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속에서
원래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하늘과 땅에서 난무하는 불길을 뚫고, 얼음 가시를 이용해 장인어른의 보호막인 용암 방패를 부수는 것.
그러나.
경기장의 맵이 불타는 사막으로 정해진 이상, 계획을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변경해야 할 듯싶었다.
“오아시스? 사막의 오아시스는 죄다 허상 아닌가?”
“진짜 오아시스가 딱 하나 존재할 겁니다. 물 속 깊은 곳에 트랩이 있을 거구요.”
“그 트랩이 폭우를 내리게 한다?”
“그렇습니다. 운 좋게 빨간색 깃발을 찾아 장인어른께 디버프까지 걸 수 있다면 금상첨화구요.”
장인어른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연 ‘물’ 이다.
대량의 물 속성 공격이나, 폭우 수준의 물이라면 장인어른의 힘을 대폭 감소 시키는 게 가능했다.
“진짜 오아시스는 마력 감응도가 높을수록 찾기 쉬우니, 아무래도 마법 계열이신 형님께서 찾는 게 빠를 겁니다.”
“내가 오아시스를 찾으러 간다고 쳐. 그럼, 아버지는 누가 맡아? 매제가 혼자 맡으려고?”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버텨보는 수밖에.”
“지금까지 경기장을 죄다 부숴버린 아버지야. 우리에게 오아시스를 찾을 틈조차 주지 않을 텐데.”
“제가 그 틈을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장인어른의 성격을 이용해야죠. 살짝 도발하면, 넘어오실 것 같은데? 관중석의 장모님께서 지켜보고 있으시기까지 하시니, 제 생각엔 먹힐 것 같습니다.”
“도발이라…….”
잠시 고민하던 수재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같은 수태광의 성격을 역으로 이용해 도발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자칫, 너무 강하게 도발하면 그대로 경기 종료될 수도 있어. 자네도 봤다시피 앞선 경기 모두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끝나버렸으니까. 할 수 있겠어?”
“형님의 결혼을 위해 어떻게든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매제…….”
“그렇게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십쇼. 낯간지럽게.”
“난 정말 여동생을 잘 뒀다고 생각해. 선화가 아니었더라면, 자네와 같은 매제를 둘 수 없었을 테니 말이야. 내가 만약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꼭 엄마, 아빠 다음으로 자네 이름을 먼저 가르쳐주도록 하겠…….”
“아, 아무튼! 이 작전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저희가 오아시스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셔야 한다는 건데…….”
“그건 걱정말게. 내가 그간 틈틈이 연습해둔 기술이 하나 있거든.”
“저희가 연습한 필살기 말구요?”
“아마, 아버지께서도 깜짝 속을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이런 기술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계시니까.”
열기가 가득한 사막.
불타는 사막이라는 이름처럼 실제로 불길이 치솟지는 않았지만, 그만큼이나 뜨거운 장소였다.
‘오아시스만 찾는다면, 승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저 멀리 하늘에서 화염을 머금은 운석들이 떨어지고, 땅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인어른께서 움직였다는 뜻이었으며.
그것은 곧 경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
각 팀은 맵 안에서 서로 다른 지점에서 경기를 시작하게 된다.
서바이벌 목걸이를 빼앗아 승리를 하려면, 일단 적을 찾는 게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수태광은 여유로웠다.
수재혁과 준우에겐 사막의 더위가 체력 저하의 원인이 되겠지만, 수태광에게는 최적의 온도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기장 내에 운석과 용암을 번갈아 쏟아내다 보면, 굳이 자신이 직접 찾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었다.
‘안 그래도 뜨거운 사막의 환경에 운석과 용암까지 겹쳤으니, 가만히 숨어 있는 데도 한계가 있을 테지.’
꽤 오랜 시간동안 수재혁과 준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태광은 자신의 마력이 어느 정도 소모될 때까지 숨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력으로 형상화된 칼날 하나가 날아들기 전까지만 해도, 수태광은 그렇게만 판단했다.
쉬이익 -
날아든 칼날은 수태광의 전신을 보호하고 있던 용암 방패에 가로막혀 소멸했고, 피어오른 연기가 점차 사라지자 눈앞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나마 용암의 범위에 닿지 않은 모래 언덕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남과 사위였다.
“언젠가 한 번쯤 장인어른과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운이 좋게 이번에 기회가 찾아왔군요.”
준우가 문득 말했다.
투지가 가득한 눈빛을 하고서.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한 수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껄껄! 가르칠 시간이 있을지나 모르겠군.”
금방 끝내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운석과 용암을 최대로 활용하면 이곳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준우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것이기에.
“그럼, ‘전력’ 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장인어른을 버텨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일부러 ‘전력’ 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준우였다.
그가 계획한 적당한 도발이었다.
“자네의 전력이 나를 버텨낼 수 있다라?”
“저도 꽤 많이 성장했습니다, 장인어른.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허어! 그으래? 해서 전력을 다하면 날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는 건가?”
수태광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말은 곧 준우가 전력을 다할 시 자신과 얼추 대등하다는 뜻이 아닌가.
스윽 -
수태광이 살며시 손을 움직이자, 하늘과 땅 위에서 요동치던 뜨거운 그것들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전 서방을 상대하는데, 나까지 전력을 다할 수는 없지.’
급 차이라는 게 있다.
게다가, 관중석의 황장미를 포함해 생방송을 통해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엑시스의 수태광이니까.’
같은 팀으로 참여한 경호실 막내가 검을 움켜쥐며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수태광이 손을 휘휘 저으며 가만히 있을 것을 권했다.
“내 선에서 적당히 처리하겠네. 사위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좀 볼 겸.”
수재혁도 준우의 뒤에 서서 미동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준우 혼자 수태광을 상대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전 서방, 난 이 한 손으로 자넬 상대하도록 하겠네.”
준우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자신의 도발이 먹혔으며,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 덕분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회귀 전과 회귀 후를 합쳐서 장인어른을 겪은 세월이 얼만데.’
준우가 지면을 박찼다.
그가 쥔 검에 푸른빛의 마력이 감돌았고.
화르르륵!
수태광의 손에서는 불기둥이 만들어졌다.
운석이나 용암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위력이나, 준우를 상대하는 데는 충분한 기술이었다.
쉬이이익!
정면 돌파를 택한 준우가 불기둥을 가르며 검을 휘둘렀다.
마력을 머금은 검이 불기둥을 반으로 갈랐고, 갈라진 불길은 양 측면으로 빗겨져 나갔다.
‘호오?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력 방출로 불기둥을 반으로 갈라?’
수태광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로서 준우가 적이기는 하나,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사위였다.
사위의 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출중하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럼, 좀 더 힘을 써볼까?’
이번엔 불기둥이 좀 더 굵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불기둥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던 준우였는데, 지금은 제자리에 멈춰서 불기둥을 막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전 서방. 힘을 좀 더 써보게.”
“크윽……!”
준우는 수련자 칭호의 효과를 사용해 능력치를 끌어올렸다.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온전히 모든 힘을 사용해야만, 수태광을 속이는 것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껄껄! 이것도 버텨낸다는 건가?”
준우는 불기둥을 또 갈라냈다.
그리고는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르게 수태광을 향해 나아갔다.
“전 서방. 자네, 날 아주 기쁘게하는구만 그래!”
수태광은 잠시나마 이게 경기라는 것을 잊었다.
A급에 근접해야 버텨내며 나아갈 수 있는 불기둥임에도, 준우가 그것을 해내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였다.
‘엑시스의 미래가 참으로 밝도다.’
하지만, 수태광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준우가 이것보다 훨씬 더 강한 헌터이기를 바랐다.
“이번엔 버티기 꽤 힘들게야. 위태롭다 싶으면, 곧장 워프를 사용해 도망치도록 하게.”
수태광이 경고했다.
그 순간, 불기둥이 괴물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거대한 화마의 모습으로 변형됐다.
‘젠장! 이건 얼마 버티지 못해.’
준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불기둥이든, 화마든, 자신이 피한대도 끝까지 따라올 지독한 기술들이다.
피할 수 없으니 일단 부딪치고 있기는 한데, 이제 곧 한계가 올 터.
‘형님께서 빨리 오아시스를 찾으셔야 할 텐데……!’
준우가 흘낏 뒤를 살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수재혁과 눈이 마주쳤다.
수재혁이 살며시 미소를 띤다.
그것은 곧, 오아시스에 근접했다는 뜻이었다.
‘조, 좀만 버텨보자. 폭우가 쏟아질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는 거야!’
준우가 진짜로 전력을 다했기 때문일까.
수태광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준우의 뒤에 서 있는 수재혁이 본체가 아닌, 얼음으로 이루어진 분신이라는 것을.
그간 연습해온 새로운 기술이라고 했던가.
수재혁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인지라, 수태광을 속이기엔 충분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형님. 너무 오래 걸리면 저 죽습니다!’
수재혁이 분신을 통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동안.
그의 본체는 어딘가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낸 뒤, 트랩을 수색 중에 있었다.
***
비록 작은 화마였지만, 준우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가 다소 벅찬 녀석이었다.
화마는 점점 더 준우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려 불을 뿜어댔고, 결국 밀리는 쪽은 준우일 수밖에 없었다.
수태광이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더라도, 관중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이미 부자 대전만으로도 충분히 화제성을 입증했을뿐더러, 사위와 일대일로 전투를 이어가는 장면 역시 긴장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준우가 버텨낼 것인가.
아니면, 화마에게 삼켜질 것인가.
현장의 관중들과 TV를 통해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어차피 우승이야 수태광이 하겠지만, 그가 힘을 아낀 덕분에 묘하게 흥미진진한 전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현장에서 바라보고 있던 선화는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 아빠 너무 한 거 아니야?”
“뭐가 너무해?”
“아무리 경기라도 그렇지, 하나뿐인 사위한테 저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하다는 거지! 이미 민동식인가, 뭔가, 그 아저씨한테 보복은 했으니, 우승은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저러다 사람 잡겠어!”
“얘가, 얘가, 무슨 소리를.”
선화의 옆에 있던 황장미가 헛웃음을 삼켰다.
따지고 보면, 맨 처음 수태광에게 덤볐던 건 수재혁과 준우이지 않았던가.
“이미 네 아빠가 봐줄 만큼 봐주고 있는데, 이게 너무한 거면 가만히 숨만 쉬고 있으라는 소리니?”
“그런 건 아니지만, 적당히 할 수도 있다는 거지. 이러다가 우리 오빠 다치면 어떡해? 어머! 땀 뻘뻘 흘리고 있는 거 봐. 많이 힘든가 본데.”
“전 서방은 아까부터 땀 미친듯이 흘리고 있었어. 맵 내부 자체가 더워서 그런 거야.”
“엄마.”
“왜?”
“은근히 아빠 편드는 것 같다?”
“내, 내가 언제! 그냥 네가 너무 유난이라 얄미워서 그렇지. 위험하면 전 서방이 어련히 알아서 워프 써서 포기할 텐데, 고작 저 정도로 오두방정 떠니까…….”
“요즘 아빠랑 자주 만나지?”
“비즈니스야, 비즈니스. 오해하지 마.”
“그럼, 사내연애?”
“수선화!”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황장미가 버럭 소리를 친 바로 그때였다.
정면의 커다란 모니터에서도 갑작스레 굉음이 들려왔다.
“뭐, 뭐야?”
깜짝 놀란 황장미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선화 역시 요란한 그 소리가 착각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콰르르릉!
하지만, 굉음은 또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모니터 속 현장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내리쳤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마도 조금 전 연달아 울린 굉음은 천둥소리였을 터.
“갑자기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 그것도 사막에서?”
황장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느새 사막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설마, 비가 내리는 건 아니겠지?’
수태광이 살짝 움찔했다.
예감이 좋지 않아서다.
‘아무래도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 되겠어.’
사위와 놀아주는 건 그만해야 할 듯싶었다.
준우의 성장은 오늘 자신을 버텨낸 실력으로 충분히 입증했다.
발전한 사위를 보며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건 여기까지였다.
‘일단, 재혁이 놈부터.’
수재혁이 광역기를 사용해지면 조금 까다로워진다.
때문에, 수태광은 수재혁부터 아웃시킬 생각이었다.
화마의 부피를 키웠다.
더욱 거대해진 화마가 준우를 붙잡고 있는 동안, 수태광은 여태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고만 있던 수재혁을 향해 새빨간 시선을 움직였다.
스윽 - !
하늘에선 또 다시 운석이 떨어졌고.
땅에서는 용암이 치솟았다.
화르르륵!
또한.
화마보다 더 거대한 화염의 창이 수재혁을 향해 쇄도했다.
‘응? 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수재혁은 방어를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워프를 써서 도망이라도 쳐야 하는데, 전처럼 제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뒤늦게 꺼림칙한 기분을 느낀 수태광.
화염의 창이 수재혁을 관통하고 난 다음에야, 그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재혁이 이 녀석, 언제 이런 걸 익혔지?’
창에 관통당한 수재혁은 얼음 파편이 되어 부서졌다.
주변에 튄 얼음 파편은 빠르게 녹아 사라졌고, 수태광은 그것이 얼음으로 만들어낸 분신이자, 자신을 이곳에 잡아두기 위한 미끼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분신이라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어. 감쪽같군. 역시 장남은 장남, 제법이란 말이야.’
분신 능력에 대한 감탄도 잠시.
수태광은 문득 의아함에 멈칫거렸다.
‘가만. 한데, 이게 분신이라면, 본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다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자연스레 시선은 하늘의 먹구름으로 향했다.
‘껄껄! 이 요망한 녀석들!’
수재혁의 본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그것에 대한 대답은 하늘이 대신했다.
쏴아아아 -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 비.
능력치 하락을 알리는 홀로그램이 수태광의 눈앞에 떠올랐다.
운석의 개수가 점차 줄더니, 이내 소환되는 개수 역시 줄어갔다. 땅에서 요동치던 용암들도 활력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
파앗 - !
화마의 힘이 약해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자, 준우는 구름의 특성인 뇌운을 사용한 후 저만치 떨어진 수태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비를 내리게 하는 트랩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나를 도발한 건 재혁이 녀석이 트랩을 찾는 동안 내 시선을 잡아끌기 위함이었나?”
자신의 실수로 준우에게 기회를 주긴 했지만.
이대로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수태광이 남아 있는 힘을 끌어올려 허공에 불꽃을 만들어냈다.
준우가 근접해올 때까지 기다렸던 수태광은 이때다 싶어 남은 마력을 한 손에 집중시켰다.
원거리라면 모를까.
근거리에선 꽤나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는 화력이 수태광의 손에 일렁거렸다.
“이 정도 비를 쏟아내는 것만으로는 날 무력화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네, 전 서방.”
수태광이 눈앞의 준우를 향해 화력을 머금은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준우는 생각했다.
‘피할까, 아님, 받아칠까.’
폭우로 인해 능력치가 하락한 수태광이었다.
해서, 받아칠 만도 한 것 같은데, 어째 주먹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이 범상치가 않았다.
콰르르륵!
그때였다.
준우와 수태광 사이에 두꺼운 얼음벽 하나가 세워졌다.
콰지지직!
수태광의 준우가 아닌,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얼음벽을 내리쳤다.
일격에 산산조각이 난 얼음 파편들은 그대로 녹아내려 바닥을 적셨다.
“재혁이 네 녀석, 제법 머리를 굴렸더구나.”
“머리는 제가 아니라 매제가 썼죠. 그리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희가 무슨 수로 아버지를 이기겠습니까?”
“그렇지. 훌륭한 헌터는 제 분수를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지.”
어느새 준우의 옆에 서 있는 수재혁이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오아시스를 찾아 트랩을 작동시키고, 최대한 빨리 온다고 온 건데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형님! 저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요! 아니, 진짜 죽을 수도 있었어요!”
“오아시스 찾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더라고.”
수재혁이 준우를 가로막으며 앞에 섰다.
그리고는 얼음처럼 차가운 파란빛으로 물든 눈동자를 번뜩이며 말했다.
“아무튼. 여태 버티느라 고생 많았어, 매제. 이제 잠깐 뒤에 가서 쉬고 있어.”
“호, 혼자서 장인어른 상대하시려구요?”
“비까지 오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쓱 쓸어넘기는 수재혁.
그가 주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죄다 얼려 날카로운 비수의 형태로 만들어냈다.
“2차전 시작하셔야죠, 아버지.”
“오냐. 들어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