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승진이 서글픈 남자
기자회견 당시.
엑시스 내 횡령과 비리는 모두 회장인 수태광의 책임이 크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미리 약속된 정부와의 모종의 거래로 수태광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나마 회장인 그가 직접 계열사들을 쳐낸 덕분인지, 여론도 수태광의 책임을 그리 길게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박물관이 텅텅 비어버렸구만.”
수태광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막대한 가치를 자랑하는 엑시스 박물관의 전시품들을 모두 국가에 기부하는 조건이었으니, 당연히 씁쓸할 수밖에.
하지만 어쩌겠는가.
손주인 수린이에게 청렴한 기업과 할애비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태광 스스로 벌인 일인 것을.
“후회하십니까?”
“후회는 무슨. 수린이에게 떳떳한 할애비가 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히 만족하네.”
최 비서의 물음에 수태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린이가 원한다면, 앞으로 또 이와 같은 짓을 벌일 수 있다는 의지였다.
“그나저나, 박물관을 마냥 놀릴 수는 없어서 말일세.”
“다시 전시품을 채워 넣을 생각이신 겁니까?”
“전시품들이야 돈 들여 구하면 구할 수 있다지만, 똑같은 사업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말이야.”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술관으로 개편하면 어떨까 하는데.”
어제 준우에게 얼핏 들었다.
수린이가 동화책 보는 걸 참 좋아한다고.
선화가 자주 동화책을 읽어주고는 하는데, 동화책 이야기보다는 책 속의 그림에 더 집중을 한단다.
‘한번 본 건 그대로 따라 그려낸다고 했으렷다?’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된 손주가 벌써 그런 재주를 타고나다니. 실로 미술 천재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뭐, 사실 천재성을 나타내지 않는 분야가 없긴 하다만.
‘수린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데, 이 할애비가 팍팍 지원을 해줘야겠지.’
애들이야 크면서 장래희망이 계속해서 바뀐다지만, 당장 유독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미술이니 그쪽에 힘을 실어줘 볼 생각이었다.
손주의 장래를 위해 미술관을 개관하는 건 좀 과하긴 하나, 수태광의 입장에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저번에 재혁이 놈에게 듣자 하니, 김 비서가 미술에 조예가 깊다던데?”
“김 비서의 부친께서 현대미술 교수님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 영향이 크겠지요.”
“호오? 그으래?”
수태광이 흡족하게 웃었다.
계열사 감사 당시에도 철두철미하게 조사하고, 보고마저 완벽하게 했던 김 비서였다.
수린이 이름을 작명해냈을 때부터 다재다능한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런데,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라?’
뭐 하나 빠지는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장 파격적인 승진을 감행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어차피 인사이동이야 필요하겠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감사를 통해 대부분의 계열사들 사장들과 임원급들이 거의 해임된 상황이고, 관련된 직원들 모두 해고됐으니까요.”
“다른 계열사들이야 최 비서가 괜찮은 자들 추려서 추천하도록 하고, 박물관, 아니, 미술관장 자리는…….”
“생각해두신 인물이 있으십니까?”
“김 비서로 내정하게.”
“예, 예? 가, 갑자기요?”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아. 김 비서라면 잘 해낼 걸세.”
최 비서는 당황했다.
난데없는 김 비서의 승진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직무 변경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서실장인 그가 후배인 김 비서의 승진에 시기 따위를 할 리도 없고.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거, 이거, 부 마스터님께서 상심이 크겠는데.’
김 비서와 수재혁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는 최 비서였다.
회장님께서 직접 장남의 연애사에 대해 물으신 적이 있었고, 이후에 잠깐 조사를 했었는데 너무 쉽게 발각돼버렸다.
‘김 비서가 곤란해질까, 여태 회장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었는데…….’
수재혁의 당부가 있기도 했다.
자신이 아버지껜 직접 말씀드릴 테니, 그때까지 못 본 척해달라고 말이다.
‘……김 비서가 미술관장직을 맡게 되면, 이제 부 마스터님도 김 비서랑 붙어 다니시는 일이 적어질 거고.’
젊은이들의 연애란 그런 것이지 않은가.
한 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더 보고 싶고, 더 그립고.
수재혁 역시 앞으로 김 비서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심히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표정이 왜 그리 어두워? 뭐 문제 있나?”
“아, 아닙니다.”
“아마 김 비서도 썩 좋아할 걸세. 까탈스런 재혁이 놈 밑에서 비서 업무 맡는 것보단, 미술관장직 맡는 게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할 테니 말이야. 아무렴 관장인데 체면도 좀 더 설 테고! 그렇지 않나? 껄껄!”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회장님.”
부 마스터님이 영국에서 레이드를 마치고 귀국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날벼락 맞은 얼굴이 되진 않을까?
최 비서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
기상악화로 인해 선화의 귀국이 하루 미뤄졌다.
고작 하루가 미뤄진 것뿐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선화가 보고 싶은 건지.
‘오늘 저녁엔 한국에 도착했으면 좋으련만.’
오늘 오전 내내 기상 소식이 좋지 않았다.
뉴스에 의하면 오후쯤부터 날씨가 풀려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은 문제가 없을 거라던데.
아무튼.
선화의 여행 기간인 일주일에 맞춰서 휴가를 썼던 터라, 귀국 날보다 내가 복귀하는 날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엔 우리 팀 당직이 있어서 급하게 휴가를 쓰기도 곤란한 상황이었고, 결국 장인어른께 수린이를 맡겨두고 출근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특수팀 일로 휴가 중에 출근했던 건 지부장님이 따로 보상을 해주시겠다고 한 거랄까.
- 마님 : 아빠한테 애를 맡긴다고?
- 마님 : 좀 불안한데ㅜㅜ
여전히 장인어른의 육아 실력을 못 믿는 선화였지만, 당장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도 내 판단엔 장인어른이 최선이었다.
갑자기 생판 남에게 애를 맡기는 것보단 가족이 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선화가 여행 중인 일주일 내내 장인어른과 육아를 함께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게 선화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 마님 : 최대한 빨리 가께!
- 마님 : 내가 오빠 주려고 선물도 샀어!
과연 비행기가 빨리 뜰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빨리 오면 나야 좋다. 안 그래도 보고 싶어 죽겠으니까.
‘선물은 뭘 샀으려나?’
은근히 기대가 된다.
가끔 해외에 여행을 갈 때면 나름 파격적인 선물을 사 오고는 했었는데.
“하아! 미치겠네.”
선화의 선물이 뭘까, 생각하고 있던 그때.
파티션 너머로 부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고개를 위쪽으로 올려 살펴보자.
모니터 안 주식 창을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는 부팀장님의 얼굴이 보인다.
‘엑시스 주식 용케 안 파셨네?’
부팀장님은 인내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내가 일단 존버하라고 하긴 했으나 매도하지 말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언급하지 않았기에, 금방 팔아버릴 줄 알았건만…….
“막내야. 꿋꿋이 버티다 보면 분명히 해 뜰 날 오겠지?”
“엑시스가 망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 그래. 네가 나한테 아무런 근거 없이 버티라고 했을 리는 없을 거야.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지? 그런 거지?”
주식은 잘 버티기만 해도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 종목이 믿을 만한 종목이라는 데 한해서지만.
세상에 절대 안 망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냐 만은, 개인적인 내 생각으론 엑시스 같은 대기업 같은 경우는 믿을 만한 종목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부팀장님께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엑시스 사위기도 하고, 공무원인지라, 자칫 내부자 주식 관련해서 재수 없게 얽혀서 쇠고랑 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버하면 승리한다는 말 정도야 주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한 말이니까…….’
아쉽게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입을 열기엔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후의 선택은 부팀장님께서 직접 해야만 했다.
“야, 이정진이. 아직도 엑시스 주식 가지고 끙끙 앓고 있냐? 그러게 내가 뭐랬어? 나처럼 빠르게 손절하고 피스로 갈아타라고 했지? 엑시스 주식 더 떨어질 거라니까?”
당연히 포기하면 편하다.
부팀장님과 마찬가지로 존버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드렸음에도 불구, 옆에서 피스로 갈아타길 잘했다고 으쓱거리시는 팀장님처럼.
‘주식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다고 하셨나? 역시 주린이는 주린이구만.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타입이면, 앞으로 주식 그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쩝.’
국내 업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엑시스와 피스였고, 엑시스 주가가 폭락함에 따라 자연스런 현상인 것처럼 피스 길드 주가가 올라갔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피스에 큰 호재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단순히 엑시스의 경쟁 업체라는 이유로 주식이 오르는 경우가.
‘뭐, 따지고 보면 피스가 아직 엑시스에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기업의 규모는 현저히 부족하지만, 그저 순위만 놓고 보자면 피스가 업계 2위이기는 했다.
“난세에는 눈치 빠른 놈이 승리하는 거다. 나 봐라? 엑시스 빠르게 손절하고 피스 싹 매수했더니, 우리 마누라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잖냐?”
“아직 모르는 겁니다. 헌터왕 광크스께선 생각이 다 있으실 테니…….”
“헌터왕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피스 주식 떡상하기 시작한 후부터 우리 주부왕 마누라가 날 왕처럼 모신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결혼 후 처음으로 왕위를 차지하셨군요. 부럽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엑시스 매도하고, 피스 매수해라. 그럼 너도 왕이 될 수 있을지니.”
부팀장님이 부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애써 엑시스 주가가 다시 오를 거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흔들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듯했다.
그때였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추재진이 문득 소리쳤다.
“어? 백호가 영국에서 레이드를 마치고 귀국했다는데요?”
“갑자기 웬 귀국? 출국했다는 기사가 없었는데, 어떻게 귀국을 해? 엑시스 공격대 백호 말하는 거 맞아?”
“맞아요! 여기 보세요! 기사 떴잖아요!”
팀원들이 모니터 화면 앞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혼란스러운 표정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한 대로 형님께서 이끄는 공격대 백호가 출국했다는 기사가 퍼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엑시스에서 은밀하게 진행한 레이드였으니까.’
영국의 A+급 레이드였고, 처음 등장한 던전 유형이었다.
따라서 실패 확률이 상당히 굉장히 높았기에 엑시스에서도 언론에 밝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백호가 공략에 실패했을 경우엔 기업 이미지에 꽤 타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 ‘백호’, 영국의 최고 난이도 레이드 공략 성공 >
난이도가 높기는 하지만, 그나마 얼음 속성에 취약한 던전이었기에 영국 측에서 형님께 직접 도움을 요청했을 거다.
형님이 얼음 속성을 다루는 마법 계열이기도 하지만, 엑시스의 백호도 얼음 속성 장비를 잘 다루기로 가장 유명했으니 말이다.
< 엑시스 영국의 ‘마석 광산’ 독점 계약 따내 >
레이드 공략도 공략이지만.
그 이후에 연이어 뜬 기사가 파급력이 상당했다.
장인어른의 기자회견을 비롯한 엑시스 감사 관련 기사들이 싹 다 묻힐 정도였으니까.
“마, 마석 광산?”
“영국에서 그걸 엑시스에 이렇게 쉽게 내줬다고?”
“마냥 쉽게 내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어쨌거나 백호가 영국 측 레이드 공략해줬으니, 그 대가로 수재혁 부 마스터가 계약 따낸 것 같은데.”
부팀장님이 서둘러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냅다 다시 주식 창을 킨다.
“크크큭……크큭……역시 존버는 승리하는구만…….”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부팀장님의 웃음소리.
내 예상대로 형님의 승전고와 함께 엑시스 주식이 다시 폭등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광크스 만세에에에!”
“…….”
“엑시스 만세에에에!”
“…….”
부팀장님이 크게 소리치며 환호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팀장님의 어깨는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피스 길드도 계약에 열을 올리던 영국의 마석 광산이었고, 그 대형 호재가 엑시스 측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피스 주식이 떨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우우웅 -
피스 주가 하락 소식이 팀장님의 사모님께도 그새 전해진 걸까.
책상 위의 팀장님 핸드폰이 무섭게도 진동을 울린다.
“팀장님, 사모님 전화입니다.”
“……마누라가 엑시스 주식 팔지 말자고 했는데.”
“그르게 왜 파셨어요.”
“……피스 주식 살 여윳돈이 없었단 말이다.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존버하시라니까.”
“……주식을 접든지 해야지.”
네, 아무래도 그게 팀장님껜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전화는 받지 않으셨다. 찰나의 왕위를 즐겼을 뿐이지만, 그걸로도 매우 흡족하신다며 애써 웃는 얼굴로.
“오늘 회식하자! 내가 쏜다!”
반면, 부팀장님은 어깨춤을 춰가며 몸을 흔들었다.
회식 소리에 팀원들이 박수를 쳐댔고, 팀장님은 아직 미련이 남으셨는지 주식 창을 보며 신음을 하고 계셨다.
“저는 오늘 회식 불참입니다.”
“응? 왜? 막내 네가 빠지면 섭한데? 따지고 보면 네 덕분에 돈 벌었는데, 내가 마음이 불편하지!”
“오늘 아내가 일본에서 귀국하거든요.”
조금 전에 선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날씨가 좋아진 덕분에 조금 전에 막 탑승 수속을 마쳤다고.
“아?”
“집 가서 귀국 환영 파티 준비해야 돼요.”
칼퇴하고 선화 볼 생각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내 선물 샀다고 했는데, 과연 뭘 샀으려나.
***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과.
영국 측의 요청으로 최고 난이도의 레이드를 공략하고, 마석 광산 독점 계약까지 따낸 수재혁은 의기양양했다.
아버지는 물론이며.
연인인 김 비서 역시 자신을 뿌듯하게 생각할 터.
“다들 고생했어. 빠르게 해산하고 한동안 푹 쉬도록 해.”
귀국 후, 입국장에서 나온 수재혁은 백호 공격대원들을 빠르게 해산시켰다.
자신을 데리러 올 비서가 곧 입국장에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비서는 김 비서였다.
공개 연애를 하는 게 아니니, 공격대원들에겐 숨길 필요가 있어서 그들 먼저 빠르게 보낸 거다.
“시간 맞춰서 마중 나온다더니, 좀 늦네? 무슨 일 있나?”
여태 단 한 번도 시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김 비서였다.
한데, 오늘은 약속한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전화도 먹통이고?”
바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수재혁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전화를 걸려던 찰나였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 마스터님!”
“응?”
“제가 오늘이 첫 업무인지라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부 마스터님 귀국 시간을 착각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까지는 아닌데. 그보다 왜 김 비서가 아니라……?”
“아이쿠! 이런!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부 마스터님을 새로 보좌하게 된 박태평입니다! 일전에 세미나 때 뵀었는데, 이렇게 부 마스터님을 곁에서 모시게 되어 정말이지 영광입니다!”
“뭐?”
갑자기 자신의 비서가 바뀌었다.
기분 좋게 레이드 공략에 성공하고, 영국 광산 독점 계약까지 따내며 금의환향하는 이 순간에 이게 웬 날벼락인지.
“내 비서가 바뀌었다고?”
“그, 그렇습니다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박 비서가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였다.
임원급 보좌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행동이나 말투나 살짝 어벙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재혁에게 그건 그리 중요치 않았다.
“하아? 그러니까 지금, 박태평 씨가 앞으로 내 보좌를 맡게 됐다 이거지?”
“예? 아, 예!”
“누구 맘대로?”
“예, 예?”
“감히 누가 내 허락도 없이 인사이동을 시켜어어어!”
수재혁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자신의 곁을 떠나간 김 비서가 여전히 연락 두절 상태라 그런지, 부쩍 서글프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부 마스터님!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박 비서는 그저 자신이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수재혁이 화를 내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