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뛰는 놈 위에 나는 놈 (138/246)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이번 공채에서 최고점으로 합격하게 되면 팀장급은 본부장으로 승진하여 특수 본부를 이끌게 된다는 소문.

그 소문의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의 진위가 어찌 됐건 꼭 본부장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다.

“훈련 다녀온다.”

“팀장님, 점심 안 드세요?”

“밥 먹을 시간이 없다. 본부장 되려면 훈련해야지. 그나마 막내 네가 있어서 좀 마음이 놓인다만, 시험 때 나도 뭔가 보여 주긴 해야 하지 않겠냐?”

무슨 일이 있어도 본부장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

그건 바로 며칠째 틈이 날 때마다 훈련을 하고 있는 김강수 팀장님이었다.

‘그러게 왜 술 먹고 쓸데없는 얘기를 하셔 가지고.’

만취해서 사모님께 본부장으로 승진한다는 허풍만 떨지 않았어도,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퍼펙트맨의 명품 정장을 선물 받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본부장 자리에 목숨까지 내놓고 열과 성을 다할 필요도 없었겠지.

어쨌거나.

이미 일은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팀장님께서 자신감이 꽤 있으시단 거야.’

필기시험을 만점 받은 것 때문일까.

최고점 합격이라는 목표가 마냥 불가능하다고만 생각지는 않으셨다.

사실상 팀장님의 능력만 놓고 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나를 견제하긴 하셨다.

최고점 합격이라는 건 팀장급과 그 아래 급 모두를 포함하여 1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나에 대한 견제마저도 필요가 없게 된 상황이다.

내가 팀장님과 모종의 거래를 했기 때문이었다.

- 막내 네가 나를 밀어줄 테니, 최고점 합격자 포상인 이지스를 너한테 달라는 거지? 나야 당연히 콜이지! 마누라한테 죽게 생긴 마당에 아티팩트가 대수냐?

- 대수죠. 이지스의 가치만 놓고 보면 최소 몇 억은 할 텐데요.

- 본부장 자리에 앉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미래의 가치를 놓고 보면 내가 더 이득이니까. 사실상, 본부장이 되면 출셋길 열리는 거잖아? 지부장부터 본청 핵심 간부직까지. 오히려 내가 너한테 미안하지.

길드에 비해 협회 소속 헌터들이 박봉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간부급 미만들에게만 속하는 얘기다.

협회의 간부들은 길드의 간부들만큼이나 연봉이 상당하다.

그렇기에 팀장님도 멀리 보면 자신이 이득이라고 얘기하셨던 거다.

‘뭐,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나야 이지스만 얻으면 되는 거니까.’

거래는 체결됐다.

팀장님의 두 번째 시험인 던전 공략 과목에서 최대한 팀장님을 돋보이게 해 주는 조건으로.

[ 대상과 가족이 되기까지의 예측 시간, 6개월. ]

시험 전에 팀장님을 가족 구성원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특성으로 팀장님의 능력치를 상승시켜 좀 더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한동안 팀장님께서 머무시는 사무실이나 훈련장을 집으로 설정해 두고 시간을 좀 단축시키는 게 좋겠어.’

퇴근 시간이 임박했다.

비상 출동이 없었던 탓에 팀장님은 하루 종일 훈련장에 있다가 이제야 사무실에 복귀를 하셨다.

“다들 먼저 퇴근해. 나는 훈련 좀 더 하다가 갈 테니까.”

팀장님께서 땀에 흥건하게 젖은 모습으로 말했다.

진짜 이렇게까지 노력하시는데 본부장 승진 못 하면 울기라도 하실 기세다.

“어? 팀장님! 던전 공략 과목 일정 공지 떴어요!”

“지금?”

“예! 방금요!”

“시험 유형은?”

“B형입니다! 이거 팀장님이 가장 자신 있어 하던 유형 아닙니까?”

팀장님이 그렇다는 듯 씩 미소를 짓는다.

승진 시험 중 던전 공략 과목의 세 가지 유형 중 B형은, 제한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제거하느냐가 핵심이다.

가장 단순하기도 하지만 체력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주로 B형에 강했다.

임의로 정해지는 유형이었는데, 아무래도 팀장님께서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

“크큭, 이거 잘하면 진짜로 본부장 되겠는데?”

이미 승리를 확신하신 표정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상대는 누구야?”

“어디 보자…… 음?”

부팀장님이 일정표를 다시금 살피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서히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 그게…….”

“왜? 누군데?”

“……본청 기동 1팀장 김신입니다.”

“…….”

‘김신’이라는 이름이 언급되기 무섭게 팀장님의 얼굴이 무너졌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제법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다.

“왜 하필 김신이야!”

“팀장님. 이런 말씀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시험을 치를 던전이 ‘구름나무 숲’인데…….”

“시팔. 본부장 자리는 물 건너갔네.”

한숨을 내쉰 팀장님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구름나무 숲은 공중형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으로 원거리 딜러가 없는 우리 팀에겐 다소 불리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김신이 누구예요?”

일단, 상대에 대해 부팀장님께 물었다.

다들 아는 눈치인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김신, 입사 5년 차 슈퍼 엘리트. 서울 헌터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서울 지부 기동대 특채 역시 수석으로 합격했지.”

“오호? 그런 실력자가 왜 길드가 아닌 협회에 있는 거죠?”

“그럼 막내 너는?”

“저야, 뭐 개인적인 사정이…….”

“김신의 아버지가 예전에 서울 지부장이었어. 협회장까진 오르지 못했지만. 김신의 목표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협회장의 꿈을 대신 이루는 거라고 하더군.”

“대단하네요.”

“더 대단한 건 이거야. 서울 지부 출신으로 입사 2년 차에 2계급 승진하여 본청 기동대에 들어갔고, 3년 차에 팀장을 달았어. 그리고 4년 차 때부터 본청 기동대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1팀을 이끌게 됐지.”

“승진이 엄청 빠르네요?”

“현 서울 지부장의 오른팔이라는 말이 있어서인지, 지부장이 좀 밀어주는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도 많은 공을 세웠어. 막내 너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큼지막한 균열은 죄다 김신이 처리했거든.”

“헌터 등급은요?”

“현재 B급 이상. 원거리 딜러 계열로 주 무기는 활을 사용하고, 김신이 이끄는 본청 기동 1팀 역시 대부분 원거리 딜러들이야.”

팀장님이 좌절할 만도 하다.

김신이 원거리 딜러라면, 구름나무 숲과 같은 공중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던전에선 그쪽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게다가 슈퍼 엘리트라고 하지 않는가.

팀장님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여태 훈련 열심히 했으니까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팀장님.”

“내가 예전에 김신이 활 쏘는 거 본 적이 있다?”

“그런데요?”

“트윈 헤드 오우거 대가리를 일격에 관통시키더라. 그놈 대가리가 두 갠데도! 괴물 같은 놈이야, 그놈.”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팀장님이었다.

그런 팀장님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걱정을 한다는 건, 아마 김신이라는 자의 능력이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일 터.

아무래도 기를 좀 살려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하면 곤란하거든.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

“아무래도 김신이 보통 녀석이 아니니까…….”

“팀장님한텐 저 있잖아요. 저도 보통 놈 아닌데?”

“구름나무의 숲은 우리 팀한텐 절대적으로 불리한 공중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던전이야.”

내가 입사한 뒤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유형의 던전이다.

우리 팀 역시 공중형 몬스터는 자주 겪어 보지 않아 낯선 상황이었다.

“보통 공중형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은 대개 지원을 받아. 근접전에 특화된 우리 팀 같은 경우엔 공략이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팀장님 본부장 승진하려면 어떻게든 해내야겠죠.”

“무슨 좋은 수라도 있는 거야?”

“으음…….”

좋은 수라. 잠시 머리를 굴려 본다.

때마침 괜찮은 방법 하나가 떠오른다.

“팀장님, 혹시 고소공포증 같은 건 없으시죠?”

“뭐……?”

* * *

일반 대원들이 개인 던전 공략 시험을 치르는 반면, 팀장급은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해당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그간 자신이 이끌어 온 팀원들과의 팀워크는 물론, 팀장 본인의 통솔력과 전술 능력, 그리고 개인 기량 등 시험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들로 팀장의 역량을 평가하기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은?”

“1분 31초 남았습니다, 팀장님.”

현재까지 총 100마리의 몬스터를 제거한 상황.

본청 기동 1팀장 김신 역시 이번 공채 시험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좌측 상공, 중형 구름 매 다섯 마리 출현했습니다.”

“우측 상공, 대형 구름 매 두 마리 발견!”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신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부팀장은 대원들과 함께 좌측 상공의 녀석들을 맡아.”

“예, 팀장님!”

대형 구름 매 한 마리는 중형의 다섯 배 힘을 가진 준 보스급 몬스터였다.

그러나 김신은 대형 구름 매 두 마리를 자신이 홀로 처리하기로 했다.

아직 능력이 부족한 팀원들의 화살은 대형 구름 매에게 미처 닿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중형 놈들보다 훨씬 더 높이 날 수 있었으니까.

스윽-

김신이 우측 상공을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긴다.

먹잇감을 발견한 대형 구름 매 한 마리가 김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 댔다.

피융-!

김신의 손에서 화살이 떠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측 상공을 향해 쇄도한 화살은 그대로 대형 구름 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대형 놈은 김신의 공격이 실패했다고 판단했고.

아쉽게도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퍼어어엉!

빗나간 화살은 대형 놈보다 5m쯤 더 위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폭발한 화살은 다시금 수십 개의 화살이 되어, 두 마리의 대형 구름 매를 향해 동시에 쏟아졌다.

말 그대로 화살 비가 내렸다.

당황한 구름 매가 허둥지둥하며 날개를 펄럭였으나, 쏟아지는 화살의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

피융-!

이번엔 김신의 손을 떠난 또 한 발의 화살이 당황하던 놈의 머리를 관통했다.

피융-!

이어 또 한 발.

역시나 정확하게 옆에 있던 다른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정확도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화살 비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진 녀석들이었으니까.

- 시험 종료.

제한 시간이 모두 소진됐다.

시험이 끝남을 알림과 동시에 주변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던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익숙한 협회 건물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 본청 기동 1팀, 총 107마리 제거.

던전 시뮬레이션 시험장.

중앙의 모니터 위로 김신의 성적이 떠오른다.

‘현재까지는 1위다. 시험 중에 큰 문제는 없었으니, 역량 평가에서도 감점 요소는 없을 테고.’

이제 남은 건 대기실에서 마지막 팀의 실력을 감상하는 것뿐이다.

“긴장하신 것 같습니다, 팀장님.”

“조금 긴장이 되는군.”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저희 팀이 자그마치 107마리를 제거하지 않았습니까? 여태 다른 팀들은 50마리도 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두 배 이상의 성적을 낸 김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묘한 긴장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 팀이 우리 성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럴 리가요. 공중형 몬스터가 출현하는 던전에서 저희보다 뛰어난 팀은 없을 텐데요?”

김신은 서울 지부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경기 지부 기동 3팀에 전준우라는 자가 있어. 요즘 협회장님께서 눈여겨보고 계시지. 나도 교류 센터 당시에 얼추 실력을 가늠해 봤는데, 자네랑 비슷한 수준이더군.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서울 지부장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눈 높은 서울 지부장이 그렇게까지 말을 할까.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겠지.’

그래선 안 되지만.

공채 시험 최고점자에게 본부장 특진이 주어진다는 귀띔마저 해 줬던 서울 지부장이었다.

때문에, 김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진다면 그건 명백히 실력에서 밀린다고 볼 수밖에.

“어? 저자는……?”

그때였다.

모니터 속 시험장에 마지막 팀인 경기 지부 3팀이 입장해 시험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이자, 부팀장이 누군가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저랑 대인 전투술 시험 치렀던 사람인데?”

“부팀장, 대인 전투술 1등 했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제가 1등 했고, 저 사람이 2등 했습니다.”

팀장급 아래의 일반 대원들은 이미 모든 시험을 다 치른 상황이었다.

부팀장의 말대로 이미 그들은 성적까지 모두 나온 후였는데…….

‘부팀장이 이겼다고? 저자를?’

김신은 의아했다.

모니터 속 시험 안내자의 소개에 따르면, 부팀장이 이겼다는 남자가 바로 전준우였기 때문이다.

협회장님이 눈여겨보고 있고, 서울 지부장이 우려하던 바로 그 사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부팀장에게 졌다니?

“내가 알기론, 전준우라는 자가 나랑 대등한 수준이라던데.”

“예? 에이! 말도 안 됩니다! 팀장님과 대등하다니요? 저보다 훨씬 못한 수준입니다.”

대인 전투술 시험에서 준우를 이겼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만약, 준우가 일부러 져 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절대 못 할 말이었겠지만.

그것도 일부러 져 준 이유가 최고점을 받으면 장기간 해외 연수를 가야 하고, 가족들과 오랫동안 떨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 선화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라는 걸 안다면 정말이지 기가 차기도 했을 거다.

“설마, 전준우라는 자 때문에 여태 긴장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런 거라면 진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흐음.”

“검을 쓰는 자입니다. 공중형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상당히 버거울 거고,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죠. 절대 팀장님께서 걱정하실 수준이 아닙니다.”

김신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부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울 지부장은 왜 자신에게 긴장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을까.

“저자가 대인 전투술에선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을지라도, 던전 공략에선 다를 수도 있어. 일단 지켜보자고.”

김신은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다.

서울 지부장의 말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잘해도 저희 기록은 깰 수 없을 겁니다. 솔직히 107마리도 저희 팀 신기록인데, 그걸 어떻게 넘깁니까?”

“그렇긴 하지.”

“뭐, 저쪽 팀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면 모를까…….”

모니터 속 경기 지부 기동 3팀의 시험이 시작됐다.

준우가 차원문을 개방했고, 마력을 운용해 차원문의 크기를 키웠다.

평소보다 수십 배가량은 커진 차원문의 입구에 대기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뭐지? 소환술 같은 건가?’

모니터를 바라보던 김신이 눈을 게슴츠레 떴고.

이내 그의 두 눈은 놀란 듯 휘둥그레졌다.

끼이이이이-!

차원문 속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등장한 은실이.

거대하게 변한 녀석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커다란 용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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