼서 단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도 만약 아빠가 군대 갔다고 생각하면, 슬퍼서 마음 편히 잠 못 자.”

같은 여자라 그런 걸까.

두 사람 모두 감정 이입을 했는지,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팀장님 스타일을 보니까, 단순히 파병 건만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요.”

“예?”

“오빠한테 들어 보니까, 한나 씨가 팀장님 엄청 오랫동안 짝사랑했다면서요? 파병 건 정도는 한번 참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그렇죠?”

내 눈치를 살피던 이건형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에 연락 자주 안 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팀장님, 영국 와서 여자 친구한테 연락 자주 했어요?”

“일이 바빠서…… 그, 그건 준우 씨가 잘 알 겁니다! 그간 저희가 네크로맨시아 관련 합동 수사를 하게 되면서, 문자나 전화할 여유가 도통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준우 씨?”

“아닌데. 우리 아빠는 엄마랑 하루에 세 번씩 통화하고, 계속 문자도 주고받고 했는뎅.”

수린이가 반박했다.

고맙긴 한데, 어째 내가 상황이 묘해졌다.

“그래도 일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연락했었습니다!”

“와아! 그럼 그전까진 아예 연락 안 하신 거예요? 영국 오기 전에 싸움까지 하시고? 설마, 아까 조식 드실 때 처음 연락했던 건 아니죠?”

“곧 한나 씨 생일이라, 그때 꼭 좋은 선물해 주면서 화해하려고 했었…….”

“여자 친구 생일이 언젠데요?”

“사흘 뒤인데…….”

“팀장님 아까 영국 출장 끝나고 곧장 일본 출장 간다고 하지 않으셨……아, 아닙니다. 아이쿠! 이런, 제가 말실수를…….”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뒤늦게 입을 막았지만, 이미 선화는 화가 잔뜩 난 상황이었다. 이거 너무 감정 이입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여자친구 생일날 출장이요? 혹시 다른 기념일에도 출장 가시거나, 일하느라 빼먹으신 적 있어요?”

“며, 몇 번 있기는 했는데, 저, 저를 너무 그렇게 죄인처럼 보시면…… 저는 어, 억울합니다!”

“하!”

“저는 정말로 한나 씨와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그 모든 선택은 오직 한나 씨와의 미래만을 고려해 결정한 것들이었습니다!”

“싸움에! 파병에!”

“…….”

“거기에 출자아아앙?”

선화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회귀 전의 전과가 있어서 그런지, 괜히 눈치가 보여 잠시 뒤쪽으로 물러났다.

‘회귀 전의 내가 건형이 형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단 말이지…….’

워커홀릭.

그거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진짜 병이다.

물론, 나도 한참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팀장님! 정말 너무해요!”

“삼촌! 적폐야!”

그런데.

잘하면, 건형이 형님의 워커홀릭은 더 큰 병으로 번지기 전에 예방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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