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황장미는 약 보름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엑시스 웨펀 시연회 때문에 비즈니스적인 일정들이 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주도를 즐길 만한 여유는 충분했다.
‘영감탱이가 이혼 전엔 안 그랬는데, 어째 점점 더 성격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란 말이야. 나이 들어서 그런가?’
모처럼 수태광과 긴 시간을 보냈다.
이혼하고 처음, 아니, 어쩌면 신혼 이후로는 결혼생활을 통틀어서 단둘이 이토록 오래 여행을 한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결혼 후엔 그만큼 수태광이 바빴으니까.
티격태격하긴 했으나 꽤 좋은 시간이었다.
마치 신혼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물론, 자존심 때문에 그 좋은 감정을 겉으로 티 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묘하게 전 서방처럼 자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전 서방이랑 가까워지더니, 영감탱이도 비슷해지는 건가?’
어쨌거나, 좋은 현상이었다.
앞으로 계속 나이를 먹을 텐데, 수태광도 못난 소리 안 들으려면 전보다 성격을 죽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길었던 여행을 마치고 좀 쉬려는 찰나.
문득,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 엄마, 고민 상담할 게 있어요.
민혁이가 곧 한국에 온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벌써 도착한 와 있는 모양이었다.
막 소파에 기댔던 황장미가 몸을 일으켰다.
아들이 고민 상담할 게 있다는데, 엄마로서 바로 움직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모자는 저녁 식사부터 했다.
그리고는 근처 카페로 가, 그간 떨어져 지낸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수다를 떨었다.
수민혁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자신의 몸에 새겨진 여러 문신을 보았을 텐데, 왜 아무런 언급도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오디션 보러 한국 왔다더니, 우리 아들 힙합 같은 거 하려고?”
“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찍었어. 얼마 전에, 쇼미인가, 뭔가, 그거 지원자 모집한다는 광고 봤거든. 광고를 하도 많이 하길래. 표정 보니까 맞는 것 같네.”
“단지 그걸로 유추하신 거예요?”
“문신. 설마, 그런 모습으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진 않을 테니까.”
“아…….”
전부터 느낀 거지만 엄마는 눈치가 빨랐다.
누나의 말마따나 엄마에게도 문신으로 한 소리 들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었다.
“문신이 잘 어울리긴 하지만, 우리 아들 잘생긴 얼굴 가려서 조금 아쉽기는 하네.”
“무작정 문신부터 새기긴 했는데, 사실, 마음이 조금 바뀌었어요. 원래 힙합 오디션을 보려고 한국에 왔었지만…….”
“네 아빠 때문에? 그게 고민인 거잖아?”
“예?”
수민혁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힙합에서 트로트로 전향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 상담을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뭐가 됐든, 너만 행복하다면 무조건 응원할 거야. 하지만, 네 아빠는 그게 아니겠지.”
고민 상담의 내용은 조금 달랐지만, 아버지에 대한 문제도 짚어 봐야 하긴 했다.
결국엔 아버지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되면, 누나의 말대로 아버지께서 날 가만두시지 않을 거야.’
수민혁은 일단 엄마의 말에 집중했다.
어쩌면, 엄마가 아버지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해도 수태광은 수태광이야. 아들내미 클래식 한다고 엄청 좋아했던 사람인데, 아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겠지.”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혼까지 한 마당에 네 아빠한테 이러쿵저러쿵할 수는 없고. 내가 옆에서 달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잖아?”
“그래도 설마 저와 연을 끊으시거나 하진 않겠죠?”
“얘가 지 아빠랑 오래 떨어져 지내서 그런가. 영 감이 없네? 연 끊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야지.”
“…….”
“아까 말했듯이 엄마는 네 뜻을 존중해. 네 인생이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네가 져야겠지?”
결국은 엄마인 황장미도 답을 모른다는 뜻이었다.
워낙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태광이기에.
“아빠 문제에 대해선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아. 그게 가능했다면, 내가 네 아빠랑 이혼까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수민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마까지 이렇게 말을 하니, 되레 겁이 나서였다.
“하지만, 아주 만약 정 네 힘으로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안 될 것 같으면요?”
“네 매형한테 가서 매달려 봐. 그나마 네 아빠가 너희 매형 말은 잘 듣는 것 같더라.”
“아빠가 매형 말을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수민혁의 표정이었다.
대체 매형이 무슨 재주를 갖고 있기에 아버지를 달랠 수 있다는 건지.
‘매형이 아버지 약점이라도 쥐고 있나?’
수민혁은 차마 트로트로 전향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매형이라는 사람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황장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엄마가 오늘 좀 피곤하네. 오늘 막 여행 끝내고 와서 그런가. 먼저 들어갈게. 오늘 즐거웠어, 우리 아들.”
“얼른 가서 쉬세요. 괜히 저 때문에…….”
“엄마한테까지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아들이 고민이 있다는데, 당연히 나와야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던 아들의 말에 손사래를 친 황장미는 서둘러 택시에 탑승했다.
오디션 준비로 한창 바쁠 텐데, 굳이 시간 뺏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니엘 역시 오늘까지 휴가였고.
황장미는 간만에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라디오에서 구수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아마, ‘내일은 슈퍼 트롯’ 1회 우승자로 데뷔한 사람의 목소리더랬지.
“트로트 좋아하세요, 손님?”
택시 기사가 문득 물었다.
“당연히 좋아하죠. 내일은 슈퍼 트롯도 다 챙겨 봤었는데.”
“요즘 택시 타는 손님들 보면 트로트 안 좋아하시는 분이 없네요. 확실히 트로트가 대세긴 대세인가 봅니다.”
“그러니까요. 우리 아들도 힙합 같은 거 말고, 차라리 트로트나 했으면 좋겠는데…….”
“오호! 아드님이 가수이신가 보네요!”
“아직은 아닌데, 만약 우리 아들이 가수가 된다면 엄청 행복할 것 같네요.”
빠르게 스쳐 가는 서울 도심의 모습들.
황장미는 창밖에 시선을 둔 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작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 * *
수민혁은 고민했다.
자신이 왜 힙합을 하려고 했었는지.
진짜 힙합이 좋아서였을까.
생각해 보니 친구들 앞에서 랩을 했을 때, 함께 호응해 주던 그 모습에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대가 중요했던 건가.’
쾌감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수민혁이었다.
미래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좀 더 깊이 고민해 볼 필요는 충분히 있었다.
‘누나하고 매형 앞에서 노래 부를 때도 묘하게 기분이 좋았었는데…….’
며칠간 거듭된 고민.
드디어 고민을 마친 수민혁은 매형에게 이끌려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멍크의 작업실이었다.
래프와 마찬가로 멍크를 포함한 대부분의 몬스터 멤버들은 프로듀싱 능력이 탁월했는데, 멍크 역시 작사/작곡을 겸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멍크가 언젠가 대선배인 가수 한 명에게 곡을 선물했는데, 선물한 그 곡이 트로트로 한동안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아이돌 후배들 곡도 다수 작곡한 그였고, 실로 다방면의 재주를 갖고 있는 능력자가 아닐 수 없었다.
“노래를 엄청 잘하네요. 신기하게도 보컬적인 부분과 발성, 소리, 표현, 리듬 등 모든 게 트로트에 적합하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에 준우 씨 집에서 오디션 볼 때, 노래를 한번 시켜 볼걸 그랬어요.”
“지, 진짜요……?”
“노래 자체를 잘하기도 하지만, 특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바이브가 서정적이면서도 구수한 느낌이 강해요. 뭐랄까, 이건 마치…….”
함께 수민혁의 노래를 들은 준우도 공감하는 바.
준우 역시 감상을 끝낸 뒤에 느꼈던 분위기가 있었다.
“숭늉 바이브?”
“하하! 굳이 뭔가를 붙이자면 그런 거요.”
멍크의 칭찬에 수민혁의 표정이 밝아졌다.
선화와 준우가 하도 노래를 잘한다기에 혹시나 했는데.
‘내가 정말로 트로트에 재능이 있다고?’
나름 전문가인 멍크가 아니던가.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매형이랑 친해서 그냥 좋게 말해 주는 거 아냐?’
수민혁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히죽 웃으며 자신보다 더 좋아하고 있는 매형의 모습이 보였다.
“처남, 내가 뭐라 했어? 확실히 재능 있다고 했지?”
“그, 그래도 더 전문가인 분의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준우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만약, 수민혁이 트로트로 대성하게 되면 회귀 전처럼 무명 래퍼가 되어 우울증을 겪을 일도 없지 않을 거 아닌가.
‘그리고 선화 역시 슬퍼할 이유가 사라지는 거고!’
수민혁은 자신을 대신해 한껏 기뻐해 주는 매형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신기한 매력이 엄마마저 매료시킨 걸까.
아무튼.
노래를 불렀던 당사자인 수민혁도 기분이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두 명의 관객뿐이더라도 관객이 있다면 이곳은 무대였다.
또한, 수민혁은 무대에 있는 것 자체에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앞서 말씀드린 의견들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하지만, 트로트에 가능성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흐음.”
진짜로 힙합에서 트로트로 전향해 볼까?
무대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멍크도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섣불리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
“처남. 이참에 한번 대중들한테 평가를 받아 보는 게 어때?”
“어떻게요?”
“쇼미처럼 트로트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어. 내일도 슈퍼 트롯이라고. 거기도 지금 참가자 모집하는 중이거든. 1차 예선이라던데.”
지원 방식은 간단하다.
쇼미와 마찬가지로 노래하는 영상을 찍은 후, 프로그램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업로드하면 된다.
“그러니까, 트로트 오디션에 참가하라는 거죠?”
“처남이 해 볼 생각이 있다면.”
힙합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는 휴학했다.
쇼미에 참가하려고 한국까지 온 마당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미 힙합에서 한번 무너졌기 때문일까.
수민혁은 재능이 있다는 트로트에서 희망을 보았다.
재미도 있었다. 무대의 쾌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관객과 호흡을 할 수 있는 것은 힙합이나 트로트나 똑같았으니까.
“해 보고는 싶은데…….”
“뭐, 문제 있어?”
“아버지요.”
“아? 그치. 장인어른이 문제긴 하지.”
힙합 정신으로 무장한 패기는 준우의 집에서 오디션에 실패할 당시에 사라졌다.
패기가 사라져서인지, 아버지의 뜻을 굽히겠다는 용기도 조금은 사그라든 것이 사실이었다.
“장인어른이 좀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해 보고 싶은 건 해 봐야 하지 않겠어? 걱정 마. 장인어른은 내가 맡아 볼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준우.
그 모습을 본 수민혁의 눈빛이 반짝였다.
‘엄마도 그랬었지. 아빠 문제가 정 안 될 것 같으면 매형한테 매달려 보라고.’
수민혁은 확신했다.
매형이 분명히 아버지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다.
씩 웃은 수민혁이 당차게 대답했다.
“그럼 저 한번 해볼게요, 트로트! Skrr!”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 말끝마다 스껄, 스껄 하는 거, 장인어른 앞에서는 절대 하지 마. 괜히 그걸로 장인어른 신경 긁었다가, 자칫 스컬 되는 수가 있다.”
“오…… 스껄, 스컬…… 라임 좋네요…….”
한동안 준우의 집에 머무르기로 한 수민혁은 선화의 응원까지 받으며 오디션 지원 영상을 완성했다.
참고로 촬영은 선화가 직접 해 줬다.
그렇게 2주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수민혁은 1차 예선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 * *
일본 대균열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던 수태광은 최근 들어서야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일전에 황장미와 오붓하게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을뿐더러, 오늘은 자신의 집에서 늦은 밤까지 오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처럼 몇 없는 친구들을 만난 오늘.
기분이 좋아진 수태광은 한껏 취하고 싶어졌다.
“술맛 좋구만! 우리 사위가 선물해 준 술이라 그런가! 껄껄!”
예전에 준우가 일본에서 사다 준 술병을 들고 호탕하게 웃는 수태광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자! 내가 한 잔씩 더 따라 줄 테니까…… 응?”
친구들의 술잔을 채우던 수태광이 멈칫했다.
여태 함께 어울려 담소를 나누던 친구 하나가 대뜸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넨 갑자기 술 마시다 뭐 하나?”
“이게 요즘 아주 재밌는 프로그램이거든. 태광이 자네는 이거 안 보나?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면 다들 환장하는 건데.”
“뭔데, 그게?”
“내일은 슈퍼 트롯이라고, 트로트 오디션 같은 걸세! 우리 마누라가 여기 나오는 한 총각을 엄청 좋아라 하더라고. 생긴 것도 반반하니, 노래도 구수하게 잘하는 친구야.”
“쯧쯧. 난 그런 거 관심 없네.”
“자네도 유행에 좀 어울리고 그래. 허구한 날 일에만 빠져 있지 말고.”
“트로트는 무슨. 수준 떨어지게. 우리 아들이 말이야, 자그마치 클래식을 전공한다고! 애비로서 아들 수준에 맞춰야지,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나도 어울려 놀 순 없지 않나?”
“수준 떨어져? 허어! 자네 혹시라도 밖에 나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어.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재수 없음 칼 맞아, 이 사람아!”
“누가 감히 이 수태광에게 칼을 놔? 껄껄! 농담도 참 재밌게 하는구만!”
수태광이 대수롭지 않게 술잔을 들었다.
우렁차게 ‘건배!’를 외치며 한 모금 들이켠 그때.
“바로 이 총각일세! 아까 말했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빠져 있다는 그 총각!”
“푸하하학!”
수태광이 머금었던 술을 그대로 내뱉었다.
친구의 핸드폰 속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보여서였다.
아니, 낯이 익은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아들이지 않은가.
‘미, 민혁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순간, 술이 확 깼다.
취하려고 작정하고 마신 술이었는데.
“왜 그러는가, 태광이? 뭐 문제 있나?”
친구들은 화면 속에서 트로트를 구수하게 뽑아내고 있는 저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의 형평성을 위해 탈락을 하거나 결승 직전까지는 이름과 신분을 공개하지 않고, 참가 번호만 주어진다는 설정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크면서 얼굴이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장남인 큰아들이라면 모를까, 넷째인 민혁는 애기 때 한두 번 보고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었다.
자식들 중 유일하게 부모님 얼굴을 덜 닮기도 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설마 수태광의 아들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을 거라고 과연 그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 잠시 바람 좀 쐬고 옴세.”
잠시 친구들에게서 벗어난 수태광은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입안에선 술 냄새 섞인 한숨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민혁이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
아들내미 클래식 전공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었다.
지금껏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었고, 아버지인 자신의 말을 법처럼 따르기만 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갑자기 트로트라니?
수태광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효자였던 아들에 대한 배신감은 덤이었다.
“당장 내 집무실로 오게.”
노기를 띤 수태광이 최 비서를 호출했다.
최 비서가 도착하자, 핸드폰으로 ‘내일은 슈퍼 트롯’ 본방송을 재생시켜 보여 주었다.
“도련님께서 왜 트로트 오디션 방송에?”
“내 말이 그 말이야! 미국에서 클래식 공부하고 있어야 할 녀석이 왜 한국에서 트로트 따위나 부르고 있느냐고!”
“…….”
불현듯, 얼마 전에 오디션 보러 한국에 오겠다는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 오디션이 바로 트로트 오디션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여태 지원해 준 애비를 이렇게 모욕해?”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유독 얌전했던 아들.
나아가, 자신의 뜻을 거스른 적 없고, 가장 신뢰했던 아들이었기에, 수태광은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백호를 움직여서, 아니지. 백호가 움직였다간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터.”
고개를 내저은 수태광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경호실을 움직이게. 최대한 은밀하게 민혁이 녀석이 있는 곳을 당장 찾아내도록 해.”
“찾아낸 다음엔 어찌할까요?”
“일단, 찾아서 내 눈앞에 대령시켜. 방해하는 놈들이 있다면, 그 녀석들까지 잡아서 내 앞에 끌고 와.”
마침 집무실 앞을 지나가던 동혁이는 수태광의 호통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안쪽의 대화 내용을 엿듣고 있는 중이었고.
‘크, 큰일 났다! 왠지 매형까지 아빠한테 엄청 혼날 것 같은데…….’
이미 수민혁이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동혁이로서는 수태광의 분노에 손발이 절로 떨려올 수밖에 없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동혁이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곧장 준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 매형! ㅌ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