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초대 (181/246)

◈ 초대

영국 협회에서는 해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의 뒤를 봐주던 미제 던전 관리대대장 역시 해리와 같은 처지가 되었으며, 대형 길드의 장남과 협회의 간부가 네크로맨시아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 역시 금세 영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루이스는 곧장 홀리 나이트 본사에 있을 아버지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은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하필이면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만난 루이스는 언론에 퍼진 다이스 가든에서의 사건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한국 협회의 한 헌터가 제임스는 물론, 루이스 네 목숨까지 구해주었다? 네크로맨시아 놈들까지 잡아들이고?”

“맞습니다, 아버지.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아주 정직한 사내였습니다. 헌터로서의 자질 또한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요.”

홀리 나이트 길드 마스터 조지.

그가 한국 협회 소속 헌터인 준우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충분히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 저희의 목숨을 위해 기꺼이 포기를 한 사내입니다. 아내를 위해 꼭 던전을 공략하고 가져가야 할 아이템이 있음에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내를 위해 던전을 공략하려고 했다고?”

“예, 구름무늬 다이아몬드를 아내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면서.”

“흐음, 그랬단 말이지.”

길드의 큰 전력 중 하나인 루이스가 군에 복무를 하게 됨으로써, 홀리 나이트에는 전력 손실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조지는 그걸 감안하고도 기꺼이 아들을 군에 보낼 만큼 애국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에 군 복무를 두고 있을 만큼 말이다.

또한.

강한 애국심보다 더욱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특히나 애처가인 조지의 아내 사랑은 아들인 루이스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내를 위해 구름무늬 다이아몬드를 선물해주려고 했다라. 꼭 오래전 나의 모습이 떠오르는군. 안 그래, 소피아?”

“맞아요. 우리 연애할 때 당신도 내게 구름무늬 다이아몬드를 선물해줬죠.”

“당신이 그 보석이 참 예쁘다고 했었으니까.”

조지의 아내인 소피아 역시 행복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냉큼 던전 안으로 달려가서 진짜로 그걸 구해올 줄은 몰랐어요. 열정적인 당신의 사랑에 또 한번 반했었죠.”

“혹시 나 또한 그때 당신에게 또 한번 반했다는 걸 알아?”

“왜요?”

“보석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미소 때문에.”

“어머, 조지…….”

“소피아,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변함이 없어.”

서로를 향해 불꽃 튀는 시선을 보내는 두 사람.

루이스에겐 익숙한 장면이었으나, 이번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이런 장면이 튀어 나와버렸다.

“아, 아버지. 아직 저 얘기 다 안 끝났어요.”

“결국, 네가 목숨을 빚진 전준우라는 헌터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는 것 아니냐?”

“그가 간절하게 원하던 걸 선물로 주고 싶어요. 길드 내에 구름무늬 다이아몬드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전준우라는 헌터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네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녀석이 아닌데.”

“자그마치 목숨을 빚졌으니까요.”

“좋다. 구름무늬 다이아몬드 하나쯤이야. 이번 기회에 훌륭한 헌터와 연을 맺는 것도 네 미래에 크나큰 도움이 될 터.”

조지는 생각했다.

홀리 나이트라는 초대형 길드의 장남임에도 불구, 루이스는 여태 단 한 번도 아버지인 자신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미스 황의 사위라고 했었지.’

루이스가 준우에게 빚을 졌듯, 조지 역시 황장미에게 빚을 진 게 있었다.

과거, A급 레이드에 난항을 겪고 있을 당시 그녀의 아티팩트 지원으로 수월하게 공략을 해냈지만, 그녀는 그 어떤 답례도 받지 않았다.

- 홀리 나이트의 설립 취지가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어요. 저도 한동안 영국에서 지내게 될 테니, 제 안전을 위해 투자를 한 거라고 생각할게요.

투자치고는 아티팩트의 수준이 너무나도 높았다.

게다가, 당시 조지와 황장미는 그리 친분이 깊은 사이도 아니었다.

황장미와 잠시나마 대화를 나눈 후, 홀리 나이트가 추구하는 방향과 그녀가 아티팩트를 지원해준 이유가 비슷하다는 것도 심히 놀라웠었다.

‘영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놓은 멋진 사람이었지.’

지금도 멋진 여자다.

간혹 영국 내에서 마주칠 때면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을 나누곤 했지만, 역시나 답례만은 여전히 거절했던 황장미였다.

‘이번 기회에 그날의 답례도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들의 목숨을 빚졌고, 동시에 자국의 적대 세력을 처벌했다.

능력 또한 훌륭하니 연을 맺어서 나쁠 게 없고, 그로 인해 한국 협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더없이 완벽하다.

게다가.

엑시스의 사위이기도 한 준우가 아니던가.

‘예전이면 몰라도, 한창 세계 랭킹 상승세에 있는 엑시스야. 가까이 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

책상 앞에 앉은 조지가 고급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 하세요, 아버지?”

“곧 왕실에서 앞으로 후원하게 될 헌터들이 정해지게 될 거다. 추천이야 내게도 권한이 있으니, 추천서를 한번 써볼 생각이다.”

“설마, 전준우 헌터를요?”

“그래. 이참에 나도 빚진 것 좀 갚고.”

“괜찮으시겠어요? 조금 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저야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아버지께선 전준우 헌터를 실제로 본 적도 없으시고…….”

“루이스.”

“예?”

“세상에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남자치고, 훌륭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간 우리 특수본부가 모은 정보들을 요약하여 해리와의 관계성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나의 가족 구성원이 되었던 이건형은 어느덧 B+ 급 헌터를 바라보고 있었고, 간간히 본부를 집으로 설정하여 그의 성장을 도왔기에 그동안 잡아들인 놈들 중 단원급의 기억을 읽어내는 건 무리없이 가능하게 된 수준.

하지만, 문제는 가장 마지막에 잡아들인 단장급 놈이었다.

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던, 형님께서 얼음 유성우로 무력화시켰던 바로 그놈 말이다.

확실히 급이 높은 녀석이라 그런지, 제법 성장한 이건형의 능력으로도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아쉽게도 가장 특성으로 능력을 대폭 상승시켰을 때만 기억 읽기가 가능했으니.’

능력을 상승시키는 내 기술에 쿨타임이 꽤 있었던지라,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얻어낸 정보들이었다.

‘놈들의 목적은 블루 스톤이라는 게 밝혀지긴 했는데.’

블루 스톤은 대개 치유 목적으로 쓰이는 재료다.

지금도 그렇지만, 향후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블루 스톤을 장악하기 위해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했던 걸까? 대체, 블루 스톤으로 뭘 하려고?’

아직도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우리가 잡아들인 단장급 이하 녀석들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목적은 여기까지가 최대였으니 말이다.

이건형이 놈들의 머릿속에서 대화 장면을 죄다 기록했지만, 그 이후의 목적에 대해선 언급된 것이 없었다.

‘우리가 잡아들인 놈들보다 앞서 차원의 문을 통과한 녀석들이 있다고 했었지.’

개중에 한 명은 낯이 익은 놈이었다.

회귀 전 나를 죽인 놈이었으니, 낯이 익을 수밖에.

그리고 또 한 놈이 유독 눈에 밟혔다.

이건형의 말에 의하면, 강령술을 사용하는 녀석이라는데 하필이면 그 강령술을 이번에 영국에서도 보게 되지 않았던가.

녀석들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단서가 끊기면 조사를 진행할 수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블루 스톤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각별히 주의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영국과 협동 수사를 하게 된다면 또 모른다.

‘해리에게 강령술을 알려준 놈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커. 강령술이라는 게 아무나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한국에서는 놈들의 활동이 끊겼기에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해리 사건을 통해 늑대인간 사건의 물꼬를 트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의 무대가 꼭 한국뿐이라는 법도 없을 테고.

문제는 해리 사건은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고, 엄연히 영국 협회가 맡아야 할 사건이었기에,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해리 사건에 개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 헌터 연맹 규정에 의하면, 해당 국가에서 발생한 사건은 해당 국가의 협회에 모든 권한이 주어지며, 승인이 없는 한 타국의 협회에선 수사가 불가능하게 되어있었다.

‘영국 협회 측에 합동 수사 요청을 해두긴 했는데…….’

루이스의 상급자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최소 대대장급은 되야 할 터, 루이스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그걸로는 냅다 합동 수사 요청 승인을 받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네크로맨시아가 영국 왕실의 저항 세력인 만큼,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항이라 쉽게 타국의 협조에 응하진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어떻게 보면 왕실, 아니, 영국의 치부나 다름없다.

수사 과정에서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밝혀질지도 모르고.

‘일단, 기다려 보는 수밖에.’

수린이에게서 문자가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얼마 전에 핸드폰을 사줬는데, 그 이후로 자주 문자가 오고는 했는데.

- 공주님 : 나도 몬스터랜드 가고 싶따

- 공주님 : 아빠만 혼자 갔다오고 ㅜ.ㅜ

최근에는 같은 얘기만 계속 반복 중이었다.

참고로 몬스터랜드는 영국에 있는 반려몬 동물원이었는데, 내가 영국에 출장 다녀온 걸 놀러갔다 온 걸로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놀러 갔다 온 거 아니래도…….’

워낙에 동물원을 사랑하는 수린이인지라, 영국 하면 무조건 ‘몬스터랜드’ 만을 떠올리곤 했다.

어쩌면 영국에 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유가 몬스터랜드를 방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 공주님 : 우리 영국가자! 수린이도 데리고 영국 가!

- 공주님 : 엄마도 영국 가고 싶대! 같이 가자!

선화 역시 몬스터랜드에 가고 싶어하긴 했다.

아무래도 동물원 부원장으로 취임을 하게 됨으로써, 영국의 반려몬 동물원 시스템을 한 번쯤 참고하고 싶었던 것일 터.

다음에 휴가 내면 함께 영국에 가자고 일단 말은 해뒀기에 선화는 수긍을 한 상황이었으나, 몬스터랜드에 완전 꽂혀버린 수린이는 매일 같이 영국 타령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 나 : 아빠가 이번 달엔 당직이 많이 껴 있어서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ㅠㅠ

- 공주님 : 당직 빼! 빼면 되자나!

나도 빼고 싶다.

당직 같은 거 당장 빼버리고 가족들하고 영국에 놀러 가고 싶기는 한데,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님을 어떡하겠는가.

“전준우 대원.”

그때,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협회장님이 그곳에서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게 보였다.

뭐지.

뭔데 또 날 저렇게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자네, 이번 달 당직 싹 다 제외하도록 하겠네.”

“예에?”

“영국 출장가서 대체 무슨 일은 벌인 거야?”

“무슨 일을 벌이다니요? 전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는데…….”

“받게. 조금 전, 협회장실에 도착한 국제 특편일세.”

국제 특편이란.

각국의 협회장실에만 설치되어 있는 배송 시스템 같은 거다.

특별한 일 혹은 급한 일이 있을 때, 가벼운 물건의 경우만 바로바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랄까.

“협회장님께 온 국제 특편을 왜 저한테?”

“나한테 온 게 아니니까 그렇지. 내 살다 살다 협회장실에서 영국 왕실의 초대장을 받는 건 또 처음이구만.”

건네받은 특편은 작은 종이 봉투였다.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봉투와 그 안의 종이가 매우 고급진 느낌이라는 거고, 봉투 중앙에 영국 왕실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윌리엄 왕세증손의 생일을 맞아 버킹엄 궁전에서 파티를 개최한다고 하더군.”

“그런데요?”

“보통 파티가 아니라, 세계 랭킹 상위권을 다투는 길드 마스터 급의 유명인사들만 갈 수 있는 특별한 파티야. 한데, 영국 왕실 측에서 우리 대한민국 협회 대표로 자네를 초대했네.”

“와아…….”

“다녀와. 가서 우리 협회, 아니, 이 나라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고 오게나.”

“휴가 기간은 얼마나 주십니까?”

“휴가라고까지 할 게 있나? 이 나라와 협회의 명예를 위한 일인데. 가서 협회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과 인맥도 좀 쌓고 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지 않겠어? 충분히 즐기고 오도록 하게.”

수린아, 아빠 당직 뺐다.

영국 가서 실컷 놀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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