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무운을 빈다 (147/246)

◈ 무운을 빈다

엑시스에는 총 세 개의 장비고가 있다.

보관하는 장비의 등급에 따라 각 세 개의 층에 나누어져 있고,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비고를 부르기 쉽게 상층 장비고라고 부르곤 했다.

‘엑시스 내 가장 고등급의 장비들을 보관하는 곳.’

상층 장비고 입구에 서서 옆을 쓱 바라본다.

다소 굳어 있는 표정의 장인어른이 서 계신다.

장인어른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하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선화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오빠가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하면 레이드에서도 안전할 거라고 해서 일단 따라오긴 했는데…….”

말을 잇던 선화가 장인어른을 힐끗 살핀다.

“……내 기준에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어쩔 수 없어. 동혁이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레이드에 가는 건 절대 반대야.”

분위기를 살피던 막내처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장비고의 장비를 사용해야 할 당사자였기에 데려오기는 했는데.

“아빠도 있고, 큰형아도 있고. 거기에 매형까지 있는데, 누나는 왜케 걱정이 많아?”

“수동혁, 넌 입 다물고 있어.”

“나 비염이 심해져서 입 다물면 숨쉬기 힘들단 말야. 아무튼, 고작 B급 레이드에 백호까지 움직이는데, 누나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단 말이지.”

“입 다물라고 했다.”

“내가 각성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곧 S급 헌터가 될지도 모르는데, 거길 가지 말라니? 설마 내가 매형보다 세질까 봐 그게 불안해서 그래?”

“그 입 내가 꿰매 줘?”

“헛!”

처남은 이제야 입을 다물기로 한 모양이다.

혹시나 숨소리가 새어 나올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기까지 했다. 선화의 눈빛이 그만큼 살벌했기 때문이리라.

‘선화가 아무리 말린대도, 처남은 어떻게든 각성의 늪에 가게 되긴 할 텐데…….’

물론 억지로 처남과 나를 레이드에 데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선화가 냅다 해외로 이민을 가 버릴 거다.

‘장인어른께서도 최대한 좋게 해결하고 싶으실 거야.’

겉은 차가워 보여도 딸바보인 장인어른이시지 않은가.

결혼 후 멀어졌던 사이가 겨우 회복됐는데, 그걸 다시 망치고 싶으시진 않을 터.

“거, 걱정 말거라. 상층 장비고엔 국내에서도 내로라하는 장비들이 한가득이니.”

기계음이 들려오며 장비고의 자동문이 좌우로 갈라졌다.

장비고 안으로 들어서자 업무를 보고 있던 관리자들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아까 내가 말했었나? 필수 조건이 있다고.”

“필수 조건?”

장인어른께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신다.

선화가 언급한 내용은 아이템 선정의 조건인데, 참고로 장모님께서 전달해 주신 것이기도 했다.

“첫째, 마법과 물리 방어력 각 1,000 이상. 둘째, 신발류 장비에는 이동 속도 증가 버프가 있을 것. 셋째, 땅 속성 저항력이 높은 장비일 것. 그리고 마지막은 이 모든 것을 착용했을 때, 거동에 어려움이 없을 것.”

“……흐음.”

까다로운 조건이다.

일단 방어력 수치 자체가 상당히 높다.

아마 장모님께서 처남의 안전을 위해 저 정도가 최소치라고 생각하셨겠지.

‘땅 속성 저항력은 레이드 던전 내 몬스터들이 해당 속성을 가졌기에 그런 것일 테고.’

장인어른께서 장비고 관리자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조금 전 선화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총 두 벌이 필요하네. 가능하겠나?”

“마침 일전에 수재혁 부마스터가 해외 레이드 전리품 가져온 것들이 있는데, 그걸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호?”

장인어른의 표정이 이제야 조금 밝아졌다.

설마,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되는 건가?

“저건……?”

나는 관리자들이 가져온 장비류를 살폈다.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회귀 전에 백호 부대장이 사용했던 장비였다.

‘초월한 성기사의’ 장비들.

갑옷의 상‧하의, 머리와 팔다리에 착용하는 다섯 개의 장비가 한 세트며, 세트를 모두 착용했을 경우 방어력 증가 버프가 발동된다.

“오오오! 이 갑옷 진짜 개멋있는데?”

“입어 보거라.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있는지.”

자그마치 A+급 장비다.

이동 속도 버프까지 붙어 있었다.

“완전 편한데? 생각보다 엄청 가벼워!”

“선화 네가 보기엔 어떠냐?”

“흐음…….”

선화가 유심히 처남을 살펴보는 사이.

처남은 이미 자신이 각성한 헌터라도 되는 것처럼 갑옷을 입고 온갖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른 조건은 다 괜찮은데.”

“괜찮은데?”

“딱 하나가 빠졌네. 땅 속성 저항력.”

장인어른의 시선이 자연스레 관리자들에게로 향했다.

선화가 언급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냐는 뜻.

“회장님껜 죄송한 말이 되겠으나, 해당 장비는 상층 장비고 내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장비입니다.”

고로, 이보다 뛰어난 갑옷은 없다.

제일 좋은 걸 가져왔다고 하지 않는가.

“방어력과 이동 속도, 그리고 거기에 땅 속성 저항력까지 겸비한 장비는…….”

관리자가 말끝을 흐렸다.

대답을 잇는 대신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푹 숙인다.

“끄응!”

“……죄송합니다, 회장님.”

“땅 속성 저항력이 있는 장비는 아예 없나?”

“있습니다만, 대개 방어력이 낮습니다. 방어력을 낮춘 기준에서 찾는다면 또 다른 장비가 있습니다만, 그건 이동 속도 증가 버프가 없습니다.”

조건 전부를 만족하는 장비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장인어른께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신다.

옆을 지나치는 척하시면서, 내 옆을 툭 치시는 장인어른.

- 뭐라도 해 봐. 어떻게든 해낸다고 하지 않았나?

스치듯 지나간 장인어른의 눈빛이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한 표정을 드러내 보이자, 장인어른께서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신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처음에 가져왔던 초월한 성기사의 갑주를 그대로 사용하고, 거기에 땅 속성 저항력을 입히는 겁니다.”

“합성을 하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나? 실패하면? 그나마 조건에 맞는 이 갑주마저도 소멸해 버릴 텐데?”

“저 엑시스의 수장인 장인어른의 사위입니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시는 장인어른.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셨는지 웃음을 터뜨리신다.

“껄껄! 자네, 합성 공식을 알고 있는 것이구만!”

딱히 어려운 합성 공식도 아니었다.

A급 이상의 아이템에 속성을 부여하는 건, 합성 공식 중에서도 쉬운 편에 속했다.

‘회귀한 내 기준에서겠지만.’

반응을 보니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합성 공식 같은데.

장인어른의 엑시스라면, 이걸 알려줘도 딱히 손해 보는 느낌은 아니었다.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일단 상급 합성의 서, 갑옷의 부위마다 각 여섯 개의 오팔과 만티코어의 이빨 하나, 그리고 검은 사막의 모래, 또…….”

“받아 적고 있나?”

“옙!”

관리자는 내가 언급한 것들을 꼼꼼하게 적었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전부 엑시스 안에 있느냐는 건데.

“장비고 싹 뒤져서 어떻게든 구해 와. 없으면 사람을 써서라도 구해 와야 하네.”

다른 재료들은 다 있었지만, 딱 하나 만티코어의 이빨만이 부재였다.

어쩔 수 없이 그걸 구하기 위해 하루 정도를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윽고.

장인어른께서 만티코어의 이빨을 구해 오셨다.

나는 곧장 합성을 시작했고…….

[ 초월한 성기사의 견고한 갑옷, 합성 완료. ]

[ 초월한 성기사의 견고한 투구, 합성 완료. ]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합성이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장모님의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지속 시간의 제한이 있어서 이쪽이 더 낫다는 판단이다.

어쨌거나.

이로써 선화가 말한 조건을 모두 갖춘 장비가 탄생한 셈.

“이제 동혁이도, 전 서방도 레이드에 참여해도 되겠지?”

장인어른의 물음에 선화가 머뭇거리더니,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빠는? 오빠도 갑옷 있어야 할 거 아냐.”

“이동 속도 문제야 숲의 신발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고. 방어력 높은 갑옷만 골라서 땅 속성 합성하면 될 것 같은데?”

“아?”

결국, 선화가 레이드 참여를 허락한 순간.

장인어른께서 손을 쓱 들어 올리시더니 엄지손가락을 보이셨다.

역시 내 사위!

입 모양으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서.

‘원래 저런 표현은 잘 안 하시는 분인데.’

뭐, 그만큼 좋으시다는 뜻이겠지.

* * *

수재혁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동혁이가 등장했다.

“엘사! 나 봐 봐! 개쩔지?”

“잘 어울리는구나.”

“응?”

“잘 어울린다고.”

동혁이는 수재혁의 반응에 당황했다.

집무실 문을 대뜸 열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이상한 단어까지 써가며 목소리를 높였는데…….

‘……왜 혼내지 않지?’

평소대로라면 큰소리부터 쳐야 했다.

함부로 집무실에 들어와선 안 된다며.

예상치 못한 반응에 머쓱해진 동혁이가 수재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시금 침착하게 자신의 목적이었던 갑옷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어때, 이거? 나 아이언맨 같지?”

“그래.”

“나 사진 좀 찍어 주라, 형아. 애들한테 보내고 싶어서.”

“그러지.”

“잘 나왔어?”

“잘 나왔구나.”

“그럼, 큰형아 내 사진으로 핸드폰 바탕 화면 할래?”

수재혁이 흔쾌히 핸드폰을 건네줬다.

바탕 화면을 동혁이의 사진으로 바꿔도 좋다는 뜻이었다.

“……큰형아, 어디 아파? 오늘 왜 그래?”

“뭐가?”

“갑자기 나한테 잘해 주는 느낌인데.”

“기분 탓이겠지.”

분명히 평소와는 달랐다.

형제이기에 그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수재혁은 애써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핸드폰 바탕화면 속 갑옷을 입은 동혁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각성 직전이라. 옛 생각이 나는군.’

수재혁이 희미한 미소를 띤다.

옆에 있던 동혁이는 잔뜩 들떠서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나 너무 떨려. 큰형아.”

“떨려? 왜?”

“내가 S급 헌터로 각성하게 되면 어떡하지? 막 엑시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수도 있자나.”

“아마도.”

“그럼, 큰형아도 내 밑이야. 형 아직 S급 못 됐잖아? 크큭! 계속 오늘처럼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걸? 내가 부마스터 자리 노릴지도 모른다고!”

“네가 나보다 뛰어나다면 너에게 양보해야겠지.”

“난 진짜 큰형아보다, 아빠보다 더 강한 헌터가 되고 싶어! 강한 헌터가 돼서 예빈이도 지키고, 매형을 도와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정의로운 헌터가 될 거라고!”

동혁이는 벌써 각성을 마쳤다는 착각에 빠진 것 같았다.

뭐랄까. 이미 최고의 헌터가 된 자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달까.

‘나도 동혁이처럼 각성 징조가 있을 때, 비슷한 상상을 했었지. 아주 희망적인 꿈을 꾸기도 했고…….’

그도 동혁이처럼 당시에 가장 성능이 좋다는 갑옷을 입고 수태광에게 끌려 던전에 갔었던 적이 있었더랬지.

“나중에 나 너무 잘나간다고 질투하지 마라!”

동혁이가 키득키득 웃어 댔다.

수재혁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웃을 수 있을 때 많이 웃어 두는 게 좋겠지.’

웃으면 힘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부터 힘을 비축해도 모자랄 거다.

“아빠가 그러는데 이 갑옷이 드래곤 브레스도 막을 수 있다는데?”

“그거 내가 구해 온 거다.”

“내가 잘 쓰고 다시 반납할게!”

수재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속으로 동혁이의 말을 곱씹었다.

‘잘 쓰고 반납한다라. 다 부서져서 반납 못 할 텐데?’

동혁이가 하도 갑옷을 강조해서였을까.

옛날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나이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의 사건만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각성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던 시기.

얼음 능력을 막 개화했던 그때, 수태광은 장남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곳은 던전이었다.

난데없이 던전에 가게 된 수재혁은 살짝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아버지인 수태광이 사라지고 없었다.

키아아악!

아버지의 공백을 메운 것은 다름 아닌 몬스터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놈들은 아직 성장기의 수재혁을 향해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비록 실전은 처음이었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대인 전투술과 대몬스터 전투법을 익힌 그였고, 각종 던전 시뮬레이션까지 경험을 했던 그였다.

‘그래서 처음엔 나름 할 만했었지.’

놈들이 E급 몬스터들인지라, 각성의 징조를 보이는 시기의 수재혁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손짓, 발짓에 생성되는 날카로운 얼음 송곳에 놈들이 순식간에 쓰러져 갔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시작도 안 한 것일 줄이야.’

이후엔 D급 몬스터가 등장했다.

아직 제대로 각성도 못 한 수재혁에겐 다소 버거운 놈들.

‘그때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용케 녀석들이 수재혁의 공격에 또 쓰러져갔다.

그리고 수재혁 본인은 자신의 능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고등급으로 각성을 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상상마저 금세 사라질 만큼, 몬스터들은 끝도 없이 몰아쳤다. 오직 수재혁의 목숨만을 노리면서 말이다.

‘대체 몇 시간을 D급 놈들과 전투를 했던 건지…….’

운이 좀 따라 준 걸까.

각성도 못 한 수재혁이 D급 몬스터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근데, 역시 그것도 끝이 아니었어.’

D+급 몬스터의 등장.

수재혁 역시 현재의 동혁이처럼 최고의 무장을 하고 갔지만, 셀 수 없이 몰아치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갑옷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중무장을 했다고 한들.

무한으로 생성되는 몬스터들의 늪에선 결국에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었다.

‘대체 거기서 어떻게 버텨 냈던 걸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단 말이지.’

D+급 몬스터들도 어떻게 하다 보니, 결국 다 쓰러뜨리긴 했다.

입고 있는 방어구가 다 부서지고 심신이 다치고 지쳐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C급 준보스급 몬스터 세 마리가 등장했을 때.

수재혁은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 아빠아아! 살려 주세요! 저 헌터 안 할래요! 제발요!

언젠가 엑시스의 길드 마스터가 되리란 꿈이 있었으나.

몬스터들의 늪에서 그 꿈을 접는 것도 가능하리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두렵고, 지쳤던 탓이리라.

‘운이 좋았어, 운이.’

헌터의 능력은 하늘이 점지한다 했던가.

수재혁은 C급 준보스급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C급의 능력치를 얻고 각성했다.

그리고 특성과 스킬이 추가적으로 개화되었다.

쿠웅-

그 덕분에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또한, 수재혁도 온갖 상처와 정신적 피로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쿠오오오!

보스가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자그마치 B급 보스 몬스터.

수재혁은 놈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급에서부터 차이가 났으니까.

그러나 이딴 곳에서 죽기는 싫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놈을 죽였다.

괜히 그가 천재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등급의 차이마저 초월한 어떤 능력을 인지했으며, 그 정도는 해야 천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데구르르-

보스의 머리가 바닥을 구를 때.

수태광은 그제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장하다. 역시 내 아들! 장남인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안고 감격했다.

동시에, 힘에 부친 아들은 하늘에 바랐다.

다음 생엔 아버지 아들로 태어나질 않기를.

‘동혁이 녀석도 이번에 고생 좀 하겠어.’

회상에서 깨어난 수재혁이 막냇동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갑옷이 마음에 든다며 마냥 좋아서 방방 뛰고 있는 녀석.

쓰담쓰담-

형은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화들짝 놀란 동혁이가 형의 손을 뿌리쳤다.

“미, 미쳤어?”

평소였으면 감히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고 나무랐을 텐데, 오늘만은 무반응인 수재혁이었다.

“각성의 늪 말인데. 레이드 공략이 전부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경험자로서 팁을 하나 주자면…….”

각성 직전에 큰 충격을 줄수록 고등급으로 각성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통계.

그 통계를 현실로 실현해 낸 수재혁이었기에, 자칫 이번 동혁이의 충격 요법이 더 강할지도 몰랐다.

“……정 안 되겠다 싶음, 그냥 죽은 척을 해.”

주변에 수태광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거다.

본인과 다른 공격대원들도. 혹시나 동혁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달려가거나, 예기치 못한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설마, 아버지가 자식을 진짜로 죽이려 들겠는가.

만약 당시의 수재혁이 보다 냉정한 판단을 할 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죽은 척을 했을 거다.

“죽은 척하라니? 뭔 소리야?”

“있어, 그런 게.”

나머진 나중에 말해 줄 생각이었다.

충격요법 중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사실 가짜라는 것도.

“아무튼. 무운을 빈다.”

그렇게 2주가 흘렀을 때.

엑시스와 준우는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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