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태광이는 아직 너무 어려 (142/246)

◈ 태광이는 아직 너무 어려

민동식이 멋쩍어하며 황장미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황장미의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100송이의 장미꽃들.

“웬 꽃다발?”

“한국에서 패션쇼 런칭한 거 이번이 처음이잖나. 좋은 날인데, 의미 있는 선물 하나 정도는 하고 싶었네.”

황장미가 민동식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말했다.

“나 장미 안 좋아하는데?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아아, 이런. 그랬군. 그럼 내가 다음엔 꼭 다른 꽃으로다가…….”

“민 회장님. 혹시 나한테 미련 있어요? 한동안 잠잠하더니, 내가 이혼했다고 하니까 다시 뭔가 해 보려고?”

“그,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나이를 생각해. 내 나이 50이 훨씬 넘었어. 뭐, 연애라도 하자는 거예요?”

50이 넘은 나이지만, 관리를 잘 해 온 덕분에 40대 초반처럼 보이는 황장미였다.

선화가 엄마의 미모를 닮았으니, 황장미 또한 상당한 미인이라 할 수 있었다.

“씁, 나이가 뭐 중요한가.”

민동식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옳다. 나이 먹었다고 연애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황장미 또한 속으로는 연애에 나이 같은 건 그리 크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황장미는 민동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옛날에도 지금도 썩 기준에 차지 않았다.

해서, 거절 의사를 에둘러 표현했거늘.

‘직설적으로 말해 줘야 알아듣나? 약한 남자 싫다고?’

감히 피스의 민동식을 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흔치 않겠으나, 적어도 수태광이 기준인 황장미에겐 어쨌거나 약한 건 약한 것이었다.

민동식이 억지로 황장미에게 꽃다발을 넘겼다.

사실, 황장미가 자신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었다.’

단순히 황장미에 대한 감정만으로 매달리는 민동식이 아니었다.

젊었을 때의 첫사랑이긴 하나, 첫사랑의 감정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미스 황의 아티팩트 제작 능력이 더해진다면, 우리 피스는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엑시스의 벽 또한 쉽게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국내 최고의 길드이자, 기업이라 일컫는 엑시스지만 그건 말 그대로 국내에 국한되어 있다.

세계 순위로 치자면 7위와 8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정도.

만약, 피스 길드가 황장미와 사업적 제휴를 맺는다면 세계 순위 상위권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당연히 엑시스는 피스의 발밑에 있게 될 수밖에.’

황장미는 엑시스에 감정이 좋지 않다.

어쩌면 민동식에게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그러나, 황장미의 철벽은 단단했다.

여전히 완고한 뜻을 내비쳤으며 눈빛은 차가웠다.

“오래전에도 내가 얘기했었죠. 나는 강한 사람이 좋다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난 지금도 그때와 똑같아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좋아.”

“우리 피스가 예전의 피스가 아닙니다, 미스 황.”

“민 회장님이 수태광보다 위라고 할 수 있나요?”

정곡을 찌르는 직격타.

민동식의 눈동자가 자신도 모르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는 수태광 회장보다 안 되지만, 우리 다음 세대는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음 세대? 우리 재혁이를 뜻하는 말인가요?”

“미스 황에겐 미안한 말이나, 내 아들들의 성장이 하루가 다르게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셋째 태오 녀석만 해도 곧 A급을 바라보고 있지요.”

“호오? 그래요? 그 말은 곧 다음 세대엔 엑시스가 아닌 피스가 이 나라 최고의 길드가 될 거란 뜻인가요?”

“그런 뜻으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딱히 불가능할 것도 없지요.”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그 잠재력으로 따지자면, 피스에게도 엑시르를 뛰어넘을 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진짜 성장은 A급에 도달한 그 이후부터일 텐데? 정작 민 회장 본인도 A급에 도달한 뒤 성장이 더뎌져 결국 영감탱이 밑이잖아?’

민동식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다만, 침착한 척하려 했으나 당황을 해 버린 탓에 멋대로 말이 나온 것일 뿐.

그때였다.

패션쇼 마지막 이벤트 행사 무대 위에 민태오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곧 A급에 도달한다는 말은 거짓말은 아닌 것 같고. 나름 봐 줄 만은 하네. 어디서 맞고 다니진 않겠어.’

하지만, 민태오 역시 황장미의 기준엔 차지 않았다.

절대 피스와 손을 잡을 만한 정도는 더욱더 아니었다.

“민태오 이사가 마침 행사 무대 위로 올라오네요.”

“그렇군요.”

“이벤트에 내놓은 아티팩트는 봉인된 상태예요. 참고로 우리 재혁이가 B급이었을 때, 저 봉인식을 5분 만에 풀었죠.”

“태오 녀석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민동식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그 순간.

이어, 또 한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씨익-

황장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귀염둥이 사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미스 황의 사위분도 무대로 올라오는군요.”

“그러니까요. 우리 사위는 봉인을 푸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민동식은 아까 전에 보았던 준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끽해야 얼마 전에 B급을 넘어선 수준.

‘태오 녀석보다 몇 수는 더 아래인데. 최소한 10분 이상은 걸리지 않을까?’

* * *

이벤트 방식은 간단하다.

아티팩트의 봉인을 풀면 해당 아티팩트를 가질 수 있다.

참가자가 한 명뿐이라면 제한 시간 내에 봉인을 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두 명 이상일 경우엔 방법이 살짝 바뀐다.

“동시에 봉인을 풀기 시작해서, 먼저 푸시는 분이 가져가는 겁니다!”

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낯선 얼굴이 그곳에 서 있었다.

‘피스 길드 민 회장의 삼남이라고는 하는데?’

딱히 회귀 전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그만큼 업계에 영향력이 없었다는 뜻이겠지.

피식-

준우를 훑어본 민태오가 실소를 터뜨렸다.

초면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왜 준우의 기억 속에 없는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건방진데 주제 파악까지 못 한다라. 민 회장도 자식 복은 영 없구만.’

민태오 같은 자와 한 무대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더군다나 준우에겐 주어진 특명이 있지 않은가.

- 어떻게든 아티팩트를 내게 가져오게.

얼떨결에 엑시스 명예 이사가 되었고.

명예 이사로서 회장님의 첫 명을 받들게 됐다.

‘내 생각엔 민 회장이 장모님께 준 꽃다발이 원인인 거 같지만…….’

어쨌거나 장인어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드릴 수 있다면, 준우에겐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기왕이면 보다 화끈하게 끝내는 게 좋겠지?’

준우는 눈앞에 놓인 커다란 청색 바위를 응시했다.

청색 바위 안에 포장된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 상자 안엔 이벤트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장모님의 아티팩트가 담겨 있을 거다.

‘다행히 봉인식은 간단하네.’

사실, 봉인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반적인 봉인식은 봉인식의 유형을 찾고, 해결 방법을 찾아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 대부분이었는데.

‘청바위식 봉인, 이건 그냥 힘으로 때려 부수는 거니까.’

바위 겉면의 작은 ‘입구’를 찾는다.

그 입구를 향해 마력을 한껏 주입하면, 바위 내부에 일정 수준의 마력이 채워졌을 때 깨지게 되어 있다.

청바위식 봉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봉인이라기보다는 금고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참가자분들, 준비되셨으면 시작해도 될까요?”

사회자가 물었다.

민태오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는 듯이.

“청바위식 봉인을 해제한 역대 최단 기록은 3분 39초인데요! 과연 오늘 두 분 중 한 분이 그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행사장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 위로 향했다.

준우가 황장미의 사위라는 것을 모르는 터라, 대부분은 민태오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직 준우의 가족들만은 그에게 눈빛을 보내는 중이었다.

장모님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 있고.

수린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장인어른은.

- 피스 길드 삼남 따위에게 진다면, 자넨 엑시스의 사람이라 할 수 없네!

마치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협박 아닌 협박 같은 느낌이랄까.

‘저번 임무 때 아내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남겨 뒀으니까, 무리는 없을 거야.’

갑자기 임무 장소에 수재혁이 나타나 얼음 유성우로 활약을 보임으로써, 준우가 나설 기회가 없었다.

그때 비축해 둔 아내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비록,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더 로즈 패션쇼의 마지막 행사! 시작합니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동시에 민태오가 눈앞에 놓인 청바위의 측면에 손을 가져갔다.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마력을 주입할 입구를 찾은 것이다.

푸른빛 마력이 민태오의 손에 모였고, 그것들은 이내 입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뿜어졌다.

그러나.

입구를 찾은 것은 준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 ‘아내의 힘’ 효과를 사용합니다. ]

[ 10초간 모든 능력치가 5배 상승합니다. ]

시작점이 다르다면 결과마저 다를 수밖에 없다.

비록 민태오가 A급 도달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들, B급인 준우와의 능력치 5배 차이는 상당했다.

파지직-

1분 경과.

민태오의 청바위 표면에 금이 갔을 때였다.

콰콰콰쾅!

바로 옆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마력 주입을 멈추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민태오.

“……!”

그가 경악한 얼굴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준우의 발 앞에 있는 청바위였다.

“저, 전준우 씨! 1분 3초! 최단 기록 갱신입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민태오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다시금 눈을 껌뻑이며 눈앞을 응시했을 땐, 잘게 부서진 청바위 파편들 위에 아티팩트가 담긴 상자를 들고 서 있는 준우가 보였다.

순간, 민태오는 행사장 2층의 민동식과 눈이 마주쳤다.

황장미에 옆에 함께 있던 그는 창피한 듯 그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삼남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기만 했다.

실망한 자가 있다면.

아주 흡족한 자도 있기 마련.

“껄껄껄! 명예 이사 하나 아주 잘 뽑았구만 그래! 아주 잘 뽑았어!”

자신이 젊어진 모습이라는 것도 망각한 채, 특유의 웃음소리로 호탕하게 웃고 있는 수태광의 모습이 준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로.

황장미도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내비치고 있었다.

‘얼떨결이긴 해도 장인, 장모님께 엄청 예쁨 받게 된 것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준우 역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수태광의 질투 섞인 명령에 의해 참여한 이벤트이긴 했으나, 어쨌거나 장인, 장모님 두 분 모두 흡족해하시니 준우로서도 그저 만족스러울 따름이었다.

‘재혁이가 전 서방과 동급이었을 때, 청바위 봉인식을 푸는 데 걸렸던 시간은 5분…….’

황장미는 준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많은 생각이 담긴 그녀의 눈빛은 사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전 서방은 1분 남짓.’

그녀는 감히 판단했다.

준우가 수태광이라는 자신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 *

며칠 뒤.

호텔 안의 황장미는 낮잠에 빠져 있었다.

그간 패션쇼를 준비하고, 마무리 짓느라 쌓였던 피로가 상당했는지, 옆에 다니엘이 왔다는 사실로 모른 채 코까지 골고 있었다.

“……망할 영감탱이.”

“망할 영감탱이?”

다니엘이 황장미의 잠꼬대에 움찔했다.

평소엔 코도 골지 않고, 잠꼬대도 없는 분이었는데.

“악몽이라도 꾸시는 건가?”

다니엘의 짐작대로 황장미는 악몽을 꾸는 중이었다.

한때, 수태광과 이혼하기 전 그와 숱하게 부부싸움을 해 댔던 그 시절의 기억이 꿈속에 나타난 것이다.

“일어나셨습니까?”

“나 물 좀 줄래, 다니엘?”

그렇게 10분쯤 더 지났을 때.

황장미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다니엘이 냉수를 가지러 간 사이, 그녀는 조금 전 꾸었던 꿈을 되짚어 봤다.

그러자 자연스레 수태광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망할 영감탱이! 내가 한국에 왔다는 기사 뻔히 봤으면서, 얼굴 한번 안 비춰? 한국에서 처음으로 하는 패션쇼였는데?”

하다못해, 최 비서라도 시켜서 작은 화분이라도 하나 가져올 줄 알았다.

나름 잘 합의해서 한 이혼이었고, 적어도 옛정을 생각해서 그 정도 성의는 보일 거라 생각했었다.

민 회장은 꽃다발까지 준비해 왔었는데.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센스는 영 없는 사람이다.

“에휴.”

황장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혼한 마당에 그런 기대를 하는 자신도 한심해서다.

“나도 미쳤지. 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는 거야?”

다니엘이 냉수 한 잔을 가져왔다.

벌컥 냉수를 들이켠 황장미의 시선에 못 보던 게 들어왔다.

“뭐야, 그건?”

“아아, 이거…….”

다니엘이 호텔 방 한편에 놓인 켄넬을 가져왔다.

조금 전, 준우가 전해 주고 간 것이었다.

“사위분께서 급히 다녀가셨습니다. 패션쇼에서 너무 과한 아티팩트를 선물로 주셨다고, 작게나마 보답을 하고 싶으시다면서.”

“나 자고 있는 사이에 다녀간 거야?”

“그렇습니다. 많이 피곤하신 것 같다고, 도무지 깨울 수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이런.”

“아, 참. 이 말도 덧붙여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

“장모님께선 자는 모습도 참 아름다우십니다, 라고.”

“……빈말이겠지만 기분은 좋네. 누구와는 달리 센스가 있다니까.”

참으로 스윗하다.

그런 생각에 황장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에 악몽을 꾼 것마저 잊어버릴 만큼,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래서 애교 많은 사위가 좋다고들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건 뭔데?”

다니엘이 켄넬 문을 열었다.

손바닥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작은 돼지 한 마리가 그 안에서 꿀꿀거리며 걸어 나온다.

“전 서방…… 진짜 센스가 어마어마하네…….”

황장미는 울컥했다.

수태광과 살 때는 키우고 싶어도 키우지 못했던 반려몬이었고, 이혼을 한 후에는 일에 바삐 사느라 미처 반려몬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입양도 알아봐야 하고.

반려몬 육아에 대한 지식도 쌓아야 하고.

여러모로 손이 갈 게 많았으니까.

그런데.

사위가 반려몬을 입양해다 준 것이다.

육아에 대한 지식과 코치까지 두꺼운 노트에 자필로 꾸역꾸역 적어서까지.

꾸울!

조그마한 돼지가 황장미 앞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일반 돼지보다 눈이 더 크고 똘망똘망하며, 코는 더 작다.

자그마한 발과 분홍빛 피부가 심히 귀엽고, 특히나 엉덩이 위에 동그랗게 말려 있는 꼬리가 시선을 강탈했다.

꾸울!

황장미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안 그래도 이번 패션쇼가 끝이 난다면 반려몬을 입양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선화가 반려몬 여러 마리 키우는 거 보고, 나도 이젠 꼭 한 마리쯤은 키워 보려고 했었는데…….’

만약 키운다면 눈앞의 돼지.

아니, ‘큐피그’를 입양할 생각이었다.

“반려몬들 중에서도 인기종이라 입양이 상당히 어렵다고 했었는데, 전 서방은 대체 어떻게 입양을 한 거지?”

협회 소속 헌터가 불법적인 루트를 이용했을 리는 없고.

하여간, 신통방통한 사위다.

“이 아이, 이름부터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름? 흐음, 뭐가 좋을까?”

황장미와 큐피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렸다.

“태광이.”

“예, 예?”

“태광이로 하자. 잘 어울리네. 생긴 것도 비슷하고.”

“태, 태광이라면, 미스 황의 전 남편분……그, 그러니까, 지금 진심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인 황장미가 큐피그를 향해 소리쳤다.

“태광아?”

다행히도 녀석도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호텔 안을 누볐다.

“근데, 여기 반려몬 입장 가능한 호텔 맞지?”

“걱정 마십쇼. 전 객실 반려몬 동반 가능합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황장미가 다시금 큐피그에게로 시선을 돌린 그때.

“아, 안 돼애애애!”

황장미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미 경악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과 호텔의 최고급 러그 위에서 뒷다리에 힘을 잔뜩 준 채 온갖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큐피그…….

한숨 섞인 목소리로 황장미가 소리쳤다.

“태광아! 아무 데서나 똥 싸면 어떡해!”

태광이가 아직 너무 어린 탓일까.

아무래도 배변 훈련이 가장 급선무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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