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을 맡기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프레디와 인사를 주고받은 준우는 그와 잠시나마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초면에 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 형식적인 대화가 고작이었으나 영국의 헌터 협회장과 안면을 텄다는 것만으로도 준우에겐 제법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프레디와 루이스가 친분이 있는 것 같아. 영국에 머무는 동안 한 번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볼 수 있을 거야.’
조금 전 시작된 파티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갔다.
그리고 루이스를 만난 준우는 한참을 그에게 이끌려 연회장 곳곳을 누비는 중이었다.
“전준우 헌터님. 이쪽은 제 오랜 전우인 제임스 중위입니다. 얼마 전에 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수여 받은 자이며, 군 내에서도 유능한 유망주로…….”
“아아, 안녕하십니까.”
“저기 타일러도 있군요. 타일러와도 인사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국 내에서 각성자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자인데, 업계에선 알아주는 실력자입니다!”
“그, 그렇군요.”
“토마스? 오랜만이야. 내가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 여긴 전준우 헌터님이라고, 한국 협회 소속으로 검술 실력이 아주 뛰어나신 분이시지. 칸나의 검술 스승이라고 들어 봤지?”
“오오! 칸나의 검술 스승!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준우 헌터님.”
“과,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요. 여태 살면서 루이스가 누군가를 칭찬하는 건 처음 봅니다. 그만큼 엄청난 실력을 가진 헌터시라는 거겠지요.”
“인사 나누세요. 참고로 토마스는 저와 함께 아카데미를 다닌 친구로 현재 아카데미 내에서 학생들에게 검술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어, 루이스 중대장님? 지인분 소개는 이 정도만 해 주셔도 충분히 도움이 된 것 같은데…….”
“이번 왕실 파티는 영국 내에서도 유명 인사들만 주로 초청된 자리입니다. 보통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죠. 따라서, 앞으로 전준우 헌터님께도 도움이 될 훌륭한 사람들과 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오늘 인사 나눈 분들만 해도 벌써 스무 명 가까이 된 듯싶은데, 이만하면 차고 넘치지 않을까요?”
“아직 멀었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이 정도론 부족하죠. 제가 영국의 모든 유명 인사들과 인연을 맺으실 수 있도록 더 노력할 테니, 저만 믿고 따라 오십쇼. 마침 저기 오스카가 오고 있군요!”
“…….”
준우는 물론, 얼떨결에 선화와 수린이까지 그의 옆을 지키며 영국의 인사들과 안면을 트고 있는 사이.
프레디는 저만치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다소 의아한 표정의 프레디였다. 연회장에서 이토록 열정적인 루이스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질 못했기에.
“놀랍군요. 루이스가 이런 파티에 모습을 드러낸 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조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역시 그렇게 놀랍기는 마찬가집니다. 여유가 생기면 검술 훈련에만 매진하던 녀석이었으니까요. 아마 전준우 헌터 때문일 겁니다. 저자에게 목숨을 빚졌으니,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테죠.”
“생명의 은인에겐 많은 것을 주어도 더 주고 싶기 마련이죠. 저 역시 지금 제 옆에 계신 홀리 나이트 길드 마스터님께 같은 마음이구요.”
“이미 오래 지난 일입니다. 20년도 더 된 레이드에서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계시다니요.”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모자를 텐데.”
서로 나아가는 길은 달라도 오랜 전우인 프레디와 조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흐뭇하게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샴페인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나저나, 길드 마스터께서 이번에 전준우 헌터를 왕실 후원 대상으로 추천하셨다구요?”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그저 아들의 목숨값을 치르기 위함은 아니니.”
“그럼?”
“과장을 좀 섞자면, 홀리 나이트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고나 할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더 자세히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향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산업이 블루 스톤 관련 산업이라는 건 연대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해서, 저희 협회와 홀리 나이트 측에서도 중국의 블루 스톤 광산과 접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한데, 아무래도 불발 가능성이 높을 듯싶군요. 최근에 저희 길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러시아가 중국과 은밀하게 접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독점 벽을 세울 가능성이 높겠죠.”
“흐음.”
“방법을 찾는다면 독점 벽이야 조금이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만, 여태 중국과 러시아의 합작들을 미루어 볼 때 그리 효율이 높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칫 중국에만 매달리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구요.”
“차선이 엑시스인 겁니까?”
“지금으로선 차선이 아닌 최선입니다. 신켄이 대규모 블루 스톤 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때, 엑시스가 신켄의 상당수 지분을 인수한 상태이며, 신켄의 블루 스톤 품질이 훨씬 좋다는 정보도 이미 몇몇 국가에서는 인지를 하고 있지요.”
“경쟁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중입니다. 어쩌면, 전준우 헌터가 저희에겐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엑시스 내에서 저자의 영향력이 그리 큽니까? 하물며 엑시스 소속이 아니라, 협회 소속이지 않습니까?”
“길드 마스터인 수태광의 신임이 막강하다고 하더군요. 나아가, 엑시스 명예 이사직까지 맡고 있고.”
“명예 이사?”
프레디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타국 언론에서 떠드는 얘기들이야 자국 언론과 비교했을 때 화제성이 적은 편이었고, 명예 이사 관련 이야기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는 사실이긴 했다.
“게다가, 미스 황의 사위이지 않습니까? 여러모로 득이 될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준우 헌터 한 명에게 신켄이 움직여 줄 거란 기대를 걸기엔 너무 허황된 이야기이지 않나 싶군요.”
“전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신켄의 길드 마스터가 전준우 헌터의 제자이지 않습니까? C등급의 칸나를 A급까지 끌어 올린 사람이 전준우 헌터이니, 영향력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그,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프레디가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오늘 들어 가장 놀라운 반응이다.
“C급 헌터를 A급까지 끌어 올렸다는 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예, 그렇다고 하더군요.”
칸나의 스승이 준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C급에서 A급까지 끌어 올린 사실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칸나도 기자 회견에서 그리 자세한 이야기까진 언급하지 않았었으니까.
조지야 준우의 팬이었던 루이스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였지만, 준우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던 프레디라면 앞서 명예 이사 관련 이야기처럼 모를 수도 있는 사실이었다.
‘대체 검술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기에…….’
낯을 많이 가리는 프레디였으나, 준우의 첫인상은 수린이와의 만남으로 인해 매우 호감이었던 상황.
거기에 조지의 말이 더해져 호감은 큰 관심이 되었고, 이제는 그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외람된 얘깁니다만, 연대장님의 아드님이 아카데미에서 검을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로건이요? 검에 재능이 없는지 진급 시험에서만 세 번째 떨어지는 중이긴 합니다만…….”
영국의 헌터 아카데미는 시험에서 떨어질 경우, 진급이 유예된다.
루이스에게까지 검술 과외를 받았으나, 양손검을 사용하는 그와 아들의 스타일이 달라 큰 도움이 되진 않았었다.
“……전준우 헌터, 칸나의 스승이니 당연히 한손검을 사용하겠지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프레디는 생각했다.
칸나를 단숨에 A급으로 끌어 올린 준우라면, 아들의 과외 선생으로 제격이 아닐까.
물론, 중대한 일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외람된 내용이긴 하다.
그러나.
프레디도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그 누구보다 아들의 장래를 고민하는 학부모였다.
‘로건의 진급 시험까지 남은 3개월간, 그가 속성 과외를 맡아 준다면…….’
하지만, 준우는 왕실 행사가 끝이 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당장 과외를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그를 영국에 붙잡아 둘 만한 이유가 과연 있을까?’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왔다.
해리 사건의 합동 수사 요청을 빌미로, 준우를 이곳에 당분간 이곳에 머물게 하는 것.
“해리와 네크로맨시아. 국가적으로 꽤 민감한 사건이긴 하나, 연대장님께서 조금만 신경을 써주신다면 장차 저희 홀리 나이트와 이 나라의 미래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지가 쐐기를 박았다.
애당초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말이 그것이었던 것처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대장님이나 저나,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겁니다.”
저만치 앞에 보이는 준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프레디.
그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 * *
무르익어 가기 시작하던 파티 분위기는 어느새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연회장 내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내 사람들은 하나둘 파트너를 찾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지 준우와 수린이는 멀뚱히 서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장모님이라도 계시면 좋으련만.’
멋쩍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
황장미에게 의지라도 해 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여왕의 부름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빠! 나도 춤 추고 싶어!”
그때, 수린이가 대뜸 소리쳤다.
눈앞에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춤을 추고 있으니, 소외되고 싶지는 않은 모양.
“우, 우리 수린이 인싸네…….”
“아빠가 춤 알려 줘!”
“내, 내가?”
모처럼 준우가 당황했다.
제 몸은 스스로가 잘 아는 법.
준우 본인은 자신이 몸치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빤 다 잘하잖아! 춤도 잘 출 거잖아? 그치?”
“당연하지!”
아빠의 자존심 같은 거랄까.
딸 앞에서 감히 못 하는 게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준우는 냉큼 주먹을 쥐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풉.”
하지만, 선화의 입에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남편이 춤을 추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질 못하지 않았던가.
“우리 오빠가 춤 잘 추는 건 나도 몰랐네?”
유치원 학예회 때 동요에 맞춰 춤춰 본 것 빼곤 경험이 없던 준우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어, 어쩌지? 일단 막춤이라도 춰 볼까?’
준우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다간, 이미 눈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로 인해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수린이가 엄청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그냥 못 춘다고 할 걸 그랬나?’
선화는 잠자코 준우를 지켜봤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얼른 춤춰 봐, 오빠. 잘 춘다며? 나도 한번 보자.”
“찌, 찍지 마아!”
“수린아. 아빠가 댄스 머신이래. 우리 수린이 여기서 꿀리지 않게 잘 리드해 줄 거야.”
“오오옷! 진짜루?”
“그럼, 그럼! 아빠는 못 하는 게 없으니까!”
아빠라는 사람의 자존심이 부른 후폭풍.
그리고, 기대감으로 한껏 차오른 수린이의 시선.
갈팡질팡하던 준우가 막 결단을 내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춤 한번 춰 보자고 결심한 그 순간.
“같이 추시겠습니까, 레이디?”
웬 남자아이 하나가 수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이는 수린이의 또래로 보이는, 화려한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어…… 음…… 아……?”
잠시 당황한 수린이가 남자아이의 얼굴을 마주 본다.
나이에 맞지 않게, 뚜렷한 이목구비에 어딘가 모르게 고풍스런 분위기가 풍기는 묘한 매력에 수린이의 눈동자가 살며시 흔들렸다.
‘잘생겨따!’
아직 어린 수린이지만, 감히 판단했다.
지금껏 봐 온 그 어떤 남자들보다 잘생긴 남자라고.
눈앞의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다시금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같이 춤을 추겠느냐고.
“……예, 예스.”
수린이가 대답했다.
남자아이가 젠틀하게 미소로 화답하며, 수린이의 손을 마주 잡고 무대로 이끌었다.
“어? 야! 뭐야? 지금 내 딸 채 간 거야?”
눈 깜짝할 새에 딸을 뺏긴 준우가 기가 찬다는 듯 남자아이와 수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푸흡! 그러게 누가 얼타고 있으래? 우리 수린이가 얼마나 예쁜데, 오빠처럼 머뭇거리고 있으면 당연히 다른 남자가 와서 채 가지 않겠어?”
“그, 그래도 그렇지! 엄연히 아버지가 옆에 떡하니 붙어 있는데! 감히! 내 앞에서 딸을 채 가?”
“어휴. 뭘 그리 흥분하고 그래. 그냥 애들끼리 춤추는 건데.”
“안 되겠어. 내가 당장 가서 수린이를 다시 데려와야…….”
“아오! 창피하게 왜 그래! 수린이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냥 좀 둬. 잘 어울리는구만.”
“아니, 난 아직 수린이를 보낼 준비가 안 됐다고…….”
“오빠.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이럴 때 보면 꼭 우리 아빠 같다니까?”
“…….”
“저 남자아이 누군지 알지?”
“몰라. 알아서 뭐해.”
“오늘 파티 주인공이잖아. 윌리엄 왕세증손.”
“……그러니까, 왕자라고?”
“그렇지! 꼭 무슨 동화 같지 않아? 우리 수린이가 왕자님 손을 잡고 이끌려 나가서, 무대에서 춤을 춘다니? 세상 너무 감격스럽다.”
“감격은 개뿔.”
“세상에 이런 곳에서 왕자님이랑 손 마주 잡고 춤추는 일이 흔한 줄 알어?”
“……나도 수린이랑 춤춰 보고 싶었는데.”
행복한 수린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준우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벌써부터 딸 시집 보내는 상상이라도 하는 것일까.
“오빠. 청승맞게 그러고 있지 말고, 일로 와.”
“응?”
“우리도 춤춰야지. 오빠가 오늘은 내 왕자님이잖아.”
선화가 준우에게 손을 건넸다.
얼떨결에 선화의 손을 맞잡은 준우는 선화를 따라 춤을 추는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긴장하지 마, 오빠. 몸치도 춤출 수 있어.”
“……몸치 아니다.”
“몸에 힘 풀고. 긴장 풀고. 자연스럽게 내 스텝만 따라와.”
“추, 춤 배운 적 있어?”
“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나 대학 때 댄스 동아리였는데, 이런 춤도 잠깐 배웠었거든.”
잠깐 배운 것치곤 선화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사교계에 자주 얼굴을 내비친다던 몇몇 사람들과 비교해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선화는 재능도 참 많네. 선화가 나랑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은 것들 더 많이 하면서 살았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선화가 말했다.
“좋네. 오빠랑 결혼해서 영국 왕실 파티에도 오게 되고, 이렇게 오빠랑 마주 보고 춤도 출 수 있고.”
“그,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잘한 거 같아.”
“뭐가?”
“오빠랑 결혼한 거.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나 할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오빠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준우는 가슴이 콩닥거리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곳에서, 마치 무대의 주인공이 선화와 자신인 것처럼 서로에게만 집중한 채로 춤을 출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엔 선화와 춤 한번 같이 춰 주질 못했다.
‘생각해 보면, 진짜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마주 보고 있는 선화의 표정이 아이처럼 밝았다.
이 순간을 그저 즐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한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애틋했다.
‘……왜 그땐 이 쉬운 걸 한 번도 해 주질 못했을까.’
잡념이 많은 탓에 준우의 스텝이 꼬인다.
선화가 피식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오빠, 또 딴 생각하지?”
“아닌데?”
“오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거든.”
“지, 진짜 아냐.”
“다 안다니까 그러네. 우리 오빤 생각이 참 많아서 문제란 말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받고 있을 거야, 그치?”
선화가 준우에게 몸을 더 가까이 밀착시켰다.
따스한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촉에 분위기가 묘해진다.
“지금은 나한테만 집중하면 돼.”
“응?”
“지금 이 순간만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머릿속을 싹 비워 보라는 뜻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고민, 그런 거 말고, 그냥 지금을 즐겨 보라는 거지. 우리 지금 너무 즐겁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괜히 지난 일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었나.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살며시 미소를 띤 준우가 괜히 멋쩍어 말했다.
“아까 대답 깜빡했다. 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당연히 나랑 결혼한 일이잖아. 나도 알아, 오빠. 아니까 대답 재촉 안 하고 가만히 있지 않았겠어?”
“……하여튼, 멋진 여자라니까.”
마주 잡은 선화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쥐는 준우.
머릿속을 완전히 비운 그가 선화의 리드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