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여우 같은 놈 (123/246)

◈ 여우 같은 놈

그야말로 가시방석.

박 관장은 수태광의 뒤를 따르는 내내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여태 별다른 말이 없는 수태광이었지만, 오히려 무언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같은 것이 있었다.

‘아니, 항상 최 비서랑 동행하시더니 오늘은 웬 낡은 승용차를 타고 오신 거야?’

회장인 수태광이 거들떠도 안 볼 정도로 오래된 연식의 차량이었다.

아마, 박 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봤더라도 절대 회장님 차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따라 비서실은 왜 아무런 말도 없었지? 평소엔 회장님 뜨면 뜬다고 미리 언질도 해 주고 그러더만…….’

게다가.

하필이면 출근 시간에 늦은 오늘 같은 날 회장님과 주차장에서 대면했다.

거기에 회장님이 탑승해 있는 차를 향해 고함까지 쳐 버렸다.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인 셈.

설마 지각 한 번 했다고 관장직에서 해임되는 일은 없겠지만, 회장님 눈 밖에 날 만큼 무례한 언행을 보인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미쳐 버리겠군.’

박 관장이 불안하게 떨려오는 숨을 내뱉으며 슬그머니 눈앞을 살폈다.

“차를 좀 고급진 걸로 바꾸는 게 좋겠네.”

“예?”

“보이는 게 전부 다가 아니라지만, 보이는 게 다라고 믿는 자들이 있거든. 차만 보고 상대를 얕잡아 보는 이들도 있다는 걸세. 내 조만간 차 한 대 사 줄 터이니, 그리 알게.”

“아…… 옙!”

수태광의 강압적인 어조에 준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란법에 문제가 될 듯싶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일단 알겠다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젠장!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겠지?’

수태광과 준우의 대화를 엿듣던 박 관장이 움찔했다.

사실, 엿들었다기보단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하는 수태광이었기에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어떻게든 분위기를 쇄신해야만 했다.

이대로 회장님과 서먹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옆에 있는 애하고 저 남자는 대체 정체가 뭐지?’

박 관장이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였다.

경황이 없던 탓에 눈치를 살피기 급급했는데, 뒤늦게 회장님 옆에 있는 두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진 것이다.

주차장에서부터 회장님과 동행 중인 두 사람이었다.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회장님의 손을 잡고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철벽처럼 서서 보좌를 하고 있었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인데.’

비서실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나?

하지만, 비서라고 보기엔 남자와 여자아이의 관계가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아까 남자에겐 차를 사 주겠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회장님께 따님이 한 분 계신다고 들었는데? 설마!’

성격이 예민해 괴팍한 박 관장이지만, 예민한 만큼 눈치 하나는 빨랐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사위와 손주라는 추론을 해낸 것이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장남인 수재혁과 차남을 제외하고 나머지 자녀들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데, 박 관장이 얼떨결에 그중 유일한 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묘안이 떠오른다.

때마침, 며칠 뒤에 어린이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회가 예정된 상황.

‘손주분 점수라도 따서 분위기를 전환해 보는 거야!’

회심의 미소를 지은 박 관장이 후다닥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수태광의 옆에 가까이 다가가 은근슬쩍 물었다.

“회장님. 손주분께 유익할 만한 전시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안내하게.”

안 그래도 수태광이 수린이와 함께 살펴볼 곳이 어린이 박물관이었다.

애당초 처음부터 특별 전시가 예정된 별관으로 향하는 중이기도 했고 말이다.

현재 별관은 전시 준비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게 폐쇄가 된 상태지만, 엑시스의 회장이자 박물관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태광이 입장하는 데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본격적인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 회장이 직접 감사 차원에서 살펴본다고 하면 오히려 좋은 일이기도 했다.

‘장인어른께서 조용히 관람을 할 수 있다기에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했는데,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는 거였구나.’

별관은 당장 개장을 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전시 준비가 거의 다 끝난 상황이었다.

수태광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박 관장이 자신만만하게 안내할 만큼 깔끔하게 준비를 마쳤다고나 할까.

“맘마! 맘마!”

그때였다.

수태광의 손을 놓은 수린이가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맘마!”

낡은 대검 한 자루가 전시된 유리막 앞에 멈춰선 수린이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허어!”

수태광이 흡족하게 웃으며 감탄을 자아냈다.

이 나라의 수도인 서울에 첫 번째 대형 균열인 크레비스가 발생했을 때, 선봉대였던 엑시스의 초대 공격대장이 사용했던 ‘흑표’라는 이름의 대검이었다.

“참으로 대단하구만! 벌써부터 명검을 보는 눈을 가지다니!”

“확실히 손주분께서 보는 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박 관장이 맞장구를 쳤고, 준우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수린이의 ‘맘마!’는 선화를 부르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냥 처음 보는 건 죄다 그렇게 불렀다.

‘……그냥 맨 앞에 있는 거 보고 뛰어간 것 같은데.’

뭐, 착각은 자유니까.

준우는 어쨌거나 장인어른께서 기분이 좋으시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박 관장 역시 회장님의 손주분이 좋아하시니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여기서 좀 더 분위기를 환기시킨다면 주차장에서 일은 완벽하게 무마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지! 지지!”

……대검을 빤히 바라보던 수린이의 손짓 한 번에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으음?”

수태광이 수린이의 옆으로 다가가 유리막 안에 있는 대검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정확히는 수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지지! 지지!”

참고로 저 소리는 선화가 청소를 할 때, 먼지를 털며 하는 말이었다.

수린이가 금세 배운 말이고, 지금은 대검의 검 손잡이를 가리키며 하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녹슬었군.”

비록 검의 주인이 살아 있을 당시엔 뛰어난 검이었지만, 현재와 비교했을 경우 명검에 속하진 못했다.

점차 줄어들 검의 내구성을 감안했을 때, 아이템이 소멸할 것을 방지하여 장인의 손을 거쳐 보존력을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흑표는 검의 특성을 잃었지만, 유가족들이 검에 깃든 역사라도 영원히 간직하고자 불가피한 선택까지 해 가며 기부한 유품이었다.

“……이게 어지간해선 녹슬 수가 없을 건데?”

검의 특성과 교환한 보존력은 상당하다.

소홀하게 관리를 하지 않는 한 절대로 특성을 잃기 전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보존과학부장 호출하게.”

“아…… 예, 옙!”

수태광의 노기 띤 목소리에 박 관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장님께 잘 보이려고 안내한 별관에서 생각지도 못한 흠을 보이고야 만 것이다.

자그마치 대한민국의 위인이자, 엑시스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자의 유품에 녹이 슬었다.

이건 엑시스의 수장인 수태광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그래도 전시품 하나 정도의 문제야 어느 정도 커버를 칠 수 있을 거야.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해 보자, 빠져 나갈 구멍을……?’

박 관장이 식은땀을 닦아내던 그때.

그의 앞으로 수린이가 아장아장 지나쳐가는 게 보였다.

“지지! 지지!”

이번엔 별관 오른쪽 구석의 CCTV를 가리키며 말했다.

CCTV에 뭐가 문제라도 있다는 걸까.

“보안과장도 호출하게.”

“옙!”

그렇게 수린이는 별관 곳곳을 누볐다.

‘지지!’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수린이가 입을 열 때마다.

박 관장의 온몸에는 땀이 마를 새도 없이 흘러내렸다.

“전시과장도 불러와.”

“……옙!”

“어린이 박물관 담당자도 불러오고!”

“……예, 회장님.”

더욱이 신기한 건.

수린이가 ‘지지!’라고 말한 것들엔 모두 문제점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대체 수린이가 저런 걸 어떻게 찾아낸 거지?’

천재는 실로 만능하다, 이건가.

어쩌면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존재일지도.

준우는 다시 한번 수린이의 능력에 감탄하며, 수린이를 품에 안고 있는 수태광을 응시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네, 박 관장.”

“…….”

“사표 쓰게.”

“…….”

“물론, 사표로 끝낼 생각은 없네. 책임 소재 확실히 물을 터이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야.”

“…….”

박 관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회장 체면상 여태 참아 왔던 분노가 터졌고, 수린이가 밝혀낸 모든 것은 응당 관장인 그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옳은 일이었으니까.

“지지!”

수린이가 박 관장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고.

준우는 괜히 민망해져 수린이의 손가락을 후다닥 가려 버렸다.

* * *

준우가 통화를 하고 있는 사이.

수태광은 수린이와 함께 박물관 회의에 참석했다.

까놓고 말해.

솔직히 말이 회의지, 수린이에 의해 덜미를 잡힌 박물관 임원들과 직원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한 자리였다.

조용히 전시를 관람하러 왔다가 갑작스레 소란이 일어난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기이한 것은 수태광이 굳이 수린이를 데리고 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이었다.

- 전 서방. 내가 자네에게 말했었지. 수린이는 엑시스의 한 주축을 맡을 인재가 될 것이라고. 언젠가 엑시스의 임원급 이상이 되어 아랫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텐데, 이렇게 조기 교육을 하는 것도 썩 나쁘진 않을 거란 생각일세.

조기 교육을 위해 박물관에 왔다지만.

설마, 이런 것까지 조기 교육을 할 줄이야.

- 내 오늘 수린이에게 적폐를 청산하는 법을 제대로 보여 주겠네!

박물관 역사 조기 교육이 이상하게 경영 수업으로 변질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준우였다.

‘그런 거 보여 주셔도 아직은 잘 모를 것 같은데.’

아닌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까, 박물관 별관에서 문제점을 하나, 하나 찾아 지목하던 수린이의 천재성이라면 마냥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당장 협회에 가 봐야 하는데.’

특수팀 이건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레이더에 균열 반응이 감지됐다고.

늑대 인간 놈들의 접선 장소가 앞으로 두 번째 발생할 균열 장소인 만큼, 이 부분은 아무리 준우가 휴가 중이어도 직접 관여를 해야만 했다.

“뭘 그리 고민하나? 급한 일 있으면 가 보게.”

“예?”

준우가 사정을 얘기하자, 회의를 마치고 나온 수태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수, 수린이는요?”

“이 사람아. 눈앞에 내가 안 보이나?”

“자, 장인어른께 맡겨 두고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수린이만 혼자 남겨 두고요?”

“수린이 혼자 남겨 두는 거 뭐 어때서? 어째 말이 좀 서운하게 들리는구만 그래.”

“그런 게 아니라…….”

“농담일세.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뜻이야. 자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맘 놓고 다녀와.”

마음 같아서는 여기 남고 싶지만.

늑대 인간 놈들의 일 역시 가족의 안전을 위해 준우가 해결해야 할 큰 문제였다.

회귀 전, 자신의 죽음과 같은 일들이 가족들에게까지 번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

‘무슨 큰일이야 생기겠어?’

하물며, 장인어른께서 돌봐 주시는데.

설마 그가 손주에게 몹쓸 짓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 그럼 잠시만 수린이를 맡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금방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인어른.”

“금방 안 와도 된다네. 잘 가게나.”

수태광이 멀어지는 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시야에서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수태광의 얼굴이 다소 서글프게 변했다.

“수린아. 이 할애비가 네게 좋은 것만 보여 주려고 했거늘. 박물관에 와서 교육은커녕 흉한 꼴만 보여 주고 말았구나.”

그의 말마따나,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손주에게 못난 모습만 보여준 게 영 마음이 쓰인 것이다.

회의를 빨리 마치고 나온 이유 또한 딱히 박물관에서 처리할 수 있을 만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과 얽혀 있는 또 다른 문제점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비리와 횡령의 정도가 심각해. 이건 엑시스 회장 차원에서 강력하게 단죄를 해야만 한다.’

무언가 굳게 결심을 한 듯한 수태광.

그가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품 안의 손주를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하아부지!”

“그래, 그래. 이미 지난 일은 후회해 봤자 부질없는 법이지. 그러나 내 자식들과 손주에게 물려줘야 할 이 엑시스에 옳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건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구나.”

“하아부지?”

“적폐는 뿌리를 뽑아야 하는 법. 이 할애비와 함께 오랫동안 쌓인 이 폐단을 청산하러 가겠느냐?”

“저페! 저페!”

“좋구나! 우리 함께 가자꾸나!”

수태광은 곧장 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엑시스의 비서실과 감사실에 총집합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강재호는 경기 지부로 향했다.

일전에 칸나를 포함한 일본 교류팀이 방문했을 당시, 강사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은 기동 3팀 전원을 표창하기 위함이었다.

비서가 모는 차량이 잠시 신호에 걸렸고.

강재호는 자연스레 창밖을 응시하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교류팀 강의 당시 패기 넘치던 준우의 모습과 완벽한 강의 내용들을.

경기 지부장 말로는 1년 이내 A급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협회 입사 후 길드로 이직하지 않은 자들 중에선 역대 세 번째 A급인 셈이다.

‘협회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협회에 있을 만한 인재는 아니란 말이야.’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러했다.

이 나라의 대부분 유능한 인재들은 길드에 몸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준우를 길드에 뺏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협회장으로서 어떻게든 큰물에서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모를까.

- 1차 균열 반응 감지

그때였다.

손목의 기계식 장비가 진동을 울렸다.

본청의 레이더실에서 균열 반응이 발견되면, 가장 먼저 그에게 메시지를 전송하게 되어 있는 장치였다.

“흐음, 경기 지부 특수팀에 잠깐 들르도록 하지.”

“갑자기 말입니까?”

“특수팀 레이더 담당이 일전에 전준우 대원이랑 함께 강의를 진행했던 대원으로 알고 있거든. 실력 좀 한번 볼까 해서 말이야.”

1차 균열 반응 같은 경우는 광역 탐지형 헌터들이 본청에서 먼저 감지를 한 뒤에 각 지방 레이더로 결과를 전달한다.

1차 반응은 폭발하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균열 핵이 숨겨진 지역을 의미하며, 열에 아홉은 허무하게 반응은 잡혔으나 불발이 나는 경우인데.

‘레이더 담당자의 능력은 1차 반응의 균열에서, 불발을 포함한 2차 반응이 감지된 균열 잠정지역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게 관건이지.’

본청에서 1차 탐지를 진행하여 각 지방에 전달하면, 각 지방 메인 레이더 담당관이 2차 탐지를 시작한다.

개중에서 폭발이 임박한 균열핵이 숨겨진 지역을 찾아낸 뒤, 해당 지역에 탐지 장치를 설치하거나 탐지견을 이용해 세부 탐지를 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각 지방의 레이더 담당관은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의 균열 핵만 탐색하면 되지만, 얼마 전 특수팀에 합류한 이선호의 경우는 달랐다.

‘준우 씨에게 도움받은 만큼 갚기 위해선, 어떻게든 균열 발생 지역을 빠르게 찾아내야 해.’

그는 전 세계 지도 전체를 보고 있었다.

특수팀 업무상 늑대인간 놈들의 접선 장소에서 함정을 설치하려면, 앞으로 두 곳의 균열 발생 지역을 정확히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혀, 협회장님?”

이건형이 불시에 방문한 강재호를 발견하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용, 조용.”

“아……?”

강재호가 하던 일마저 하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방해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어디 보자, 레이더실이?’

두리번거리던 강재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머물렀다.

레이더실 유리막 내부, 커다란 모니터 여러 개를 살피고 있는 이선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 전준우 대원과 함께 강의를 했던 그 친구군.’

자연스레 강재호의 고개가 모니터를 향했다.

협회의 레이더 시스템은 모두 그가 만들어 낸 것이었고, 눈으로 대충 봐도 해당 레이더 담당자의 실력을 가늠하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호오? 이거 예상외로구만.’

강의 당시 다소 내성적인 모습의 이선호였다.

팀원들이 모두 우수하다는 준우의 말에 혹시나 해서 특수팀에 방문한 것인데, 생각보다 이선호의 능력이 괜찮았다.

‘뭣보다 아주 속도가 빨라.’

2차 반응의 균열 핵 잠정 지역 세 개를 찾아냈다.

이처럼 2차 반응이 감지되면, 각 지방에서 비상 출동 경보를 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해당 지방의 협회에선 어떤 비상도 울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선호가 각 지방의 메인 레이더 담당관보다 더욱 빠르게 2차 반응을 감지해 냈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살피고 있어. 속도 면에선 어지간한 레이더 담당자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예전의 이선호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교류팀 강의를 진행하는 두 달 동안 그 역시도 수많은 노력을 했기에 이뤄낸 결과였다.

준우가 당시 교류 센터 인근 지역을 ‘집’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준우의 가족 구성이 된 이선호는 두 달간 그곳에서 준우와의 교감, 그리고 훈련을 통해 지금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단순히 시뮬레이션으로 강의만 한 게 아니다.

이선호 본인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균열 반응 감지 훈련을 꾸준히 해 오고 있었다.

물론, 훈련 후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하지만, 속도가 빠른 탐지형 헌터는 협회 내에도 꽤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확성이지.’

이선호가 발견한 세 개의 잠정 지역은 중국 상하이와 국내 지역인 수원과 제주도 쪽이었다.

국내 최고의 탐지형 헌터라고 불리는 강재호의 시선으로 판단했을 때, 상하이와 수원은 불발이고 제주도가 진짜다.

“비상 경보가 울리기 전에 이선호 탐지가 정확하게 균열 잠정 지역을 찾아낸다면, 협회 내 최고의 탐지형 헌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언제 왔는가?”

“특수팀 업무로 인해 조금 전에 휴가 복귀했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협회장님.”

“보통은 인사부터 하지 않나?”

“아무래도 제가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강재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는 준우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패기 하나는 참 좋단 말이야.’

물론, 능력도 좋다.

그걸 알기에 협회장도 웃으면서 넘기는 거고.

“자네 질문대로 비상 경보 이전에 균열 잠정 지역을 찾아낸다면, 협회 내 최고의 헌터나 다름없겠지.”

“협회장님은 제외하고 말이죠.”

강재호가 끌끌 웃었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안타깝지만 이선호가 진짜 잠정 지역을 찾아내는 건 불가하다는 뜻이었다.

“여태 나 말고는 속도와 정확성을 모두 갖춘 레이더를 본 적이 없네.”

그저 자기 자랑이 아니었다.

그만큼 강재호는 역대급 탐지형 헌터였으니까.

“게다가, 저 모니터 안의 균열 잠정 지역은 B급 균열이야. 저 친구 수준으론 감지하기 어려워.”

세 개 중에 하나를 찍는 건 불가하다.

정확히 감지를 했으면, 바로 본청을 비롯한 각 지방의 레이더에 공유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유란 게 무엇이냐.

비상 경보를 눌러서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거다.

이선호가 직접 제 손으로 말이다.

“잘못 누르면, 협회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겠지.”

자신 없으면 비상 버튼 안 누르면 되는 거다.

그것은 곧 자신이 제대로 감지를 못했다는 뜻이 되는 거고.

“만약 정확히 감지한다면요?”

“내기라도 하자는 건가?”

“좋죠, 내기.”

“혹시, 자네 말이야. 설마, 나한테 또 원하는 게 있나? 이번에도 내가 여기 올 거란 걸 미리 알고? 어떻게?”

“그럴 리가요. 혹여 기회가 될까, 여쭤본 겁니다.”

준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른 채로 휴가에 복귀하니 협회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건데, 자연스레 이렇게 흘러갔다.

“원하는 게 뭔가?”

기다렸다는 듯이 준우가 씩 웃자.

협회장도 그런 준우의 얼굴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여우 같은 놈.’

만약, 내기에서 강재호 본인이 이긴다면.

눈앞의 요 여우 같은 녀석을 본청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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