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가 뿔났다
이선호가 답답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세 개의 균열 핵 잠정 지역을 빠르게 감지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여기서 진짜를 찾아내는 게 버겁게 느껴져서였다.
‘세 개가 다 진짜일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동시다발적으로 균열이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여기까진가. 아쉽다. 여태 열심히 훈련했는데.’
비록, 진짜를 찾는 데서 막히긴 했으나 이전에 비해 굉장히 빠르게 성장을 한 사실만은 틀림없었다.
다만 잘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욕심이 더 컸을 뿐.
‘준우 씨가 옆에 있었으면 조금 더 나았으려나?’
그가 곁에 있으면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조언도 조언이지만, 준우의 가화만사성 스킬은 가족 구성원이 된 이선호의 성장 속도를 보다 빠르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정작 이선호는 준우의 스킬에 대한 것까지 모르기에, 그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곧 본청이나 각 지방의 레이더에서 진짜 균열 잠정 지역을 찾아 경보를 울리겠지.’
한 번쯤 상상하고는 했었다.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균열을 발견하여, 화끈하게 협회 전체에 비상경보를 울리는 모습을.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그날이 아닌 것 같았다.
이선호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막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뒀다.
아니, 거두려고 했다.
자신이 발견한 세 개의 잠정 지역 중, 제주도 쪽에서 묘한 기운이 감지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지?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혹시 몰라 마력을 좀 더 짙게 운용해 본다.
준우가 알려 준 그 방법대로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확실히 나머지 두 곳의 기운과는 달라!’
유독 제주도에서만 느낌이 강렬했다.
탐지형 헌터인 그가 감지한 그것은 필히 균열 핵의 폭발 징조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C급 이하의 균열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흐름의 기운이나, 그보다 더 강력한…….
‘……B급 이상의 균열이야.’
하지만, B급 이상의 균열을 감지하는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보니 섣불리 경보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자칫 판단 착오로 협회 전체에 혼란은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이선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레이더실 유리막 너머의 사무실 쪽을 응시하며, 모니터의 한 지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아무래도 제주도에서 균열이 발생할 것 같은…… 어라? 준우 씨?”
그곳에는 어느새 휴가에서 복귀한 준우가 서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 채로 말이다.
[ ‘가장(家長)’ 효과로 ‘이선호’의 모든 능력이 상승한 상태입니다. ]
준우는 자신과 이선호 사이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힐끗 살폈다.
등급이 상승한 가장 특성의 효과였고, 지속 시간은 고작 10분이지만 이선호가 진짜 균열 발생 지역을 찾는 데는 충분했다.
‘놈들과의 접선까지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이었는데, 이선호가 제 몫을 해 줘서 다행이야.’
가장 특성 효과를 받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늑대 인간 놈들의 접선 장소 역시 이선호가 가장 먼저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사실만은 오늘로써 확실해졌다.
‘아직 비상경보를 울릴 만큼의 용기까진 없지만, 그걸 배제하더라도 성장이 상당히 빨라. 아마 이선호가 성실하게 훈련을 해 왔던 덕분이겠지.’
혹여 협회 내부에 늑대 인간 놈들과 접촉한 자들이 있을까, 그 점을 우려하여 탐지형 헌터 중에서 가장 신뢰가 가는 이선호의 도움을 바랐던 준우였다.
그런 이선호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니, 당연히 준우로서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능력치와 스킬 레벨이 상승했어. 아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갑자기 준우 씨가 나타났다는 것뿐인데?’
반면, 이선호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분명히 준우로 인한 버프 같은데, 그의 눈앞에는 가장 홀로그램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가서 물어봐야겠다. 어? 근데 협회장님이 언제부터 저기 계셨지?’
아까부터 준우와 함께 있었던 협회장이었지만, 정작 이선호의 눈에는 뒤늦게 발견됐다.
그만큼 준우밖에 보이지 않는 갓준우 병이 심했던 탓이리라.
“이선호 탐지가 모니터상으로 균열 발생 지역을 가리켰으니, 내기는 제가 이긴 걸까요?”
“비긴 거지. 저 친구가 직접 비상경보를 울리지 않은 걸 보면,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다는 뜻이니.”
“그래도 기분은 몹시 좋아 보이십니다, 협회장님.”
강재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협회 내 준우라는 인재로도 모자라, 탐지형 헌터로서 두각을 나타나는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원하는 게 뭔가? 이제 말해 보게.”
“내기에서 비겼는데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류 센터 강사 평가 건으로 경기 지부 기동 3팀 표창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네. 부상으로 주어지는 상품은 없지만, 대신 자네들이 원하는 걸 들어줄 생각이었지.”
“제게 주어진 몫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들어보고 판단하겠네.”
“다음 균열 작전 때는 저희 특수팀이 출동할 예정입니다. 협회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종족 사건’의 실마리를 잡을 함정을 미리 파 둬야 하니까요.”
“해서?”
“그때, 서울 지부에 있는 한 대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협회장님 권한으로 그 대원을 해당 임무에 투입시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협회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경기 지부장인 오동수에게 부탁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협회장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터.
“그 대원이 누군가?”
“서울 지부 탐지과 소속, 탐지견 레오입니다.”
* * *
< 헌터 협회 제주 지부 ‘B급 균열 공략 성공’ >
< 본청의 신속한 탐지 능력으로 민간인 피해 제로 >
< 본청, ‘백기태’ 메인 레이더 담당자의 역할이 컸다 >
특수팀에서 발견한 제주도의 균열이 공략되자마자,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본청의 메인 레이더 담당자인 백기태보다 이선호가 몇 시간은 더 빨리 해당 균열 지역을 발견했지만, 기사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해졌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선호가 자신의 표창 부상 건으로 얻은 소원을 준우의 몫으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준우는 이선호와 뜻을 맞춰, 해당 소원 역시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특수팀 사건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 적을 속이기 위한 작전의 일종입니다.
- 그러니까, 나보고 이선호 탐지의 능력을 숨겨 달라?
- 재난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은 비상경보가 울린 시점부터 집중을 하게 될 겁니다. 언론이 집중하게 되는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차 반응 직후, 정확한 균열 발생지역을 찾아내기까지는 약 다섯 시간 정도가 걸린다.
본청 제일의 레이더라는 백기태를 기준으로 해도 최소 두 시간 반 정도는 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선호가 백기태보다 약 2시간 빠른 30분 만에 균열 발생 예상 지역을 찾아냈다.
준우는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협회가 적들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균열을 발견한 걸 알게 되면, 그들 역시 그 정보에 맞춰서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계획을 세울 테니까.
접선 장소가 균열이었던 만큼, 균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는 준우의 판단이었다.
혹여 협회 내 적들과 접촉하고 있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비상경보가 울리지 않으면 당연히 제주 지부에서도 출동을 하지 않을 거다.
애써 그 균열 지역을 빨리 찾아놓고, 너무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는 셈.
- 협회장님께서 최대한 은밀하게 제주 지부에 언질을 넣어 주시고, 언론마저 통제해 주신다면 완벽하게 적들을 속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부분 역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강재호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언론은 물론 제주 지역에 발생한 균열 인근 지역의 상황까지 어느 정도 조작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협회장과 경기 지부 특수팀 외에 아주 극소수들뿐이었다.
줄곧 그래 왔듯이 평소처럼 자신이 가장 먼저 균열 예상 지역을 발견했다고 믿는 백기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제 실력은 오늘 제주 균열 찾아낸 걸로 입증이 된 것 같은데요.”
“그럼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한적한 어느 강가의 아공간 내부.
추장현이 눈을 번뜩이며 미리 준비해 온 현금 가방을 백기태에게 건넸다.
‘협회 내에 백기태보다 빨리 균열 지역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자가 협회를 속이고, 우리에게 한 시간만 일찍 균열 지역 위치만 알려 줘도 값어치는 충분하지.’
대한민국 협회의 레이더는 세계적으로 월등하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어떨지 몰라도, 균열 탐지 능력 하나만은 이 나라 협회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레이더 담당자인 백기태는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레이더나 다름없었다.
물론, 협회장 강재호가 프로그램한 레이더 기기를 사용한다는 가정하에.
“두 시간 정도면 찾는 거, 그냥 한 시간 정도 더 걸렸다고 보고만 하면 되는 거죠? 비상경보도 그때 맞춰서 보다 늦게 울리면 되는 거고.”
“맞습니다.”
추장현은 백기태가 벌어 준 한 시간 동안 균열이 발생할 지역에 함정을 팔 생각이었다.
협회 기동대의 눈을 속이고, 차원의 다리를 넘어올 레드 스톤을 완벽하게 수거할 수 있는 함정을 말이다.
“저 백기태란 사람을 과연 믿어도 될는지…….”
백기태가 사라지자.
부하가 근심 섞인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난 우리 종족 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믿질 않네.”
“그럼?”
“저 사람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딸 하나를 키우고 있더군. 일을 그르쳤다 하더라도, 돈이야 가족들을 인질 삼아 다시 받아 내면 돼.”
“아아…….”
“최악의 경우를 위해 마련해둔 플랜 B도 있고 말이야.”
“아, 참! 말씀하신 그 플랜 B 말입니다. 길드 마스터들이 버서크 몬스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저번 경매가 좋지 않게 끝이 났지만, 이번 버서크 대상이 동물이 아닌 몬스터라는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잘됐군.”
몬스터의 버서크화.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고, 길드 마스터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선 꼭 다음 균열에서 블러드 스톤을 모두 수거해야만 했다.
‘백기태보다 더 빨리 균열 지역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모를까…….’
현재 그만한 능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백기태가 시간을 끌어 기동대의 출동만 늦춘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
길드 마스터들 역시 다시금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때.
추장현은 일이 무난하게 잘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에 살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제주 지역의 균열 핵이 폭발했다.
폭발 전에 가장 먼저 균열 지역을 찾아낸 건 이선호였지만, 협회장님과 말을 맞춘 대로 해당 건은 온전히 본청의 백기태라는 사람의 공으로 돌아갔다.
‘백기태가 여태 언론을 통해 자주 노출되었던 만큼, 놈들 역시 그자의 실력이 협회 내 가장 뛰어난 레이더라도 믿었으면 좋겠는데.’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특수팀이 놈들보다 앞서 출동하는 게 가능했다.
놈들은 백기태를 기준 삼아 움직일 거고.
우리는 백기태보다 두 시간은 더 빠른 이선호의 능력으로 먼저 균열 지역을 선점할 수 있으니, 쉽게 놈들을 잡는 것도 가능했다.
‘만약, 이 나라의 레이더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자가 그쪽에 있다면 곤란해지겠지만…….’
거기까진 내가 감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당장은 놈들의 접선 장소인 다음 균열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까 보면 알겠지.
균열에 집착하는 녀석들이었기에 어떻게든 다음 균열에서 만나게 될 거고, 함정을 팔 여유가 없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족치는 수밖에.
‘그나저나, 장인어른께선 수린이 잘 봐주시고 계시려나?’
특수팀 업무가 끝났으니 수린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그런데, 여태 박물관 별관에 계신단다.
“응?”
장인어른의 호출을 받고 막 박물관 별관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긴 건 장인어른과 수린이가 아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에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
살짝 시선을 돌리자, 한 남자의 가슴팍에 걸려 있는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엑시스 감사팀이잖아?’
별관 안으로 들어가니, 대충 상황을 알 것 같다.
엑시스 감사팀이 현재 박물관을 압수수색 중에 있는 거다.
‘거의 폐관하는 수준으로 작품들을 들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주차장에서 있었던 박물관장과의 소란에서 시작된 일이 생각보다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왔는가.”
“빠바!”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관 안내 데스크 쪽에서 감사팀 인원들과 비서들에게 이런저런 보고를 받고 계시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장인어른께 귓속말로 물었다.
별관 내 감사팀 분위기가 너무나도 살벌하여,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된달까.
“장인어른.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많은 고민을 했다네.”
“예?”
“수린이의 앞에 섰을 때, 한낱 부끄럽지 않은 할애비가 되려면 어찌해야 되는지 말이야.”
“그, 그래서요?”
“엑시스의 뿌리 내린 적폐를 송두리째 뽑을 걸세.”
그러니까.
수린이에게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으셔서, 지금 일을 이렇게 벌이셨다는 거다.
이거 잘하면 충분히 언론에 노출될 수도 있는 건데.
박물관 내 비리가 있는 모양인데, 그게 밝혀지면 엑시스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장인어른, 이거 좀 위험합니다. 그간 쌓아온 기업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날아갈지도 모른다구요.”
“올바르게 쌓아온 이미지가 아니라면 그 역시 날려 버리는 게 옳은 거겠지. 그렇지 않느냐, 수린아?”
“저페! 저페!”
“그렇다는구나.”
수린이가 새로운 어휘를 습득한 것 같다.
역시 학습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아무튼.
내 말은 일을 바로잡는 건 좋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크게 떠들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장인어른이시라면 충분히 조용히 처리하실 법도 한데 말이다.
“잘 보거라, 수린아. 폐단은 보이는 즉시 단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할애비처럼 말이다.”
“저페에에에!”
“껄껄! 똘똘한 녀석! 내 너의 응원에 힘입어 적폐 청산에 더욱 박차를 가해 보마!”
아무래도 수린이에게 보여 주기식인 것 같다.
물론, 장인어른의 진심이 섞여 있긴 하겠지만, 그보다 수린이의 응원에 더 자극을 받으시는 느낌이랄까.
“어, 어? 김 비서님도 오셨네요?”
거친 숨을 내뱉으시던 김 비서님은 내게 고개를 숙여 빠르게 인사를 건네고는, 다급하게 장인어른을 향해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흑표가 녹슨 이유는 역시 보존제의 마석 함량 문제였습니다. 창고에 있는 보존제들 대부분이 마석 함량이 기준치 미달인 것으로 보아, 제조사 측에서 일부러 마석 함량 비율을 낮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조사 측에서 횡령을 했다는 건가?”
“감사팀장 견해로선 그렇습니다.”
“김 비서, 자네 의견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존제 마석 함량 문제뿐만이 아니라, 제조사 측이 저희 엑시스 본사에 유통하는 제작 무기류와 방어구 역시 비슷한 문제점들이 발생했으며…….”
이건, 뭐.
한번 털기 시작하니까 줄줄이 나오는구나.
박물관에 고용된 보안 업체도 문제가 있단다.
박물관장이 보안업체 사장과 장비 가격을 후려쳐서 재단의 자금을 횡령했다나, 뭐라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장인어른.”
“말해보게, 전 서방. 자네도 뭔가 증거를 찾았나?”
“그런게 아니라, 저와 수린이는 이만 집에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가긴 어딜 가?”
“집에…….”
“수린이는 엑시스의 주축이 될 인재야. 자네 역시 협회의 일을 마무리 지으면, 엑시스의 임원이 될 것 아닌가?”
“그, 그렇겠죠?”
“둘 다 경영 수업 받는다고 생각하고 따라오게.”
“예? 어딜요?”
“어디긴 어디야. 방금 김 비서가 말하지 않았나. 보존제는 물론 본사에 유통하는 무기류와 방어구 역시 허점이 가득하다는 제조사를 뒤엎으러 가야지.”
“진짜로 거길 가시겠다구요?”
“내가 거기 못갈 이유가 뭐가 있나?”
장인어른의 시선이 김 비서님에게 향했다.
날카롭게 번뜩인 회장님의 두 눈동자에 김 비서님이 저도 모르게 움찔한다.
“최 비서가 지금 감사팀과 함께 다른 현장에 나가 있으니, 차는 김 비서 자네가 대신 몰아주겠나?”
“예, 회장님!”
“좋아. 그럼 당장 출발하도록 하지.”
일이 점점 더 커진다.
박물관으로도 모자라, 다른 업체까지 뒤엎겠다니.
“장인어른, 그 제조사 ‘엑시스 웨펀’입니다. 엑시스 계열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단 고정하시고…….”
“고정은 무슨! 내 회사에서 개판 치는 놈들을 어찌 그냥 둬?”
과연 어디까지 뒤엎으실 생각이신 걸까.
내 생각엔 계속하다 보면, 자칫 엑시스의 모든 계열사가 죄다 털릴 것만 같은데.
얼떨결에 엑시스 웨펀으로 끌려가는 길.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얼마나, 어디까지 뒤엎으실 생각이신 겁니까?”
그리고 장인어른께선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일말의 작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이다.
“엑시스 간판 빼고 싹 다.”
엑시스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