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우리 사위, 많이 먹어 (136/246)

◈ 우리 사위, 많이 먹어

- 나 : 어떤 반지를 원하십니까, 장모님?

- 황 여사 : 만나서 얘기할게. 어차피 같이 저녁 먹기로 했으니까.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뒤에 장모님께서 직접 고르신 식당에서 저녁 식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기왕 식사하는 거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않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화와 나, 장모님, 이렇게 셋이 식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들끼리 식사하는 김에 더 많은 가족들이 함께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장모님, 큰형님도 부를까요?”

- 재혁이?

“네. 막내 처남도 지금쯤 집에 있을 텐데, 한번 연락해볼게요.”

- 전 서방,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예? 뭐가요?”

- 재혁이랑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걸로 아는데. 둘이 엄청 어색하잖아? 전 서방 식사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불편한 상황에서 식사하면 먹다가 체할지도 몰라.

장모님께 곧장 전화를 걸어 물어봤건만.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나하고 형님이 제법 가까워진 걸 모르시는 거구나.’

하긴, 모를 만도 했다.

계속 해외에 계셨고, 형님이 굳이 나에 대에 언급할 리는 없었으니까.

워낙 표현이 서툴러 그런 얘기를 할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전 괜찮습니다.”

- 동혁이는? 걔가 텐션이 하도 좋아서 조용히 식사하는 게 어려울 거야. 엄마인 나도 동혁이 텐션 잡는 게 영 어렵더라고. 쉴 새 없이 떠들 게 뻔한데, 괜찮겠어?

“정말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면 나야 좋지. 근데, 전 서방이 혹시라도 껄끄러워할까 봐 내 나름대로는 배려를 한 거였는데.

“저도 좋습니다. 장모님이 기쁘시다면, 저 역시도 마찬가지니까요.”

- 말은 진짜 예쁘게 잘해? 아무튼, 나는 몰라. 분명히 전 서방이 먼저 제안한 거야. 식사하다가 후회해도 내 탓 하지 마.

“그럴 일 없을 겁니다.”

-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핸드폰 너머로 장모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내 당당함이 썩 싫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라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게 불편할 수도 있는 거고, 맞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굳이 내 자식들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가깝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야.

“장모님께 잘 보이고 싶은 건 맞는데, 억지로 가깝게 지내보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저 큰형님은 물론, 처남하고도 이미 엄청 친하거든요.”

- 전 서방, 진짜 자신감 하나는 끝내준다.

장모님께서는 실소를 터뜨리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큰형님과 처남의 성격을 잘 알고 계셔서 그런지, 내 말을 쉽게 못 믿으시는 것 같다.

쩝, 우리 진짜 친한데.

실제로 보면 엄청 놀라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저녁 식사 자리는 황장미가 직접 선정한 가게였다.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라고 했던가. 황장미 본인은 물론, 선화와 준우도 매우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대하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얘네들은 온다면서 왜 이렇게 안 와?”

가게 앞, 황장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장남과 막내가 온다고 했는데 여태 깜깜무소식이다.

“10분쯤 늦는다고 하긴 했는데……아! 저기 오네요!”

준우가 손가락으로 골목 쪽을 가리켰다.

듬직한 수재혁의 옆으로 개구쟁이 같은 동혁이가 방방 뛰어대며 수재혁에게 재잘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내 곧 동혁이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아마, 형에게 장난을 쳤다가 또 한 소리 듣고 있는 거겠지.

황장미는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추측을 했다.

“어?”

울상이던 동혁이가 반색한 건 바로 그때였다.

황장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내달리기 시작한 동혁이는 냅다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아아아! 보고 싶어써!”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막내아들이었다.

유난히 엄마에게 어리광이 많은 녀석이었는데.

“매혀어어엉! 보고 싶어써요!”

똑같이 준우에게 안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말도 안 돼!’

황장미는 놀란 눈을 치켜 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동혁이지만, 또래에 비해 철이 많이 든 아이다.

나름 컸다고 엄마한테도 잘 안 안기려고 했다. 지금처럼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막내아들이 덥석 준우에게 안기는 모습이라니.

“처, 처남. 좀 징그럽거든.”

“매형 보니까 조아서 그러죠!”

준우가 곤란해하자 수재혁이 나섰다.

차갑게 두 사람 사이를 갈라내며, 억지로 동혁이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수재혁.

“수동혁. 매제 귀찮게 하지 말고 저만치 떨어져.”

“귀찮게 하는 거 아닌데?”

“매제 표정만 봐도 딱 모르겠어? 쯧쯧, 넌 아직 한참 멀었다.”

결국, 수재혁이 힘으로 동혁이를 밀어냈다.

입술을 삐쭉 내민 동혁이가 슬쩍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큰형아가 나 용돈도 끊었어.”

“동혁이 너 또 무슨 잘못했구나?”

“잘못이라니. 오히려 잘한 일이지.”

“응?”

“매형 출동할 때, 내가 대한파 함정 카드를 줬거든. 혹시라도 매형이 위험에 빠질까봐.”

“대, 대한파 카드를?”

황장미도 익히 아는 카드다.

알고 있을 수밖에. 이혼 전 수태광과 함께 논의하여 황장미 본인이 직접 만든 아티팩트였으니까.

‘동혁이가 엄청 아끼는 슈퍼 몬스터 카드였는데. 그걸 전 서방한테 내어줬다고?’

그렇다는 건.

자신이 아끼는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준우에게 호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없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동혁이 얘가 어지간해선 마음을 쉽게 여는 스타일이 아닌데…….’

황장미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특히나, 눈앞에 서 있는 자신의 장남과 준우의 대화 내용은 더욱 기가 막혔다.

“공현철 씨는 잘 있고?”

“예,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번에 형님께서 공현철 대원이 해준 스타일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니, 오히려 자기가 가문의 영광이라며 유난을 떨더라구요.”

“가문의 영광은 무슨. 덕분에 내가 위기를 넘겼으니, 내가 더 감사해야지.”

“원래 그 사람이 좀 유별나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때 자네와 팀원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아무것도 해주질 못했어.”

“아닙니다. 대신 형님께서 저희 임무를 수행해주셨잖아요.”

황장미가 멍하니 두 눈을 껌뻑거렸다.

엑시스 부 마스터인 자신의 아들이 왜 굳이 협회 임무에 나서서 그걸 해결해줬다는 걸까? 설마, 준우를 위해서?

‘재혁이가 그렇게 자상한 성격이 아닌데. 지 동생들이 뭘 부탁해도 쉽게 들어주는 법이 없었잖아? 근데, 전 서방의 임무를 도와줬다고?’

준우를 바라보는 수재혁의 시선이 다정하다.

오히려 동혁이를 바라볼 때 유독 더 사나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선화와 준우가 결혼할 당시에만 해도 영 시큰둥하던 반응의 아들들이었는데,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무실에 필요한 거 없나? 내가 그때 일에 대한 보답으로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비싼 것도 됩니까?”

“매제, 나 수재혁이야. 엑시스 부 마스터라고.”

“하하! 농담입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형님.”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황장미.

어느새 그녀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어쨌거나 보기는 좋네.’

가족들이 서로 잘 지내는 데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전 남편인 수태광이 지금도 준우와 선화를 못살게 굴고 있을 것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심히 괴로울 텐데, 이렇게나마 자신의 아들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들 배고프지? 어서 식사부터 하자.”

커다란 팬 위에 눈처럼 쌓인 소금.

그 안에서 대하가 맛있게 익어갔다.

꿀꺽 -

동혁이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하야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 입만 열면 심 비서가 냅다 달려가서 구해다 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밖에서 먹는 것은 또 달랐다.

가게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바다가 대하의 풍미를 더욱 끌어 올려주는 느낌이다.

“자, 전 서방.”

황장미가 대하 한 마리를 정성스레 까서 준우에게 건넸다.

모처럼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모습에 대한 보답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장모님.”

준우는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

회귀 전에도 장모님이 직접 음식을 건네주신 적은 없었다.

특히나 이렇게 새우를 까서 준다거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준다거나 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짜 너무 맛있습니다! 장모님이 직접 까주셔서 그런가. 입에서 살살 녹네요.”

“참나. 내가 까줘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 집이 맛있는 거야.”

황장미가 대하 한 마리를 또 손질했다.

그리고는 살며시 꼬리 쪽을 잡고 들어 올리더니.

“……또 저 주시는 겁니까?”

이번에도 준우에게 대하를 건넨다.

“우리 사위 많이 먹으라고.”

“이, 이젠 제가 직접 까서 먹겠습니다, 장모님. 저는 괜찮으니 처남한테 주심이…….”

“지금 내 성의를 거절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는 준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황장미.

그녀가 또 다시 대하를 손질하자, 자연스레 삼남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크흠! 두 번째 새우는 나한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재혁은 조금 전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고.

‘엄마도 매형한테 푹 빠졌구만! 역시 우리 매형이 확실히 잘나긴 했다니깐!’

동혁이는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화는 마냥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엄마랑 오빠랑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 잘 지내면 좋겠는데.’

이어 황장미가 세 번째 대하 손질을 마쳤다.

수재혁의 눈빛이 빠르게 황장미의 손에 쥐어진 대하로 향했다.

“재혁아.”

“예, 어머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수재혁이 반색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손을 들어 올려 황장미의 손에 쥐어진 대하를 받으려는 찰나.

“넌 왜 안 먹어? 입맛이 없니?”

그렇게 말한 황장미가 이번에도 대하를 준우의 접시 위에 올려두었다.

“……헛!”

“……크흠!”

순간, 준우와 수재혁의 눈이 마주쳤다.

민망함과 미안함이 오가는 기이한 분위기 속, 황장미가 이번에도 네 번째 대하를 준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많이 먹어.”

“예, 옙! 근데, 저 진짜 더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장모님.”

“챙겨주고 싶어서 그래. 곧 시험도 치르게 될 텐데, 많이 먹고 힘내야 하지 않겠어?”

기분 좋은 모습을 선사해준 준우가 고마워서 새우를 계속 건넨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준우가 곧 있을 협회의 특수 본부 공채 시험에서 최선을 다해 모든 능력을 끌어올려 주길 바라는 마음.

‘나는 전 서방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이번에 꼭 확인해보고 싶거든.’

별거 아니지만, 새우라도 잔뜩 먹고 힘을 내주길.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준우는 그저 멍할 뿐이었다.

“시험이요……?”

“전 서방에게 거는 기대가 커. 부디 날 만족시켜줬으면 좋겠어.”

준우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장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랄까.

그리고 수재혁은.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김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 우리 나중에 대하 먹으러 오자.

- 나 : 가족들이랑 대하 먹으러 왔는데, 여기 참 맛있네.

아직 한 마리도 먹지 못했지만.

그냥 김 비서의 반응이 보고 싶어서 한번 보내봤다.

- 공주님 : 나 새우 엄청 잘 까는데!

- 공주님 : 오빠는 먹기만 해. 내가 싹 다 까줄게!

수재혁이 헛기침을 하는 척 입을 가리며,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애써 숨겼다.

***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장모님께서 생신 선물로 받고 싶다던 반지의 이름을 말씀해주셨다.

‘이지스(Aegis)’ 라는 이름의 반지이자 아티팩트.

이상한 건, 이 반지가 내 기억에 의하면 원래 장모님께서 항상 착용하고 다니시던 반지라는 거다.

‘이미 갖고 계실 텐데, 그걸 왜 갖고 싶다고 하시는 거지?’

똑같은 아티팩트 효과는 중첩되지 않는다.

즉, 두 개를 가질 이유는 딱히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모님께서 직접 만드신 아티팩트잖아? 필요하시다면 다시 만드실 수도 있을 텐데.’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장모님께서만 만들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고로, 나는 그 반지를 구할 수가 없다.

자신만만하게 뭐든 해드리겠다고 말했지만, 그 반지를 만들 재주는 내게 없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 나한테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셨을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이런 걸로 농담을 하시는 분은 아니었으니까.

-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

며칠 뒤, 장모님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출근하기 무섭게 부팀장님이 사무실 문을 덜컥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대박! 초고속 승진 가능한 기회가 생겼다!”

“초고속 승진이요?”

무슨 일인가 해서 살펴보니.

본청에서 특수 본부라는 기관을 새로 창설하는데, 해당 기관의 인력을 충원한다는 공고가 뜬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공고문을 읽어갔다.

일단 접수 기간은 짧다. 딱 2주간 접수를 받는단다.

‘경기 지부 특수팀도 특수 본부에 속하게 되는 거면, 앞으로 특수팀도 본청 소속이 된다는 뜻인데…….’

중요한 건.

단순한 채용 공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존 기동대 인원들에 한해 공채를 뽑고.

합격자는 전원 승진이다. 어떻게 보면 공채라기보단 승진 시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합격자에겐 포상금과 아티팩트가 주어진다?’

그때였다.

공고문을 읽어가던 중 나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다.

최고점 합격자에게 주어지는 포상.

포상금보다는 아티팩트에 시선이 갔다.

‘포상으로 주어지는 아티팩트가 이지스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던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번에 장모님께서 협회 본청에 가셨던 이유가 이거였나?’

장모님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이건 테스트였다.

장인어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위를 갖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게 되는 시험 말이다.

물론, 협회의 공채 시험이긴 하지만.

나에겐 내 나름대로 사활이 걸린 중대사이기도 했다.

‘장모님의 반지를 되찾으려면, 공채를 최고점으로 합격해야 한다는 건데…….’

……흐음. 참 다행인 것 같다.

장모님만이 만들 수 있는 이지스를 어떻게 구해야 걱정이었는데, 까짓거 최고점으로 공채 합격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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