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행복할 거야
공항 내 작은 카페.
큰처남과 오랜만에 만난 선화는 쉴 새 없이 얘기를 쏟아 내는 중이었다. 비록, 대부분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원래 좋은 약일수록 쓰다고 하니까.’
우리에게 귀국 날짜와 시간, 거기에 공항에 도착해서 시간까지 끌어준 강 비서는 괜히 큰처남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배신함으로써 큰처남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일 터.
그도 그럴 것이.
남매의 대화 방향은 썩 좋게만 흘러가진 않았다.
“문신, 그거. 아빠는 절대 이해 못 하실 거야. 아마 민혁이 널 집안에서 쫓아낼지도 모르지.”
“그, 그래도 대화로 내 진심을 전한다면 아버지께서도 어느 정도는…….”
“아니, 절대. 내가 봤을 때 아빠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었어. 적당히 좀 하지, 너무 많잖아? 엄마도 분명히 싫어할 거라고.”
“아무래도 힙합이니까. 힙합은 세야 하잖아? Skrr!”
“그놈의 스껄 좀 그만하면 안 되겠니? 어쨌거나, 누나 생각엔 겉모습보다 노래나 가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데.”
“나도 알긴 아는데, 내가 가사를 세게 못 써…….”
그럼 그렇지.
선화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회귀 전 큰처남의 모습을 이미 봤기에 알고 있었다지만, 회귀를 하지 않은 선화도 큰처남의 착한 심성으로 어느 정도 유추를 하고 있었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큰처남에겐 어울리지 않다는걸.
나도 힙합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힙합이라면 말이다.
“가사를 세게 못 쓰니까, 대신 외모를 세게 만든 거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이고, 골이야! 그래서 오디션 1차라도 붙은 적은 있고?”
“어, 없지.”
“오디션 떨어질 때마다 문신 하나씩 새겼다며? 그럼, 대체 그 짧은 시간에 몇 번이나 떨어진 거야?”
“그건 누가 말해 줬……?”
큰처남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괜히 찔려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강 비서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다.
“민혁아. 누나는 네가 뭘 하든 응원하고 싶어.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걸 하지 말라고 할 자격도 없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힙합은 너하고 어울리지 않아.”
선화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큰처남의 순하고 착한 성격으론 절대 힙스러운 가사를 쓸 수 없을 테니까.
때문에, 지금처럼 냉정하게 말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회귀 전에도 십 년이 넘도록 그랬으니…….’
하지만, 선화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큰처남은 고집을 꺾지 않을 거다.
수 씨 집안 고집이야 이미 겪을 만큼 겪어 봤기에 아주 잘 알고 있다.
‘……회귀 전과 같은 갈등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해.’
큰처남은 쭉 힙합을 지속했다.
일단 문신을 한 것으로 장인어른과의 갈등이 시작됐고, 클래식에서 힙합으로 갈아탄 이상 당연히 장인어른의 경제적 지원은 없었다.
그렇게 패기 좋게 집을 나온 큰처남은 무명 래퍼 생활을 십 년을 넘게 이어 갔다.
참고로 내 기억에 의하면, 그 기간 동안 딱히 발전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무명이었어.’
당연히 실력이야 처음보단 나아졌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쇼미 1차의 벽을 단 한 번도 넘은 적이 없다.
몇몇 커뮤니티와 SNS에선 큰처남을 조롱하는 글들도 여럿 있었다.
‘그쯤 했으면 힙합을 포기할 법도 했는데, 계속해서 거기에만 집착을 했었지. 그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이후, 큰처남은 꽤 지독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선화의 표정 역시 우울해 보였고.
‘아무튼, 나는 선화의 그 표정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내가 되도록, 큰처남을 다른 길로 안내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였다.
장인어른과의 갈등도 갈등이지만, 무엇보다 선화가 아파하는 모습은 절대 못 볼 것 같았기에.
하지만, 무작정 힙합을 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다.
타인이 어찌 그걸 관두게 한단 말인가.
해서.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법을 택했다.
“처남. 우리 집에서 오디션 한번 보는 게 어때?”
“오디션을 매형 댁에서요……?”
“우리 가족들이 직접 보고 평가해 볼게. 처남의 가능성을 말이야. 만약, 평이 영 좋지 않다면 누나가 했던 것처럼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한번 재고해 주면 좋고.”
“시, 실례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매형하고 누나 말인데요. 힙합에 대해 잘 알아요, 혹시?”
“아아, 전문성! 그건 걱정 마. 우리가 쇼미 우승차 출신 전문가 초빙해 뒀으니까.”
멍크가 속한 아이돌 그룹 몬스터의 멤버 중 한 명.
그가 우리나라 힙합씬에선 일류였다.
* * *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몬스터에서 랩 포지션과 그룹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멤버, ‘래프’.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깨고 유일하게 쇼미에서 우승한 자이기도 자였다.
쇼미 우승 이후에는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하여 그룹을 세계 무대로 이끌었으며, 또한 자신이 모든 걸 제작한 첫 정규 앨범은 힙합씬에서 명반으로 칭송받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래프가 우리나라 힙합씬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것만은 확실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저희도 국내 연말 콘서트까지 일정 마치고, 요즘 쉬고 있어요. 무엇보다, 준우 씨께서도 저희에게 도움을 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 전, 선화가 멍크의 인스타그램에서 래프가 반려몬을 입양했다는 피드를 봤단다.
혹시나 해서 래프의 인스타그램을 살폈는데, 장모님이 키우는 반려몬과 같은 종이었다.
‘막 성장통을 시작한 큐피그였지.’
큐피그의 상태를 살펴봐 주는 대신, 나도 가볍게 랩 평가 한번 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했다.
멍크와의 인연 때문인지 섭외가 생각보다 쉬웠다.
그가 래프에게 내 얘기를 잘 해 줬으니까. 어쩌면, 내가 엑시스의 사위인 것도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길게 끌 거 없겠죠? 바로 시작할까요?”
“자, 잠깐만요, 매형! 저 지금 너무 떨려요.”
큰처남이 마이크를 쥔 손을 바르르 떨어 댔다.
뭐, 이해는 한다. 세계적인 아이돌이 눈앞에서 심사를 한다는데 어찌 떨리지 않겠는가.
아까 우리 집에 와서 막 멍크와 래프를 만났을 때, 나는 처남의 눈이 놀라서 돌아가는 줄만 알았다.
그만큼 심사위원의 정체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던 거겠지.
차원문 내부.
멍크와 래프가 내가 미리 만들어 둔 심사위원석에 앉았다.
거실에 있는 소파를 가져다 놨으며, 어느 정도 TV에서 본 것처럼 흉내를 좀 내봤다.
“긴장 푸시고.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래프는 세심하게 큰처남의 모습을 살폈다.
참고로, 쇼미 우승 이후 몇 번의 시즌이 지난 뒤에 심사위원도 경험했던 그였다.
“후아…….”
호흡을 가다듬는 큰처남의 앞에는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우리도 함께 서 있었다.
나와 선화, 그리고 수린이.
거기에 말순이와 미심이를 비롯한 반려몬 아이들까지.
‘반려몬 아이들을 포함하면 관중이 꽤 되는데. 긴장 안 하고 잘할 수 있으려나?’
멍크와 래프로 인해 압박감이 상당할 터.
만약, 심사위원들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한다면 전적으로 처남을 밀어줄 생각이었다.
회귀 전을 생각했을 때, 가능성이 많이 낮아 보이긴 한다만…….
“준비됐습니다.”
“비트콜 하시고 바로 시작해 볼게요, 그럼.”
고개를 끄덕인 처남이 마지막으로 숨을 고른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매형, 드랍 더 비트!”
그래, 비트는 내가 넣어 주마.
비트를 재생시키자 차원문 내부에 미리 준비해 둔 대형 스피커에서 베이스 소리가 둥둥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남이 살며시 마이크를 감싸 쥔다.
눈빛은 나름 전투적으로 변했고, 시선 처리가 괜찮았다.
‘문신 때문일까. 아직 들어 보지도 않았는데, 왜 잘할 것처럼 보이냐.’
숨을 들이마시는 처남.
날숨과 함께 입에서 가사가 쏟아진다.
⌜ Yeah, ha!
Yeah, ha!
열기 가득한 통화음에 숨을 참어
머뭇거리다 이내 커진 Fire
“랩이 하고 싶어” 내 맘은 끝내 꿈을 참아
꾸밈없이 보여 줘야겠어 화마를 삼키게끔
가사 적힌 노트는 나의 무기고
자원과 무기를 확보해 돌격 War War
화마를 식힐 전쟁을 선포해
확 서두르지마 천천히 가도 돼 워워
나의 전쟁에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으니 ⌟
뒤에 가사가 더 있었지만.
인상 깊었던 가사는 여기까지.
참고로 처남이 랩을 한 비트의 제목은 ‘Victory’.
가사 내용을 들어 보니, 얼추 자신의 꿈을 위해 장인어른과 맞서 싸워 이기겠다는 뜻 같은데.
‘용기도 있고, 의미도 참 좋긴 하다만, 실력은 영 별로인 것 같단 말이지…….’
아무래도 나만 별로라고 느낀 건 아닌 것 같았다.
가사는 꽤 괜찮았지만, 선화 또한 질색하는 얼굴로 옆에 서 있지 않은가.
슬쩍 옆을 보니 미심이가 다섯 개의 꼬리를 뭉쳐 그 안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듣기 싫대. 너무 시끄러워서.”
미심이의 말을 선화가 통역해 줬다.
“쟤네는?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일복이가 이복이의 귀를, 이복이가 삼복이의 귀를, 그렇게 차례대로 서로의 귀를 막아 주고 있었다.
잔뜩 찡그린 표정이 흡사 사람 같았다.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저렇게 인상을 구길 수 있는 건지.
우우웅-
오복이들이 갑자기 배리어를 치기 시작했다.
설마, 처남의 랩이 자신들에게 닿는 걸 막으려는 걸까.
그게 진짜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컹컹컹!
가관인 건 그 얌전한 말순이가 짖고 있다는 거다.
어느새 처남에게서 빼앗은 마이크를 발아래 가둬 두고서.
“……별로였어요?”
반응들이 영 시원찮다.
처남도 그걸 느꼈는지 목소리가 풀이 죽었다.
“적폐!”
“내 랩이 조카에게 적폐 소리를 듣다니…….”
그리고 수린이의 한 마디에 표정마저 굳어졌다.
하지만, 아직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남았다.
먼저 래프의 심사평을 들어보자.
“가사가 걱정이라고 하셨었는데, 의외로 가사는 정말 괜찮았어요. 하지만…… 흐음.”
“괜찮아요. 그냥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정말 솔직하게요?”
“처음엔 그냥 반신반의하는 마음에 여기 왔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서 유명하신 분들 뵙고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어요. 진짜 오디션이라고 생각하고 제 영혼을 갈아 넣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평가해 주셔야 저도 제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처남은 진지했다.
표정과 자세에는 긴장이 배여 있었다.
마치 진심으로 솔직한 평가를 원하는 느낌이랄까.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민하던 래프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결정한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내 눈치를 보긴 했는데, 당사자가 원하니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낫겠지.’
래프가 냉정하게 말했다.
쇼미 심사위원을 할 때처럼 단호하게.
“가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엉망입니다.”
“그, 그렇군요.”
“더 세세하게 말씀드릴까요?”
“네, 해 주세요. 그래야 고칠 수 있을 테니까.”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우리는 처남의 착한 심성 때문에 센 가사를 쓰지 못하는 게 문제일 거라 생각했으나, 정작 문제는 랩에 대한 모든 것에 있었던 거다.
“쇼미 말고, 고등학생들 나와서 랩으로 경연하는 프로그램 보신 적 있나요?”
“……있습니다.”
“그 아이들과 본인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처남이 고개를 내저었다.
고등학생과 비교해도 자신이 현저히 뒤떨어진다는 뜻.
“만약 래프님이 저라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예?”
“다른 길을 찾으실 건가요, 아니면, 계속 힙합씬에 남을 건가요?”
“흐음. 저라면…… 아마 힙합은 접을 것 같습니다.”
차갑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래프의 말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 제가 너무 세게 말한 것 같은데.
- 혹시 민혁 씨가 상처받았으면 어쩌죠?
래프가 슬쩍 문자를 보내왔다.
울고불고하는 이모티콘을 보니 엄청 미안해하는 듯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처남이 간절히 원하던 솔직한 심사평을 해 준 것뿐인데.
‘다른 건 몰라도, 랩으로 성공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건데…….’
열심히 노력하면, 장인어른의 경제적 지원이 없어도 굶어 죽진 않겠지.
하지만, 처남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힙합씬의 최고가 되는 거라고 했었어. 스스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장인어른께 자신의 선택을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능력은 부족하나, 꿈은 방대한 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형님들과 막내 처남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았을 거야.’
물론, 엑시스의 아들로서 보통 사람들에 비해 할 수 있는 게 많기는 했을 거다.
그러나 처남의 비교 대상은 그들이 아닌, 형제들이었을 터.
나머지 형제들은 죄다 각성을 했지만.
오직 큰처남만 각성 잠재력마저 없었기에 비교적 선택의 폭이 좁다고 볼 수 있었다.
“하, 한 번만 더 해 볼 수 있을까요?”
“예?”
“랩 말이에요. 준비해 온 다른 가사가 있거든요.”
“아아, 얼마든지요.”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한 번만 더!’라고 외치는 처남의 목소리도 셀 수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래프의 심사평은 처음 그때와 같았다.
안타깝지만,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처남에겐 래퍼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힘없이 한마디를 내뱉는 처남의 모습에.
회귀 전, 처량했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 * *
수태광과 황장미는 아직 제주도를 여행 중이었다.
때문에, 수민혁은 한동안 부모님을 만날 일이 없었다.
- 저번에도 녹음실 안 오더니? 오늘도 안 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수민혁이 문자를 확인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녹음실을 빌려주었던 아는 형의 문자였다.
- 미안.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냥 쉴게.
답장을 보낸 수민혁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도 좋다는 선화와 준우의 배려에, 누나 집에서 여유롭게 TV를 보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롭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한 건 다 잘했는데.’
왜 자신이 선택한 건 잘 안 되는 걸까.
1년 정도 더 해 볼까. 그럼, 과연 나아질까?
아니면 2년, 3년, 10년. 그렇게 노력하면 아버지가 원하는 훌륭한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왜 나만 못하는 거지? 형들은 다 했는데! 하다못해 동혁이도 자기가 선택한 걸 잘 해내는데, 왜 나만!’
수민혁은 형들이 부러웠다.
명실상부 최고의 헌터라는 큰형 수재혁은 어렸을 때부터 엑시스의 마스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선택한 길을 잘 나아가고 있었다.
비록 이런저런 사연이 있기는 하나, 작은형과의 후계자 싸움에서 이겼으니까.
작은형도 마찬가지였다.
지긋지긋한 회사 경영을 쿨하게 포기하고, 아버지인 수태광의 굴레를 벗어났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겠다면서.
‘작은형도 그렇게 세계 유명 인사가 되었고…….’
막내 동혁이는 어려서부터 각성자 잠재력이 높았다.
역시나 높은 등급으로 각성을 해, 세계 최고의 헌터가 되겠다는 자신의 길을 나아가고 있다.
‘나는 왜 힙합을 하려고 했을까.’
생각해 보면 쾌감 같은 게 있었다.
아버지가 정해 준 길 말고, 그냥 자신이 처음으로 뭔가를 개척했다는 묘한 쾌감.
꼭 힙합이라서가 아니라, 그 쾌감에 줄곧 끌려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좌절뿐이었다.
얼마 전 래프를 통해 현실을 깨닫지 않았던가.
‘누군가 정해준 길 말고, 나 스스로 선택한 길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아버지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마치 다른 형제들처럼.
수민혁 본인도 꿈꾸던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 없이 TV 채널을 돌려본다.
그러다 문득 라디오 채널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노랜데.”
황장미가 자주 부르던 노래의 간주가 흘러나온다.
동시에, 어렸을 적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 가끔은 아빠 말 꼭 안 들어도 돼. 너희 아빠 형들도 너무 강압적으로 훈련시키고 그러잖니? 민혁이 너도 아빠가 억지로 훈련 같은 거 시켜서 힘이 들면, 아주 멀리 도망쳐 버려. 엄마가 있는 힘껏 도와줄게.
< 심수봉 - 사랑밖에 난 몰라 >
가끔 엄마가 흥얼거리던 그 노래.
익숙해서인지, 간주가 끝나자 자연스레 수민혁의 입에서도 엄마가 불렀던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
…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
… ⌟
어느덧 심취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수민혁의 뒤로.
마침 장을 보고 온 준우와 선화가 멍하니 두 눈을 껌뻑였다.
“미, 민혁아?”
“큰처남!”
“응? 예?”
온몸에 소름이 돋은 준우와 선화가 동시에 수민혁의 양어깨를 냅다 흔들어 댔다.
그리고는 세상 감동한 듯 격한 감정을 담아 외쳤다.
“큰처남, 트로트 엄청 잘 부르네! 다시 불러 봐! 응? 한 번만 다시 불러 보라니까? 빨리!”
“수민혁 너 트로트 왜 잘 부르는 거야?”
“와, 왓? 내가 트로트를 잘 부른다고?”
준우와 선화가 신나서 난리 법석을 피워 댔지만.
당사자인 수민혁은 그저 벙찐 얼굴로 눈만 껌뻑여 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