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일단 먹고 시작하자 (118/246)

◈ 일단 먹고 시작하자

일전에 우리 기동 3팀이 보여 준 팀워크가 협회장님께 꽤 좋은 인상을 남긴 덕분에, 나를 비롯한 팀원 전체가 교류 센터 강사로 급선별됐다.

내년 해외 교류팀 인원을 올해 강사들 중 뽑는다는 소문 때문인지, 팀장님과 팀원들은 강의에 열과 성을 다했다.

‘해외 교류팀에 뽑히게 되면, 협회 내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들 하니까.’

직장인이 승진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

팀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강의 막바지.

공현철이 조금 전 일본 교류팀의 던전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며, 이전보다 공략 시간이 증가한 문제에 대한 원인을 짚어 주었다.

“여기 이 장면 봐 주시겠습니까? 보스 전투가 시작될 때인데, 카이토 씨의 전투 합류가 좀 늦었어요. 그로 인해 간발의 차로 광역 버프 범위에 들어오질 못했죠. 메인 딜러가 버프를 받지 못한 것이 이번에 공략 시간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공현철의 말을 통역하며, 강의실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카이토를 쓱 살폈다.

경청하고는 있지만 팀원들에게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다.

“단순히 카이토 씨 문제라기보단, 버퍼를 포함한 아군들과의 소통 부재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때문에, 던전 공략 중에 서로 소리를 내어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통신 장비를 착용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불가피하게 그렇지 못한 상황에는 크게 목소리를 내서라도…….”

어딜 가나 유독 튀는 사람은 있기 마련.

내가 보아온 카이토는 칸나와 동갑으로, 일본 교류팀 중에서도 자신감과 우월감이 강하며, 팀에게 의지하는 걸 상당히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신켄 길드의 유망주라 했던가.’

돋보이는 걸 좋아했으며, 아마 버프 같은 게 없어도 보스 따위는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거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방법 혹은 눈속임으로 교묘하게 자신만을 돋보이게 했다.

쉽게 말해, 나대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팀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냥 자신만 높은 평가를 받으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졌달까.

‘강사들이 그걸 모를 줄 알고? 아직 애는 애구나.’

강의가 끝났다.

교육생들이 강의실을 뜨자, 역시나 오늘도 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카이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저 녀석이 조금만 나대는 걸 줄이면, 팀 전체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적일 텐데 말이야.”

“아직 어리니까요. 그게 자신이 돋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어쩌겠어요. 일단, 최종 평가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팀장님이 혀를 끌끌 찼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같은 협회 소속도 아니지만, 카이토 같은 유형이 팀장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팀 분위기 흐리는 놈.

그러다 꼭 아주 중요한 순간에 초 치는 놈.

뭐, 아직 카이토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잘난 놈들은 꼭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다니까. 겸손하면 좀 좋아? 저런 녀석 내 밑으로 들어왔으면 아주 그냥…….”

말을 잇던 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팀장님이 씩 웃으신다.

“……아이, 물론 우리 준우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제 잘난 맛에 살아도 그게 다 용납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무래도 내 덕에 팀원 전체가 강사로 선별됐다는 사실이 여태까지 감개무량하신 모양이다.

“센세에!”

그때, 칸나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혹시나 교육생에 대한 뒷담화를 들었을까, 팀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입을 닫았다.

“오전 강의는 다 끝났는데, 무슨 일로?”

“아까 던전 시뮬레이션 영상 말인데요. 한번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공현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어를 하진 못하지만, ‘던전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와 되감기 하듯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칸나의 손동작에 대충 뜻을 알아들은 것 같다.

“왜지? 영상이라면 내가 아까 몇 번이고 보여 준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공현철의 말을 그대로 통역하여 전달하자.

칸나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구할 게 좀 있어서요!”

“연구?”

영상을 틀어 주자, 칸나는 보스와의 전투 장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유독 카이토가 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최종 평가 때, 카이토보다 꼭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고 했었지.’

칸나와는 열일곱 동갑으로, 카이토라는 녀석이 칸나의 배다른 오빠들 라인이란다.

양아버지에게 예쁨을 잔뜩 받고 있는 그 오빠들이 추천한 아카데미 후배라던가.

- 한땐 그 거지 같은 오빠들이 툭하면 저한테 그렇게 말하곤 했었어요. 천한 년의 자식이라고. 천한 년이 가문에 들어와, 길드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뭐, 결국 그 거지 같은 것들은 내가 다 쫓아냈지만.

회귀 전, 대충 이런 식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카이토가 한국에선 딱히 칸나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진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배다른 오빠들을 믿고 자신을 한참이나 깔보는 거겠지.

‘조금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부모 욕은 못 참지.

아무리 열일곱 아이들의 사춘기 시절 기 싸움이라고 하지만, 선을 너무 넘지 않았나 싶다.

근데 따지고 보면, 결국 다 신켄 길드장의 탓 아닌가.

칸나의 어머니랑도 재혼을 했고, 그 와중에도 또 다른 여자랑 불륜 관계였으니, 이래저래 문제는 그쪽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아무튼.

칸나는 그런 카이토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은 듯했다.

“무거운 검을 사용하고, 상대를 여러 번 공격을 하기보다는 방어에 중점을 두다가 일격을 노리는 타입…….”

금방이라도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칸나가 영상을 보며 중얼거린다.

“……방어적인 검술이라 저걸 뚫으려면, 나도 어지간한 공격으론 파훼하기 힘들 텐데. 속검을 사용해 최대한 빈틈을 찾는 게 최우선일까?”

분명히 내가 오늘부터 강의가 끝난 저녁 시간에 따로 개인 과외를 해 준다고 했음에도, 카이토의 전투 장면만 나올 때면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는 칸나였다.

그만큼 절실하게 이기고 싶다는 거겠지.

“준우 사마.”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오늘부터 검술 가르쳐 주시는 거 맞죠?”

어려울 게 뭐 있나.

그냥 회귀 전에 칸나한테 배웠던 거, 그대로 다시 돌려주면 되는 건데.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만 부르지 마세요.”

“준우 사마의 검술이면, 카이토도 쉽게 이길 수 있겠죠?”

겸손하시다.

일본 제일검이 될 사람이 고작 유망주 나부랭이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다니.

“물론입니다. 근데, 저녁에 검술 훈련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해야 할 일?”

“배를 채워야 해요. 이 검술은 배고프면 효율이 떨어지거든요.”

“헤에? 세상에! 저랑 아주 딱 맞는 검술이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화’를 시키는 것에 중점을 더 둬야만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선 아주 특별한 식사가 필요했다.

‘선화가 저녁 훈련 전에 도시락 싸서 가져다준다고 했었는데.’

저녁 식사 시간이 임박하기 무섭게, 선화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비장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짧은 한 문장이었다.

- 마님 : 오빠, 문 열어.

차원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영화나 방송 촬영지에서 볼 법한 밥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칸나의 경호를 나갔던 그 날.

내가 싹 비운 도시락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자, 선화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 그러니까! 그 많은 도시락을 한 사람이 싹 다 먹었다고? 그렇게나 맛있었대? 내가 만든 요리가? 응? 얼마나, 어떻게 맛있다고 했는지 말해 줘, 오빠!

워낙 손이 큰 선화였던지라, 나조차도 선화의 음식을 깨끗하게 다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종류도 많지만, 그 양이 진짜 엄청났으니까.

‘요리하는 사람은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을 보면 행복하다고 그랬었나.’

이전에는 빈 도시락만 보며 감탄을 했던 선화지만, 오늘은 꼭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전할 겸.

‘요즘 아무리 요리에 취미를 붙였다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이야. 나도 많이 먹는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선화한테 더 예쁨 받고 싶은데.

많이 먹는 걸로 예쁨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틈틈이 연습이라도 해 둘걸.

“헤에?”

칸나는 처음 마주한 선화를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는 내 쪽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이분이…… 준우 사마의 아내분입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칸나가 해맑게 미소를 띤다.

습관처럼 박수갈채까지 쏟아 내면서.

“한국 여자들은 원래 다 이렇게 예쁜가요?”

“에?”

“꼭 연예인 보는 것 같습니다! 천사 같기도 하고요, 요정 같기도 하고요. 일본에는 이렇게 예쁜 사람 한 명도 없거든요!”

한국 여자 공항에서부터 많이 봤으면서.

회귀 전엔 안 그랬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애교 섞인 아부성 멘트를 제법 잘 치는 것 같다.

“응? 뭐라고 하시는 거야, 오빠?”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상황.

일어를 할 줄 모르는 선화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선화 너보고 천사 같대.”

“어마마!”

첫인사에 미모 찬양이면 끝났지.

이미 칸나는 첫인상이 좋게 박혔을 거다.

‘뭐, 사실은 우리 선화 미모가 천사보다 훨씬 더 훌륭할 테지만.’

칸나의 말을 그대로 다 통역해서 전해줬다.

천사에 이어, 요정까지 튀어나오자 선화가 싱글벙글하며 준비한 밥차의 음식들을 하나둘 공개하기 시작했다.

“칸나 양은 말도 어쩜 그렇게 예쁘게 해요? 새벽부터 음식 만드느라 힘들었는데, 힘들게 만든 보람이 있네!”

“냄새가 너무 좋아요! 역시 예쁜 사람은 요리도 잘하나 봐요!”

“오빠, 뭐래? 이번에도 나보고 예쁘다고 하는 거 맞지?”

“……응, 맞아.”

늦게나마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은 죽이 상당히 잘 맞았다.

회귀 전엔 스치듯이 인사 몇 번 나눈 게 전부였던지라, 사실 이렇게 만나는 건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 순식간에 언니 동생 먹을 줄이야.’

선화가 밥차를 준비해 올 거란 건 생각 못 했다.

도시락 싸다 준다고 해서 저번처럼 수십 개 정도의 도시락인 줄 알았는데, 자그마치 밥차를 끌고 올 줄이야.

“이쪽은 한식 위주고, 저기가 일식, 그리고 제일 끝이 양식이에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요.”

“스고이데스!”

“아리가또.”

“언니 미모는 더 스고이데스!”

“오빠, 얘 진짜 귀엽다.”

칸나의 어눌한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인 말투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선화였다.

거기에 끊이지 않은 미모 칭찬과 요리 실력 찬양까지 더해지니 약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수린이는?”

“아빠가 보고 있어. 전화하니까 바로 달려오더라?”

“엑시스 달라고 하시면, 그것도 주시겠는데?”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당장 중요한 건, 칸나가 조금 전부터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원문 내부에 작은 식탁을 가져다 놨고.

나와 선화가 계속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이타다키마스!”

칸나가 우아한 흡입을 시작했다.

대충 봐도 족히 50인분은 될 것 같은데.

맛있게 잘도 먹는다.

역시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입에 맞아요, 칸나 양?”

“제가 살면서 먹어 본 음식 중에 최고예요!”

선화가 즐거워하고 있다.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칸나를 바라보며, 행복해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선화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거였는데. 회귀 전엔 왜 그걸 못했는지, 참.’

식사를 하면서도 언니, 동생하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조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선화를 잘 따르는 칸나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그땐 뭐가 바쁘다고 칸나에게 떡볶이 한번 사 줄 여유조차 없었을까.’

이번엔 꼭 일본 돌아가기 전에 떡볶이 사 줘야겠다.

선화가 좋아하는 맛집에 가서, 회귀 전엔 만들지 못했던 추억도 쌓을 겸.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지, 진짜 다 먹었네?”

딱 한 시간.

그 안에 칸나가 밥차를 싹 비웠다.

“언니! 저랑 같이 일본 가요!”

“선화 너 데리고 일본 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는데?”

“얘 진짜 말 너무 예쁘게 해. 먹기는 또 얼마나 잘 먹어? 막 계속 맛있는 거 해 주고 싶어!”

아직 식사가 전부 끝난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후식이 남았다.

‘레인보우 블라썸’이라는 소화 촉진을 돕는 꽃잎으로 우려 만든 따뜻한 차였는데, 여태 꽃잎을 구하느라 칸나의 훈련을 오늘까지 미뤄 둔 것이었다.

희귀한 품종이지만, 엑시스 연구소에 해당 꽃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형님의 도움을 좀 받았다.

곧 다가올 김 비서님의 생일 선물 추천해 주는 대가로.

“차(茶)네요?”

“빠르게 소화가 될 겁니다. 천천히 한 잔 마신 뒤에, 준비 끝나면 말씀해 주세요. 그때 검술 훈련 시작하도록 할게요.”

회귀 전에 칸나가 즐겨 마시던 차였다.

보통은 소화를 촉진시킨다 정도지만, 미식가 특성을 가진 칸나에게는 자그마치 능력 개선의 효과까지 더해 주는 차였으니까.

“아, 이건 훈련에 사용할 목검.”

차를 내오며 함께 가져온 목검 세 자루.

칸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세 개의 검을 살핀다.

“그런데 왜 검이 세 자루에요? 하나는 준우사마가 쓰려고 하시는 것일 테고, 한 자루는 제 거, 그럼 남은 한 자루는…….”

“하나는 제가 쓰려고 가져온 게 맞습니다만, 나머지 두 자루는 모두 칸나 양이 사용하게 될 겁니다.”

“두, 두 자루를 제가 한 번에요? 한 손에 하나씩?”

양손으로 검을 다룰 줄 알아야.

전장에서 한쪽 팔을 잃어도, 상대를 벨 수 있다고.

회귀 전에 네가 그랬으면서.

새삼스럽게 놀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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