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적폐 청산 (125/246)

◈ 적폐 청산

퇴근 직전.

엑시스 웨펀 사장 봉학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 X됐네!

난데없이 걸려 온 박 관장의 전화.

봉학수는 그 한마디에 최악의 상황을 감지했다.

“그, 그런 얘기를 지금에 와서 말해 주면 어떡하나? 감사팀이 움직였으면 나한테 빨리 정보를 줬어야지!”

- 나라고 그럴 여유가 있었는지 아는가? 몸이고, 정신이고 탈탈 털리니 아무런 생각도 안 나는 걸 어찌하라고?

박물관은 물론, 엑시스 본사에 유통했던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회장님께서 알아차렸단 정보였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손톱을 물어뜯는 봉학수는 심히 초조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제품의 마석 함량이 원인인 거 같은데, 그래 봐야 고작 전체 비율로 봤을 때 1% 정도다.

아무리 S급 헌터인 수태광이라 할지라도 그걸 알아채긴 어렵다.

나아가, 그 밑의 헌터들이라면 당연히 감별해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던가.

‘대체 어떻게 아신 거지?’

산이 좋아 국내의 어느 산중에 은둔하는 자연인이자.

대한민국 무형문화재인 식별 장인.

수태광이 비서실 인력에 경호실 인력까지 총동원하여, 불과 네 시간 만에 식별 장인인 그를 찾아냈으니 당연히 알아차렸을 수밖에.

‘일단, 증거들부터 없애야 한다!’

봉학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알았는지보다, 걸렸다는 게 중요하다.

횡령의 심증을 가졌으면 곧 증거도 나올 거고, 그것들과 얽힌 온갖 비리들이 줄줄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산 공장에 있는 재고 싹 다 비워!”

“그 많은 것들을 갑자기 어디로 말입니까?”

“시발! 바다에 내던지든지, 땅에 묻든지, 뭐가 됐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비우기만 해!”

그만큼 빨리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감사팀이 회사에 도착하기 전에.

하지만.

톤 단위에 달하는 장비들을 단시간 내 숨기기란 무리였다. 그렇다고 그걸 증발시킬 수도 없고.

결국, 엑시스 감사팀이 먼저 도착했다.

줄줄이 이어진 검은색 고급 세단의 횡렬의 사이로, 유독 더 고급진 세단 한 대가 눈에 띈다.

꿀꺽-

그것이 엑시스 회장인 수태광의 차량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봉학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싹 다 털어. 먼지 한 톨 남지 않게.”

“예! 회장님!”

수태광의 명령에 감사팀이 압수 수색을 시작했다.

준우는 장인인 수태광의 근엄한 모습에 내심 감탄을 자아냈다.

요즘 수린이와 함께 있는 모습만 봐 와서 그런지, 일절 저렇게 냉철한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는데.

‘역시 회장님은 회장님이구나.’

가까이서 보고 있으면 살짝 겁이 날 정도다.

그만큼 오늘만은 살벌한 분위기였다.

“적페! 적페!”

수린이는 ‘적폐’ 발음이 더 정확해졌다.

박물관에서 엑시스 웨펀으로 오는 그 짧은 사이에 말이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완벽하게 발음하는 단어가 적폐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어쨌거나.

수태광은 수린이의 ‘적페!’ 소리에 힘입어 엑시스 웨펀을 발칵 뒤집었다.

마치 수린이가 회장님을 조종하는 숙주라도 되는 느낌이랄까.

“생산 공장으로 향하는 포탈 시스템 가동하게.”

“예, 옙!”

봉학수는 군말 없이 수태광의 명을 따랐다.

사실상, 감사팀이 움직인 것만으로 다 끝난 일이었기에 딱히 변명의 여지 같은 것도 없었다.

잠시 후.

준우는 수태광을 따라 포탈을 통해 생산 공장에 도착했으며, 곧 중년의 한 남자가 쭈뼛거리며 수태광 앞에 섰다.

“자네가 생산 공장 담당자인가?”

“그, 그렇습니다, 회장님.”

수태광이 재고를 보관 중인 창고를 응시했다.

고개를 까딱이자, 공장 담당자가 창고 문을 열었다.

“이게 전부인가?”

“이곳 1 창고에 남아 있는 게 전부입니다. 나머지 창고에 있는 제품들은 며칠 전에 전부 국내 유통사에 납품된 상황이고…….”

엑시스는 물론 여러 길드와 용병단에서 훈련과 실전을 겸해 사용되는 장비이자, B급 이하의 장비류들 중에서는 나름 고평가를 받는 제작 무기들이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엑시스 웨펀의 장비들은 열에 강하다는 걸 알고 있나?”

“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모를 리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한들, 아무렴 생산 담당자인데.

“그 이유도 아는가?”

“출현 빈도수가 높은 대부분의 던전 내 몬스터가 불 속성 특성을 지녀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준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유는 잘 알고 있는 덕분에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뭐, 설마 진짜 목숨까지 거두겠냐 만은.

“이 검은 최대 섭씨 몇 도까지 버틸 수 있지?”

“처, 천오백 도까지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천오백 도?”

“그, 그렇습…….”

“분명히 지금 내게 천오백 도라 했겠다?”

“…….”

그때였다.

수태광의 안광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 어?’

준우가 짐짓 뒤로 물러났다.

붉게 물든 안광이 이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게 장인어른의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기에.

“천오백 도라?”

한껏 뒤쪽으로 물러났음에도 열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곧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는 열기인데, 그 와중에 수린이는 수태광의 품에 안겨서 꺄르르 웃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수태광의 품에 둔 것이다.

손발을 팔랑거리며 춤이라도 추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회장님은 회장님이고, 드래곤은 드래곤이구만…….’

준우가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수태광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허공을 향해 내던졌다.

화르륵!

일순간 피어오른 푸른 불꽃.

이 세상에 녹일 수 없는 게 없다는 ‘청화(靑火)’가 검을 뒤덮더니, 그대로 증발시켜 버렸다.

준우는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쇠로 만들어진 검을 순식간에 증발시키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화마의 불꽃은 가능하다고 대답한 MC의 말이 떠올랐다.

“방금 이게 딱 천오백 도였네. 천오백 도까지 버틸 수 있다면서?”

“죄, 죄송합니다.”

“왜 버티지 못하는 것이지?”

“제작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수였는가, 고의였는가.”

“…….”

공장 담당자는 대답이 없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터.

수태광의 시선이 이번엔 봉학수에게로 향했다.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간신히 버텨 내고 있는 듯했다.

정말이지 여기서 죽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사, 사표 쓰겠습니다.”

“당연한 얘기를 하나?”

“예, 예?”

“그저 사표로 끝날 거라 생각하면 섭하지.”

푸른 안광이 이번엔 창고 내부를 향했다.

화염을 잔뜩 머금은 수태광의 오른손이 그곳을 향해 뿌려졌고.

화르르르륵!

이번엔 검 한 자루가 아닌, 창고 내의 모든 장비류가 증발해 사라졌다.

꿀꺽-

봉학수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뿐만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비서진들도 마찬가지였다.

“보았느냐, 수린아?”

“할아부지!”

“그새 발음이 더 좋아진 걸 보니, 수린이 네 마음에도 지금 상황이 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구나!”

참으로 죽이 잘 맞는 할아버지와 손녀였다.

어느새 근엄하던 수태광의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다시금 손주 사랑으로 가득 찬 그의 모습이 돌아왔다.

“지금 보았던 것을 절대 잊지 말거라, 수린아. 모든 폐단은 이렇게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해야 하느니라.”

순간, 수린이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그러더니 창고 구석에 미처 증발하지 않고 남아 있던 검 한 자루를 노려본다.

화르륵!

동시에, 검이 증발해 사라졌다.

조금 전 수태광이 했던 그것처럼.

“호오! 그렇지, 그렇지! 기특한지고! 바로 그렇게 하는 거다!”

수태광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주의 재롱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역시 내 손주로구나! 수 씨 가문의 일원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구만 그래!”

“장인어른. 수린이는 전 씨인데요.”

“껄껄! 역시 수 씨 집안의 핏줄이로다!”

수태광의 귀엔 준우의 말이 안 들리는 모양.

준우가 이젠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고, 그의 등 뒤로는 비서진들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역시 회장님의 핏줄…….”

“S급 헌터의 손주는 달라도 확실히 다르구나…….”

* * *

엑시스 간판 빼고 싹 다 바꾸겠다는 말.

장인어른의 그 말씀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비리와 횡령에 가담한 자들에게 국한된 말이긴 했으나, 며칠 새에 엑시스 본사를 비롯한 계열사에 대대적인 인사 이슈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일이 너무 커졌어. 이젠 감사가 언제 끝날지도 감이 안 잡히네.’

박물관을 시발점으로.

엑시스 웨펀을 비롯한 모든 계열사가 죄다 털리고 있었다.

그리고 털리는 족족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던 일이기는 했다. 계열사가 많고, 몸집이 큰 대기업에선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처럼 회장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자신의 기업을 탈탈 터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린이 때문이겠지.’

그래, 그 습관처럼 말씀하시던 조기 교육.

모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다.

< 후원금 횡령, 엑시스 박물관장 기소 >

- 엑시스도 끝물이냐? 뭔 난리임?

- 엑시스 곧 파산할 듯ㅋㅋㅋㅋㅋ

- ㅂㅅ들아 대기업이 그렇게 쉽게 파산하는 줄 아냐

- 엑시스 파산 ㅇㅈㄹ 남 재산 생각 말고 니 재산이나 생각해라

- 25세 남, 전 재산 5,500

- 5,500? 어린 나이에 존나 많이 모았누?

- 담배 한 갑 사고 남음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제는 언론과 여론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는 거다.

당연히 뜨거울 수밖에. 회장이 모든 계열사를 먼지 털 듯이 털고 있는데, 관심이 안 갈 리가 없었다.

< 엑시스 웨펀, 봉학수 사장, 자진 사퇴? >

< 엑시스 원, 정일운 사장 ‘100억 임금 체불’ >

< 엑시스 마켓, 임원급 줄줄이 횡령! >

……

…….

장인어른께서 미친 듯이 털어낸 덕분에, 엑시스 관련 기사는 단 하루도 마를 날이 없었다.

‘오히려 언론에서 취재가 오면 흔쾌히 응하라고 하셨다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단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청렴한 엑시스를 자식들과 손주에게 물려주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금도 수없이 말씀하시는 중이다.

< 엑시스 마켓 임원,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

- 하다 하다 임원급이 병간호할 돈 없어서 횡령하냐

- 예전에 허리케인 길드 장남도 무기 살 돈 없어서 횡령했다 함ㅋㅋㅋㅋㅋㅋ

- 허리케인 그 자체

- 그래도 엑시스 정도면 양호한 거 아님? 회장이 직접 나서서 기업 바로잡는다는데

- 잡으면 뭐 하나. 주식 개떡락 중인데.

< 엑시스 마켓 임원, ‘사실 아버지도 위급하셔…….’ >

- 이 새끼는 뭔데 부모님들이 다 이렇게 편찮으시냐

- 맘 아프네.

- 맘 아파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멀리 봤을 때, 수태광이 잘한 거라고 본다. 화끈하게 정리 잘했다.

- ㅇㅈ 결국 터질 일이었음 차라리 지금처럼 회장님이 직접 처리하시는 게 보기 나을 수도

- 역시 화마! 화마 수태광! 자기 계열사를 치다니!

- 기업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제 팔을 잘라 내신 거지

- 노년의 샹크스노ㅋㅋㅋㅋㅋㅋㅋㅋ

- 수태광크스ㅋㅋㅋㅋㅋ광크스ㅋㅋㅋㅋㅋㅋㅋㅋ

- 수태광을 해적왕으로!

- 수태광을 헌터왕으로!

- 헌터왕을 수태광으로!

뭐, 그래도 안 좋은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장인어른께서 광크스라는 별명도 생기시고, 나름대로 정의롭게 일을 해냈다는 기사 댓글들도 꽤 많았다.

‘불처럼 화끈하고, 칼처럼 날카로운 결단력? 그래도 정치해야 한다는 댓글은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여론이 더 거셌다는 점은 확실히 다행이나.

안타깝게도 폭락한 주식은 당장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 동학개미 이정진: 야 막내야 엑시스 뭔 일이냐?

- 동학개미 이정진: 매도 각? 넌 뭐 좀 알 거 아냐.

- 동학개미 이정진: 사람 하나 살린답시고 좀 도와줘라.

때마침 이정진 부팀장님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일전에 내가 주식 하는 걸 슬쩍 봤다던데, 그때 그 주식이 떡상한 걸 보고 언젠가부터 주식에 대해선 내게 조언을 구하시는 중이다.

‘언제는 자기가 고수라고, 주식은 자기한테 물어보라더니.’

이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엑시스 주식 상당수를 보유하고 계신 것 같다.

내가 엑시스 사위니 혹시나 해서 나한테 물어보는 걸 테고.

- 나: 저도 잘 모르는데, 존버하는 게 좋을 듯.

천하의 엑시스인데.

주가가 다시 안 오를 리가 없지.

‘아마, 큰형님께서 복귀하시면 바로 떡상할 것 같은데?’

폭주하는 장인어른을 막을 만한 사람은 그나마 큰형님이셨지만, 형님께선 지금 영국 레이드 출장을 가신 상태였다.

참고로.

회귀 전 내 기억에 의하면, 그 레이드를 공략한 순간부터 엑시스 주식이 떡상하기 시작했었다.

모든 주식을 기억하고 있진 않아도, 그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그땐 엑시스의 일이 곧 내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회귀 전만큼 엄청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폭락한 만큼 회복은 하겠지.’

아무튼.

오늘은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장인어른께서 직접 감사를 통해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고, 검찰에 수사까지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서 국민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다는 뜻으로 만든 자리였다.

“회장님. 불필요한 이야기는 최대한 삼가시고, 회의에서 있었던 내용만 언급하셔야 합니다.”

최 비서님의 당부에 장인어른께서 인상을 구기신다.

“내가 애인가? 기자회견 자리 한두 번도 아니고.”

“시국이 시국이니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어쨌거나 회장님께서 모든 엑시스 계열사를 이끌고 계시는 수장이시니 만큼, 자칫 화를 모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아랫것들이 잘못을 했으면 윗대가리에게도 책임이 있는 법이지.”

“회, 회장님!”

이미 검찰은 물론, 정부와도 타협이 된 상황이었다.

엑시스 회장의 직위라는 게 부재가 되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기도 했고, 그간 장인어른께서 쌓은 공과 국가를 위한 헌신을 감안하여 처벌 수위를 정도껏 하기로.

당연히 아무것도 오가지 않은 거래는 아니었다.

박물관의 모든 전시품들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부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기업과 정부 간 모종의 거래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겠지.

‘에휴, 그러게 왜 굳이 일을 크게 벌이셔서…….’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결과야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장인어른께서 흡족해하시니 그걸로 충분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기자회견 시작 10분 전.

심호흡을 하시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진지할 땐 확실히 진지하신 분이야.’

수린이와 있을 때와는 달리, 큰일을 앞에 두고 계시니 다시 근엄한 회장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평소엔 입지 않으시는 검은 정장까지 차려입으셔서일까.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기자회견 5분 전.

나는 은근슬쩍 수린이를 품에 안으시는 장인어른을 향해 물었다.

“장인어른. 근데, 수린이는 왜 안으십니까?”

“세상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네. 마치 지금의 나처럼 말일세. 수린이도 언젠가 이처럼 기자회견장에 설 때가 생길 터이고, 그때 당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선 조기 교육이…….”

“장인어른!”

“회장님! 제발 그만 좀 하십쇼!”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버렸고.

최 비서님도 터져 버렸다. 계열사 탈탈 터느라, 최 비서님도 한 고생하시기는 했지.

“이것들이! 감히 누구한테 큰소리야!”

장인어른께서도 언성을 높이셨지만, 표정은 무척이나 민망해 보이셨다.

“농담으로 해 본 말인데,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여서는. 쯧쯧, 재미없는 것들…….”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기다렸다는 듯이 엑시스 주가가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 동학개미 이정진: 막내야 매도 각 같은데 ㅠㅠ

- 동학개미 이정진: 나 한강 가야 되는 거 아니냐 이거?

- 나: 한강 물 요즘 많이 찹니다. 좀 기다려 봐요.

날 풀리면 알아서 해결될 겁니다.

이제 곧 저희 형님께서 레이드 승전고를 울림과 동시에 주식창에 빨간불을 켜 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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