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라이트
10초 안에 대피하는 건.
형님의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헌터들이기에 일반인보다는 빠르겠지만, 최소 1, 2분은 걸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열 개의 얼음 유성이 떨어지기까지 아군이 위치한 곳엔 크게 타격이 없었다는 거랄까.
형님께서 10초 안에 대피하라고 무섭게 말씀은 게 하셨어도, 어느 정도 우리를 배려해 힘을 덜 쓴 걸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장모님 만나러 가는 것만 해도 엄청 급할 텐데, 이 정도면 엄청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신 편이겠지.’
형님이 계신 곳과 제법 떨어진 곳으로 대피한 우리는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를 관람했다.
우리에겐 보급받은 특수 망원경이 있어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 형님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근데, 우리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
“형님께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하시던데요. 재수 없으면 얼음 유성에 휩쓸린다고.”
고개를 끄덕인 팀장님이 망원경을 통해 저 멀리의 형님을 응시했다.
나머지 팀원들도 마찬가지.
참고로 형님 팬클럽인 ‘수재혁명’ 의 부회장인 고진희는 갑작스런 형님의 등장에 울먹이기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 내가 얼음 왕자님과 같은 전장에 서게 되다니! 흐흑, 이게 꿈이야, 생시야!”
“얼음 왕자요?”
“우리 재혁님 애칭이에요!”
못 들은 걸로 해야겠다.
너무 낯간지럽거든.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차례대로 떨어지던 열 개의 얼음 유성 중 마지막 하나가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소용돌이는 여전히 피의 창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나저나, 형님 능력에 비해 너무 약하지 싶은데? 이 정도로 대피하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때였다.
형님이 우리 쪽을 슬쩍 돌아보고는, 이번엔 스무 개의 얼음 유성이 재차 만들어졌다.
조금 전의 두 배였고, 힘을 더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휩쓸리는 걸 우려해서, 완벽하게 대피를 할 때까지 여태 기다려주신 거였어.’
고작 2분 기다려주긴 했지만.
미래의 장모님과의 약속이 이제 약 17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하게 오래 기다려준 셈이었다.
‘과연, 소용돌이를 무력화시키는 데 얼마나 걸릴까?’
스무 개의 얼음 유성이 소용돌이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고, 주변에는 얼어붙어 흩어지는 피의 창 파편이 가득했다.
“우리 얼음 왕자님 지휘자 같지 않아요?”
“뭔 지휘자요?”
“하늘의 아름다운 유성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랄까?”
장인어른께서 이 말을 듣는다면 뭐라고 반응하시려나.
아마 지랄도 풍년이라고 하시겠지.
“어, 어? 안 돼애애애!”
순간, 고진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해서 형님 쪽을 봤더니, 빗나간 피의 창 하나가 주변에 있던 진흙 구덩이에 내다 꽂힌 상황이었다.
“우, 우리 얼음 왕자님의 완벽한 헤어스타일이……망가졌어…….”
문제는 형님께서 손수 손질하신 머리카락에 진흙이 튀었다는 거다.
어제 소나기가 잠깐 와서 저런 구덩이가 생긴 모양인데.
‘이거, 일 났군.’
미래의 장모님께 잘 보인다고 잡내 배지 않는 향수까지 뿌린 사람인데, 머리가 망가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얼음 유성 사십 개가 더 만들어졌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앙…….
소용돌이가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듯, 회전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
그리고 훨씬 격렬해진 움직임.
‘아뿔싸!’
그 과정에서 새빨간 피 한 방울이 형님의 수트에 튀었다.
눈에 잘 띄는 가슴 정면 쪽이었고, 하필이면 색상도 베이지라 핏자국이 너무 또렷하게 보였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이번에는 여든 개의 유성이 쏟아져 내렸다.
두 배씩 늘어나는 걸 보니 그 이상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소용돌이의 발악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역시 엑시스의 부 마스터는 부 마스터인가.”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팀장님?”
“협회를 도와 적을 처단하겠다는 정의감. 그 투철한 정의감 하나만으로 지금 여기서 우릴 돕고 계시는 거잖아? 뭐, 물론 막내 네가 있기도 하다만은…….”
“단연 막내뿐만은 아닐 겁니다. 막내를 도우려고 하는 것치고는 수재혁 부 마스터가 엄청 분노한 모습이잖습니까? 표정에서부터 살기가 느껴지는데, 그게 막내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어렵죠.”
“맞아요! 저도 얼음 왕자님께서 저렇게 화가 나신 모습은 저도 처음 봐요! 아마 저 소용돌이를 빠르게 무력화시키겠다는 헌터로서의 사명감 같은 걸 거예요!”
이 사람들 아주 단단히 잘못 짚었다.
형님께서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속된 말로 형님께서 현재 개빡친 진짜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으니 말이다.
“여러분! 얼음 왕자, 아니, 우리 유성 왕자께서 적을 완벽하게 처단하셨습니다! 다 함께 박수! 짝짝짝!”
고진희가 형님께 한번 더 반했다며 유난을 떨었다.
그새 애칭이 유성 왕자로 바뀐 것 같은데.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형님이 빡친 관계로 상황이 5분 만에 종료가 됐다는 거다.
그 사이에 소용돌이가 완전히 소멸했으니 말이다.
‘만약 수트에 핏방울이 튄 게 아니라, 아예 찢어졌다면?’
으으! 상상도 하기 싫다.
물론, 그랬더라면 5분이 아닌 1분 만에 상황이 종료됐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그 분노로 인해 아군까지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형님.”
나는 저 멀리서 터벅터벅 다가오는 형님을 짠하게 응시했다.
협회 소속 헌터들의 형님에게 박수 갈채를 쏟아냈지만, 정작 당사자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매제. 다 끝났네.”
“…….”
“약속 시간이 약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딴 몰골로는 도저히 그 자리에 갈 자신이 없어.”
피가 튄 수트.
그리고 진흙이 묻어 굳어버린 헤어.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조금 전처럼 화려하고 대단한 전투를 한 사람치고는 이 정도면 깔끔한 편이었다.
협회 소속 헌터들이 전투를 했더라면, 어디 하나 부러졌거나 최소한의 유혈사태는 일어났을 것이다.
“걱정 마세요. 형님께서 저희를 대신해 임무를 끝내주셨으니까, 이번엔 저희가 보답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 어떻게?”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딱 지금 형님께 필요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공현철 대원님. 좀 도와주세요.”
“에? 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응당 돕겠으나, 제가 부 마스터님을 위해 도울 수 있을 일이 과연 있을지……?”
“형님께서 지금 급하게 중요한 약속에 가셔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의상과 헤어에 문제가 생겨서요.”
“하핫! 고작 그게 문제였습니까? 그건 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현철이에게 문제도 아닙니다만!”
언제부터 자칭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에도 언급했듯 공현철은 외모 가꾸는 것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메이크업 관련 아이템을 지니고 다닐 만큼.
“헤어 같은 경우는 이 아이템을 쓰면 됩니다, 부 마스터님! 이게 요번에 새로 출시된 잇템인데, 버튼 하나로 머리를 감고, 말리기까지 한 것처럼 만들어주거든요?”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1분이면 됩니다! 이후엔 제가 최대한 프레쉬하고, 빠르게 끝나는 스타일로 살짝만 만져드리면 되는 거고…….”
“그게 1분 만에 된단 말입니까?”
말 그대로 진짜 아이템이다.
화장품이나 도구 같은 게 아니라, 실제 헌터들이나 사용하는 바로 그런 아이템.
최근 공현철이 월급 1/3을 저 아이템 할부 갚는 데 쓰고 있다고 했던가.
“수트에 튄 핏자국 역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남자는 수트빨! 중요한 자리에 가셔야 하는데, 작은 핏자국조차 용납할 순 없겠죠? 이건 바로 이 아이템을 사용하면 된답니다!”
“그, 그건 또 뭡니까?”
“이걸로 입고 계신 옷의 색을 복사해서 똑같은 색을 옷 위에 덧씌우는 겁니다. 세탁은 나중에 하면 될 거 같고, 당장은 핏자국이 눈에 띄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요?”
또 월급의 1/3은 저 아이템의 할부를 갚는 데 쓰고 있었고, 그 나머지로 화장품 구매 비용과 생활비로 쓴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혈전과도 같은 공현철의 손놀림에, 형님의 수트와 헤어는 그의 능력과 아이템으로 말끔하게 정돈이 됐다.
“매제, 포탈 시스템은?”
“협회장님께 요청해서 준비해뒀어요. 저기 포탈 열려 있구요, 저거 타고 협회로 가셨다가 다시 엑시스 호텔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조, 조심히 들어가십쇼, 수재혁 부마스터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네, 저도 반가웠습니다.”
팀장님이 허리까지 숙여가며 인사를 건네셨다.
직장 상사도 아닌데,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아무튼.
형님께서도 기분 좋게 약속 장소로 떠나셨으니, 이젠 우리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였다.
나를 포함한 협회 소속 헌터들은 소용돌이가 있던 장소로 움직였다.
다들 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하자마자 감탄을 자아냈다.
“와아! 미, 미쳤다 이건. 오, 오죽하면, 내, 내가 말까지 더듬겠어?”
“말 더듬을 만해. 진짜 봐도, 봐도 믿기지가 않네.”
팀장님은 눈앞의 상황을 목격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쉬이 입을 다물 수가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으니까.
“망원경으로 볼 땐 체감이 안 됐었는데, 직접 여기 와서 보니 훨씬 더 어마무시하구나…….”
함정 카드에 적혀 있던 글귀처럼, 말 그대로 대한파.
마치 빙하시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해당 지역 내 모든 것이 새파랗게 얼어붙어 있었다.
“서, 설마, 그놈 죽인 거 아냐?”
“죽이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 없으신 분이 아니니까요.”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당황하던 팀장님이 문득 어딘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팀장님의 시선이 향한 곳에 얼음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안에 소용돌이를 만들어낸 주범이 갇혀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죽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봉인된 거예요. 형님 능력 중 하나죠. 해동시키면 다시 숨 쉴걸요?”
“해동은 어떻게 해?”
“협회에 쓸만한 장비 있을 테니까, 그걸로 하면 될 겁니다.”
장인어른 모셔와서 부탁하면 금방 끝날 거 같은데, 형님까지 소환했던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장인어른은 더 불러내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던가.
“일단은 이 상태 유지하면서 협회로 옮기도록 하죠.”
형님 덕에 딱히 힘들이지 않고 상황이 종료됐다.
이제 남은 건, 녀석을 해동시킨 뒤에 배후를 조사하는 것.
“뒤처리야 복원팀이 처리할 테고, 해동까지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죠?”
“아무래도 그럴 듯싶다. 그나저나, 막내야. 모처럼 일찍 끝났는데, 우리 간만에 같이 한 잔 하러…….”
“안 됩니다.”
“……아직 말도 다 안 끝났는데, 끊어버리냐?”
“선화가 빨리 오랬거든요. 저 먼저 퇴근합니다?”
아마 지금쯤 영화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팝콘은 선화의 입맛대로 카라멜 맛이 좋겠지?
***
엑시스 호텔 로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온 수재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미래의 장모님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매우 흡족해하셨던 덕분이었다.
“내가 샀어야 했는데. 고마워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고맙긴요. 제가 언젠가 꼭 어머님께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거든요. 그 소원을 오늘 이루게 해주셨으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호호! 말도 참 젠틀하게 하시지.”
김 비서와 똑 닮은 미모의 중년 여성이 기분 좋게 웃었다.
식사 내내 지금과 같은 예의와 겸손함, 그리고 반듯함을 잃지 않은 수재혁이었다.
사실 딸아이가 직장 상사를, 그것도 재벌가 중에서도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인 엑시스의 장남을 만난다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편견이긴 하겠지만, 재벌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건방진 이미지랄까.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이겠지.’
아무튼.
수재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딸아이를 평생 그에게 맡겨도 좋을 만큼.
“전 이만 가볼게요. 두 사람 오붓하게 시간 보내요.”
“벌써 가시려구요?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습니다. 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면 좋을 것 같은데…….”
“젊은 선남선녀 사이에서 저녁 한 끼 먹은 걸로 매우 만족해요. 더 이상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
“방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머님!”
그녀는 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수재혁과 자신의 딸을 은근한 시선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김효정. 넌 복 받은 줄 알아.”
“나도 알아, 엄마. 나 복 받은 거.”
수재혁이 내심 환호성을 내질렀다.
방금 모녀의 대화가 자신에 대한 칭찬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다음엔 제가 저녁식사 대접할게요.”
“아, 아닙니다, 어머님. 다음번에도 꼭 제가…….”
“그땐 우리 집으로 와요. 효정이 아빠도 재혁 씨가 어떤 사람인지 많이 궁금해했거든요.”
“지, 집으로……말입니까?”
수재혁이 모셔다드리겠다고 했음에도 그녀는 홀로 유유히 떠나갔다.
나중에 꼭 집에 초대하겠다는 말을 또 한번 남긴 채로 말이다.
“기, 김 비서, 아니, 효정아.”
“왜?”
“어머님께서 날 집으로 초대하셨다는 건, 날 사위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김 비서가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공석에서라면 모를까, 사석에서는 서로 말도 편히 하며 농담도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연인 사이에선 당연한 일이었지만, 공사가 뚜렷한 김 비서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랄까.
“글쎄라니. 딱 봐도 그린라이트 맞는 거 같은데?”
“엄마 마음은 엄마만 알겠지.”
“설마,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야?”
김 비서가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수재혁이 너무 귀엽게 보여서였다.
과연 세상 어느 딸 가진 엄마가 엑시스의 장남을 사위로 맞이하는 걸 반대를 할까.
“아무래도 그린라이트가 아니라면, 내가 약속 시간에 너무 딱 맞춰서 온 게 별로셨던 거겠지? 사실, 더 일찍 도착했었는데 갑자기 어디로 소환되는 바람에…….”
“농담이야, 농담.”
막상 아까 전의 일이 언급하니 느닷없이 협회의 사건 현장에 소환되었던 바로 그 순간이 떠올랐고, 자연스레 동혁이의 얼굴이 연상됐다.
“잠깐만, 효정아.”
그리 말한 수재혁이 곧장 동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맹랑한 꼬맹이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다.
- 하이, 엘사.
“수동혁 너!”
- 뭐, 뭐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구 그래!
“누가 함부로 아티팩트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라고 했어? 그거 아버지가 너 위급할 때만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했을 텐데?”
- 아아, 매형한테 준 함정 카드 말하는 거?
“그래, 이 자식아! 그게 얼마짜린 줄 알고!”
수재혁이 값어치를 논할 정도면.
실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자랑하는 아티팩트였을 거다.
- 매형이 출동한다잖아? 혹시 위험할지 모르니까, 내가 특별히 준 건데? 어차피 아빠가 나 쓰라고 준 거고, 나는 내가 적당히 잘 썼다고 생각하고…….
“이 자식이 꼬박꼬박 말대꾸야!”
그나마 다행인 건 아티팩트 카드가 총 두 장이었는데, 그중에 수재혁을 소환하는 카드를 준우에게 줬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한 장은 수태광을 소환하는 것이었고, 만약 그가 소환되었더라면…….
“……에휴!”
수재혁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9살 꼬맹이에게 굳이 그런 경우까지 언급해서 무엇하랴.
괜히 자신의 입만 아픈 것을.
하지만.
자칫 조금만 더 늦게 소환되었으면, 미래의 장모님과 식사를 하는 도중에 사라졌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긴 했으나, 그 상황을 상상하니 절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수동혁. 너 당분간 용돈 없다.”
- 뭐어어?
참고로 동혁이의 용돈 관리는 수재혁이 하고 있었다.
좋은 뜻으로 준우에게 카드를 건네준 것이니 그게 마냥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다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는 있는 아티팩트였다.
‘동혁이는 아직 어려. 한동안 용돈을 끊어서라도, 아티팩트 사용하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주긴 해야겠지.’
이번에는 준우에게 줘서 다행이지, 만약 그걸 지금보다 더 쉽게 쉽게 사용해버리면 곤란해지기에 확실하게 경고를 해줘야만 했다.
‘동혁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키는 용도로만 쓸 수 있도록.’
요 꼬맹이가 이번보다 더 맹랑한 짓을 할지도 모르고, 다음번엔 더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직 어린 막내 동생이 아주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길 바라는 형의 걱정이 앞선 탓이기도 했다.
정작 동생이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경우.
아티팩트가 동혁이의 수중에 없다면 아주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거니까.
“도련님한테 너무 악쓰는 거 아냐? 아직 어린데.”
김 비서가 통화를 마친 수재혁을 쓱 살피며 물었다.
“이 녀석은 좋게 말하면 못 알아들어.”
“오빠, 얼굴 너무 굳었다. 표정 좀 풀어.”
“아까 일만 생각하면 계속 화가 나가지고…….”
“내가 오빠 화 풀릴 수 있도록, 엄마가 방금 나한테 보낸 문자 보여줄까?”
“장모님께서 보낸 문자?”
“여기 봐봐. 죄다 오빠 칭찬뿐이야. 오빠 오늘 입은 베이지 수트하고 헤어가 너무 잘 어울렸대.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지, 뭘 입어도 태가 좋은 것 같다고, 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미래 장모님의 칭찬은 수재혁을 댄싱머신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크큭! 역시 그린라이트가 맞았어!”
김 비서가 문자 내용을 다 읊어주기도 전에, 수재혁은 이미 히죽거리고 있었다.
준우의 말대로 베이지 수트를 입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재차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매제한테 고맙단 인사를 제대로 못 했네?’
사건 현장에서 너무 급히 호텔로 돌아오느라 경황이 없었다.
준우는 물론이거니와 팀원이었던 공현철에게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었는데 말이다.
수재혁이 다시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준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순간 아까 준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차! 선화랑 영화보러 간다고 했었지.’
핸드폰이 꺼져 있거나 무음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라면 벨소리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거고.
그래서 일단 문자를 남겨두기로 했다.
조금 낯간지럽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서.
- 매제. 오늘 정말 고마웠어.
- 만약 내가 김 비서랑 결혼에 성공한다면, 그건 모두 자네 덕분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