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홀로서기 (172/246)

◈ 홀로서기

요즘엔 힙합보다 트로트가 대세다.

유행이라는 게 있듯, 최근 들어선 트로트가 유행이라는 것이었다.

TV 채널만 몇 번 돌려도 그중에 꼭 한번은 트로트 관련 방송을 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한 트로트의 유행에 힘입어, 트로트 방송 중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내일은 슈퍼 트롯’ 에 참가한 큰처남의 인지도 역시 빠르게 상승했다.

트로트 실력이야 1차적으로 멍크에게 인정을 받았고, 이후엔 예선과 본선을 통과하게 되면서 대중들의 평가로 입증까지 받아냈다.

‘예선 통과자 전체를 포함해도 큰처남의 실력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이 많고, 인지도 또한 제일 높았었지.’

외모도 한몫했다.

큰형님이 다소 차가운 인상의 미남이라면, 큰처남은 강아지처럼 순둥하고 서글서글한 훈남이었으니까.

아무튼.

이젠 결승전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첫 관문인 TOP 10 선발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

“많이 먹어, 내 동생.”

선화가 점심상을 거하게 차렸다.

도구의 힘을 빌리긴 했으나, 칸나에게도 인정받은 선화의 요리 실력인지라 맛은 이미 보장된 요리들이었다.

다소 이른 점심임에도 군침이 돌 정도로.

“누, 누나.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내 동생 TOP 10 선발전 잘하라고 힘 좀 썼지. 노래는 원래 뱃심으로 하는 거라잖아.”

그 뱃심이 이 뱃심인가.

이걸 다 먹었다간 자칫 탈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행인 건, 큰처남이 잘 먹는다는 점이었다.

선화도 잘 먹는 그 모습이 뿌듯한지 얼굴엔 연신 미소가 가득했다.

“처남. TOP 10 선발전 때도 문신 지우고 갈 거지?”

“네! 아무래도 이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가긴 좀 그러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문신하지 말걸 그랬나 봐요. 헤헤.”

예선 참가 영상을 찍을 때부터 ‘정화의 샘물’ 이라는 것을 사용해왔다.

24시간 지속되며, 샘물의 효과로 지속시간 동안은 문신을 가리는 게 가능했다.

뭐, 원래는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물질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하게 되면, 그때는 지속시간 동안뿐 아니라 영구적으로 문신을 지우는 것도 가능하게 될 터였다.

“삼촌, 또 노래하러 가?”

“응. 수린이도 방청 와줄 거지? 이번엔 가족들 초대할 수 있거든.”

“방청? 방청이 모야?”

“직접 노래하는 거 보러 가는 거야.”

“오오! 갈래! 수린이도 삼촌 노래하는 거 보러 갈래! 삼촌 이제 적폐 아니야!”

랩을 할 땐 적폐였는데, 저번에 방송에 나와 트로트 부르는 모습을 몇 번 보더니 이젠 적폐가 아니란다.

그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는 뜻이겠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점심 식사가 막 끝난 무렵이었다.

딩동 - !

현관 벨이 울렸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올 것이 왔구나.’

현관 모니터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엑시스 경호실 1팀장과 팀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경호실 1팀장이야 회귀 전에도 자주 봤었기에 그 얼굴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장인어른이 보낸 사람들이야.”

“뭐, 뭐라구요, 매형?”

어젯밤 막내 처남에게서 문자를 받고, 대충 상황 파악을 끝냈다.

계속해서 막내 처남이 보고를 해주었기에 곧 누군가 들이닥칠 거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문 열지 마요!”

내가 현관 쪽으로 다가가자 처남이 소리쳤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별일 없을 거야.”

“무, 무슨 방법이 있는 거죠? 매형이 아버지의 약점이라도 잡고 있다던가…….”

방법이라.

사실, 큰처남이 장인어른에게 허락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선 그간 많이 고민을 해왔다.

‘최선은 시간을 끄는 방법인데.’

지금껏 해왔던 대로 장인어른의 기분을 살살 풀어드리면서, 큰처남이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를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계획들을 여럿 세웠었다.

뭐랄까.

차츰, 차츰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방향이랄까.

하지만, 어제 막내 처남에게서 문자를 받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 내가 나서는 게 맞나? 싶은 의문.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더니.

깊은 새벽에 회귀 전 큰처남과 술을 마시며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었다.

- 매형. 있잖아요. 나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나한테 클래식 음악을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었거든요. 근데, 나 사실 그때 음악 공부하는 거 싫었어요.

- 음악 전공했었잖아? 그럼, 하기 싫은 데 억지로 왜 한 거야?

-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서요. 형들은 다 각성해서 헌터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데, 나한텐 각성 잠재력이 없었거든요. 한마디로 난 헌터가 될 수 없는 몸이었죠.

-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이라도 해보지.

- 그냥 아버지 마음에 들고 싶었어요. 부족한 아들이 되기 싫었고, 형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죠. 능력도 없는데,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그래야 아버지가 예뻐해 주시겠지. 뭐, 그런 거? 그러다 문득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게 생겼는데, 그게 힙합이었어요.

안타깝게도 당시 처남은 장인어른과의 연은 물론, 경제적 지원까지 끊겨 생활고에 시달리는 무명 래퍼였다.

- 패기 좋게 아버지한테 덤비면서 그랬었거든요. ‘내가 꼭 힙합으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 그렇게 막 소리를 지르면서, 큭큭! 근데 제가 지금 이러고 있네요. 인정받고 싶었는데…….

처남의 마지막 말이 신기하게도 유독 뚜렷했다.

- 잘하고 싶은데, 잘하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 눈치가 보이더라구요. 정작 아버지는 날 보고 있지도 않을 텐데.

그리고 그 또렷한 마지막 말에.

회귀 전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으니까.

패기 좋게 선화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질러놓고, 결국 장인어른 눈치를 살살 보면서 살았었다.

‘나도 그렇게 장인어른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살았었는데…….’

노력하면 장인어른께 인정이야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다음에 또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한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과연 결과가 전부일까.

결과만 좋으면, 처남이 앞으로도 장인어른 눈치만 보며 사는 게 과연 행복할까.

“처남, 어렸을 때 말이야. 장인어른께서 음악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진짜 그게 하고 싶었어?”

“음…….”

고민하던 처남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나 회귀 전처럼 장인어른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지.

“아까, 나한테 지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물었었지? 사실 방법 같은 건 없어. 직접 부딪쳐서 솔직하게 말하는 방법밖엔.”

“네……?”

계획해둔 방법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추천하고 싶진 않았다.

이건 눈앞의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 처남의 삶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으니까.

“만약, 장인어른께서 반대하신다면 그땐 어쩔 거지? 트로트 가수 하고 싶다며? 즐겁다며? 근데, 포기할 거야?”

“……아뇨. 하고 싶어요, 계속.”

“그럼 직접 가서 말하는 거야.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장인어른께 인정받으려고 하는 일 말고, 진짜로 처남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있다고 말이야.”

결국, 반복이다.

지금 당장 회피한다고 해도, 언젠가 또 인정받기 위해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일이 반드시 벌어질 테니까.

“그, 그렇지만, 아버지가 절 가만두시지 않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가만두지 않는 건 똑같아. 그리고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데, 그걸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

“…….”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먼저 하고 싶다고 입 밖으로 내뱉는 거야, 처남.”

“…….”

“어느 한순간을 후회로 만들지, 아니면, 추억으로 만들지는 처남의 그 한마디에 달렸다고.”

처남도 어느 정도 느끼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곱 살.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정받기 위해 눈치만 보며 살아왔을 테니.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

그리고는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은밀 기동 경호실 1팀인가.

재주도 좋다.

막내 처남에게 비상 문자를 받은 지 아직 12시간이 채 안 지났는데, 큰처남이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걸 보면 말이다.

“처남, 같이 가줘?”

“아뇨. 왠지 혼자 가야 할 것 같아요.”

“문신은? 그거 지속시간 거의 다 돼서, 곧 다시 지워야 하는데.”

“괜찮아요. 그냥 이대로 갈게요.”

어딘가 모르게 결심이 선 모습이다.

부디 앞으로의 삶에 후회 없는 선택을 했기를.

“고마워요, 매형. TOP 10 선발전에서 봐요.”

처남은 그 말을 남긴 채 경호팀들과 떠나갔다.

이제 곧 장인어른께 한바탕 쓴소리를 듣게 될 터.

‘장인어른은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시면서 꼭 큰소리부터 치신다니까.’

장인어른께서 은퇴를 앞두고 계셨을 시점이었을 거다.

문득 그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 민혁이 그 녀석, 요즘 어떻게 살고 있나?

- 평소랑 똑같습니다. 정신과 치료받으면서, 음악하면서…….

- 미련한 놈 같으니라고. 집을 나갔으면 제대로 살기라도 해야지. 에잉, 쯧쯧!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놈이 왜 여태 그 모양이야?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원! 이 애비가 죽고 난 뒤에나 집에 돌아오겠구만.

부엌으로 돌아가 식탁 정리를 시작했다.

잠시 회귀 전의 기억 속을 더듬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때, 선화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아빠가 우리한텐 뭐라고 안 하려나? 민혁이 숨겨준 거나 마찬가진데.”

“괜찮을 거야. 장인어른 그렇게 속 좁으신 분 아니니, 이해해주실 거라 믿어.”

“민혁이는? 민혁이도 괜찮을까?”

“물론, 처남도 괜찮을 거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오빠가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이 그래서.”

“우리 오빠 오늘 왜 이리 속이 편해?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아무것도 없는데.”

“에이! 그러지 말고! 웃고 있는 거 보니까 뭐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글쎄.

나는 살며시 지어 보인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

분노가 잔뜩 섞인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내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 꼴이라도 보고 싶은 게야?”

“…….”

“그런 게 아니면? 설마, 트로트 따위나 하라고 널 유학 보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집무실 내부가 열기로 가득했다.

정말이지 수태광이 여기서 화를 좀만 더 낸다면, 집무실 전체가 불길에 뒤덮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을 해봐, 말을!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네가 어찌 여태 믿고 지원해준 이 애비에게 이럴 수가 있는지, 말을 해보라고!”

“저, 저는 그냥…….”

수민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워낙에 심성이 착하고 소심한 그이기도 했지만, 여태 살면서 아버지에게 이토록 혼나본 적이 없었다.

형들이라면 모를까, 수민혁 자신은 지금까지 아버지에겐 한 없이 순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었으니까.

“그, 그냥…….”

말을 꺼내야 했다.

매형의 말마따나,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마냥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고 믿으며.

“무, 무대에서 노래가 하고 싶어요.”

“그 꼬라지를 하고 말이냐?”

수태광의 매서운 눈빛이 아들의 몸을 훑었다.

몸 곳곳에 즐비한 해괴한 문신들.

수민혁 또한 그런 아버지의 시선을 느꼈다.

사실, 문신이야 얼마든지 지우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신 역시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이 또한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나름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못난 놈 같으니라고. 제 형들에게 하도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유독 신경을 써줬더니만은, 감히 이 애비를 배신해? 쯧쯧!’

수태광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자식들이 대부분 각성자 잠재력을 타고났지만, 유일하게 넷째 녀석은 예외였다.

하다못해, 선화도 각성을 하긴 했지 않았던가.

나름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자식이 더 이상 열등감 따위는 느끼지 않게, 잘하는 것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욕망. 비록, 그것이 자신 또한 좋아하는 일이긴 했지만…….

“미국으로 당장 돌아가거라. 가서 다시 학업에 집중해.”

“저, 전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뭣이?”

“말씀드렸잖아요.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요, 요놈 봐라?”

단 한 번도 말을 거역한 적이 없던 수민혁이었다.

그래서일까. 수태광은 아들의 지금 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아버지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어요. 사소한 것 하나, 하나까지 전부 다요. 아버지 마음에 들고 싶었고, 형들처럼 인정받고 싶어서.”

“그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너 답지 않게…….”

“……즐겁지가 않으니까요.”

“즐겁지가 않다?”

“아버지. 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그 어떤 것보다 잘 해내고 싶은 일이요. 이번 한 번만 절 믿어주시면…….”

“믿어주면? 성공해서 내게 어떻게든 인정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이겠다?”

“아뇨. 그냥 제 삶을 살아보려구요. 진짜 제 삶을요. 아버지께서 아들이 잘사는 모습을 좋게 지켜봐 주셨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어떻게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중, 단 한 명도 제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건지.

“나가! 가서 어디 한번 네 멋대로 살아보거라. 평생 이 애비 따윈 없다고 생각하면서.”

“아, 아버지……!”

“뭐해? 나가라니까!”

“…….”

“꼴도 뵈기 싫으니, 내 방에서 썩 나가라고!”

수민혁은 아버지의 고함에 밀려 집무실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은근히 응원해주실 거라고 기대를 했건만.

“하아…….”

그래도 나름 속은 후련했다.

힙합을 시작하면서도 무작정 문신부터 하긴 했는데, 막상 한국에 도착했을 땐 그 사실을 아버지께 알릴 생각에 심장이 벌렁거렸으니까.

뒤늦게 그냥 도망칠까,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우우웅 -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내일은 슈퍼 트롯 작가에게서 온 전화다.

- TOP 10 선발전 경연곡 정하셨어요? 오늘까지 말씀해주신다고 했는데, 여태 아무런 말이 없으셔서…….

경연곡이라.

여러 개의 곡을 두고 점심때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께 불려가는 바람에 깜빡하고 있었다.

- 혹시, 아직까지 결정 못 하신 거예요?

“으음, 아뇨. 경연곡 정했어요, 방금.”

***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내일은 슈퍼 트롯 TOP 10 선발전.

리허설을 앞둔 수민혁의 마이크를 쥔 손이 불안하게 떨려왔다.

‘긴장되네. 이번엔 녹화가 아니라서 그런가.’

단연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와의 대면 이후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으나, 다만 애써 아니라고 믿을 뿐.

“10번 참가자! 리허설 들어갈게요!”

결승 직전까지는 탈락하지 않는 이상, ‘10번 참가자’ 가 수민혁의 이름이었다.

그때까지는 오직 자신의 이름과 신분이 아닌, 실력만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허설 무대를 망치고야 말았다.

음 이탈에 가사 실수까지, 그리고 장점이었던 감정 표현까지 제대로 해내질 못했다.

무대에 오른 뒤 더욱 심해진 손 떨림이 강한 긴장으로 작용했고,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있던 불안한 손의 감각이 어느새 전신으로 번진 것이다.

“리허설 때 말이야. 10번 참가자 평소에 비해 실력 발휘를 못 한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여태 잘해오다가, 생방 앞두고 그런 실수하면 곤란한데. 이러다 우승 후보 타이틀은 오늘로써 날아가는 건 아닌지 몰라.”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대기실에 들어서려다 안쪽에서 스태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이러다 정말이지 생방 무대를 망치는 건 아닌지.

수민혁의 불안감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다.

“곧 생방 시작이네. 잘할 수 있지?”

생방송 30분 전.

준우가 대기실을 찾았다.

“어, 어떻게든 잘해야죠.”

“기사보니까, 사람들이 처남보고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막 그러던데?”

“하하…….”

“잘할 거야. 여태 잘해왔으니까. 너무 걱정 마.”

준우는 느꼈다.

떨림을 감추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그럼에도 옷 밖에까지 전해지는 그 불안함을.

“누, 누나는요? 수린이도 왔어요?”

“왔지. 수린이 갑자기 배 아프다고 해서 화장실 갔어.”

“아아…….”

“장모님도 곧 도착하신다더라. 방청석에서 응원하고 있을게.”

생방송이 임박한지라, 준우도 이만 대기실을 떠야 했다.

마지막으로 수민혁의 어깨를 다독여주던 준우가 저만치 멀어져갔고, 그때부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민혁의 무대 순서는 제일 마지막.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안함 때문인지 그마저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10번 참가자! 무대 올라갈게요!”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가쁜 숨이 흘러나왔다.

‘잘 할 수 있다. 아니, 잘하자.’

마음을 다 잡아본다.

이어, 사회자의 이런 저런 멘트가 흘러나왔다.

수민혁이 부를 곡 소개를 비롯한 여태까지의 방송 활약상에 대한 그것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리허설의 실수 때문인지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어서였다.

- 방청석에서 응원하고 있을게.

대기실에서 준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매형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라도 이 마음을 의지해볼까, 싶어 무대 위에서 방청석을 살펴봤다.

‘이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통 찾을 수가…….’

무대 시작 직전.

사회자의 멘트가 모두 끝이 나자, 수민혁을 응원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방청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막 경연곡의 간주가 흘러나오던 그때였다.

방청석 가장 맨 뒤에 앉아 있는 매형을 발견했다.

‘핸드폰 플래시는 왜?’

핸드폰을 높이 치켜든 준우가 플래시로 어디 한 곳을 가리켰다. 방청석 제일 끝에 있는 출입구 쪽이었다.

‘수린이?’

출입구 앞에서 날개를 펼친 채 허공을 날고 있는 수린이가 보인다.

어두운 방청석의 끄트머리에서 무언가를 잡아당기듯, 안간힘을 쓰며 낑낑거리는 그 모습이 의아하던 찰나.

‘……어?’

날개짓을 하고 있는 수린이의 손끝에 누군가가 보였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박수를 치고 있는 한 사람.

아버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