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다이스 가든 (4) (180/246)

◈ 다이스 가든 (4)

미제 관리 대대 1중대 소대장 제임스.

피로 얼룩진 전투복을 입고 있는 그의 입에서 간절한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사, 살려 줘,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쿨럭!”

제임스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피를 울컥 토했다.

점점 더 흐릿해지는 시야만큼, 몸 곳곳에 치명상을 입은 탓이다.

“살려 주고 싶어도 살려 줄 수가 없어. 제임스 당신도 홀로그램을 통해서 봤잖아. 이 죽음의 투기장에선 오직 한 사람만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투기장의 승리자.

상대를 죽이고 최후에 남은 1인만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히든 피스인 죽음의 투기장을 고의로 오픈한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스윽-

해리가 손에 쥔 붉은색 병을 제임스에게 가져갔다.

“……?”

제임스가 힘겹게 뜬 눈으로 눈앞의 해리를 응시했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의아하던 찰나, 순식간의 온몸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빠져나간 마력이 한데 응축되어 붉은색 병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어느새 제임스는 모든 마력을 잃은, 일반인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가 갖고 있던 마력은 해리가 쥐고 있는 붉은색 병에 갇혀 버렸다.

“해, 해리! 이건 금지된 기술이 아닌가! 어떻게 딥 크로우의 장남인 자네가 이 나라의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아직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니, 체력이 쓸 만한 것 같네.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어. 제임스 자넬 죽이지 않기로.”

“……그, 그게 무슨?”

“평생 나의 종으로 살아 줘야겠어. 약속의 증명으로, 팔 하나만 떼어 갈게.”

해리가 허리춤의 검을 뽑아 제임스의 팔을 잘라 냈다.

동시에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이 투기장 내에 울려 퍼졌다.

“더 크게 짖어 봐. 혹시 모르잖아? 잘난 네 중대장이 널 구하러 올지도.”

루이스의 스킬 중 하나인 기사도.

제임스를 대상으로 선택했다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멍청한 그 녀석이라면…….”

동료애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루이스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죽음의 투기장에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시나군.”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해리가 예상했던 대로 죽음의 투기장에 루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 지점으로 향하던 중, 투기장 방향으로 역행을 해 온 것이다.

“소대장!”

“쿨럭…… 주, 중대장님…….”

루이스의 안타까운 시선이 제임스를 살폈다.

어떻게든 구해 내리란 다짐과 함께 이곳에 온 그였지만, 이미 제임스는 조금 전 한마디를 남긴 채 사망한 뒤였다.

함께했던 동료의 의문스런 죽음.

자연스레 분노는 그의 잘린 팔을 손에 쥐고 있는 해리에게 향했다.

“해리!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여기서 상대를 죽여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또 하나가 있어. 그건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방법엔 내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하니까.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거든.”

해리가 손에 쥐고 있던 제임스의 팔을 발화시켰다.

재가 되어 흩날리는 그것과 함께, 붉은색 마력이 해리의 전신을 감쌌다.

“앞서 말했듯 난 여기서 살아서 나가고 싶으니, 루이스 자네가 대신 죽어 줘야겠어.”

씩 웃은 해리가 말을 마친 순간.

지면이 울긋불긋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붉은 눈을 가진 해골 병사들이 소환됐다.

“강령술? 해리, 이 미친 자식!”

금기된 기술이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영혼을 해골에 덧씌워 그들을 조종하는 기술이며, 기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영혼의 주인이었던 자의 신체 일부를 필요로 했다.

“제임스의 팔을 잘라 낸 것도 그 이유겠지…….”

루이스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가 거대한 대검을 움켜쥐며 해리를 향해 돌진하려는 순간.

“……!”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단단한 무언가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죽음의 투기장을 연 건 바로 나야. 설마, 내가 네가 올 거란 대비도 안 해 뒀겠어?”

“고의로 열었다는 건가! 대체 이런 걸 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알려지면, 해리 너는 물론이고 딥 크로우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이곳에서 살아 나가는 사람이 해리가 유일하다면, 단순 사고사로 위장하는 게 가능했다.

나아가, 해당 던전을 관리하는 대대장이 딥 크로우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죽음의 투기장이야, 뭐.

고의로 연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일 뿐이었다.

자신도 이런 히든 피스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너도 내 종이 되어라, 루이스.”

얼떨결이지만 루이스까지 해골 병사로 만들 생각인 해리였다. 유능한 그의 능력이라면 참으로 훌륭한 병사가 되어 줄 테니까.

“일단 팔부터 하나 떼어 내고…….”

반항이 불가했다.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한 해리가 투기장 사방에 금기된 기술을 사용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발이 묶이도록 만들어 뒀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성 마법으로, 영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도 금기하고 있는 기술의 종류이기도 했다.

스윽-

해리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준 그때.

[ 참가자 중 한 명이 ‘죽음의 투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

또 누군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검을 꺼내 든 준우가 눈앞의 해리와 해골 병사들을 살폈다.

‘강령술, 금기된 기술.’

이어, 준우의 시선이 빠르게 그가 쥐고 있는 붉은색 병을 훑으며 지나갔다.

‘저건 죽음의 투기장에서만 합성할 수 있는 아이템인데?’

상대의 마력을 흡수해 가둘 수 있는 병이며, 그 병에 담긴 마력을 본인이 흡수하는 게 가능했다. 비록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합성의 재료가 던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곳에서 합성한 아이템은 오직 이 던전 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는 건, 애당초 저걸 노리고 던전 안에 들어왔다는 거겠지.’

준우는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지금 이맘때쯤, 히든 피스에 대해 이만큼의 정보력을 갖추고, 강령술까지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집단은 한 곳밖에 없다고.

더군다나, 무척이나 낯이 익은 해리가 피워 올린 붉은 마력이라면.

‘회귀 전, 영국 출장 때 자주 마주쳤던 그놈들이 틀림없다.’

‘네크로맨시아’.

영국 왕실의 저항 세력인 테러 조직이었다.

“영국 내에서 네크로맨시아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되죠?”

“최대한 생포하되, 불가피할 시 사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네크로맨시아에 대해 물으시는지……?”

“그럼 사살하는 쪽으로 가야겠군요.”

준우와 루이스의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그 얘기를 듣던 해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네가 나를? 영국 최고의 유망주라는 루이스가 이리 꼼짝도 못 하고 묶여 있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해리는 준우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던전 입구에서 갑자기 함께 공략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나, 그에 대한 정보는 여러 기사들을 통해서도 입수가 가능했다.

“너도 죽음의 투기장에 들어오게 된 이상, 앞으로 한 발짝도……?”

서걱-

해리의 말이 전부 끝나기도 전.

마치 섬광 같은 것이 번뜩이더니, 준우의 검이 그의 팔을 베어 냈다.

“끄아아아악!”

투욱 -

비명과 동시에 잘린 팔이 바닥에 떨어졌고.

준우는 이전 칸에서 보았던 홀로그램을 재차 떠올렸다.

< 선택형 주사위 - 유니크 >

주사위를 굴려 원하는 숫자를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선택형 주사위를 최초로 합성에 성공한 자가 해당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을 경우, 소지자에게 던전 내 모든 디버프가 무효화됩니다.

“크, 크억! 네, 네놈이 어떻게 어둠 속성의 디버프를 뚫고……?”

“네크로맨시아 소속, 헌터의 마력을 불법 흡수하기 위해 고의로 히든 피스인 죽음의 투기장을 열었다라.”

정체를 들킨 해리의 두 눈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가 뒷걸음질을 치며 해골 병사들을 내세웠지만, 전투 능력이 준우가 더 우세했던지라 딱히 상대가 되질 않았다.

후두두둑-

무형의 칼날에 산산조각이 난 채로 부서지는 해골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놈들이 살아 나간다면, 나 역시 영국에서 도망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겠지.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면……!’

실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대대장과 이미 입을 맞춘 상태였고, 죽음의 투기장에 디버프 장치까지 깔아 뒀다.

던전 밖에 나가서도 단순 사고였다고 진술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거늘.

샤르르륵!

준우를 향한 해리의 분노.

동시에 잘려 나간 그의 팔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파, 팔이 다시 생겨났어? 이렇게 빨리?’

당황한 준우였지만, 그 이유가 팔이 재생됐다는 것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생된 팔의 기묘한 생김새가 그를 놀랍게 한 진짜 이유였다.

‘팔의 형태가……?’

짐승의 팔이다.

마치 늑대인간 놈들의 것과 같은.

‘놈들과 비슷한 재생 능력, 거기에 재생과 함께 눈동자에 비춰지는 달 문양.’

붉은 마력의 기운도 더욱 강렬해졌다.

해리의 능력이 재차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더욱 강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이 능력까진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걸 보게 된 이상 너도 여기서 살아서 나가긴 틀렸다! 크크큭!”

준우가 보이지 않는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다른 검을 꺼내 들었다.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아. 들어야 할 대답도 많고.”

“크큭! 네놈 입부터 뭉개 줘야겠구나!”

해리가 변형된 팔에 붉은 마력을 둘렀다.

루이스가 보기에도 준우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막대한 양의 마력이었다.

그러나.

루이스의 시선에 비친 준우는 이상하게도 여유가 가득했다.

“일단, 그 팔부터 자르고 시작하자.”

준우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적혈검이 해리의 팔을 다시금 잘라 냈고, 떨어져 나간 그의 팔을 더 이상 재생되지 않았다.

* * *

“입만 멀쩡하면 묻는 것에 답하는 덴 지장이 없겠지.”

준우가 눈앞의 해리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몇 번의 발검만으로 해리의 팔과 다리를 모두 잘라 버린 준우의 모습에 루이스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마력을 품은 신체를 죄다 단 일격으로 베어 내다니! 과연 칸나의 검술 스승답구나…….’

네크로맨시아 소속이며, 늑대인간 놈들과 연관이 있는 해리였다.

준우는 이 자를 생포해 사건을 더욱 깊이 파헤치는 편이 옳다고 판단했기에, 일단 살려는 놓기로 한 것이었다. 비록 사지가 멀쩡하진 않지만.

‘그나저나, 이 검 진짜 무서운데?’

준우가 쥐고 있던 검을 흘낏 바라보았다.

적혈검, 이전에 일본 대균열 당시 타케루에게서 압수한 검이었다.

인간의 피를 머금을수록 강력해지는 무기이며, 그렇기에 당연히 불법 무기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금은 흔쾌히 꺼내서 사용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불법적인 놈을 상대할 땐 이만한 무기가 없었으니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타케루, 아니, 그 이전의 주인 대부터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를 머금었는지는 몰라도, 적혈검의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흐음, 일단 해리를 잡아 두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영국 협회에서 이놈을 맡아서 수사를 진행하게 될 거란 말이지…….’

한국 협회가 개입하기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루이스를 잘 구슬리면 또 몰라도.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마침 루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동경에 가득 찬 눈빛으로 준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시는 건 이만하고, 일단 밖으로 나가죠. 동료분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 빨리 나가면 살릴 수도 있을 겁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제임스가 숨을 쉬고 있었다.

가쁜 숨이 곧 멎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준우가 급한 대로 마력을 이용해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정도로 조치는 취해 둔 상황.

“죽음의 투기장, 저도 이곳에 대해선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이곳의 코인 상점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로 쉽게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살아서 나가기가 어렵겠죠.”

“그렇습니다. 모든 상대를 죽이고 최후의 1인이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신’과의 주사위 게임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루이스 중대장님 역시 이곳을 겪어 봤었다는 거겠군요. 다행히도 살아남으셨고.”

“운이 좋았죠. 진짜 운이 좋았다는 말밖에는……하지만, 그 정도의 천운이 과연 또 한 번 따라 줄까요?”

루이스가 운에 대해 운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죽음의 투기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최후의 1인이 되는 것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 방법이 매우 확률적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코인 상점에서 ‘사신’을 구입해 소환합니다. ]

[ ‘사신’ 과의 주사위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

코인 상점 내 유일하게 ‘0’ 코인, 즉, 무료로 무입할 수 있는 사신 소환 스크롤.

이 사신과의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면 던전이 리셋되며, 던전 내 모든 사람들은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물론, 던전은 처음부터 다시 공략해야 한다.

입장 쿨타임인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핵심은 패배할 경우다.

그 경우에는 투기장 내 모든 인원이 이곳에서 죽는다.

“정말로 사신과의 게임을 진행하실 겁니까?”

“중대장님도 게임을 통해 살아남으셨잖아요.”

“저희를 죽이고 그냥 나가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중대장님 역시 절 죽일 수 있고요.”

“제대로 된 기사도 정신을 가진 기사라면, 은인에게 검을 겨누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뜻을 품고 있는 기사를 제 손으로 베고 싶진 않으니까요.”

“한국 협회에서 미제 던전 공략을 요청한 건, 공략을 통해 꼭 필요한 걸 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게 죽어 가는 중대장님의 동료분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겠죠.”

“……허!”

기사도가 뭔지 잘 모르는 준우다.

그냥, 일단 루이스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해 줬을 뿐이다.

늑대인간 사건과 연루된 해리 건에 개입하려면, 루이스와의 친분을 쌓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

어쨌거나.

감격한 루이스는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소환된 사신을 응시했다.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사신이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와 준우가 던진 주사위의 숫자가 일치하면 승리.

‘확률은 1/6이라지만, 자그마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게임이야…….’

과거, 루이스는 이곳에서 같은 게임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얼떨결에 자신의 동료와 이곳에 갇히게 되었고, 차마 동료를 벨 수가 없어서 사신과의 게임을 선택한 것이다.

‘……그땐 하늘이 내 목숨을 한 번 구해 줬다 쳐도, 두 번씩이나 그런 천운이 작용하진 않을 텐데.’

루이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사신이 검은색 주사위를 내던졌다.

데구르르르-

허공에서 구르던 주사위가 움직임을 멈췄다.

검은색 주사위가 나타낸 숫자는 ‘6’.

‘똑같은 6이 나와야만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린 모두 이 안에서 죽는다.’

죽음의 위협이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루이스는 검을 손에 쥐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한 번쯤 준우를 향해 검을 겨누어 볼 법한데도, 그는 올곧이 준우가 던질 주사위만을 기다렸다.

‘대단하네. 참 괜찮은 사람이야.’

준우 역시 그런 루이스에게 감탄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기사를 통해 보았던, 그의 좌우명이 문득 떠오른다.

‘받은 건 무조건 돌려준다.’

자신을 해하려 한다면, 자신도 해하려 들 것이고.

은혜를 입었다면 어떻게든 갚겠다는 뜻이 담긴 좌우명이었다.

장차 홀리 나이트의 길드 마스터가 될 사람이지 않은가.

주사위 하나쯤 투자할 만한 가치는 차고 넘쳤다.

휙-

준우가 주사위를 던졌다.

선택의 주사위를 던졌으니, 당연히 나타난 숫자는 ‘6’.

“오오오! 신이시여!”

루이스가 감격을 토해 내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선택의 주사위 합성하는 법은 여태 몰랐던 모양.

‘덩치는 산 만 한데, 이상하게 순둥순둥한 느낌이란 말야.’

피식 웃는 준우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 ‘사신’과의 주사위 게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

[ 던전이 리셋되며, 참가자 전원 던전 밖으로 이동됩니다. ]

* * *

다이스 가든에 재입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한 달을 기다려야만 했다.

선화를 위해 다이아를 얻을 요량으로 영국까지 왔건만, 준우는 아쉽게도 해당 아이템을 얻지 못한 상황.

“구름무늬 다이아몬드 말입니까? 그거라면, 제가 어떻게 구해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던전 밖, 루이스가 괜히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공략 보상 중 여러 아이템들이 있지만, 개중에서 구름무늬 다이아몬드라면 다른 던전에서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중대장님께서요? 어떻게요?”

“아, 그, 그게, 보석을 취급하는 유명한 상인을 한 명 알고 있어서요.”

준우가 내심 실소를 터뜨렸다.

아마, 홀리 나이트의 길드 마스터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 보려는 것이겠지.

‘아직 신분을 숨겨야 하는 상황인지, 무턱대고 밝히진 않는군.’

일정상, 던전 진행이 끝났다면 준우와 협회 인원들은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만 했다.

갑작스런 영국 출장이었던 만큼, 협회장도 공략을 마치는 대로 복귀하라고 했었으니까.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선화랑 수린이랑 다 같이 오는 거였는데.’

안타깝지만 당장은 이대로 돌아갈 수밖에.

하지만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준우에게 목숨을 빚진 루이스라면, 절대 이 일을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을 테니까.

‘해리 건에 대해서는 협회에 복귀해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잘하면 영국 협회와 협력 수사도 가능할 수 있다.

준우 역시 최대한 그쪽으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던전이 리셋되는 바람에 내기는 물 건너갔군요.”

“아쉽지만 전준우 헌터님과 검술 대련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요.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중대장님.”

준우 일행은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루이스는 멀어지는 준우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바라보다, 이내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구름무늬 다이아몬드라면, 분명 홀리 나이트 창고에 하나쯤은 있을 텐데.’

준우 덕분에 죽어 가는 동료를 급히 각성자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다.

나아가, 투기장에서 자신의 목숨 또한 그에게 빚지기까지 했고 말이다.

‘은혜를 입은 기사라면, 응당 보답하는 것이 당연한 일.’

보답도 보답이지만.

루이스는 준우의 기사도 정신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옆에 두고 동료로 삼고 싶을 만큼.

‘아버지께 제안을 해 보는 게 좋겠어. 엑시스 가문의 일원인지라 스카우트는 힘들겠지만, 엑시스와 협력 관계를 맺는 것쯤은 가능할지도 모르니.’

고민을 마친 루이스는 곧장 홀리 나이트 본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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