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116/246)

◈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칸나는 생각했다.

한국은 참 좋은 나라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도시락을 건넨 준우 역시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열일곱 소녀의 경험에 의하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대가 없이 건넨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었다.

“국제 교류팀 경호를 맡게 된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전준우 대원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칸나 양.”

칸나는 전준우라는 이름 세 글자를 머릿속에 새겼다.

첫인상이 매우 좋은 남자였다. 얼굴도 훈훈하니, 자신의 배다른 오빠들과는 달리 보여지는 이미지도 따뜻했다.

꼬르륵 -

칸나의 뱃속에서 요동치듯 소리가 들려왔고.

준우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칸나를 배려했다.

“일단,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요.”

교류팀 체면이 있지, 입국장 앞에서 식사를 하는 건 보기에 좋지 않다.

정작 칸나는 당장이라도 도시락을 까먹을 기세이긴 했지만.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배고픔을 참아내는 건 칸나에겐 무리였다. 한국까지 오면서 수없이 참고, 또 참지 않았던가.

“공항 내 식당 한 곳을 섭외해뒀습니다. 늦은 시간인지라 흔쾌히 대관에 응해주셨거든요.”

다행히 준우가 앞서 미리 움직여 조치를 해뒀다.

공항 측의 배려로 다른 장소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식사를 하기엔 식당만 한 곳이 없었다.

“이타다키마스!”

칸나가 해맑게 웃으며 소리쳤다.

교류팀 일정이 시작된 이래, 가장 밝은 미소였다.

허겁지겁 도시락을 까먹기 시작하는 칸나의 모습은 심히 놀라웠다.

양손과 입은 오직 음식을 집고, 먹는 것에 집중한 상태로, 식사를 시작한 지 1분 만에 도시락 하나를 싹 비운 것이다.

“무, 무슨 먹방 보는 것 같네.”

“그러게요.”

김강수의 격한 반응과는 달리, 준우는 덤덤했다.

회귀 전에 몇 번 봤던 칸나의 모습이었기에.

‘여전히 밥 먹을 땐 세상 얌전하구나.’

미식가이면서도 대식가인 칸나다.

신기한 건, 식사를 하는 모습이 게걸스럽거나 우악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김강수의 말마따나 굳이 먹방으로 비교를 하자면, 우아하고도 고급스런 느낌이 나는 방송 느낌이랄까.

“맛있다!”

칸나는 환하게 웃으며 두 번째 도시락을 개봉했다.

미련하게 입 안에 많은 양의 음식을 한 번에 넣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손과 입이 움직이는 속도가 남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정말 괜찮을까요, 팀장님?”

“괜찮아. 아까 보고도 했고, 조금 전에 협회에서도 칸나 양은 식사한 뒤에 이동하도록 조치하라고 명령까지 내려왔어.”

“아아, 다행이네요.”

“당연한 거 아니겠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저 정도까지 굶주렸으면 급한 대로 식사부터 해야지.”

다른 교류팀원들은 이미 공항을 떠났다.

기내에서 배를 채운 이들이었고,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한들 칸나처럼 당장 식사를 해야 할 만큼 식욕이 강한 자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식욕보다 쉬고 싶은 욕구가 더 강했다.

연착과 항로의 몬스터 출현으로 뜻하지 않게 장기간 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앞서 김강수와 준우를 제외한 나머지 경호팀 인원들이 통역사와 함께 먼저 출발한 상황.

“맛있다아!”

고로, 손이 큰 선화가 준비한 수십 개의 도시락은 모두 눈앞에 있는 칸나의 몫이 되었다.

사람들과 나눠 먹으라고 싸준 것이기도 했는데.

뭐, 이러나저러나 안 남기고 다 먹으면 좋은 거겠지.

“진짜 잘 먹네. 내가 여지껏 본 그 어떤 먹방보다 훌륭한 것 같아. 나였으면 헌터 같은 거 안 하고, 바로 먹방 유튜브 시작했다.”

“팀장님도 배고프시면 옆에 가서 같이 드세요.”

“쩝, 아쉽게도 경호 임무 중이라.”

칸나는 순식간에 열 번째 도시락을 까고 있었다.

아직도 배가 차지 않았는지, 손과 입이 움직이는 속도는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수씨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먹으라고 싸준 도시락이 한 사람 입에 다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실로 경이로운 식사 장면이었다.

보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매우 만족스러운.

선화가 준비해준 도시락이 빠르게 비워져 갔다.

그렇게, 칸나가 절반가량의 도시락을 비웠을 무렵.

이이잉 - !

난데없이 공항 내 비상경보가 울려 퍼졌다.

사이렌의 색깔을 보아하니, 몬스터 감지 경보다.

“뭐야, 갑자기?”

“공항 내에 몬스터가 출현하는 경우는 드문데…….”

그때, 저 멀리서 공항 경비팀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자세히 바라보자 그냥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뭔가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

‘스피토?’

거리가 가까워지자, 준우의 눈에도 그들이 쫓는 게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스피토였지만, 마력을 운용한다면 감지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공항 근처에 출몰했던 스피토는 내가 아까 모두 제거했는데? 설마, 그 전에 공항 내에 숨어들었던 건가?’

여태 잘 숨어있다가, 굶주림에 사람의 피를 탐하러 뒤늦게 움직인 듯싶었다. 그 과정에서 몬스터 감지 센서에 발각된 것일 터.

“……몬스터?”

도시락 까기에 열중하던 칸나가 멈칫했다.

자연스레 손이 움직인다. 캐리어 안에 있을 자신의 무기인 검을 향해서.

하지만.

굳이 그녀가 나설 필요까진 없었다.

스슥 -

준우가 먼저 검을 뽑았고.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은 시야의 어딘가를 향해 부드럽게 가로 그었다.

투욱 -

스피토의 두 동강 난 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공항 내 출몰한 몬스터가 이놈 하나였던지, 동시에 비상경보도 멎었다.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식사하세요, 칸나 양.”

조금 전 보여준 검의 움직임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준우였다.

그러나, 칸나는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방금 손톱만 한 스피토를 일격에 두 동강 낼 수 있는 검술 실력은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검을 움직이는 과정에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았어.’

그뿐이랴.

모기보다 살짝 큰 녀석이라지만, 나름 D급 몬스터에 속하는 스피토였다.

그런데, 그런 스피토를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깔끔하게 절단했다.

‘찰나의 순간에 마력을 주입했음에도, 검날의 마력은 일절 흔들림이 없었고.’

무기에 마력 주입을 하는 건 고난도 테크닉이다.

조금 전 준우처럼 짧은 시간 내에 방출한 마력을 무기에 주입시켜, 마력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건 그보다 더 고급 테크닉이었고.

무엇보다.

단순히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검술 명가에서 자라온 칸나는 그게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빨라. 그런데도 손톱만 한 스피토의 급소를 벨 만큼 아주 정확했어. 마치 그 남자의 쾌검처럼…….’

별거 아닌 게 아니다.

검술 실력만 놓고 본다면, 가히 자신의 양아버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도 같았다.

처음이었다.

눈앞에 밥을 두고, 다른 것에 한눈을 판 것은.

칸나가 준우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그거 어떻게 했어요?”

네가 가르쳐준 거잖아?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는 준우였다.

***

경호 임무를 무사히 마친 다음 날.

김강수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수십 개의 도시락을 모두 먹어 치운 칸나의 식성도 놀라웠지만, 또 하나 놀랐던 게 있었다.

‘막내 녀석. 일본어 실력이 상당했단 말이야.’

엑시스 부 마스터로 간부직에 있던 준우였다.

해외 출장이 잦았고, 일본어를 비롯한 각국의 언어는 그에게 기본 사양이었다.

당연히 회귀 전의 준우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니, 김강수는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젠 못 하는 게 대체 뭐냐는 말도 지겨울 수준이랄까.

‘통역사 말로는 최소 일본 유학은 다녀왔을 거라고 했었지.’

하지만, 준우의 이력엔 유학 관련 내용이 없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뜻이었다.

‘헌터로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외적으로도 뛰어나지 않은 구석이 없는 놈일세.’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준우 정도의 능력자는 자신의 밑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엑시스의 사위가 왜 협회에 몸담고 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막내가 협회 생활에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최소 지부장, 최대 협회장이 될 수도 있을 만한 녀석이야.’

하지만, 아무리 다방면으로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지부장 정도 되는 간부급들은 쉽게 오를 수 없는 자리였다.

마냥 능력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라, 협회 내에서 엘리트 코스라 일컫는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는 ‘승진의 정석’ 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협회 설립 후 작년까지 존재했던 지방 교류팀이라던가.

‘그게 국제 교류팀 사업이 시작되고 올해부턴 사라졌단 말이야.’

국제 교류팀과 다른 점은 국가가 아닌, 각 협회 지부 내에서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고, 익히고, 평가를 한다는 것이었다.

‘역대 모든 지부장들은 죄다 지방 교류팀 상위권 수료생들이고.’

지부장이 되어야, 협회장도 될 수 있다.

통계상 그래야만 확률이 가장 높았다.

‘지방 간 교류 사업이 없어진 걸로 보아, 앞으로는 그 대신 시작한 국제 교류팀 사업이 엘리트 코스가 되지 않을까?’

이번처럼 일본 교류팀이 한국에 오는 것 말고, 반대로 한국 교류팀이 다른 국가에 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막내 녀석을 첫 번째 교류팀에 끼워서 보내고 싶은데.’

무조건 교류팀에 들어가야만 출셋길이 열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출셋길이 열릴 확률이 높은 것만은 확실했다. 여지껏 그래왔으니까.

“준우야. 너, 서울지부로 갈 생각 없냐?”

“……?”

뜬금없는 김강수의 발언에 팀원들의 시선이 준우에게 집중됐다.

“갑자기요?”

“너도 출세는 해야 할 거 아니냐. 능력 좋은 놈이 평생 내 밑에서 일할 리도 없고.”

“전 지금이 좋은데요?”

어차피 늑대인간 사건 마무리 지으면 퇴사할 생각이다.

선화한테도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던가.

“내가 불편해서 그래. 우리야 네가 있으면 좋다지만, 뭔가 앞길을 막는 느낌이랄까.”

예상치 못한 김강수의 따뜻한 배려에 준우는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원래 안 그러던 사람이 왜 이러지. 뭘 잘못 먹었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교류팀은 아마 이번 일본 교류팀 강사들 중에 뽑힐 가능성이 높다더라. 교류팀 합류해서 고득점으로 수료하면, 출셋길도 어느 정도 보장될 것 같은데, 너도 나중에 교류팀 강사 지원해서…….”

“그래서 절 서울지부에 버리시려구요?”

“버, 버리다니, 새꺄! 지금 나도 보물을 내놓는 심정인데!”

어쨌거나, 그만큼 김강수가 자신을 아낀다는 뜻.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 새끼 웃네. 말은 여기에 남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너도 가고 싶은 거지?”

준우가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는 장난스레 되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절 서울지부로 보내시려구요?”

“지부장님께 말씀드려 봐야지. 너 정도 실력이면 어지간한 서울 놈들보다 훨씬 나으니까, 어렵지 않게 인사이동 할 수 있을 거다. 저번에 서울지부장이 네 싸인까지 받아 갔잖냐?”

“그랬죠.”

“그 인간 너 와준다고 하면 아마 발 벗고 마중 나올 거고. 아무튼. 교류팀 사업이 서울지부에서만 진행되는 만큼, 강사들도 죄다 서울지부 놈들로 뽑혔어. 그러니까, 너도 이번에 서울지부 가서 나중에 강사도 지원하고, 교류팀도 가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김강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휘 젓는다.

다소 겉멋이 들어 있는 행동들이 연달아 이어졌고, 마치 멋있는 척을 해보려는 것처럼 보였다.

“저 혼자는 안 가요. 언제는 우린 하나라고 그러더니.”

“시팔, 그럼 뭐 우리 다 같이 가자고?”

“못할 것도 없죠.”

“장인어른 힘이라도 빌리려고?”

“에이, 고작 그런 일에?”

“그럼?”

“굳이 서울지부로 인사이동까지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저희가 교류 센터 강사가 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준우가 씩 웃는다.

김강수는 그 미소를 자주 본 적이 있었다.

막내가 뭔가에 확신이 있을 때 나오는 미소다.

“마, 막내,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지금쯤 진행 중일 겁니다. 아마도.”

준우는 공항에서 보았던 칸나의 눈빛을 떠올렸다.

밥 먹을 때의 눈빛 말고, 일격에 스피토를 절단냈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말이다.

‘나한테 검 안 배우고는 못 배길걸?’

칸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준우다.

입맛이 까다로운 칸나이기에 어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한번 먹게 되면, 같은 메뉴의 식당은 오직 해당 가게에서만 먹는 녀석이었다.

‘입맛만큼이나 검을 보는 눈도 까다롭지.’

칸나 본인이 직접 만든 최적의 검술인데.

그걸 배우지 않고서는 절대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을 거다.

아마, 지금쯤 다른 강의엔 집중도 못 하고 있지 않을까.

초조함에 스트레스까지 더해졌으니, 배고픔 때문에 더 집중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협회장님도 알고 계실 테지. 칸나가 일본의 대형 길드 중 하나인 신켄 길드의 딸이라는 걸.’

일본 교류팀 일정이 시작되는 첫날.

준우의 예상대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강재호는 본청에서 서울지부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신켄 길드 마스터님의 따님께서 이번 교류팀에 합류했다고 들었습니다.”

운전을 하던 비서가 문득 물었다.

백미러에 비친 협회장의 표정이 흐뭇해 보인다.

“그렇네. 안 그래도 신켄이 독점하고 있는 도쿄의 블루스톤 광산 건에 대해 의논을 해야만 했는데, 그 전에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겠어. 잘하면 일이 좋게 좋게 흘러가겠구만.”

“너무 염려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협회장님. 교류 센터는 서울지부 내에서도 최고의 헌터들로 강사진을 꾸리지 않았습니까. 신켄 길드의 따님께서도 충분히 이번 교육에 만족하실 겁니다.”

“자칫, 첫인상에 문제가 생기면 광산 건에 차질이 생길지도 몰라. 재수 없으면, 신켄 길드 마스터 성격에 광산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지. 그러니 자네가 한번 더 둘러봐주게나.”

“예, 협회장님.”

부디, 신켄의 딸이 이번 교육에 만족하길 바랐다.

적어도 그 반대의 경우보단 광산 건에 좋은 결과를 초래하게 할 테니까.

“기왕이면, 신켄의 딸이 우리 협회의 교육 시스템에 화들짝 놀랐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잠시 후.

한껏 기대에 부푼 협회장이 서울지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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