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에 (2) (128/246)

◈ 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에 (2)

- 나 : 저녁 같이 먹을까?

- 나 : 내가 오늘 오후부터 스케줄이 비거든.

김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낸 수재혁이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미술관장으로 직무 변경이 된 이후로 어찌나 바쁜지, 요즘에는 답장 한번 받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얼굴도 보기 힘든데, 메시지 주고받는 것도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원…….’

모처럼 오후에 스케줄이 빈다.

그런데, 어째 또 김 비서가 시간이 안 될 것만 같았다. 최근엔 수재혁 본인보다 더 바쁜 그의 연인이었으니까.

“후우.”

수재혁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박 비서가 괜히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또 자신이 뭔가 잘못을 하기라도 한 걸까.

“저어, 부마스터님. 기분 울적하시면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은 차라도 한 잔 어떠십니까?”

“괜찮아.”

“커피를 드릴까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진짜 괜찮아.”

“그럼, 클래식 음악이라도 들어 보시는 건 어떠신지?”

“박 비서. 나 괜찮다고.”

“부마스터님, 그…….”

“거, 참.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 그게 아니라, 공주님한테 메시지 답장 왔는데요.”

순간, 수재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책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 화면에 팝업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르고 있었다. ‘공주님’이라고 저장해 둔 김 비서의 애칭과 함께.

“크, 크흠!”

박 비서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다.

좋은 뜻인 거 같은데, 뭐가 그리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민망해진 수재혁이 뒤늦게 애칭을 감추려는 듯, 핸드폰을 쥐고 등을 돌린다.

그리고는 서둘러 김 비서의 답장을 확인했다.

- 공주님 : 죄송해요. 제가 오후에 미팅이 있어서.

- 공주님 : 회장님 미팅이라 취소하기가 어려워요ㅜㅜ

- 나 : 그래? 어쩔 수 없지.

- 나 : 그럼 이번 주말엔?

역시나 답장이 늦었다.

이번엔 30분이나 걸렸다.

- 공주님 : 주말에도 안 될 것 같아요ㅠ.ㅠ

- 공주님 : 미술품 수입 건 때문에…….

다음 주 주말에는 사업 설명회가 있단다.

뭐가 이리 바쁜 건지. 부마스터인 수재혁 자신보다 훨씬 더 바빠진 사람이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박물관을 미술관으로 개편하는 게 말처럼 뚝딱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박물관장의 비리가 있었기에 아마 김 비서가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이러다 얼굴 까먹겠네.’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결혼이었다.

결혼을 한다면 최소한 출근할 때랑 퇴근하고 난 뒤에는 실컷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은가.

- 그러니까, 유성우가 쏟아지는 배경 속에서 김 비서한테 프로포즈를 해라?

- 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장면일 것 같지 않습니까?

- 그렇긴 한데. 만약 그날 유성우가 안 떨어지거나, 날씨가 안 좋아서 유성우가 안 보이면? 말짱 꽝이잖아?

-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저희 딸이 세상에 둘도 없는 신비한 존재거든요. 유성우는 물론, 날씨마저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가히 신적인 존재라 할 수 드래곤인데, 불가능한 일이야 있겠습니까?

- 그래서?

- 이번에 쌍둥이자리 유성우 때, 제가 선화한테 프로포즈 성공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면, 1월에 있을 사분의자리 유성우 때 형님께 기가 막힌 핫스팟 알려 드릴게요.

수재혁은 일전에 준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유성우와 기상 변화, 그것마저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수린이의 능력은 그럴듯했다.

준우의 말마따나 평범한 존재가 아닌 드래곤이었으니까.

‘그래도 뭔가 좀 불안한데. 막상 유성우가 떨어지는 장소에서 유성우를 보지 못하면, 애써 준비한 프로포즈가 물거품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지.’

하지만.

당장 더 좋은 프로포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박 비서. 결혼했다고 했지?”

“네! 결혼 4년 차입니다.”

“혹시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나?”

“예? 프로포즈요? 안 했는데요.”

“응? 그럼 프로포즈 안 하고 결혼한 건가?”

“와이프가 저한테 했습죠. 이래 봬도 제가 프로포즈 받고 결혼한 남잡니다!”

“……여기나, 저기나, 프로포즈 받고 결혼한 남자들밖에 없군.”

정략결혼을 하여 낭만이 없는 친구 녀석들이 제대로 된 프로포즈를 했을 리는 만무.

역시나 주변 인물들 중에서 믿을 건 준우뿐이었다.

더군다나, 유성우가 쏟아지는 배경이 탐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일단, 매제가 프로포즈하는 걸 지켜나 봐 볼까?’

거기서 팁을 얻으면 된다.

직접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도 그리 늦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민을 마친 수재혁이 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매제. 저번에 말했던 그거 말인데. 1월에 있을 사분의자리 유성우 관람 핫스팟. 그거 나한테 넘겨줄 수 있겠나?”

- 당연하죠! 그럼, 이번에 선화한테 프로포즈할 때 도와주시는 겁니까?

“알겠네. 내가 뭘 해 주면 되지?”

핸드폰 너머로 준우의 대답이 들려왔고.

딱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인 듯, 수재혁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져 갔다.

* * *

12월 5일 저녁.

쌍둥이자리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예견된 날이다.

“갑자기 태안을 가자고?”

“응, 내가 포탈 업체에 예약해 놨거든. 그거 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어.”

퇴근 후 난데없이 지방을 내려가자는 준우의 말에 선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가 저문 깜깜한 밤이다. 외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당일치기라는데 지금 거길 가서 뭘 한다는 걸까.

“오늘 밤에 유성우가 쏟아진대.”

“유성우?”

“선화 너랑 유성우 떨어지는 거 보고 싶어서.”

별 보러 가자는 말과 비슷한 의미.

뜬금없지만, 낭만적인 그 말 한마디에 선화의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묘하게 설레네. 연애하는 느낌이 팍 들어.”

“우리 같이 별 보러 간 적도 없잖아. 가서 유성우 떨어지는 거 보면서 소원도 빌고 오자.”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날씨가 쌀쌀하니 담요와 미니 난로도 마련해 뒀고, 유성우를 보며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도 준비해 뒀다.

“우리 오빠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 세심하고 로맨틱하기까지 하다니.”

다행히도 준우가 뒤늦은 프로포즈하러 간다는 사실까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선선한 날씨에 한강에 가서 바람만 쐬고 와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선화였다.

즉흥적으로 유성우 떨어지는 거 보러 가자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이번 쌍둥이자리 유성우를 직관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몇 군데 없어.’

곧 날씨가 흐려질 거다.

유성우 관람하기 좋은 핫스팟에 모여 있는 사람들도 어두워진 날씨에 하나둘 자리를 뜰 거고, 정작 유성우를 목격하는 이들은 몇 없었다.

회귀 전, 당시 뉴스에서도 유성우 보는 게 정말이지 하늘의 별 따기와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핫스팟 중 유일하게 단 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쏟아지는 유성우를 관람할 수 있었다는 기사가 떴다.

그곳이 바로 여기.

준우가 선화의 손을 맞잡고 도착한 태안이었다.

‘신두리 해안사구.’

TV에서나 볼 법한 그런 사막이라기보단, 어딘가 모르게 제주도의 오름을 닮아 있는 곳이었다.

해가 내려앉은 한밤의 사막은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매우 선선했고, 유성우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핸드폰 불빛에 반사된 모래알들은 마치 보석과도 같았다.

“여기 진짜 좋다! 오빠 이런데 어떻게 알았어? 나는 우리나라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조사 좀 했지.”

저 멀리 보이는 모래언덕.

준우는 선화의 손을 꼭 잡고 데크가 펼쳐진 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선화와 눈이 마주칠 때면 살며시 웃어주는 준우였다.

하늘, 땅 위의 사막, 바람까지.

모든 게 완벽한 밤이었다.

“어? 비 온다!”

조금씩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빗방울이 더 거세질 것 같은 분위기에 사구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핫스팟들도 여기랑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겠지.’

하늘의 기상 조건이야 사람이 어찌할 수가 없겠지만, 빛으로 인한 광해는 피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 역시 오늘의 유성우를 보기 위해 대부분 서울이 아닌 지방 쪽을 택했을 것이다.

물론, 서울에도 유성우를 관람하기 좋은 장소는 존재한다.

하지만 양평이나 파주 같은 근교로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갑자기 뭐야? 온라인 생중계도 다 취소됐다는데?”

“오늘 비 소식 없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파주 같은 근교로 갈걸! 집에라도 금방 갈 수 있었을 텐데!”

여기가 집 근처라면 기상청이 오늘처럼 가끔 헛방을 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긴 지방이었고,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겐 이곳 태안이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록 비싼 돈을 주긴 해야 하나, 각성자들이야 포탈을 이용해 왕복 시간이라도 줄일 수도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그것마저도 불가했다.

유성우 보러 지방까지 왔다가 비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떡하지, 오빠? 우리도 그냥 가야 되나?”

선화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조금씩 사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다려 보자. 비는 피하면 되는 거니까.”

준우가 모래언덕 위에 차원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선화와 함께 차원문 내부에 살짝 걸터앉아, 안쪽에서 바깥쪽을 응시했다.

현재 위치한 곳에서만 차원문을 열 수 있다는 특성상 올 때는 포탈을 이용해야 했지만, 갈 때는 차원문으로 쉽게 귀가할 수 있었다.

“이것도 나름 낭만적인데?”

선화가 문득 말했다.

차원문 내부에서 비도 피했겠다, 안쪽에서 바깥쪽을 바라보는 풍경이 썩 괜찮았다.

사막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사람들이 많이 빠져서 그런가? 고요하니까 신비로운 느낌이 드네.”

“꼭 여기 우리 둘만 있는 것 같다.”

“연애할 때 기분 들어. 그때 가끔 한강에서 오빠랑 이렇게 비 오는 거 보고 멍때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선화가 살포시 준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준우는 그런 선화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포개고는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처럼 선화와 함께 나와 도란도란 연애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지나갈 시간이었다.

준우의 예상대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기적처럼 비가 멈췄고, 준우는 그 기적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자, 이제 형님만 잘 해 주시면 된다.’

다른 건 다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프로포즈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와 함께 알아서 시작될 터.

“오, 오빠! 저기 봐 봐!”

선화가 화들짝 놀라 소리치며 하늘을 가리켰다.

비가 오는 오늘과 같은 날에는 절대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유성우가 아름답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날씨가 갑자기 흐려져서 보다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랄까.

그러나.

살짝 부족한 유성우의 공백은 메우면 되는 것이었다.

“어? 저건 뭐지? 유성우보다 더 밝은 느낌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화의 시선이 유성우보다 좀 더 가까운 지점에 머물렀다.

마치 별처럼 밝으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랄까.

그건 바로 준우의 부탁으로 사구 어딘가에 있을 수재혁이 만들어 낸 얼음별이었다.

‘죽어도 하기 싫다고 하시더니, 생각보다 엄청 예쁘게 잘 만드셨네.’

얼음별의 정체를 선화가 알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정체를 파악하는 데 힘쓰기보단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는 것에 열중하는 선화였다.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촬영하는 선화.

“오빠, 뭐가 이쪽으로 오는데?”

촬영 중이던 동영상 화면을 바라보던 선화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음별과 유성우에 반사된 은빛 날개가 허공에서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서, 설마, 은실이?”

씩 웃는 준우를 보며 선화가 물었다.

“이거 다 오빠가 준비한 거야? 서프라이즈로?”

“글쎄.”

“푸흡, 어쩐지 갑자기 유성우 보러 가자고 하더니! 다 계획이 있었구만?”

준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끼이-!

검은색 도화지에 뿌려진 흰색 물감처럼.

유성우와 얼음별이 가득한 그 중심에서 은실이가 선화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고생했어, 우리 은실이.”

그제야 준우가 기다렸다는 듯 은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은지, 은실이가 날개를 털어내며 이내 어딘가로 다시 날아갔다.

입에 물고 왔던 무언가를 선화의 품에 내려놓은 채.

“풀어 봐.”

준우가 말했다.

은실이가 입에 물고 날 수 있게 가벼운 선물을 준비했고, 물고 이동하기 편하도록 포장지까지 고리가 달린 걸로 특수 제작한 것이었다.

“뭐야, 오빠? 나한테 뭐 잘못했어?”

“잘못이라니?”

“뜬금없이 이러는 거 보면 분명히 뭔가 있는 건데?”

“그런 거 아니고…… 프로포즈…….”

“응? 아아! 내가 저번에 뭐라고 한 거 때문에 이걸 준비한 거였어?”

“꼭 그런 건 아니구. 결혼 전부터 프로포즈는 꼭 내가 해 주고 싶었거든. 바보처럼 기회만 보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리는 바람에,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 주고 싶었어.”

“너무 늦은 거 아냐?”

말을 그렇게 해도 얼굴은 웃고 있는 선화였다.

눈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준우가 마냥 귀여운 모양이다.

“나랑 결혼해 줘, 는 아닌 것 같고.”

“이미 결혼했으니까.”

“그럼 다음 생에도 나랑 결혼해 줄래?”

“우리 오빠 완전 도둑놈이네. 벌써부터 다음 생까지 낚아채 버리고.”

“그렇다는 건, 승낙한다는 뜻이지?”

“내가 오빠한테 프로포즈하는 그 순간부터 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이번 생도, 다음 생도 평생 오빠만 바라보며 평생 사랑하며 살 거라고.”

선화가 배시시 웃었다.

포장지를 뜯자 작은 명품 가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선화의 취향에 아주 딱 맞는.

“선물까진 준비 안 해도 되는데.”

“그런 말 하기엔 표정이 너무 밝은 거 아냐?”

준우가 손가락으로 가방을 다시금 가리켰다.

선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 선물은 바로 그 가방 안에 있었다.

‘회귀까지 했는데, 고작 가방 하나로 끝낼 순 없지.’

가방을 연 선화가 그 안에 있는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언젠가 결혼반지를 맞추러 갔을 때, 선화가 매우 갖고 싶어 했지만, 당시엔 여유가 없어서 미처 해 주지 못했던 바로 그 반지였다.

“기억력도 좋아. 사람 미안하게.”

“미안하긴. 오히려 기뻐해야지. 선화 네 남편이 이만큼 능력이 좋아졌다는 얘기니까.”

준우는 선화의 손을 다시금 마주 잡았다.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그리고 몇 번의 회귀를 더 하더라도 지금 잡은 이 손,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나저나, 형님 촬영 잘하고 계시려나?’

수재혁에게 부탁한 건 얼음별뿐만이 아니다.

이 장면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 할 선화를 위해, 어디선가 두 사람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주는 것도 포함이었다.

찰칵-

그때, 저만치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대포 카메라를 든 수재혁이 그곳에 서 있었다.

‘역시 형님은 추위에 강하시다니까. 형님께 촬영을 맡기기 잘했어.’

비가 오는 겨울임에도 그는 굳건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사진과 영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 *

형님에게 촬영을 맡긴 이유는 별게 없었다.

유성우가 쏟아지는 배경이 프로포즈 장면으로 어떨지, 직접 보고 판단하실 기회를 드릴 겸해서다.

사실 다른 이유가 또 있기는 했다.

추운 날인지라 유성우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촬영을 할 사람이 필요했고, 얼음 속성 특성을 가진 형님께선 추위를 거의 안 느끼시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형님의 사진 촬영 실력이 상당했다.

‘어지간한 사진작가 뺨칠 정도로.’

우연히 형님 핸드폰 안의 김 비서님 사진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김 비서님의 주문대로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고수의 경지에 올랐단다.

아무튼.

어젯밤엔 여러모로 덕분에 좋은 추억을 남기고 왔다.

- 최선을 다해 도왔으니, 사분의자리 유성우 떨어질 때 핫스팟은 꼭 나한테만 알려 줘야 하네.

형님께선 꼭 그날 프로포즈를 하신단다.

유성우 쏟아지는 배경이 썩 마음이 드신 것 같다.

‘뭐, 그날은 아마 이례적으로 유성우를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었던 날이긴 한데…….’

서울 한복판에서도 유성우를 볼 수 있을 만큼 시기가 좋았고, 날씨 또한 아주 이상적이었다.

때문에, 어떤 장소를 추천해 드려도 다 좋을 거다.

그래도 이번에 날 도와주셨으니, 약속대로 핫스팟은 제대로 알려 드리긴 해야겠지.

‘인파도 적고, 분위기도 좋으면서, 유성우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다가.’

이건 내 생각인데, 아마 유성우보다 은실이의 선물 배송 장면이 더욱 인상 깊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은실이뿐만 아니라, 다른 반려몬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으셨던 거 보면, 나보다 더 대단한 걸 계획하고 계시는 걸지도.’

사무실에 들어서자.

어젯밤 유성우 관련 이야기로 떠드는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뭔 유성우를 보겠다는 거야. 그래 가지고 맥주 마시다 말고, 마누라랑 야밤에 파주 갔다 왔다니까?”

“모처럼 데이트하셨다고 생각하십쇼, 팀장님. 어쨌거나 사모님하고 기분 좋게 유성우 쇼 보고 오신 거 아닙니까.”

“야, 이정진. 너 오늘 아침에 뉴스 안 봤지?”

“뉴스요?”

“시팔, 유성우는 개뿔. 뜬금없이 비 오는 바람에 밖에서 옷 입은 채로 샤워만 실컷 하고 왔구만.”

“그럼 유성우는 못 본 겁니까?”

“당연히 못 봤지!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본 사람 몇 없을걸? 운 좋게 본 사람도 있겠다만, 그건 거의 하늘에서 유성우 보라고 점지해 준 사람일 거다.”

하늘에서 점지해 준 사람이라.

그럼, 나랑 선화는 천생연분이겠군.

나도 모르게 씩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팀장님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바라본다.

“너 뭐냐. 히죽히죽 웃는 거 보니까, 좋은 일 있는 거 같은데?”

“없는데요. 그냥 아침부터 아내가 기분 좋아 보이는 것 같아서, 저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을 뿐.”

“……에휴. 제수씨바라기한테 내가 또 괜한 질문을 해 버렸네.”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선화한테 메시지가 와 있었으니까.

- 마님 : 오빠, 우리 담번에 또 유성우 보러 가자!

- 마님 : 그때는 내가 서프라이즈 준비해 볼게!

서프라이즈를 미리 말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어딨냐.

하여튼, 수선화 귀엽다니깐.

- 마님 : 오늘 칼퇴할 거라고 했지?

- 마님 : 그럼 끝나고 영화 보러 고고?

선화의 깜찍한 메시지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그때였다. 책상 위 모니터 상단이 깜빡거리는 게 보인다.

- 1차 균열 반응 감지

처음 늑대 인간 녀석이 등장하고 10번째 균열.

그렇다는 건, 늑대 새끼들의 접선 장소라는 뜻이었다.

“거참. 기분 좋게 하루를 좀 시작하려니까…….”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동시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선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 준우 씨!”

“네. 방금 확인했어요. 균열 핵 찾을 수 있겠죠?”

“저번에도 해 보기도 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죠!”

이선호가 레이더실로 들어가자, 팀장님께서 박수를 치신다.

아직 비상경보가 울리진 않았지만 출동 준비를 미리 하자는 신호다.

“다들 미리 환복하고…… 응?”

팀장님이 말을 잇다가 멈칫하셨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시는 걸 보니, 이미 환복을 마친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막내, 넌 오늘 또 왜 이렇게 급하냐? 또 칼퇴할 이유라도 생긴 거야?”

“우리 선화가 칼퇴하고 영화 보러 가자고 했거든요.”

“오오! 그래? 그럼, 우리 오늘 무조건 칼퇴할 수 있겠네.”

“예?”

“전준우 제수씨 버프 받으면 칼퇴 각 백 퍼센트 나오잖냐.”

함정을 파려면 놈들보다 빨리 균열 핵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늑대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잠시 후.

이선호가 다급하게 레이더실 안에서 뛰쳐나왔다.

“준우 씨! 균열 잠정 지역 찾았습니다!”

자, 이제.

늑대 사냥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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