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에 (1) (127/246)

◈ 유성우가 쏟아지는 날에 (1)

현재 시각 오후 6시 30분.

선화가 오후 8시쯤 공항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마중을 나가기까진 아직 시간이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저녁 같이 먹자고 했으니까, 미리 준비를 해야겠지.’

약 8일간의 일본 여행을 한 선화다.

비록 놀러 간 것이긴 하지만 여행도 체력적으로 소모가 큰 법, 지친 체력을 달래줄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볼 생각이었다.

조강지처 스킬이 적용된 요리왕의 주방 칼과 여러 주방 도구를 이용한다면, 음식 맛을 내는 것쯤이야 문제도 아니다.

“어라?”

막 요리를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프라이즈!”

“뭐야? 공항에 8시에 도착한다며? 지금 6시 반 조금 넘었는데…….”

“헤헤.”

나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선화를 바라보았다.

개구쟁이 같은 귀여운 표정으로 웃는 걸 보니, 날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거짓말을 했던 듯싶다.

“나 안 보고 싶었던 모양이네, 우리 오빠?”

“안 보고 싶었긴! 엄청 보고 싶었는데!”

“그짓말! 근데 왜 안 반가워해?”

안 반가워하다니.

보고 싶은 사람이 예상 도착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해서 너무 놀라 당황했을 뿐이다.

“뭐해, 오빠? 안겨야지?”

나도 모르게 선화를 따라 헤헤 웃으며, 냅다 품에 안겨 작게 속삭였다.

“여행은 재미있었어?”

“오빠가 옆에 없으니까 하나도 재미없드라.”

“말이라도 고맙네.”

“우리 앞으로는 떨어져 있지 말자. 오빠가 배려해줘서 실컷 여행하고 오긴 했는데,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서 자칫 상사병 걸릴 뻔했지 뭐야.”

배시시 웃던 선화가 내 볼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는 얼굴을 살짝 떨어뜨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오빠 살 빠진 것 봐! 볼이 쏙 들어갔네?”

“나 살 빠졌다고?”

“에구, 육아가 힘들었나보구나.”

“힘들기는. 하나도 안 힘들었거든!”

“근데 살은 왜 빠졌어?”

“요 며칠 새에 운동을 좀 빡세게 해서 그른가?”

으음, 사실은 힘들었다.

일주일 내내 장인어른의 사내 감사에 끌려다니느라 정신도 없었고, 육아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경험하지 않았던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 값진 시간이기도 했고…….

“진짜 안 힘들었어?”

“에헴! 육아 고수를 뭘로 보고!”

그냥 말이라도 자신만만하게 해봤다.

이렇게라도 말해야 선화가 조금이라도 덜 미안해할 것 같아서.

하지만, 선화는 마치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선화가 내 품에 덥석 안겼다.

“오빠 거짓말 진짜 못한다.”

“응?”

“내가 미안해할까 봐서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

오랜만에 맡는 선화의 향기.

절로 기분이 좋아져, 선화를 향해 더욱 깊이 얼굴을 파묻었다.

“에에? 왜 이렇게 애교를 부려? 안 하던 짓을 하네.”

선화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답지 않게 이러는 걸 보면, 고작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선화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가끔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우리 오빠 이렇게 애교 부리는 것도 좀 볼 겸.”

선화를 대신해 빠르게 캐리어의 짐을 풀어줬다.

그 사이 선화는 수린이와 반려몬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마, 나만큼이나 아이들도 많이 보고 싶었을 거다.

“수린이 잠들었구나? 선물 사 왔는데.”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선물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레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선물?”

“디즈니랜드에 갔었거든. 수린이 주려고 예쁜 인형들 좀 사왔지.”

“내 건?”

“저녁 메뉴는 뭐야? 이야! 스테이크네? 오늘 우리 8일 만에 같이 식사하는 건데, 당연히 와인도 준비했겠지?”

“말 돌리지 말고. 설마 내 선물 사 왔다는 거 뻥이었어?”

선화가 키득키득 웃는다.

아까 평소에 안 하던 애교 한번 부렸더니만, 날 놀리는 게 썩 재미있는 모양이다.

“오빠, 입 튀어나온 거 봐. 안 사 왔다고 하면 울겠다?”

“참나. 울긴 누가 운다고.”

“사랑하는 남편을 울릴 수는 없지.”

후다닥 방 안으로 뛰어간 선화가 쇼핑백 여러 개를 들고나왔다.

아깐 캐리어밖에 없었는데, 저건 나 몰래 미리 숨겨두기라도 했던 건가?

“스테이크와 와인. 거기에 어울리는 아주 섹시한 선물을 준비했어.”

쇼핑백을 받아들고 내용물을 살폈다.

일본의 유명 속옷 브랜드의 포장박스가 보인다.

“와우. 진짜 섹시한 선물인데?”

검은색 속옷이었다.

디자인도 과하게 화려하지 않고 심플한.

“내 것만 샀어?”

“아니, 내 것도 샀는데. 이게 커플 속옷이거든!”

이번엔 선화가 포장을 뜯었다.

내게 선물한 속옷과 비슷한 디자인의 속옷이 툭하고 튀어나왔고, 선화는 속옷을 손에 쥔 채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짜잔! 어때? 예쁘지?”

“허허, 참. 너무 야한 거 같은데 말이야.”

“그래서 싫어?”

“아니, 뭐……싫다는 건 아니고…….”

“또 얼굴 빨개진다? 무슨 부부 사이에 이런 걸로 얼굴이 빨개지고 그래, 오빠는?”

“내, 내가 언제 얼굴이 빨개졌다고. 나 이런 걸로 얼굴 빨개지고 그러는 사람 아냐.”

“그으래? 그럼, 내가 지금 이거 한번 입고 와볼까?”

귀가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회귀해서 젊어진 게 좀 영향이 있는 걸까.

선화 말대로 부부 사이에 왜 이런 게 이토록 부끄러운지 참 모르겠지만, 회귀 전보다 신혼생활이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밥부터 먹자, 밥부터.”

“그리고 와인도 한잔하고?”

“그래, 기분 좋게 와인도 한잔하고.”

“그리고? 그다음엔, 오빠?”

“뭐, 수린이만 잠에서 안 깬다면야…….”

……모처럼 뜨거운 밤을 보내도록 해야지.

흐음, 일단 달아오른 귀부터 좀 식혀야겠다.

***

< 별똥별 쇼! 온라인으로 즐긴다! >

< 쌍둥이자리 유성우 생중계! >

퇴근 전, 매력적인 기사 제목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12월 15일 저녁 9시부터 16일 새벽 4시까지 유성우 관측 영상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을 통해 중계한다는 내용이었다.

‘회귀 전에도 이맘때쯤에 선화랑 유성우 떨어지는 거 보러 간 적 있었는데.’

가기는 갔다.

유성우 관측하기 좋다는 핫스팟으로.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핫스팟이라고 해서 갔는데, 해당 지역에 구름이 많이 끼고 비까지 오는 바람에 추위에 발발 떨다 오기만 했다.

당시에도 지금 시기엔 전업 헌터가 아니었던지라 시간적으로 꽤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선화랑 이것저것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얼마 뒤부터 전업 헌터 하게 되면서 일에 미쳐 살았지.’

고로, 그 이후로 유성우는 구경도 못했던 것 같다.

선화와 언젠가 꼭 다시 유성우 보러 가자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생각난 김에 선화랑 유성우나 보러 갈까?’

당시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때문에, 유성우를 보기 좋은 핫스팟이라고 알려진 곳들에서도 관람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단 한 곳만은 유성우가 내리는 그 순간에 기적처럼 비가 그쳐서 관람을 할 수 있었더랬지.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선화가 많이 아쉬워했었기에 그 장소가 어딘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번엔 꼭 같이 가야지. 분명히 선화도 좋아할 거야.’

12월 중순이면 다음 주니까, 휴가 내고 선화랑 1박 2일로 다녀오면 행복한 추억을 또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선화에게 유성우 보여줄 생각으로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퇴근길에 올랐고.

“오랜만이야, 매제.”

우리 집엔 형님께서 와 계셨다.

기별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실까.

의아한 내 표정을 읽은 선화가 헛웃음을 친다.

그리고는 비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형님을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올 때까지 입 안 열겠다면서 이러고 있어. 엄청 대단한 얘기라도 하려는 가봐.”

“무슨 큰일이라도 나신 겁니까?”

나는 형님의 맞은편에 앉았다.

선화도 궁금하긴 했었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옆에 착석했다.

“형님, 어제 귀국하시지 않으셨어요? 영국 레이드도 공략하고, 마석 광산 계약 건까지 따내면서 엄청 큰 성과를 올리셨는데, 안색이 영 좋지 않으십니다.”

“좋지 않을 수밖에. 아버지께서 막무가내도 일을 벌이셨으니까.”

“장인어른께서 또요?”

설마 계열사를 한 번 더 뒤엎으신 걸까.

기자회견 때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김 비서를 박물관장, 아니, 미술관장으로 직무 변경시키셨더군.”

“아?”

“나도 어젯밤에야 알게 된 사실이야. 김 비서도 갑자기 인수인계를 받게 돼서, 뒤늦게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거든.”

그러니까, 대화를 나눠본바.

핵심은 이거였다.

김 비서님께서 미술관장직으로 직무가 변경됨으로써, 얼굴 보기가 아주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형님께서 워낙 바쁘시니…….’

세상에 바쁘지 않은 직장인이 어디 있겠냐 만은, 장인어른께서 슬슬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는 이때 형님이 맡고 있는 업무의 양은 상당했다.

아직 틈틈이 경영 수업을 받고 있을뿐더러.

대부분의 사무와 현장은 형님께서 도맡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앞으론 서로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질 텐데.’

그동안은 김 비서님이 형님의 수족처럼 붙어 다녔기에 일을 하면서 얼굴이라도 자주 봤다지만, 이젠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마 일주일에 한 번도 보기 힘들 거다.

아니, 이주에 한 번이라도 보면 다행일 터.

출장이나 현장 투입이 많은 달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번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미술관장직이면 임원급인데, 김 비서님께는 좋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김 비서도 언젠가 엑시스에서 중책을 맡는 게 꿈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아마 나한텐 내색하지 않아도 내심 좋아하고 있을 거야. 때문에, 나도 김 비서가 좋아하는 일을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렇다면.

굳이 날 찾아온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선화에겐 입 꽉 다물면서도, 오직 나한테만 할 얘기가 있었다던데.

“기어코 아버지께서 나와 김 비서의 관계를 알게 되신 것 같아.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를 감행하면서까지 나와 김 비서를 억지로 떨어뜨려 놓을 리는 없을 테니까.”

“장인어른께서 김 비서님을 며느리로서 탐탁하게 생각지 않으실 거란 얘깁니까? 그래서 일부러 떨어뜨려 놨다?”

“그게 아니고서야, 뭐겠어?”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만. 최근 기자회견 보셨죠?”

“아버지가 직접 엑시스 계열사들 뒤엎은 거?”

“네. 만약 장인어른께서 김 비서님이 싫으셨다면, 충분히 해고하시고도 남았을 법한데 오히려 초고속 승진을 시키시지 않았습니까?”

“흐음……다행이군. 사실, 나도 그러길 바랐거든.”

뭐지, 이건?

기출변형이었나.

아무튼.

중요한 건, 그래서 왜 날 찾아와서 이런 얘기를 꺼내냐는 것인데…….

“언제까지 아버지를 피해 연애를 할 순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김 비서 얼굴 보기 힘든데, 계속 이렇게 떨어져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오? 설마?”

“결혼을 할 생각이야.”

선화가 ‘대박!’ 을 연달아 외치며 물개박수를 쳐댔다.

집안의 경사이니 당연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전에 먼저 프로포즈를 해야 한다는 건데…….”

아아, 드디어 날 찾아온 이유가 나오네.

이거 말씀하시려고 여태 빙빙 돌리셨구나.

그런데 어쩌지.

아무래도 이번엔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내 친구들은 대부분 재벌가 자제들이야. 다들 정략결혼을 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렇다 할 프로포즈도 안 해본 녀석들이지. 집안 보고 결혼한 녀석들이 낭만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형님. 죄송합니다만, 이번엔 제가 도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일단 말 끊지 말고 듣게.”

“아, 넵.”

“어쨌거나, 자네는 내 친구 녀석들과는 달라. 김 비서와 함께 했던 여러 데이트 코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물들을 코치해줬던 내 연애 스승이었지.”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그거랑 프로포즈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지라…….”

“여태 단 한 번도 김 비서가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성공률 백프로의 코치를 해준 사람이었어.”

선화가 옆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형님께서 의아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 쪽을 향해 물으신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네에게 프로포즈에 대한 조언을 좀 얻어볼까 하는데? 예를 들면, 프로포즈 하기 좋은 장소, 그러니까 핫스팟 같은 데가 있느냐 이 말이지.”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도움을 못 드리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려는 찰나.

“푸흡, 조언은 무슨.”

선화가 대신 입을 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시던 형님이 무슨 소리인가 싶은 얼굴로 선화를 빤히 응시했다.

“우리 남편 프로포즈 안 해봤거든.”

“뭐? 그럼 어떻게 결혼을 한 거야?”

“어떻게 결혼하긴.”

“설마, 선화 너 프로포즈도 안 받고 결혼했어?”

“프로포즈 내가 오빠한테 했는데?”

순간, 형님께서 화들짝 놀라신다.

프로포즈는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자네!”

“예?”

“부러워! 프로포즈를 안 하고도 결혼을 하다니!”

“아아, 감사…….”

말을 이으려다 멈칫했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짓궂게 쏘아보는 선화의 시선이 느껴져서였다.

“감사는 무슨. 프로포즈 하도 안 하기에 답답해서 내가 한 건데. 누구는 트렁크에 풍선을 준비했네, 꽃길을 준비했네, 미리서 반지를 준비했네, 그러던데, 나는 프로포즈 한번도 못 받고 결혼을 해버렸네?”

“그, 그게, 프로포즈를 이미 내가 받은 상황에서 또 프로포즈를 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주고받음 좋은 건데. 난 내가 먼저 하면 오빠도 따로 뭔가 준비해줄 줄 알았는데.”

“……그랬구나.”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재혼을 하지 않는 이상, 생애 한 번뿐일 프로포즈는 여자들이 결혼 전에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 중 하나라고.

사실 나도 하려고 했었다.

무대를 빌려 노래를 불러볼까, 남들처럼 차 트렁크에 뭔가를 해볼까, 아니면 꽃길을 만들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담백하게…….

‘……그런데 선화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그래도 이건 빼박 내 잘못이다. 내가 나쁜 새끼지.

다른 건 몰라도 프로포즈는 꼭 내가 했어야 하는 건데.

“헤헤. 농담이야, 오빠. 장난 좀 친 건데, 왜케 긴장했어?”

“미안. 어제만 해도 분위기 엄청 좋았는데, 나 때문에 갑자기 망쳐버려 가지고.”

“그런 거 아냐! 진짜 농담이었어! 너무 기죽은 표정 짓지 마! 프로포즈 좀 못 받으면 어때? 그래도 우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안 그래?”

긴장이라기보단 미안해서다.

회귀 전에는 이런 말 안 했었으니까, 프로포즈에 대해 미련이 이렇게까지 남아있는 줄도 몰랐고.

‘아마, 이런 얘기를 꺼낼 상황이 딱히 없었겠지.’

형님께선 내 눈치를 보셨다.

프로포즈 조언을 구하러 왔다가, 동생네 부부가 갑자기 싸우기라도 하는 건 아닐지 생각하는 눈빛이다.

“미안하네, 매제.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큰오빠, 우리 진짜 아무렇지도 않거든? 그러니까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

“아, 아니다. 나는 그냥 집에 가서 먹으면 된다!”

“먹고 가라면 먹고 가. 매번 끼니 거르는 사람이 무슨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선화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느새 잠에서 깬 수린이가 내 품에 안겨 습관처럼 소리쳤다. 손가락으로 대뜸 형님을 가리키면서.

“적폐!”

발음이 엄청 정확해졌다.

장인어른 옆에서 하도 들은 탓이겠지.

“저, 적폐?”

형님께선 당황하셨다.

근데 또 딱히 반박은 안 하신다.

괜히 자신으로 인해 선화와 나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거다.

“형님. 사실, 제가 프로포즈 하기 좋은 핫스팟을 알고 있긴 하거든요.”

“그래?”

“근데, 이번엔 형님께서 양보하세요.”

“응? 무슨 뜻인가?”

나는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부엌에 있는 선화에게 들리지 않도록.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선화에게 프로포즈 해야겠어요.”

선화는 웃으면서 애써 괜찮다고 말했었지만.

회귀까지 한 나는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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