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그리운 나의 집 (173/246)

◈ 그리운 나의 집

전주가 끝나갈 무렵.

무대 위 수민혁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다잡았다.

이번 TOP 10 선발전에서 수민혁이 부를 곡은.

< 강진 - 막걸리 한잔 >

아버지를 회상하는 아들의 그리움, 죄송스러움, 고마움, 그리고 함께 하는 즐거움이 담긴 노래였다.

‘선곡 좋네.’

준우는 차분히 두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어딘가 모르게, 곡의 가사가 처남과 장인어른의 상황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의 곡이었다.

⌜ …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 ⌟

수민혁은 자신만의 느낌으로 곡을 재해석하며, 농도 짙은 여운을 남기며 1절을 마무리했다.

마이크를 쥔 손의 떨림도 어느새 멎어있었다.

편곡으로 인해 2절로 넘어가기 전의 간주는 제법 길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짙은 감성 때문인지, 2절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무대 위 처남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빠. 근데, 아빠 어떻게 설득했어?”

“설득하긴. 난 딱히 한 게 없는데.”

“한 게 없기는. 오빠가 아빠 설득해서 여기 데려온 거잖아.”

“그냥, 뭐. 처남 노래하는 거 같이 보러 가자고 말씀드렸어. 계속 싫으시다고 역정을 내긴 하셨는데…….”

“그랬는데?”

“……못 이기시는 척 움직여주시더라고.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건 가봐. 그래서 우리도 지금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겠지.”

“하여튼. 우리 아빠 속은 아니면서, 겉으로는 엄청 강한 척 한다니깐.”

간주 중에 선화와 준우가 낮게 속삭이고 있을 그때.

수태광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세트장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준우는 서둘러 장인어른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직 노래 안 끝났는데, 벌써 가시려구요?”

“듣고 싶지도 않은 노래 계속 들어서 뭐 하겠나. 이만큼 들었으면 됐지.”

“방송 다 끝나고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전 서방.”

“예?”

“내가 여기 왔다고 민혁이 놈을 용서했다는 착각은 말게. 그리고! 자네도 똑같아. 애써 말은 안 했지만, 나 몰래 민혁이 숨겨주고 무사할 줄 알았나?”

“하하……처남의 노래 실력에 홀려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각오하는 게 좋을 걸세. 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러시지 말고, 같이 식사하시고 가세요.”

“됐네. 난 배신자랑은 겸상 안 함세.”

수태광은 방송국을 나섰다.

로비 앞에는 차를 대기시켜놓은 최 비서가 있었다.

“도련님 무대는 어떠셨습니까.”

최 비서가 천천히 차를 몰며, 뒷좌석에 앉은 수태광을 흘낏 바라본다.

“어떻기는. 다들 실력이 고만고만하드만. 그 정도 실력으로 무슨 트로트로 성공을 한다고.”

“일전에 제가 방송 봤을 때는 도련님께서 유독 눈에 띄게 잘하시던데요.”

“끄응!”

“바로 댁으로 모실까요?”

“술이나 한잔 함세.”

“그럼, 자주 가시는 가게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아니, 오늘은 거기 말고…….”

최 비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는 듯한 수태광은 괜한 멋쩍음에 창밖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막걸리나 한잔 하도록 하지. 오늘은 그게 땡기는구만.”

***

당당히 TOP 10에 이름을 올렸던 큰처남은 기어이 일을 냈다. 내일은 슈퍼 트롯 결승전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제는 딱 한고비만 넘으면 우승자가 되는 상황.

큰처남은 마지막 무대를 자신의 자작곡으로 경연을 펼친다고 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큰처남의 마지막 무대를 위해, 응원의 선물 준비로 소란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떠니? 트로트 가수의 커스텀 마이크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어?”

“크으! 역시 더 로즈의 대표 황 여사이십니다! 아티팩트 뿐만 아니라, 마이크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내시다니!”

“후후, 우리 사위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장모님께서 완성하신 커스텀 마이크를 뿌듯하게 바라보신다.

바로 저 커스텀 마이크가 결승을 앞둔 큰처남의 응원 선물이었다.

큰일을 앞둔 처남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내가 의견을 냈다.

가수에겐 없어선 안 될 물건이고, 그 물건을 가족들이 직접 만들어주면 어떨까 해서.

요즘 가수들이라면 다 갖고 있는 커스텀 마이크가 아니던가.

우리 처남도 장차 대 가수가 될 텐데, 특별한 마이크 하나쯤은 있어야지.

“선화 넌 아직이니?”

“기다려봐. 집중해서 하고 있으니까.”

처남을 위해 준비될 커스텀 마이크는 두 개.

하나는 장모님이 조금 전에 완성하셨고, 다른 하나는 선화가 아직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있는 건.

모녀간에 묘한 경쟁이 붙었다는 거다.

“적당히 해, 적당히. 어차피 민혁이는 내 마이크 가지고 결승전 무대 올라가지 않겠니?”

“참나. 그건 아직 모르는 거지.”

“모르긴 뭘 몰라. 아무리 선화 네가 아티팩트 만드는 재주가 제법 있다고 해도, 엄마 짬은 무시 못 하지.”

“마이크 커스텀하는데 짬은 무슨! 기다려 봐, 내가 엄마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만들 테니까!”

선화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어지간히 장모님께 지기 싫은지 한껏 집중한 표정이다.

‘집중하는데 볼은 왜 빵빵해지는 거야? 아주 귀여워 죽겠네.’

사실, 마이크가 두 개면 두 개 다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꼭 하나만 택해서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두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누가 모녀지간 아니랄까 봐.

승부욕까지 똑 닮은 두 사람이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보기 좋았다.

회귀 전엔 이런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큰처남이 무명 래퍼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서 우울증을 앓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화는 고통스러워했다.

‘장모님 속은 더 말이 아니셨겠지.’

한데.

그런 두 사람이 큰처남의 무대를 위해, 행복을 위해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선의의 경쟁이자, 가족 간의 소소한 행복이랄까.

장모님께서 잠시 화장실에 가신 사이.

커스텀을 중단한 선화가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엄마처럼 화려하게 만들고 싶은데, 나는 그게 잘 안 되네…….”

장모님께서 만드신 커스텀 마이크는 화려했다.

말 그대로 화려함 그 자체, 트로트하면 떠오르는 블링블링함의 극을 달리는 디자인이었다.

다소 요란하긴 하지만, 확실히 트로트와는 찰떡같은.

“굳이 장모님하고 비슷하게 만들 필요 있어?”

“오빠도 아까 엄마가 만든 게 완벽하다고 말했잖아?”

“뭐, 그러긴 했지만.”

내가 봤을 땐 모자람은 없는 커스텀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장모님의 비위를 맞춰준 부분도 있긴 했었다.

“선화 넌 아예 장모님이랑 반대로 가보는 게 어때? 화려함보다는 심플하게.”

“심플하게? 트로트는 화려한 게 어울리지 않으려나.”

“처남이 심플한 걸 좋아하잖아.”

“그래도 의상이 막 화려할 텐데, 심플하면 안 어울리지 않을까?”

“오히려 마이크가 너무 화려하면 처남 얼굴이 가려지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으음. 그럴 것도 같아.”

“어느 정도 간단하게 디자인만 하고, 로고 같은 거 하나만 딱 넣는 거야. 예를 들면…….”

선화의 옆에 놓아진 노트에 작게 그림을 그려본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처남의 목 언저리에서 본 적이 있었던 문신 중 하나였다.

“어? 이건…….”

“선화 너도 봤지? 처남 목에 이런 그림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 거.”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작은 집 모양.

아주 조그마한 문신이었지만, 문신으로 집을 새긴다는 게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유학 생활을 오래한 탓에 집이 그리워 그걸 문신으로 새겨 넣은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그리움의 대상이 가족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회귀 전후를 포함해 처남이 내게 그런 말은 한 적은 없었으니까.

“이거 괜찮은데? 민혁이가 막 습관처럼 이 문신이 있던 쪽을 자주 어루만지고는 하더라고. 특히 집중할 때나 고민이 많을 때!”

“분명히 소중한 의미가 담긴 문신일 거야.”

“이 집 모양 문신이 로고로 쓰기에도 나름 귀엽고 말이지. 역시 우리 오빠, 아이디어가 아주 기똥차? 나는 계속 엄마처럼 화려하게 만들 생각만 했었는데.”

“누구 남편인데.”

“내 남편이지!”

선화는 다시금 마이크 커스텀에 집중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모님과 선화가 만든 두 개의 마이크가 완성됐다.

그리고 일주일 뒤.

큰처남의 결승전 생방송이 시작됐다.

***

< ‘10번 참가자’, 엑시스 가의 자제로 밝혀져! >

< 엑시스,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확장하나 >

최종 결승전 참가자 3인이 결정되고, 가장 화제가 되었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수민혁이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특히나 엑시스 가라는 재벌 타이틀에 또 한 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항간에서는 이번 일을 빌미로 엑시스가 엔터 사업까지 계획 중인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아무튼.

엑시스를 등에 업고 결승 무대를 하게 된 수민혁 부담이 될밖에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가 엑시스의 자제라는 사실이 이롭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다.

< 어차피 우승은 엑시스의 수민혁? >

특히나, 이런 자극적인 기사들이 수민혁을 더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아버지와 엑시스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이제는 개인의 오디션이 아닌.

엑시스 가의 오디션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우승 후보요? 당연히 수민혁이죠! 본선에서 죄다 1등으로 결승까지 올라왔는데, 수민혁 아니면 누가 우승해요?

- 엑시스의 수민혁이요. 수태광 회장님이나, 수재혁 부 마스터나 세계 최고의 헌터들이잖아요. 그런 집안의 넷째 아들인데, 오디션쯤이야. 노래도 엄청 잘하던데요?

결승 전에 방송국에서 스페셜로 진행했던 국민들의 인터뷰 영상에서는 절반 이상이 수민혁을 우승자로 점치기도 했다.

그야말로 부담의 부담이 더해진 셈.

이번에는 TOP 10 선발전 때와는 달리, 맨 처음 무대를 장식하게 된 수민혁은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 넘어 산이구나…….’

TOP 10 선발전 때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한 불안이 있었다면, 이번엔 막중한 부담감으로 인한 부담이 자리 잡았다.

‘무조건 우승해야 해. 아버지께 착한 아들은 되어줄 수는 없더라도, 짐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리허설 시작 전.

선화와 황장미가 대기실을 찾았다.

“서프라이즈!”

응원 선물이 있다고 한다.

커다란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 담겨 있는 두 개의 마이크가 보였다.

“마이크네?”

“우리 민혁이 파이팅하라고, 누나하고 엄마가 만든 거야.”

부담 속에서도 힘이 되는 선물이었다.

정말이지 가족들의 응원이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직 본무대 전의 리허설도 시작 전인지라, 선물 받은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스태프들에게 테스트를 요청한 결과, 다행히 두 개의 마이크 모두 생방송에서도 사용이 가능했고 말이다.

“리허설 잘하고 와! 너무 긴장하지 말고!”

“우리 아들 파이팅! 엄마가 응원하고 있을게!”

누나와 엄마의 응원과는 반대로 리허설은 불안했다.

역시나 수민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시선이 문제였다.

꼭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나아가, 엑시스의 이름에 누가 될 수 없다는…….

‘……가사 실수를 하다니. 생방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생방이 시작되고, 무대를 기다리는 동안.

수민혁은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마이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리허설 때는 엄마의 화려한 마이크를 썼었는데.

이번엔 왠지 그 옆에 있는 누나의 마이크에 눈길이 갔다.

“이거 내가 새긴 문신이랑 똑같은 건데……?”

선물 받았을 당시에는 미처 보지 못했었다.

마이크 하단에 새겨져 있는 작은 집 모양의 로고를.

수민혁은 자연스레 누나의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마이크의 로고를 습관처럼 어루만지던 그의 얼굴엔 어느새 안정감이 깃든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수민혁님! 무대 올라가실 게요!”

리허설 때와는 달리 다소 가벼운 발걸음.

무대에 올라선 수민혁은 아직 조명이 자신을 밝히지 않은 어둠 속에서도 마이크의 집 모양 로고를 어루만졌다.

점점 더 안정을 찾아가는 수민혁.

귓가에는 사회자의 멘트가 들려왔다.

- 수민혁 참가자는 세 명의 결승전 참가자 중 유일하게 자작곡으로 경연을 펼칠 예정인데요. 이 곡은 수민혁 참가자가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느낀 애환을 담은 곡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무대 위.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빛들이 수민혁을 밝혔다.

이내 전주가 흘러나왔고.

생방송 무대를 보고 있을 시청자들의 화면에는 자막이 떠올랐다.

< 수민혁 - 그리운 나의 집 >.

그의 노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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