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 말이 사실일까?
느닷없이 내가 엑시스 공격대에 편성되다니.
다시 한번 본부장님께 되묻자, 더욱 기가 찬 대답이 들려왔다.
“자그마치 각성의 늪이라고, 각성의 늪! 그거 레이드 초중반부까지는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특급 레이드 아니냐? 우리 막내 완전 계 탔네!”
본부장님께서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셨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본부장님만큼 좋아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닥 좋지 않았다.
‘보통의 레이드만 해도 족히 며칠은 걸려. 어느 정도 난도가 있다면 기본 일주일, 나아가 해외의 레이드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전에 있었던 탐욕의 미궁이야 공략법을 꿰뚫고 있었고, 송일우가 길을 찾아 줬기에 하루 만에 공략이 가능했으나, 각성의 늪은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최소 일주일, 재수 없으면 보름은 걸린다.’
고로, 그 기간 동안 집에 갈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는 건 선화 또한 볼 수 없다는 뜻이고.
“뇌피셜입니까, 오피셜입니까?”
“당연히 오피셜이지!”
“공무원은 겸업이 불가합니다. 협회 소속 헌터 역시 헌터 특별법에 보면 비슷한 조항이 나와 있어요.”
“난들 아냐. 나는 그냥 사실을 전했을 뿐인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나 몰래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겸업이 불가한 협회 소속 헌터가 길드 레이드에 참여를 하게 된 건지.
“누구 지시입니까?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린 거죠?”
“누구겠냐? 그야…….”
본부장님이 막 말을 이으려는 찰나였다.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지시했네, 전준우 대원.”
“혀, 협회장님!”
“헌터 특별법에 보면, 당사자 개인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협회 총책임자의 권한으로 예외를 둘 수 있다고 되어 있지.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총책임자고.”
“……그렇군요.”
나도 법에 대해선 빠삭하게 알고 있진 않다.
다만,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나 역시도 개중 하나였을 뿐이다.
“엑시스 측에서 자네를 원하더군.”
“사람을 보내왔었습니까?”
“수태광 회장님께서 직접 나를 찾아오셨다네.”
장인어른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같다.
협회장님이야 이전부터 서먹했던 장인어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셨을 테니, 레이드 기간 동안 나 하나 보내는 것 정도야 딱히 어렵지 않을 일이었을 터.
게다가.
국제 레이드 같은 경우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초중반부까지는 생중계까지 되기에, 그 과정에서 빼어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세계적으로 이름도 날릴 수 있었다.
레이드에 출전한 내가 잘만 한다면 나는 물론, 대한민국 협회의 위상까지 드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때문에, 까라면 까는 게 맞기는 한데…….’
협회장님께서 슬쩍 내 얼굴을 살피신다.
뭔가 불편한 기색을 읽은 것일까.
“따로 문제라도 있는 건가?”
“국제 레이드 같은 경우는 해당 길드의 소속이 아니면 참전이 불가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 레이드의 혜택이 많은 만큼, 길드가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길드에 소속된 지 한 달 이상의 길드원만 참여할 수 있구요.”
“한데?”
“전 엑시스 소속이 아닙니다만?”
“확인해 보니까 맞던데?”
“예?”
이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린가.
떡하니 협회 소속 공무원증을 걸고 있는데, 이런 내게 엑시스 소속이라니?
“나도 그 부분이 걸려서 수태광 회장님께 말씀을 드렸었다네. 그런데, 자네가 엑시스 명예 이사로 등재되어 있더군. 기간을 따져 보니 오늘로써 딱 한 달째고.”
“예에에?”
“자네 혹시 명예 이사로서 월급 받나?”
“아, 아닙니다.”
“길드 복지를 비롯한 각종 혜택 같은 건? 엑시스 명예 이사로서 이윤을 얻는 게 있냐고 묻는 걸세.”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그럼, 수태광 회장님의 말마따나 형식적인 이사직이라는 거고. 이윤을 얻는 게 없으니 헌터 특별법에도 걸리는 게 없네.”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 분명 걸리는 게 있긴 할 거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 모든 절차와 결정을 협회장님 본인이 직접 다이렉트로 처리하신 듯했다.
‘장인어른께서 패션쇼 때 이후로 날 진짜 명예 이사로 등록해 놓으신 거구나. 그냥 농담처럼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한다면 하는 남자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결국, 그냥 해외 출국해야 한다는 소리다.
“자, 또 다른 문제가 있나?”
“없습니다.”
“잘 다녀오게나. 가서 전 세계에 우리 대한민국 협회 소속 헌터로서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 주고 오게.”
“……알겠습니다.”
협회장님께선 내 어깨를 다독이신 후 사라지셨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본부장님이 쓱 다가와 물으신다.
“어째 넌 영 가기 싫은 느낌이다?”
“가고 싶겠습니까. 선화랑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하아, 이 아내 바보를 어찌할까.”
“아마 선화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야, 막내야.”
“네?”
“가끔은 말이다. 제수씨한테도 자유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내색은 안 해도 네가 해외에 오랫동안 나가 있는다고 하면 내심 엄청 좋아할걸?”
“우리 선화가 본부장님 같으신 줄 아십니까?”
“에에? 인마, 내가 그래도 너보다 결혼 선배야!”
그래, 선배인 건 인정.
하지만 우리 선화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게 나랑 떨어져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잘 보십쇼. 저희 선화는 본부장님과 궤가 다르다는 걸 보여 드릴 테니까.”
“뭐 어쩌게?”
냉큼 선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스피커폰을 켜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다.
협회장님의 명령으로 최소 일주일간은 해외에 나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 잘됐네! 다녀와, 오빠!
……선화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허락해 버렸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잘됐다는 말과 함께.
“풉!”
“웃지 마십쇼, 본부장님.”
“야! 얘들아! 막내 입 튀어나온 거 봐라! 얘 삐쳤다!”
“안 삐쳤습니다!”
“안 삐치기는! 입이 댓 발 나왔구만!”
삐친 거 아니다.
진짜 아니다, 진짜.
* * *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 선화가 대뜸 물었다.
“오빠,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여?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설마 누가 우리 오빠 괴롭힌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섭섭해서다.
나는 해외에 나가게 되면 선화 얼굴 못 봐서 꿀꿀한데, 정작 선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게.
‘……속이 좀 좁아 보이긴 해도.’
뭐, 어쩌겠는가.
섭섭한 건 섭섭한 거다.
“혹시, 내가 아까 오빠 해외 가는 거 안 말려서 그래?”
“응? 아냐, 그런 거.”
“그치? 아니지?”
“절대 아니지. 내가 고작 그거 때문에 축 늘어져 있을까 봐? 에이! 나를 뭘로 보고!”
눈치도 빠르시지.
하마터면 속 좁다고 놀림당할 뻔했다.
“아무튼, 그거 때문이 아니라면 다행이야. 사실 나도 오빠랑 떨어져 있기는 진짜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보내겠다고 한 거거든.”
“어쩔 수 없이?”
“기사 봤어. 각성의 늪? 거기 동혁이가 가게 된다며?”
“맞아. 이번에 막내 처남이 잠재자 1순위라.”
“언론에서 하는 얘기들 들어 보니까, 각성이라는 게 원래 각성 직전에 충격이 큰 만큼 고등급으로 각성할 확률이 높다면서?”
“난 속설이라고 생각하는데, 통계상 그렇다고는 하더라.”
“그럼 절대 아빠가 동혁이를 가만히 둘 리는 없겠네?”
“무슨 소리야, 그게?”
“아빠 성격에 어떻게든 동혁이를 고등급으로 각성하게 만들려고 할 거 아냐?”
“막내 처남을 일부러 위험하게 만들기라도 한단 소리야? 말도 안 돼! 아무리 막내 처남을 S급 헌터로 만들고 싶어 하신대도 설마 그렇게까지…….”
“우리 어렸을 때, 아빠 육아 슬로건이 뭐였는지 알아? ‘자식들은 강하게 키우자’야. 물론, 동혁이가 위험에 처하게끔 만들진 않겠지. 하지만, 동혁이 한계를 극한으로 끌어 올리고도 남을걸?”
“흐음, 어느 정도 빡세게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은 했는데…….”
선화 말을 들어 보니 걱정이 되긴 한다.
어쩌면, 처남의 나이 때 아이들이 견디기 버거울 정도로 강한 충격 요법을 사용하시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이번엔 오빠한테 부탁 좀 하려고 해.”
“나보고 처남을 지켜 달라?”
“응. 최소 일주일은 떨어져 있어야 하겠지만, 나한텐 오빠가 소중한 만큼 내 동생도 소중해.”
막내 처남과는 항상 티격태격하는 모습만 봐 왔는데.
그래도 동생은 동생인 모양이다.
“이번 레이드에 아빠도 가고, 큰오빠도 간다며? 레이드 난이도는 B급이라 동행하는 헌터들 수준에 비해 엄청 안전할 거라고 하던데?”
“그렇지. 아마 내가 굳이 껴서 가더라도, 딱히 난 할 일이 없을지도 몰라.”
“그럼 염치없지만, 오빠한테 부탁 좀 할게. 오빠가 동혁이를 옆에서 좀 지켜봐 주면 안 될까? 지켜보는 김에 아빠도…… 설마 별일이야 없겠지만, 던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염치없기는! 우리 부부야! 부부 사이에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나는 동행하지 못하면서, 오빠한테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그러지.”
“부부 사이엔 그런 걸로 미안해하는 거 아냐!”
흔쾌히 다녀오라기에 조금 서운하긴 했으나.
그 이유를 듣고 난 뒤 서운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믿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 거잖아, 그치?”
“응. 내가 오빠 말고 누굴 믿을 수가 있어야지.”
각성의 늪 위험도가 높았다면 나 역시 보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선화가 언급했던 대로 장인어른과 큰형님까지 동행하는 마당에 던전 난이도는 수준 이하인 편.
‘장인어른께서 처남을 빡세게 굴리지 못하도록 잘 중재만 하면 되는 거다, 이거지?’
선화가 오죽하면 나한테 이런 부탁을 했겠는가.
평소엔 내가 헌터 일 하는 것도 불안해하는 사람이.
그럼 그렇지.
우리 선화가 내 걱정 없이 흔쾌히 날 해외로 보낼 리가 없지!
“오케이! 걱정 붙들어 매! 내가 선화 너 걱정 하나도 안 되게끔 완벽하게 처남 케어할 테니까!”
“진짜아? 역시 우리 오빠야! 고마워, 진짜!”
쏟아지는 뽀뽀 세례.
크으! 처남 케어 한 번에 뽀뽀 세례면 딱히 손해 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우우웅-
그때였다.
선화의 핸드폰이 울린다.
“어? 엄마네?”
아마 장모님께서도 기사를 보신 것 같다.
딱히 이 타이밍에 전화를 거실 만한 이유가 처남이 각성의 늪에 가게 된다는 일 말고는 없을 테니까.
- 얘, 선화야. 영감탱이, 아니, 네 아빠 안 말려도 돼?
“응? 무슨 소리야?”
- 동혁이 각성의 늪에 간다며? 애 잡게 생겼잖아, 지금! 재혁이 각성할 때만 해도 애를 못 잡아서 안달 난 사람처럼 그 짓거리를 하더니, 이젠 동혁이까지 잡으려고?
장모님의 목소리가 다소 격했다.
스피커폰이 아님에도 불구 내 귀에 들려올 정도였으니까.
- 재혁이 각성할 때 나랑 그렇게 대판 싸우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지, 그 영감탱이가!
참고로 큰형님은 자연 각성하셨다.
각성 징조가 있어서, 그때 장인어른의 ‘손길’이 있으셨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장모님께서 이렇게 노발대발하실 정도면, 당시 장인어른의 손길이 상당히 거칠었던 것 같다.
“아빠가 동혁이를 너무 강하게 훈련 시킬까 봐 그러는 거라면,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걱정돼서 오빠한테 동혁이 잘 봐 달라고 부탁했…….”
- 설마, 우리 사위도 가는 거야? 이 망할 영감탱이가 아들들로 모자라서 이젠 사위까지 잡으려고!
“아, 아빠가 그 정도로 심하게 했다고, 엄마?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장모님의 격한 반응 때문일까.
흔쾌히 해외 레이드를 수락했던 선화도 조금씩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 네 아빠 성격을 봐라! 아들도 잡는데, 사위 하나 못 잡겠니! 어떻게든 말려야지! 엄마가 도와줘?
선화는 장모님과 30분 가까이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큰형님이 각성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 듣게 되었다.
“안 되겠다, 오빠. 그냥 레이드인가 뭔가 안 가는 게 좋겠어.”
통화를 마친 선화는 다시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려오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역시나 장인어른이었다.
“아빠, 우리 오빠 레이드 절대 못 보내. 물론 동혁이도 마찬가지야.”
- 대뜸 전화해선 그게 무슨……?
“아무튼, 못 보내. 억지로 오빠랑 동혁이 데려가려고 하면, 나 해외로 이민 가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끊을게.”
* * *
다음 날, 장인어른께서 날 급히 호출하셨다.
이유야 뭐 안 들어 봐도 뻔하다.
어제 선화와의 통화 때문일 터.
“그러니까, 갑자기 할망구가 전화해서 그렇게 말을 했단 말이지?”
장모님께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큰형님이 각성 징조를 보였을 당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숲에 큰형님을 냅다 집어 던지셨단다.
그걸로도 모자라 어디선가 몬스터를 더 끌어다가 몰이 사냥을 유도하셨다지.
‘솔직히 심하긴 심하셨어. 장모님께서 격하게 반응을 하실만도 해.’
각성 징조를 보일 때 각성자의 특성과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생초짜에게 장인어른의 행동은 가히 고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형님께서 용케 살아남은 게 대단할 정도야.’
그러나.
역시 사람 말은 양쪽을 다 들어 봐야 하는 법.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숲? 몰이 사냥을 유도해? 내가?”
“장모님께선 그렇다고 하셨는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 거긴 이미 공략이 다 끝나가는 던전이었어! 몬스터는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단 말일세! 게다가, 재혁이 놈이 상대했던 건 몬스터가 아니라 목각 인형이었다고!”
“목각 인형요? 그 마법 스크롤로 소환하는 대련용 목각 인형?”
“그래! 그것도 고작 F-급!”
현재 A급을 이미 넘어선,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큰형님께서 각성 징조를 보이셨을 때라면…….
‘……당시에도 최소 C급 이상의 능력은 펼칠 수 있으셨을 텐데.’
아무리 기술 활용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손짓, 발짓에 날카로운 얼음이 솟구치게 할 수 있는 큰형님이셨다면 F- 목각 인형들 따위야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을 거다.
그렇다면,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절대. 조종이 가능한 목각 인형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장모님께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유난이지, 유난! 딱 보면 모르겠나? 그때도 정작 쓰러지는 건 목각 인형들뿐인데, 내가 재혁이 놈 죽이려고 한다고 아주 난리를 쳤었네! 설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장남을 죽이려고 했을 거라고?”
“……아, 아뇨.”
죽이려고 하진 않았어도.
그만큼 강하게 압박하셨을 것 같기는 했다.
“아무리 내가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라지만! 아들놈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만큼 미련한 사람은 아닐세!”
“저, 저는 처음부터 장인어른께서 그러실 만한 분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변명하시듯 열변을 토하셨다.
그리고 난 묵묵히 들으며, 장인어른의 뜻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절대 목각 인형 따위로 쉽게 넘어가실 분이 아니신데…….’
그래도 일단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나까지 장모님과 선화의 편에 선다면, 극대노를 하실 게 뻔했으니까.
“끄응!”
한바탕 목소리를 토해내신 장인어른께서 냉수를 들이켜셨다.
못내 항상 자신이 악역이 되는 게 심히 화가 나시는 모양이다.
“……가장의 무게란 원래 무거운 법이죠.”
“그나마, 자네라도 내 맘을 알아주니 속이 좀 편안해지는군!”
사실, 아직도 장모님 말이 신빙성이 더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진 않았다.
‘누구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나만 손해지. 뭐, 가능성은 낮아도 장인어른께서 진짜 목각 인형을 사용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냉수 한잔을 더 들이켜신 장인어른께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장모님의 유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쩔 텐가?”
“레이드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혹시 자네도 갈 생각이 없는 건가? 내 자네 뜻이 그렇다면, 몹시 섭섭하겠지만 협회장에겐 다시 말해 줄 수 있네.”
미쳤다고 이 상황에 거절을 하겠는가.
이미 앞전에 열을 토해낸 장인어른의 모습을 본 상황에?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인어른의 뜻이 곧 제 뜻입니다!”
“역시! 전 서방이구만! 아주 호탕해!”
협회장님도 그렇고, 장인어른도 그렇고.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거다.
“그럼, 선화를 다시 설득해야겠지? 동혁이가 S급 헌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이대로 날려 버릴 수는 없을 테니까.”
“선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안전입니다. 막내 처남은 물론, 남편인 제 안전까지도요.”
“해서? 그 방법은?”
“엑시스 상층 장비고를 열어 주십쇼.”
“아무리 상층 장비고의 아이템으로 안전하게 무장을 한다고 해도, 선화 녀석 눈높이를 맞추긴 영 까다로울 텐데?”
어렵더라도 해봐야지.
이미 장인어른의 눈빛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못하면 나도 장인어른에게 밉보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상황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야만 한다.
“기필코 해내 보이겠습니다!”
“화끈해, 아주 화끈해! 이래서 집안에 사위를 잘 들여야 한다니까!”
여기서 못 해내면 반역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조건 선화를 설득해 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