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목한 수 가(家)네 (1)
선화네 집 현관 안쪽.
커다란 사과 박스 몇 개가 쌓여 있다.
내용물은 선화가 사용하던 화장품들이나 옷가지들이었는데, 그것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일본 브랜드라는 것이었다.
“근데, 저것들은 다 뭐야? 누구 주려고?”
기자회견 생방송을 기다리며 사과를 먹고 있던 황장미가 문득 물었다.
“주긴 누굴 줘. 싹 다 갖다 버릴 거야.”
“얘가, 얘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죄다 일본 제품들이야.”
“당장 내다 버려. 아니, 태워 버려!”
황장미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지난번 각성의 늪 레이드에서 있었던 바로 그 사건이 떠올라서였다.
감히 자신의 귀여운 막내아들을 인질로 삼다니.
카에데의 심각한 부상으로 여론이 신켄 쪽으로 기울긴 했으나,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준우의 편에 섰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증거가 없기는 했으나,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 준우의 말이 진실이길 바라며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내가 진짜 아직도 그날 일만 떠올리면 치가 떨려.”
선화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레이드 공략 당시, 카에데를 질질 끌며 걸어 나오던 준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물론, 남편이 다치진 않았지만,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상당히 끔찍했었다.
“미친놈들. 감히 내 동생을 인질로 삼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지. 감히 내 아들이 누군지 알고!”
모녀는 그날의 일을 다시금 언급하며 신켄과 신켄을 옹호하는 일본을 욕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한일 감정,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자신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 행동을 감싸는 일본이 너무나도 싫었을 뿐이다.
증거가 없는 건 엑시스 측도 마찬가지긴 했다.
그러나 가족인 이들이 준우와 동혁이의 증언을 믿지 않을 리는 없지 않은가.
가족들의 응원.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의 응원은 드디어 오늘 빛을 발했다.
- 내 오늘 이 자리에서! 엑시스와 이 나라의 명예를 더럽힌 신켄을 엄히 처벌하겠소이다!
기자회견에서 묵직하게 소리친 수태광의 말 한마디에 신켄과 일본을 씹고 있던 모녀가 TV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빠도 화 많이 났나 보네. 그래도 생중계인데, 저렇게 언성을 높이실 정도면.”
“화도 나긴 났겠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닐걸?”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네 아빠 카메라 엄청 좋아하잖아. 아마 아까 협회장님한테 카메라 집중되는 게 싫어서, 저렇게 퍼포먼스까지 하는 거라는 거지.”
“에에? 뭔 소리야. 아빠 무대 울렁증 있는데.”
“풉. 대단하다, 수태광. 자식들도 속이고.”
“무대 울렁증 뻥이야?”
“당연히 뻥이지. 몰랐니? 네 아빠 엄청 관종인 거. 지금도 봐라. 카메라 자기한테 집중되니까 실실 웃고 있잖아?”
기자회견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흥분한 기자들이 쏟아 내는 질문들 때문이었다.
“증거가 있는 겁니까?”
목소리와 질문의 방식은 차이가 있었으나, 결국 기자들이 궁극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증거에 대한 유무였다.
“증거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협회장이 쥐고 있던 명검 구름은 수태광의 파격적인 발언에 묻혀 버린 상황.
수태광은 기자들과 카메라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가 전사의 수정구를 꺼냈다.
동시에 카메라가 수정구를 클로즈업했다.
“저, 저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생방송 중이라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황장미가 대신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수정구 안에서 동혁이에게 칼을 들이밀고 있는 카에데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엔 준우가 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 순간, 카에데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멍청하긴. 한국인 따위가 감히 검술 명가인 대 신켄의 장남에게 칼을 들이밀어?
기자회견장 내부, 기자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비하에 열이 잔뜩 오른 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기자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준우가 순식간에 카에데의 품에서 동혁이를 낚아챘고,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덕분이었다.
단순한 동작 하나만으로 카에데와의 실력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
- 이, 이런, 망할 자식!
먼저 선공을 가한 것은 카에데였다.
그리고 그의 검은 준우의 어깨를 살짝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꺄, 꺄악! 저 개새끼가아아아! 우리 오빠를!”
순간, 선화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준우는 자신이 욕 한마디도 못 하는 사람인 줄 아는데…….
스윽-
어깨의 핏물을 털어 낸 준우가 검을 집어넣었다.
카에데의 공격이 성공한 게 아니라, 일부러 받아 준 것이었다.
이로써 지금부터 준우의 공격은 헌터 특별법에 의해 모두 정당방위에 해당되는 셈이었다.
퍼억!
준우의 주먹 한 방에.
카에데가 제단 끝 벽에 처박혔다.
“오오오! 역시!”
“그렇지! 한 방 더 먹여 버리라고!”
기자회견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마치, UFC 경기장의 응원석이라도 되는냥 다들 준우를 응원하는 모습들이었다.
“이 명백한 증거를 세계 헌터 연맹에 제출하겠습니다. 부디 연맹에서는 신켄 측의 파렴치한 짓에 대한 처벌을 엄히 다뤄 주시길 바랍니다.”
수태광은 영상을 잠시 중단한 뒤.
카메라를 향해 당부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명백한 증거가 나왔으니, 이제 신켄 측에서도 반박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기자회견은 생방송이었으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전파가 되기도 했다.
“회장님! 혹시 신켄 길드 마스터에게 하고 싶은 말씀 없으십니까?”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기자들 중.
한 기자가 대뜸 손을 치켜들며 물었다.
“있습니다.”
“이쪽 카메라 보시고, 한 말씀 하시죠.”
수태광이 해당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리고는 여느 때보다 붉어진 두 눈동자로 카메라를 집어삼킬 듯 기세를 끌어올렸다.
“다이스케, 자네. 우리나라 국민들과 엑시스에게 머리 처박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야.”
이어진 수태광의 한마디.
“아니면, 자네들이 좋아하는 할복으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챙기든가.”
그 순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기자회견장에서 쏟아진 박수가 아니었다.
박수 소리가 들려온 것은 선화의 집 바깥쪽, 현재 함께 TV 방송을 보고 있던 이웃들의 집이었다.
다들 수태광의 한마디에 속이 시원하게 뻥 뚫렸던 모양.
이로써 신켄의 만행은 세상에 모조리 까발려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장미도 어느샌가 수태광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 하나는 역시 깔끔하게 잘하네. 그나저나, 내가 전부터 화면발 안 받는다고 검은색 넥타이 하지 말라니까, 굳이 왜 또 저걸 하고 온 거야?’
하여튼, 말은 지지리게 안 들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황장미였으나 입가의 미소만은 여전했다.
* * *
기자회견은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레이드에서 내가 보였던 활약상 때문인지, 내게는 ‘협회의 보물’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며, 나로 인해 길드와 협회를 비교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변화가 생겼단다.
뭐, 칭찬이니까 기분 좋게 들었다.
무엇보다 선화가 나를 ‘우리 보물, 우리 보물!’ 하며 토닥여 주는 게 참 뿌듯하기도 했으니까.
협회장님께서 명검 구름을 가져오신 건, 협회 소속 헌터로서 최초로 각성의 늪 공략에 공헌한 내게 포상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시던데.
‘장인어른하고 처남한테 묻혀 버리는 바람에…….’
나름 기자회견장에서 파격적으로 포상을 하시려던 것 같았는데, 카메라가 좀처럼 협회장님을 비추지 않자 다음으로 미루시려는 것 같았다.
아무튼.
기자회견은 처남이 B+ 등급으로 각성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됐다.
< 헌터 명가, 수 가(家)네! >
처남으로 인해 엑시스가 조만간 세계 길드 랭킹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사들이 퍼졌고, 그와 동시에 한편에선 신켄 길드 다이스케의 사임을 요구했다.
< “할복하라!” 수태광의 일침에 어떤 반응을? >
< 신켄 다이스케, 침묵으로 일관하다. >
세계 여론은 물론.
이제는 일본 여론마저도 신켄에 돌아섰다.
기자회견에서 보여 준 수정구 속 영상은 일본인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사람으로서 도의적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각성 전의 처남이 인질이었고, 9살의 어린아이였다.
그런 어린아이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으니, 그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 어린아이의 목에 칼을 댄 신켄.
그들을 과연 ‘정의의 검’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세계적인 잡지사인 헌트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어느새 ‘비열의 검’이 되어 버린 신켄은 이번 일로 몰락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여론이었다.
‘잘하면, 칸나가 신켄을 집어삼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국내에서는 신켄을 옹호하고, 나아가, 이 나라를 욕했던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로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우스운 일은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미안함과 신켄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뒤섞여 ‘다이스케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는 거다.
정작 다이스케는 여전히 반응이 없는 상황.
하지만, 조만간 세계 헌터 연맹과 일본 정부에서 조치를 할 것이며, 세계를 상대로 거짓을 고했던 다이스케였던 만큼 처벌 수위가 절대 낮진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그렇게 신켄의 몰락을 기다리던 어느 날.
장인어른께선 가족들을 급히 소집하셨다.
“세계 각국의 길드에서 내게 축하의 말을 전해오더군. 동혁이의 고등급 각성에 전 서방이 우리 엑시스 가의 일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들 꽤나 부러워하는 눈치들이야.”
장인어른께선 얼굴이 매우 좋아 보이셨다.
하긴, 얄미운 신켄마저 골로 보내셨으니 좋지 않을 리가.
“너희들도 느꼈겠지만 난 요즘 기분이 매우 좋아. 모든 게 바라는 대로 흘러가니, 지금이 내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라고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야.”
표현에 인색한 장인어른께서 가족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잔뜩 들뜨시긴 한 것 같았다.
“해서, 조만간 우리 가족들끼리 소박하게 파티를 즐겼으면 하는데.”
“오오오! 파티!”
처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인어른께선 여러 가지 이유로 기분이 몹시 좋으시겠지만, 사실상 그 진짜 이유는 바로 처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B+ 등급으로 각성을 했다는 건 S급의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니까.’
비록 레벨의 격차라는 게 있어서 형님을 따라잡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엑시스 전력이 한층 강력해질 거라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다들 이번 주 주말엔 시간을 좀 비워 줬으면 좋겠구나. 동혁이의 각성을 기념하면서,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장인어른께서 말을 이으려는 찰나.
처남이 손을 번쩍 들며 말을 잘랐다.
“그럼 엄마도 오는 거야?”
“뭣이?”
순간, 장인어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다.
그러나 처남은 꿋꿋이 말을 이어 갔다.
“온 가족이 다 모인다며? 그럼, 작은형아랑, 막내형아랑, 엄마도 와야지!”
“이, 이놈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오 남매 중 나머지 둘은 직업으로 인한 업무로 해외에 나가 있는 관계로 이번 파티엔 참여할 수가 없을 거다.
장모님도 역시 아무래도 장인어른과의 사이가 서먹해서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처남도 두 분 사이를 알고 있기에 이해를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다른 부분에서 섭섭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큰형아 각성했을 때는 엄마가 축하한다고 선물도 줬다는데. 직접 케이크도 만들어 주고…….”
“그,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느냐!”
“나도 엄마한테 선물 받고 싶단 말이야! 엄마가 만든 케이크도 먹고 싶고! 그거 엄청 맛있다고! 아빠 케이크 만들 줄 알아?”
“내가 그런 걸 어떻게 만들어, 이놈아!”
“그럼 엄마도 불러 줘!”
장인어른께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은 어지간히 말하면 알아듣는 처남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어리광이 심했다.
아마 그만큼 각성의 순간엔 장모님의 칭찬을 받고 싶었던 거겠지.
“엄마는 나중에 따로 만나서 축하를 받으면 되는 거고, 이번엔 우리끼리…….”
“그럼 첨부터 온 가족이라는 말을 하지 말든가. 난 또 가족들 다 모인 곳에 엄마도 오는 건 줄 알고, 엄청 기대했는데.”
“어허! 내 앞에서 엄마 얘기 꺼내지 말라고, 이 애비가 전부터 누누이 말했거늘!”
흐음.
정말로 장인어른께서 장모님께 악감정이 있는 걸까.
‘그랬다면, 패션쇼에 모습을 숨기고 오시진 않았을 텐데?’
그때였다.
선화가 불쑥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여태 엄마 얘기 쭉 해 놓고, 괜히 이제 와서 하지 말래!”
“뭐, 이 녀석아?”
“아빠도 동혁이랑 똑같아. 그냥 지금은 적당히 둘러대고 그때 가서 엄마 바빠서 못 왔다고 그러면 될 것을, 꼭 가족들 다 있는 데서 애랑 티격태격해야겠어?”
“내가 언제 동혁이랑 티격태격했다고?”
“방금 계속 그랬거든? 좋게 좋게 얘기하면 좀 좋아?”
선화의 잔소리가 쏟아지자, 장인어른께서 주춤하신다.
잔소리할 때 보면 꼭 장모님과 똑 닮은 느낌의 선화였다.
“크흠! 동혁이 녀석이 하도 어리광을 부리니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동혁아. 엄마는 얼마 전에 다시 영국으로 나간 상태라, 파티에 초대를 해도 올 수가 없단다. 그러니, 네가 이번엔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어머니가 다시 영국으로 가시다니요?”
이번엔 형님께서 끼어드셨다.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게 있으신 모양.
“레이드 공략 후에 복귀하고 나서 저랑 커피 마셨는데? 아버지께도 제가 살짝 언질 드렸잖아요.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당분간 한국에 있으실 것 같다고.”
“뭐어어어?”
순간, 처남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뭔가 아주 기똥찬 생각을 떠올린 표정이다.
“설마, 지금 아빠가 나한테 거짓말 친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제게 항상 그러셨죠. 남자가 거짓말하는 것은 실로 비겁한 짓이라고.”
선화와 형님께서 처남의 편에 섰다.
상황을 보아하니, 두 사람도 장모님이 이번 파티에 참석하길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큰형아가 엄마 한국에 있을 거라고 말해 줬다매! 그럼 그게 거짓말이지!”
“다 나가. 썩 나가!”
“아빠가 예전에 분명히 나한테 그랬다? 둘 중에 거짓말하는 사람이 상대방 소원 들어주기로!”
장인어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소원 들어준다는 그 말이 진짜인 것 같다.
“나 지금 소원 쓸래! 바로 써도 되지?”
“써, 동혁아. 아빠가 항상 그랬잖아?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분명히 네 소원 이뤄 주실 거야.”
“아버지께선 한번 뱉은 말은 기어코 지키시는 분이시지.”
“이, 이것들이……!”
처남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로써 승부는 낫다고 볼 수 있다.
“내 소원은! 아빠가 엄마한테 직접 가서 파티에 오라고 말하는 거야!”
“…….”
만약, 처남의 소원이 성공한다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회귀 전보다 더 이른 시점에 재결합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네 엄마가 내 말을 듣기나 할 것 같으냐? 눈과 귀를 싹 다 막고 도통 대화를 하려고 하질 않는데, 어떻게 내가 직접 데리고 와?”
선화와 형님께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암암리에 신호를 주고받은 것 같은데, 이럴 때 보면 참 죽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 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만나서 화해를 하시길 바라는 거겠지.’
그 마음이 단합을 이뤄 낸 거다.
물론,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내 전화도 안 받을걸?”
“해 보셨습니까?”
형님께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어, 선화의 따가운 시선이 장인어른의 얼굴에 꽂혔다.
“아, 안 해 봤지.”
“이번 기회에 한번 해 봐. 엄마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잖아?”
“거참! 안 받을 거래도!”
“해 보고 말해. 남자가 무슨 그렇게 용기가 없어.”
“아니, 해도 안 받을 전화를 왜 굳이 해 보라는 것이냐, 대체!”
“아빠! 일단 해 보라고!”
지켜보는 게 답답했는지, 처남이 후다닥 앞으로 튀어나가 장인어른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는 냅다 장인어른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둔다.
“해봐, 아빠. 나도 아빠가 엄마랑 화해했으면 좋겠어.”
“제발…… 이러지들 말거라…….”
처남이 장인어른의 손을 억지로 핸드폰 쪽으로 끌고 갔다.
장모님의 번호를 화면에 띄웠고, 통화 버튼 위에 장인어른의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위태롭게 서성거렸다.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
남매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나도 모르게 장인어른의 손가락을 숨을 죽인 채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장인어른께서 순순히 우리 뜻대로 움직여 주실 리는 없었다.
파직!
핸드폰 액정이 부서졌다.
장인어른이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아이쿠, 이런. 너무 세게 눌렀나? 껄껄!”
돈이 많으시니까 저런 것도 할 수 있으신 거다.
자존심을 굽히고 장모님께 먼저 연락을 하는 것보다, 핸드폰 하나 값이 더 싸다고 생각하시는 걸 테니까.
“너희들, 엄마가 집 나갈 때 했던 말 기억나느냐?”
장인어른께서 남매들의 화를 달래시려는 듯 푸근한 인상으로 말을 이어 가신다.
“다시는 수 씨 성을 가진 녀석들하고 말도 섞고 싶지 않다고. 나로 인해 너희들까지 엄마와의 거리가 멀어졌지.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희들과는 관계가 다시 완화됐어. 한데, 이제 와서 나한테 다시 너희들 엄마와 연락을 해라?”
“그게 뭐 어때서?”
처남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다시 연락을 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만약 네 엄마가 또다시 수 씨 성을 가진 녀석들과 말도 섞기 싫다고 하면? 그땐 너희들도 꽤 곤란해질 텐데?”
“……그건 싫어.”
“그것 봐라. 나도 너희들 마음을 생각해서 한 번쯤 연락을 시도해 보려고는 했었지만, 혹여나 너희들에게 피해가 갈까 여태 미루고, 또 미뤘던 거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 억지 같다.
어떻게든 처남의 소원을 파하려는.
“하지만!”
응?
왜 갑자기 날 쳐다보시지?
“수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전화는 물론, 직접 만나서 파티 참여를 권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지.”
아…….
그러고 보니, 나만 여기서 성이 다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