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예뻐 죽겠네, 아주! (150/246)

◈ 예뻐 죽겠네, 아주!

각 국가의 레이드 팀은 1번부터 6번까지의 길목 중 하나씩 선택해서 레이드를 시작했었다.

선택한 각 길목의 끝에는 보스가 존재하며, 해당 보스를 제거했을 경우에 각성의 신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신전에서 성수를 선택하면 던전 중앙에 위치한 제단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리며, 그곳에서 성수를 마시면 그대로 우리 팀의 공략은 끝이었다.

‘성수를 손에 쥔 당사자와 똑같은 길목을 선택했던 인원들은 자동 던전 입구로 소환되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처남이 제단 위에서 성수를 마신 뒤에 다시금 생성될 포탈을 통해 던전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여섯 개의 성수가 모두 소진되면 각성의 늪 역시 자동 소멸되며, 던전의 소멸이 최종 공략이 된다.

아무튼.

중요한 건, 대부분의 절차들이 나와 처남에겐 예외라는 것이었다.

히든 미션 공략이 끝난 순간.

나와 처남은 눈부신 빛에 휩싸여 어디론가 이동됐다.

빛에 의해 눈앞이 흐릿할 땐 몰랐었는데.

서서히 빛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인 후에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각성의 신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오오! 매형, 여기 설마?”

“맞아. 각성의 신전. 원래 입구의 보스를 처리한 후에 들어올 수 있는 곳인데…….”

히든 미션의 공략 보상이 능력치 성장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마 다이렉트로 신전으로 직행하게 해주는 것 또한 보상의 하나이리라.

‘얼떨결에 A급까지 능력치가 상승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과분한 보상인데.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물론, 가장 특성 효과를 적용했을 때 A급이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회귀 전과 비교하자면 엄청난 성과인 것을.

‘히든 미션으로 처남도 잠재 능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을 터.’

나는 신전의 안에 놓인 커다란 고목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섯 개의 성수가 놓아져 있었는데, 각기 내용물의 색깔이 달랐다.

가장 좌측이 빨간색.

이후 오른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연해지는 식이다.

‘제인 레드너가 마셨던 건 가장 진한 빨간색.’

그가 S급 헌터가 되었을 때, 언론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은 그냥 가장 진해 보이는 성수를 골랐을 뿐이라고.

해서.

나도 이 가장 진한 빨간색 성수를 처남에게 건넬 생각이었다.

스르륵 -

성수를 손에 쥐자 눈앞에 포탈이 만들어졌다.

각성의 늪 정중앙에 존재하는 제단으로 향하는 포탈이었다.

“얼른 가요, 매형! 가서 빨리 성수 마셔 보게!”

성수는 봉인된 상태다.

성수를 마시는 것이 레이드 종료를 알리는 의식이었기에, 오직 제단에서만 성수의 효과를 볼 수가 있도록 되어 있었다.

참고로 이미 각성한 자이거나, 제단 밖에서 성수를 마시게 될 경우 효과가 없다.

또한, 회귀 전 피스 길드의 차남처럼 부작용이 날 수도 있고.

“뭐해요, 빨리 안 오고? 안 오면 저 먼저 가버릴 거에요!”

그렇게 말한 처남은 나보다 앞서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성수만 마시게 되면 즉시 각성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

“하여튼 애들이란.”

나는 처남을 뒤를 이어 포탈 안으로 진입했다.

그간 선화 얼굴이 엄청 보고 싶었는데.

이제 제단 위에서 성수를 처남에게 건네기만 하면, 약 일주일간의 레이드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이! 성수는 바닥에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제단 위.

눈앞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네 동생 죽는 꼴 보기 싫다면 말이지.”

들려온 목소리는 일본어였다.

정면을 응시하자, 처남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고양이상의 앳된 남자 한 명이 보인다.

“이봐, 성수는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히든 미션을 공략하고 여기까지 곧장 직행해온 나와 처남이었는데, 어찌 우리보다 일찍 제단에 도착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일본에선 신켄 길드가 레이드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는데.’

놈의 목소리는 낯설었지만.

그나마 얼굴은 낯이 익다.

‘칸나의 배다른 오빠 중 한 명이었더랬지.’

내 기억이 맞다면, 놈의 이름은 미나토자키 카에데.

‘그나저나, 이놈은 이미 각성을 한 녀석 같은데? B급 정도?’

놈은 자신이 성수를 사용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미 각성을 한 자라면, 신켄 레이드 팀의 잠재자는 다른 놈일 테니까.

‘팀원들은 신전을 찾아 보스 쪽으로 향하고, 이놈만 제단 쪽으로 먼저 튀어왔다?’

신전이야 각 길목의 보스를 제거해야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던전 중앙에 위치한 제단은 모든 길목의 참여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성수 없이 이곳으로 왔다면 그냥 던전 내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그랬겠거니 하겠는데, 이놈은 처남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애당초 신전에서 성수를 들고나오는 다른 국가의 참여자들을 제단에서 기다렸다가, 습격을 해서 성수를 가로채려는 수작이다.

‘무슨 배짱이지? 우리 장인어른이 이번 레이드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텐데, 막상 장인어른께서 포탈에서 튀어나왔으면 어떡하려고?’

그냥 멍청한 건가.

팀원들 없이 혼자인 걸 보아하니, 자체적으로 벌인 일인 것 같다.

아마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이 나타났다면 그냥 몸을 사릴 생각이었겠지.

“일본어 못 알아들어?”

“…….”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지. 네 동생은 죽어.”

“…….”

“병신. 진짜 못 알아듣는 건가?”

지금쯤 신켄 가문에선 내게서 검술을 배운 칸나가 배다른 오빠들보다 우위에 있는 걸로 안다.

만약, 그들 중 한 명이 각성을 못 했다면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가장 뛰어난 성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눈앞의 놈이 성수를 차지하기 위해 처남을 인질로 삼고 있다는 거다.

“일본어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놈이 칼을 쥔 손을 살며시 움직인다.

칼날이 처남의 목에 보다 가까워진다.

“매, 매형…….”

“성수 내려놔. 네 동생 진짜 죽는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부류가 몇 있는데.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는 눈앞의 쓰레기 같은 새끼가 그중 하나였다.

“한 번만 더 칼 움직이면, 넌 내 손에 죽는다.”

“뭐야? 일본어 할 줄 아네? 근데 일본어를 허풍떠는 것부터 배웠나, 입만 살아서는…….”

즉시,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히든 미션 공략과 함께 A급의 경지에 오른 마력을.

“허풍인지, 아닌지, 테스트해 봐도 좋아.”

***

헌터 협회 본청이 떠들썩했다.

조금 전, 협회장이 레이드 던전 밖으로 나온 수태광에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곧 귀국할 테니 기자회견을 준비해달라는 내용.

준우가 유일하게 협회 대표로서 엑시스와 함께 레이드에 참여했기에, 수태광이 협회와의 공동 기자회견을 주최하기로 사전에 입을 맞췄다.

따지고 보면 협회 소속은 준우 하나고 나머진 죄다 엑시스 인원이기에 공동 기자회견을 굳이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수태광이 준우의 협회 내 위상을 고려하여 협회 측에 배려를 해준 것이다.

사실상, 협회를 위해서라기보단 준우의 순탄한 직장생활을 위한 것이랄까.

“우리 막내 왜 안 나오는 거냐? 다른 팀원들은 던전 밖으로 나온 지 한참 됐는데.”

김강수 본부장은 본부 인원들과 함께 사무실에 모여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던전 내부의 중계야 초반부가 지난 후에 끊긴 상태였지만, 외부 중계는 계속해서 이뤄지는 중이었다.

“거, 참! 성격 급하시네. 기자들이 하는 말 못 들었습니까, 본부장님? 보스 잡고, 신전에서 성수도 선택해야 하고, 제단에서 성수를 원샷 때려야 진짜 끝나는 거라고?”

“그만큼 긴장된다는 뜻 아니겠냐, 이 자식아!”

“긴장돼도 좀만 참으세요, 본부장님. 곧 준우가 씩 웃으면서 나올 겁니다.”

팀원들 모두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협회 소속으로서는 최초로 각성의 늪 레이드에 차출된 준우가 아니던가.

게다가, 엑시스 팀이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서 던전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역시나 가장 먼저 공략을 마쳤다는 뜻과 같았다.

그 과정에 중계 초반부에 보여줬던 것처럼 준우의 공이 클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뻔한 장면들이었다.

“왜 내 일인 것처럼 가슴이 떨리고 그러냐. 청승맞게끔.”

김강수가 씰룩거리는 광대를 애써 억눌렀다.

던전에서 나오면 곧장 전용기를 타고 기자회견장으로 갈 준우였기에, 이렇게 모니터로나마 막내의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 팀원들이었다.

지금쯤 협회장은 기자회견장에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사전 인터뷰를 하고 있을 터.

“근데, 협회장님은 인터뷰를 왜 하는 겁니까?”

“맞아. 공 세운 건 막내인데, 협회장님은 거기서 기자들하고 무슨 인터뷰를 해요?”

“기자들이 요청하니까 하는 거지. 협회장님께서도 준우 대신해서 거기 먼저 가 있는 게 민망하시지 않겠냐?”

“아까 협회장님 나가실 때 얼굴 보니까, 엄청 흐뭇해 하시던데.”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계시는 것 같달까?”

협회장 강재호도 즐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세계적인 길드 곳곳에서 준우의 스카우트 제안이 오는 것은 심히 껄끄러웠으나, 준우 덕분에 협회의 위상이 드높아졌으니까.

더군다나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협회 소속 헌터들은 길드 소속 헌터들보다 못하다는 시선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 지, 지금 나오나 봐요!”

그때였다.

이정진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카메라가 던전 입구 쪽을 클로즈업했다.

그곳에 몰려드는 빛이 만들어내는 포탈 하나.

“오오! 드디어 나온다, 내 새끼!”

“왜 준우가 본부장님 새낍니까? 하여튼, 틈만 나면 막내만 편애하려고.”

포탈을 통해 나올 사람은 준우와 동혁이 밖에 없었다.

이미 팀원들이 먼저 밖으로 나옴으로써, 엑시스 소속 잠재자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건 기정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팀원들이 기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준우가 포탈을 통해 밖으로 걸어 나온 그 순간.

“……시팔. 뭔진 모르겠지만 X 됐다, 이거.”

김강수가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고.

그 순간 팀원들의 표정도 사색이 되었다.

전 세계가 시청하고 있는 중계 화면 속.

준우가 신켄의 장남인 미나토자키 카에데를 질질 끌면서 걸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막내한테 끌려 나오는 저 사람 카에데 맞죠? 신켄의 장남?”

“맞는 거 같은데……설마 준우가 쥐어팬 건 아니겠지?”

카에데는 이미 정신을 잃은 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옷 곳곳에는 피가 흥건했고, 얼굴은 여기저기가 터져 있었다. 육안으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

“혀, 협회장님 지금 기자회견장 도착하셨으려나?”

“아마도요?”

“고생 좀 하시겠네. 저기도 난리인데, 기자회견장이라고 다르겠어?”

팀원들의 시선이 다시금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레이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

엑시스 레이드 팀이 본사에 도착했다.

레이드 현장의 아수라장을 뚫고, 일단 귀국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본사도 레이드 현장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기자회견은 다급하게 취소가 되었지만, 그곳에 있던 기자들이 모두 엑시스로 본사 앞에 들이닥친 상황이었고, 그걸 막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버지?”

수재혁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나, 수태광은 비행기 안에서 말했던 뜻을 고수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카에데인가, 코에데인가, 뭐시긴가 하는 놈이 먼저 동혁이를 인질로 삼았다며?”

“그렇긴 합니다만…….”

짧게 한숨을 내쉬는 수재혁.

준우와 동혁이가 제단에서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긴 했다.

자신의 가족이며, 또한 그들이 이 상황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매제가 아무한테나 무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아니니.’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본 협회와 신켄 측에서는 저희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신켄의 대를 이을 장남이었고, 그 장남이 지금 인사불성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으니까요.”

“그 새끼들은 뭐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우리 책임이래?”

“언론과 여론도 저희 측 책임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측에서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있긴 하지만, 저희는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일단 좀 기다려 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상황에 뭘 계속 기다립니까? 저희도 강하게 몰아붙여야지!”

“거, 참! 넌 애가 왜 그렇게 성격이 불같아, 대체?”

“아버지 닮아서 그렇죠! 그리고 제 성격이 뭐가 불같습니까? 평소엔 더 불같으신 분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침착하셔서는!”

평소라면 수태광이 먼저 나서서 난리를 칠 텐데.

이번만은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반면, 일본 여론은 말 그대로 난리였다.

한국의 협회 소속 헌터가 국가의 보물인 신켄의 장남에게 폭행을 가했다며, 당장 범죄자인 준우를 잡아 처넣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안 그래도 한일 감정이라는 게 있는 두 국가였다.

신켄 측에서 빠르게 기자회견을 통해 온갖 꾸며낸 말로 이야기를 꾸며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어필을 한 탓이다.

답답한 수재혁이 집무실 안을 돌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가 일본에 다녀오겠습니다.”

“일본에 가서 뭐 하게? 얼음 덩어리라도 퍼붓고 오게?”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면, 그거라도 해야죠. 증거가 없으니 결국 힘 있는 쪽이 이기는 싸움 아니겠습니까?”

레이드 초반부를 제외하곤 카메라 중계가 끊겼다.

마나 장비로도 촬영 자체가 불가한 장소였기에,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 준우는 너무나도 멀쩡하고, 카에데는 죽도록 얻어터졌으니, 육안으로 봤을 때 가해자는 준우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힘 있는 놈? 이놈아, 힘쓸 때가 그리 없더냐?”

“아니, 진짜 오늘따라 왜 이러십니까, 아버지? 안 어울리게 왜 이렇게 침착하시냐고요!”

“가만히 있으면, 하늘이 알아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줄 거다. 그러니 오두방정 떨지 말고 너도 얌전히 있어.”

수재혁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수태광을 바라본다.

절대 성격상 이런 상황에 얌전할 분이 아닌데, 그게 너무나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설마, 매제한테 뭐 따로 들은 거 있습니까?”

준우와 동혁이는 현재 한국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엑시스 팀은 전용기를 타고 먼저 귀국을 했지만, 두 사람은 사건의 진술을 위해 중국 협회에 잠시 조사 차 들렸다가 이제야 오고 있는 상황.

- 지켜보는 눈과 귀가 많으니, 중국 협회에 다녀와서 한국에서 다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장인어른.

수태광은 애써 수재혁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대답했다.

“들은 게 있기는 뭐가 있어, 이놈아.”

“그게 아닌 이상, 이렇게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니까요. 분명히 뭐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없다.”

“아버지 등 뒤로 증기가 피어오르는데요? 그거 당황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아닙니까?”

“아, 아닌데?”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게 확실하군요. 그럼 이젠 저도 침착하도록 하죠.”

수재혁도 씩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대충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감을 잡은 거다.

‘그럼 그렇지. 아버지께서 이토록 태연하실 리가 없잖아? 이미 매제가 손을 써놓은 거야.’

사실, 준우가 손을 썼다기보다는.

준우의 믿어달라는 한마디에 수태광의 신뢰가 작용한 것이었다.

‘전 서방이 믿어달라고 했으니, 믿어줘야겠지.’

그저 믿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껏 보아온 사위라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더 큰 성과로 안겨다 줄 것임이라고까지 확신하고 있었다.

성격 같아서는 이미 레이드 현장을 불바다로 만들고도 남았을 것을, 중국 협회 측에서 준우와 동혁이를 소환할 때도 얌전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 때를 기다리기 위한 것이랄까.

아주 잠깐만 참았다가 더 크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기대되는군. 전 서방이 또 무슨 소식을 가져다줄지.’

물론, 준우에게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제 헌터 특별법에 따르면, 카에데가 동혁이를 인질로 잡았을 경우엔 판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매제가 도착했답니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수재혁이 미리 준비해둔 포탈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기자들로 인해 바깥이 더 소란스러워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잠시 후.

준우와 동혁이가 수태광의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길에 기사들을 살펴보면서 대충 상황 파악은 끝냈습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준우가 대뜸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수태광도 바로 본론을 꺼냈다.

“상황 파악을 끝낸 결론은?”

“증거만 있으면 신켄 측도 입 싹 다물 수밖에 없겠더군요.”

“그 말은 증거가 있기라도 하다는 건가?”

준우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답을 들은 수태광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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