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늦바람이 무섭더랬지 (168/246)

◈ 늦바람이 무섭더랬지

- 약 한 시간째 전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자간의 싸움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치열한 경기입니다만.

- 시간이 더 흐를수록 수태광 회장에게 불리해질 겁니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는지라, 수태광 회장이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되거든요.

- 자! 말씀하시는 순간, 수태광 회장이 남아 있는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는데요! 잠시 주춤했던 화마가 다시금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순간 수재혁의 승리를 직감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수태광이 너무나도 잘 버티고 있었다.

그야말로 박빙.

지켜보고 있는 준우도 감히 누가 이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오늘 끝나기는 하는 걸까?’

수재혁이 찾아낸 여러 개의 붉은 깃발로 인해 수태광은 폭우로 인한 능력치 하락에 몇 개의 디버프까지 걸린 상태였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멀쩡한 형님과 대등하게 전투를 하시는 거 보면, 장인어른께서 괴물은 괴물이신 거야.’

준우가 나서서 돕는다면, 승리를 수재혁 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뭐랄까.

부자간의 전투가 너무나 치열해서, 준우가 낄 상황이 아닌 것 같달까.

처음엔 수재혁의 결혼을 이유로 시작된 전투였으나,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이기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일 거다.

두 사람이 아버지라고 봐주는 것 없이, 아들이라고 양보하는 것 없이 혼신을 다하고 있었기에.

명백한 부자간의 싸움.

그래서 준우는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콰아아앙 - !

화염을 머금은 운석들이 수재혁을 향해 떨어졌다.

폭우와 디버프의 영향으로 운석들의 크기는 전보다 많이 작아졌으나,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화염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구나. 분명히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전투임에도 전혀 밀리질 않다니. 이 정도는 되어야 엑시스 길드 마스터에 오를 수 있다는 건가.’

수재혁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활용했다.

빗방울을 뭉쳐 단단한 얼음을 만들고, 그걸 방패 삼아 떨어지는 운석들을 막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막지 못한 운석들은 얼음을 소환하거나, 직접 피해가며 수태광을 압박해갔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서든 내가 꼭 아버지를 이기고야 만다. 비까지 내리는데 여기서 지면 엑시스 부마스터 체면이 말이 아니지!’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수재혁의 손에 모여들었다.

거기에 수재혁이 소환한 얼음들과 합쳐서 기다란 창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얼음의 창이 수태광의 화염의 창과 부딪쳤다.

수재혁은 창이 녹으면 얼음을 더해 다시금 강화시켰고, 수태광 역시 화력이 약해지면 마력을 끌어올려 강렬한 화염을 유지했다.

현란한 기술들의 향연.

마법 계열인 두 사람이 이렇게 근접 전투를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오늘만은 달랐다. 그만큼 서로 승리가 간절했기에.

누가 봐도 명승부.

때문에, 준우도, 시청자들도 이 전투를 오래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영원히 승부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폭우 때문인지, 슬슬 지치는군.’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상태가 정상이 아닌 수태광이었다.

‘이쯤하면 재혁이 녀석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이 녀석이 이렇게나 성장했을 줄이야.’

근접전을 이어가면서 얼음 유성우까지 소환해낸 수재혁이다.

아들의 능력을 실로 체감하고 있는 수태광은 필사적인 수재혁의 모습이 얄밉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아들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동혁이가 이 녀석보다 각성 등급이 높아서, 자칫 훗날 후계자 구도가 얽힐 수도 있다고 예상했거늘. 그건 그저 나만의 비약이었구만.’

엑시스의 부마스터다운 실력이었다.

또한, 자신의 아들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염의 창과 얼음의 창이 부딪치며 폭발과도 같은 충격을 주변에 퍼뜨린 것이다.

소멸해버린 두 개의 창.

부자가 재빨리 창을 만들어내며, 비어 있는 손을 서로를 향해 뻗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준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수재혁의 손이 무방비 상태인 수태광의 목걸이를 낚아챘다.

그런데, 수태광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태광도 수재혁의 목걸이를 같은 시점에 낚아챈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목걸이를 낚아챔으로써 자동 워프 기능이 발동됐으며, 한 시간 동안 이어졌던 전투가 끝이 났다.

두 사람이 전장을 떠났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준우와 엑시스 소속인 경호실 막내뿐.

“……부자 대전은 끝났고, 이제 헌터 서바이벌도 완전히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마력을 끌어올린 준우가 경호실 막내를 향해 내달렸다.

***

< 수태광, 아들과 사위에게 패배! >

< ‘헌터 서바이벌’ 첫 우승자는 수재혁, 전준우 >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헌터 서바이벌은 우리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경호실 막내 헌터의 실력이 좋기는 했으나 내게 필적할 정도는 아니었고, 결국 우리 팀이 목걸이 두 개를 전부 다 빼앗게 된 거다.

항간에는 장인어른께서 초반에 봐주시지만 않았으면 이변은 없었을 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장인어른과 형님의 후반부 전투가 강렬해서인지 딱히 그 부분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잡지사 헌트에서는 형님과 나를 두고 엑시스의 미래라고 표현을 했으며, 우리 두 사람으로 인해 엑시스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협회 소속이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우승 트로피가 우리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형님께선 장인어른에게 원하는 소원을 빌 수 있는 특혜를 얻게 됐다.

물론, 나도 얻은 게 있었다.

상금과 부상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로 형님께선 상금과 부상으로 주어진 두 개의 아이템을 모두 내게 주셨다.

독식할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

- 돈 몇 푼과 그깟 아이템 때문에 이 경기에 참여한 게 아니야. 나는 오직 효정이와의 원만한 결혼을 목표만 바라봤을 뿐. 원하는 걸 얻었으니, 나머진 나 때문에 고생한 자네가 다 가져도 좋아.

상금이 1억이다.

부상으로 주어진 두 개의 아이템도 각각 A급과 S급이고.

‘감히 1억을 돈 몇 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레이드 보상과 비교하면 적은 액수지만, 그래도 방송가에서 준 상금치고는 꽤 적절한 편이었다.

덕분에 선화에게 명품백 하나 더 사줄 여유도 생겼고 말이다.

여유로운 주말.

나는 소파 위에서 선화의 허벅지에 머리를 누인 채 물었다.

“우리 1억 생겼는데, 이걸로 뭐할까?”

“왜 나한테 물어? 오빠가 고생해서 얻은 돈이잖아. 오빠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부부는 하나니까. 선화 네가 하고 싶은 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내 맘이 네 맘이라는 거지. 봐봐, 여기 내 가슴 쪽에 선화 너 이름 써있는 거 안 보여?”

“안 보이는데?”

“좀 더 가까이 와서 봐봐. 그럼 보여.”

선화가 속아주는 척 살짝 고개를 숙인다.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틈을 타, 잽싸게 뽀뽀를 했다.

“가슴에 내 이름 적혀 있는 건 모르겠는데, 오빠 입술이 달달하다는 건 알 것도 같네.”

“달달함에 취하게 해줘?”

선화가 키득거리며 작게 웃었다.

이렇게 웃는 것도 참 예쁘네.

“우리 여행갈까?”

“여행 좋지! 나 완전 좋아!”

TV에서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이 방송되고 있었기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가만 보니,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지도 꽤 오래된 것 같고.

“여행 어디로 갈 건데?”

“간만에 해외여행 한 번 가자. 그간 바쁘게 일했으니까, 가게야 임시휴무하면 되는 거고.”

나는 휴가 내면 된다.

특별 휴가 많이 받아서, 내 연차는 많이 남아 있었다.

“오오! 그럼 지금부터 이것저것 알아볼까? 어디로 갈지, 가서 뭐 할지, 이런 거 말이야. 계획을 세워야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계획 짜고 최대한 빨리 떠나는 거야.”

선화가 아이처럼 방방 뛰며 좋아했다.

수린이는 엄마가 왜 이렇게 발을 구르는지 의아해했으나, 내가 다 함께 여행을 간다고 하자 곧장 선화를 따라 발을 굴러댔다.

한창 여행지를 선정하는데 몰두하고 있던 그때.

장인어른께 전화가 걸려 왔다.

생각해보니…….

헌터 서바이벌 끝나고 첫 통화인 것 같은데.

- 기분도 울적한데, 장기나 한판 둠세.

설마.

여태 패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건 아니겠지?

***

장기판의 말을 조심스레 움직였다.

접대 장기의 초고수인 나지만, 장인어른께서 예민하신 오늘 같은 날에는 각별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일부러 져주는 게 티 나면 죽음이다.’

내 예상대로 장인어른께선 헌터 서바이벌 패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상태였다.

얘기를 들어 보아하니, 패배의 아픔이라기보단 기사 댓글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나보고 은퇴하라더군.”

“그런 댓글은 수천 개의 댓글 중 고작 두, 세 개뿐입니다. 별거 아닌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장인어른.”

“아들놈과 사위한테도 지는 주제에 어찌 엑시스 마스터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느냐면서…….”

“방송이 아니라 실전이었으면 장인어른께서 이겼을 겁니다. 아무래도 방송인지라, 상대를 위협적으로 제압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저희도 목걸이만 빼앗으면 이기는 룰이었으니까요.”

“노장은 이렇게 죽었다, 라는 댓글도 있었어.”

장인어른께선 내 말이 들리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아마, 이번 일처럼 누군가에게 악플을 받아보는 게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런 것 같다. 항상 칭찬만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내 위로는 진심이었다.

실전이었으면 우리가 졌을 거다. 장인어른께서도 방송이라는 걸 인지하셨기에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셨으니 말이다.

‘비만 쏟아지지 않았더라도, 아니, 초반에 나를 봐주시지만 않았어도 경기 결과는 반대가 됐겠지.’

장인어른의 푸념을 들으며 장기를 이어갔다.

다행히 자연스럽게 내가 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사이에 장모님께서 집무실에 방문하셨다.

“표정 왜 그래? 아직도 헌터 서바이벌 진 거 때문에 꿍해 있는 거야?”

“져서 그렇다기보단,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다네.”

“그게 그거지. 아무튼, 그만 좀 꿍해 있어. 나이 먹고 꿍해 있는 거 엄청 없어 보여. 애당초 봐주다가 진 거면서, 그 정도면 잘한 거지. 대체 언제까지 꿍해 있으려고 그래?”

순간, 장인어른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내 위로에는 일절 변화가 없으시더니, 장모님께서 ‘잘했다’ 라는 의미의 말을 건네자 옅게나마 미소를 지으신 거다.

“여기 사인이나 해줘. 아티팩트 납품 확인서.”

장모님께서 장기판 옆에 서류를 올려둔다.

이런 일이야 직원을 시켜도 될 것을, 굳이 여기 오시는 걸 보면 장인어른과 가까워질 마음이 있다는 게 아닐까.

“난 이참에 은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재혁이 경영수업도 거의 다 마쳤고, 슬슬 물러날 때도 됐지.”

“무슨 소리! 나는 아직도 정정하다네.”

“요즘은 젊은 경영인이 대세야. 그 정도 해 먹었으면, 그만 해도 돼. 재혁이한테도 좋은 일이고.”

“끄응!”

두 분이서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가시더니, 상당히 친해지신 모습이었다.

마치 일반적인 부부의 대화처럼 들리지 않는가.

“은퇴하면 뭐해? 할 게 없는데.”

“할 게 왜 없어? 세상에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뭐가 그리 많은데?”

“하다못해 여행이라도 좀 가라. 맨날 일에만 치여 사니까, 사람이 지금처럼 별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 받고 그러는 거 아냐.”

“여행? 해외 출장이야 자주 가는 편이라.”

“출장 말고 여행! 온전히 즐기는 여행! 에휴! 답답하다, 증말.”

“혼자 여행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장인어른께서 슬쩍 장모님 눈치를 살피신다.

장모님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혼자 가는 거 싫어해서, 뭐? 같이 가달라고?”

“적적한 것보단 낫겠지.”

“내가 미쳤냐! 당신 뭐가 이쁘다고 같이 여행을 가게?”

적당한 밀당까지 아주 보기 좋았다.

하마터면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냈다.

“흐음. 말 나온 김에 진짜 여행이나 한번 다녀와 볼까.”

“지금이 딱이야, 아빠. 기분 전환할 겸 해외여행 싹 다녀오는 게 좋겠어.”

“선화 네 생각도 그렇다면…….”

장인어른 기분을 어떻게 풀어드릴까, 고민했었는데.

장모님과 선화의 여행 권유로 생각보다 쉽게 풀리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 잠시 다녀오는 게 괜찮을 듯하군. 모처럼 우리 민혁이 얼굴도 보고.”

수민혁, 수 씨 집안의 넷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나이는 스무 살로 미국에서 음악 공부 중이며.

딱히 헌터 쪽엔 재능이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장인어른께서 악기를 권하셨는데, 흔쾌히 수락한 걸로 알고 있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음악대학이라는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를 다니고 있었다.

형님과 막내 처남도 훌륭하지만, 장인어른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공부를 하는 큰처남 역시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무엇보다.

적어도 ‘지금’ 은 장인어른께 있어서 엄청난 효자가 아니던가.

“우리 민혁이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구만.”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시길, 자그마치 ‘우리’ 민혁이란다.

보통 막내 처남 빼고는 우리라는 표현을 잘 안 하시는데, 그런 표현에 웃음까지 더하시는 걸 보면, 장인어른께서 얼마나 큰처남을 아끼시는지 느낄 수 있었다.

“민혁이만 한 효자도 없지. 다른 자식들과 달리 여태 속 한번 썩인 적이 없고, 그 흔한 말대꾸도 한 적이 없어. 비록 공부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애비가 음악 공부를 권하니 줄곧 잘 따라와 주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껄껄껄!”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냥 자식 자랑하시는 거다.

“안부 전화는 또 얼마나 자주 하는데? 유학 간 이후로 하루도 안 빼먹고 매일 같이 전화해서 이 애비 건강 걱정에, 식사는 했는지, 요즘 특별한 일은 없는지 묻더라니까?”

큰처남의 칭찬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장인어른의 표정은 밝아져 있었고, 꿍해 있던 기분도 자연스레 나아졌다.

마치, 큰처남이 장인어른의 기분 전환 버튼과 같은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는 무슨 커다란 선물 상자 하나를 보냈더라고? 상자를 열어보니까 글쎄,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가? 나 입으라고 옷하고 신발하고 그런 걸 잔뜩 사가지고는…….”

십여 분 정도 큰처남의 칭찬이 반복됐다.

나는 일단 묵묵히 들었다. 회귀 전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큰처남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큰처남과 자주 만나긴 힘들었던 것 같다.

“……우리 민혁이가 행실도 참 바르다네. 예절이라는 게 몸에 배여 있지.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민혁이가 옷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든다네. 재혁이 녀석은 안 그랬거든.”

“형님은 어땠는데요?”

“사춘기 시작되면서 옷을 참 요란하게도 입고 다녔지. 옷도 패션이고, 꾸며야 한다면서, 쯧쯧. 내 눈에는 그저 날티 나게만 보이더만.”

날티라는 말에 웃음 터질 뻔했다.

웃음을 참고 있던 그때, 장인어른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말 나온 김에 바로 움직이는 게 좋겠지?”

“지, 지금 바로 미국 가시려구요?”

“최 비서에게 전용기 대기시키라고 말할 생각이네.”

“아빠! 나도 갈래! 나도 미국 갈래!”

선화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장모님께서도 내심 끼고 싶었는지 괜히 눈치를 살피시며 볼을 긁적이신다.

“당신도 같이 가는 게 어떤가? 우리 효자 보고 싶지 않나?”

“뭐, 같이 가자니까 가야지. 오해는 하진 마. 당신이랑 여행 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랜만에 민혁이 얼굴 보고 싶어서 가는 거니까.”

장인어른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 향했다.

나는 어떻게 할 거냐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선화도 간다니까 당연히 저도 가긴 가는데…….”

어차피 가족 여행 한번 가려고 했다.

가족 수가 좀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진짜 문제가 있다면 바로 큰처남에게 있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그 말을 몸소 실천한 큰처남이었으니까.

‘여태까진 효자였을지 모르지만, 이맘때쯤부터 장인어른과의 사이가 크게 틀어졌던 것 같은데?’

효자가 불효자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잠시 선화만 밖으로 따로 불러내 말했다.

“큰처남한테 영상 통화 한 번만 해줄래?”

꼭 확인할 게 있어서였다.

큰처남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를 말이다.

장인어른의 말대로 효자일지.

아니면, 불효자로 각성한 이후인지.

“갑자기 웬 영상 통화?”

안타깝게도 내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나갔다.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내가 조심스레 혼자서 영상 통화를 걸어 확인을 했겠지.

“그, 그 뭐냐. 나는 큰처남이랑 그리 안 친하니까. 결혼식 때 보고 못 보기도 했고. 갑자기 불쑥 찾아가면 곤란할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얼굴이라도 보고 미리 말이라도 하려는 거지.”

“가족인데, 뭐 그런 걸로. 우리 민혁이 순둥이라 그냥 그러려니 할걸?”

아닐걸?

묘한 긴장감 속 통화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영상 통화가 연결되며 큰처남이 핸드폰 화면에 나타났다.

“Yo! Sister!”

스웩이 한껏 담긴 목소리.

코와 입술에는 피어싱이, 목과 얼굴에는 해괴한 그림으로 그려진 문신이 가득했으며, 얼핏 보이는 팔에도 레터링이 새겨져 있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지만, 일단 장인어른이 칭찬하시던 효자라는 큰처남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만약, 장인어른께서 달라진 큰처남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집안 전체가 덜컥 뒤집어질 정도의 초대형 난리가 나게 될 터.

“미, 민혁이? 우리 민혁이 맞아……?”

선화 역시 상당히 놀란 듯했다.

아마, 마지막으로 봤을 땐 문신이나 피어싱 같은 건 없었겠지.

“민혁이 너,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거야? 누나가 기억하는 모습하고 너무 다른데…….”

“느슨해진 힙합씬에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누, 누가? 너가?”

“Sk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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