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협회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준우가 말했던 대로 각성의 늪 제단에서 있었던 일의 증거를 가지고서.
“수동혁 군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현장에서의 증거입니다. 최대한 디테일하게 복원을 하느라 시간이 며칠 걸렸지만, 증거로서의 효력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건형은 자신이 만들어 낸 증거를 수태광에게 건넸다.
나가 전사의 수정구.
보통은 협회에서 사건을 수사할 때 사용하는 녹화 목적의 아이템이었으나, 간혹 이건형이 기억을 복원하여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걸 직접 만들어 냈다고?’
수태광이 이건형의 목에 걸린 공무원증을 응시했다.
뛰어난 능력임에도 불구, 엑시스의 스카우트 명단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름이었다.
‘생소한 친구인데…….’
간혹 기이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몇 있었지만, 기억을 토대로 영상을 복원해 내는 능력은 난생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협회에 이 정도의 실력자가 있었다?’
기억을 영상으로 복원하는 건 이건형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전에도 수사 목적으로 종종 하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기억을 복원해야 하는 대상이 다름 아닌 동혁이었다.
각성의 늪에서 B+급으로 각성을 하게 된 동혁이었다.
현재 준우보다 등급은 낮지만, 이건형의 능력은 대상과 등급 차이가 많이 날수록 효과가 적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 B+급인 동혁이의 기억을 온전히 복원해 낼 수 있었던 건 준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께서 저 이건형이라는 친구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은데.’
최 비서가 수태광을 힐끗 살폈다.
이건형을 바라보는 수태광의 눈빛이 살짝 빛나고 있다.
엑시스로 데려오고 싶다는 뜻을 너무 노골적으로 그 뜻을 내비치진 않았으나, 최 비서는 그 의중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협회에 이런 훌륭한 헌터가 있다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회장님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한 후배일 뿐입니다.”
“껄껄! 겸손하기까지!”
“저 혼자만의 능력으론 해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모두 전준우 대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우리 사위?”
“예, 그렇습니다.”
“우리 사위가 어떤 도움을 주었기에……?”
준우의 이름이 나오니 자연스레 수태광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의 입에서 가족의 칭찬이 나오는데, 어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전준우 대원의 버프 스킬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제가 이번 일의 증거를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했을 겁니다.”
얼마 전.
이건형은 준우의 가족 구성원이 됐다.
아직 등급 격차가 심하여 준우의 기억은 물론, 동혁이의 기억마저도 복원하기가 버거웠을 테지만, 준우의 가장 특성으로 인한 능력 상승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능력에 관한 것을 모두 오픈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건형은 대략적으로 수태광이 이해할 수 있게끔만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헌터로서의 경력이 어마어마한 수태광이었다.
그에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재주가 있었다.
“허어! 전 서방이 버프 관련 능력에도 두각을 나타낼 줄이야.”
“협회의 보물이나 다름없지요.”
협회의 보물이 아니라.
엑시스의 보물이자, 우리 가족의 보물이다.
순간, 수태광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애써 그 말을 삼켰다. 대신 속으로 으쓱거리며 뿌듯해할 뿐이었다.
“이건형이라는 친구, 괜찮은 인재로 보입니다만.”
이건형이 돌아가자.
최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
“괜찮고말고. 능력 자체도 희귀할뿐더러, 전 서방의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이만한 능력자는 찾기 힘들지 않은가?”
“스카우트 제안해 보도록 할까요?”
잠시 고민하던 수태광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형이 준우의 이름을 언급할 때, 그의 눈빛에서 준우에 대한 신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맹목적인 믿음 같은 느낌이었지.’
탐나는 인재였으나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전 서방이 엑시스로 오게 되면, 그때 자연히 알아서 오게 될 것 같으이.”
이건형이 준우를 따라 엑시스로 올 거라는 뜻.
최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그보다는 당장 해결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겠지.”
“바로 기자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저희 측에 각성의 늪 사건 당시 증거가 있다고…….”
“아니. 증거는 나중에.”
“예?”
수태광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신켄이 피해자 코스프레로 언론 플레이를 하며 엑시스와 이 나라를 욕보였는데, 이렇게 쉽게 일을 마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다면, 엑시스를 너무 물로 본 게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나가 전사의 수정구.
그 안에서 동혁이가 인질로 잡혀 있는 모습을 보자, 수태광의 두 눈이 분노로 가득 찼다.
귀염둥이 막내아들을 인질로 붙잡고, 잘나가는 사위의 앞길을 막으려는 파렴치한 신켄…….
“……이참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이미 엑시스의 명예가 대폭 하락한 상황.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그 배 이상으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일을 좀 더 키워 보실 생각이시군요.”
“그래야 얻는 게 더 많지 않겠나?”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계획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 신켄 마스터의 그 불같은 성격을 이용하면 되겠지. 그 인간, 아마 나보다 더 성격이 지랄맞다지?”
수태광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사위가 가져다준 기회,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 * *
신켄 길드의 마스터인 다이스케가 집무실 내 태블릿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비소를 머금었다.
조금 전.
한국 언론에서 전해져 온 기사들이 비릿한 웃음의 이유였다.
< 수태광, 잘못이 있다면 명예를 걸고 책임지겠다 >
< 신켄 측은 국제 사회의 질서마저 더럽힌 것 >
여태 잠자코 있던 엑시스가 드디어 언론에 입을 뗐다.
하지만, 그마저도 형식적인 대답들일 뿐 이렇다 할 증거 같은 건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백날 떠들어 봐야 소용없지. 증거가 없을 테니까.”
각성의 늪 중반부에서부턴 그 어떤 마나 장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명백할 증거가 될 만한 영상 기록 따위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목소리 큰 놈이 이기게 되어 있어.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마스터.”
다이스케의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뒤늦게 엑시스에서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제 와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미 국제 여론은 신켄 측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눈에 보아도 미친 듯이 맞은 쪽은 카에데 쪽이었으니, 당연히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내었을 때 효과가 있는 쪽도 신켄 측이었다.
“한심한 놈.”
다이스케의 시선이 집무실 구석을 향했다.
그곳에는 얼마 전에 퇴원한 카에데가 몸 곳곳에 붕대를 휘감은 채 서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동생을 위해 힘 좀 보태라고 각성의 늪에 보냈거늘, 멍청한 짓이나 저지르고 오다니.”
“……잘못했습니다.”
아들을 볼 때마다 나무라는 것도 반복 중인 상황이며.
당사자인 아들 역시 잘못했다는 말만 계속해서 뱉을 뿐이었다.
“정말 네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느냐?”
“제 실수로 시, 신켄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이…….”
“틀렸다.”
“……?”
“신켄의 명예가 실추되다니? 마치 우리가 잘못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구나. 국제 사회의 여론이 엑시스가 가해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넌 어찌 우리 신켄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신켄의 명예는 실추되지 않았어. 명예가 실추된 건 우리가 아니라 엑시스라고.”
다이스케의 날카로운 눈빛이 카에데를 옭아맸다.
변명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기세에 눌린 카에데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게 다 칸나 그 천한 년 때문이야!’
칸나가 한국 교류 센터에 다녀온 이후, 배다른 동생인 칸나에게 검술 실력으로 밀리고 있는 카에데와 동생이었다.
다이스케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칸나의 검술 실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어느덧 그의 총애까지 받고 있으니 친자식으로서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번 각성의 늪에서 기필코 동생을 고등급 헌터로 각성시키고자 했던 과욕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카에데. 네 녀석의 진짜 잘못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임무가 뭐였지?”
“여섯 개의 성수 중 최고의 성수를 동생에게 가져다주는 것…….”
“그런데?”
카에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최선은커녕 차선도 얻지 못했다.
핵심 전력 중 하나인 카에데가 멋대로 공격대를 이탈함에 따라, 최하위로 각성의 늪을 공략하게 된 신켄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효율이 떨어지는 성수라고 한들 자연 각성보다는 그나마 낫겠지만, 각성의 늪 자체가 희귀한 던전인 만큼 다이스케로서는 화를 삭이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한동안 자숙하도록.”
“예, 아버지…….”
카에데가 집무실을 나서자.
비서가 태블릿 모니터를 들고 다가왔다.
< 엑시스 수태광, 파격 발언! >
< 신켄에게 무릎도 꿇을 수 있을 만큼 결백하다! >
방금 한국 언론에 뜬 기사였다.
기사 내용을 살피던 다이스케가 고개를 내저었다.
‘여론이 우리 쪽으로 기운 지 꽤 됐는데, 뒤늦게 한다는 대응이 고작 저 정도인 걸 보면…….’
별다른 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엑시스 측에서는 실추된 명예를 서둘러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증거를 내놓아야만 하지만, 이제 와서 고작 한다는 게 언론 플레이였다.
“수태광, 이 늙은이도 뒤늦게야 목소리를 크게 내야 이긴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군.”
나름 강수를 두긴 했다.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쪽도 알고 있으니, 길드 마스터인 수태광이 직접 무릎까지 꿇겠다는 말까지 내뱉은 거다.
그러나.
엑시스의 이번 대응으로 증거가 없는 건 양측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생각했다.
증거가 있었다면 더 늦기 전에 내놓았을 테니까.
“여기서 더 끌어서 좋을 건 없겠지. 조사한 건?”
“각성의 늪 제단에는 특이 사항이 없었습니다. 엑시스나 한국 협회에도 증거가 될 만한 걸 찾진 못했구요.”
“그럼 망설일 필요도 없겠군.”
수태광이 여론을 엑시스로 돌리기 위해 강수를 뒀다.
그렇다면, 이미 여론을 잡고 있는 신켄 측에서는 초강수를 두어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이번 일로 엑시스가 타격을 입게 된다면, 국제 무대에서 엑시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어.’
같은 아시아의 대형 길드 중엔 라이벌 격인 두 길드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게 된다면, 그 빈틈을 서로 차지하고자 물어뜯고 싸우는 맹수들이랄까.
“아까 봤던 기사에서 명예를 내걸고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 같은데. 수태광 그 노인네 슬슬 자리에서 물러날 때가 됐지, 아마?”
* * *
한동안 엑시스와 신켄의 설전이 지속됐다.
언론을 통해 양측의 발언들이 계속해서 양국을 오가는 중이랄까.
얼마 전, 장인어른께서 자신의 명예를 걸고 책임지겠다는 발언 이후 신켄에선 이와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 신켄,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걸겠다! >
서로 번갈아 가며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어가던 언론 플레이는 점점 정도가 강해졌다.
당연히 세간의 화제일 수밖에 없었고, 한국 여론은 물론, 일본도 떠들썩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언론 플레이는 의미가 없겠지만, 증거가 없다는 걸 전 세계가 알고 있기에 사람들도 더욱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누구 말이 진짜인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눈으로 보기에는 나한테 죽도록 처맞은 카에데가 많이 다쳤으니 당연히 그쪽이 피해자겠지만, 하도 장인어른이 강수를 두니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내가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건…….
‘……내가 분명 증거까지 넘겨드렸는데, 왜 굳이 이렇게 설전까지 벌이시며 질질 끄시는 건지.’
신켄이야 증거가 없으니 그렇다 치고.
장인어른은 왜 그쪽에 장단을 맞춰 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나 며칠이 더 지나고 일본 언론의 기사가 떴을 때,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다이스케, 잘못이 있다면 사임하겠다! >
장인어른께서 연달아 강수를 두자.
신켄 측에서 초강수를 둔 것이다.
‘설마, 이걸 노리신 건가?’
항간에는 다이스케가 장인어른보다 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알고 있다. 행동력이 빠른 화끈한 모습까지 갖고 있다고.
게다가.
이건형의 능력을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 정도 초강수를 못 둘 것도 없었을 터였다.
당연히 증거가 없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아시아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엑시스 회장님도 몰랐던 희귀도 1급의 능력이니까…….’
자발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당사자가 자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희귀한 능력을 굳이 아무 데나 공개할 일도 없기에, 신켄이 기억을 읽는 것은 물론, 그걸 영상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을 거란 상상을 했을 리는 만무했다.
“껄껄! 신켄이 아주 제 무덤을 파는구만, 그래!”
역시나 내 예상대로.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장인어른께선 해당 기사 제목을 보시더니 호탕한 웃음부터 터뜨리셨다.
사업가는 사업가다.
그간 억울하고, 손해 봤던 걸 다이스케의 사임으로 갚아 주실 생각이었던 거다.
‘뭐, 은퇴하고 카에데인가 뭔가 그놈한테 자리를 물려주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만약, 증거를 통해 처남을 인질로 잡은 그 장면이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 그마저도 쉽진 않을 거다.
“이제 증거만 공개하면 깔끔하게 마무리되겠군요.”
“오늘이 바로 그날일세.”
“불미스러운 일로 여태 미뤄둔 처남의 각성 등급까지 오늘 공개한다면 여러모로 파격적일 겁니다. 이거 잘하면, 오늘 스포트라이트가 모두 장인어른께 쏠릴 수도 있겠는데요?”
“이 사람아! 늙은이 너무 띄워 주지 말게, 껄껄껄!”
“빈말로 하는 소리 아니라, 저는 진짜 오늘 주인공이 장인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기분은 좋네만, 카메라가 나한테 집중되는 게 영 불편하거든. 아무래도 내가 무대 울렁증이 조금 있어서 말이야.”
“이런, 장인어른께서 방송에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아쉽습니다.”
“뭐, 내가 무대 울렁증이 없다고 한들 아들놈 주인공 자리를 뺏어서야 되겠는가?”
오늘은 지난번에 미뤄졌던 협회와 엑시스의 합동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간 감춰줬던 처남의 각성 등급과 신켄의 범죄에 대한 증거까지 드러난다면 모든 카메라는 당연히 장인어른을 비추는 게 당연했다.
잠시 후.
우리는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장인어른과 협회장님, 그리고 나와 처남이 오늘 기자회견의 주인공이었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가 쉬지 않고 터졌다.
아무래도 최근 신켄과의 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엑시스였기에, 대부분의 카메라는 장인어른을 향해 있었다.
‘그간 입을 싹 닫고 계셨으니, 다들 궁금한 게 많겠지.’
질문들도 대부분 장인어른에게 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에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시던 협회장님의 등장에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저, 저 검, ‘구름’ 아냐?”
“명검 구름?”
“구름이라면, 몇 년 전에 대통령께서 하사하신 그 보검 중 하나 맞죠?”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협회장님이 한 손에 쥐고 있는 검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비롯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협회장님께로 향했다.
“명검 구름을 이 자리에 가지고 나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순식간에 협회장님께 비슷한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 역시 보검이 여기 있는 이유가 궁금해 협회장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뒤늦게 장인어른을 살폈는데.
‘으, 응?’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장인어른의 등 뒤에서 미약하게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증기는 점점 짙어져 가는 듯했고…….
“……크흠!”
헛기침을 하시며 목을 가다듬은 장인어른.
그러시더니 뜬금없이 제인 레드너가 주었다던 시공의 검을 꺼내 쥐시고는 높이 들어 올리셨다.
‘갑자기 시공의 검은 왜……?’
의아함에 멍하니 눈만 껌뻑이던 중.
한 기자가 시공의 검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거 설마 제인 레드너가 각성의 늪에서 사용했던 검 아니야?”
그 순간.
장인어른께서 들어 올렸던 시공의 검을 눈앞에 테이블에 내리꽂았다.
콰직!
시공이 검이 테이블의 정중앙에 박히자, 당연하게도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으며.
장인어른께서는 당황한 기자들의 표정을 쓱 살피시며, 거칠고 비장한 목소리로 외치셨다.
“내 오늘 이 자리에서! 엑시스와 이 나라의 명예를 더럽힌 신켄을 엄히 처벌하겠소이다!”
마치 사극 영화의 장군이라도 되신 듯한 근엄한 모습.
동시에 협회장님에게 쏠렸던 카메라마저 다시금 장인어른 쪽으로 집중되자, 그제야 장인어른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