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식가
수린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주방 쪽을 가리키며 계속 나를 부른다.
“빠바! 빠바!”
아마, 아빠라는 뜻일 거다.
이제는 따다가 아닌, 다른 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도 꽤 많이 텄으니까.
뒤뚱뒤뚱하던 걸음걸이도 빠른 속도로 안정이 되고 있기도 했다.
“빠바아아!”
주방 쪽으로 가고 싶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선화가 주방에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엄마 지금 바쁘대. 그러니까, 아빠랑 놀고 있자.”
선화는 요리에 한창 몰두 중이었다.
아침 식사 메뉴는 한식 풀 코스였고, 점심 식사 메뉴는 일식 풀 코스였다. 그리고 곧 다가올 저녁 메뉴는…….
‘……양식 풀 코스겠지.’
며칠 전, 선화는 주방의 몇몇 도구들에 조강지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방 도구라 그런지, 조강지처로 재탄생한 아이템들은 대개 음식의 맛을 높여 주는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염원 레벨이 한참 부족할 줄 알았는데…….’
염원은 레벨은 생각보다 차고 넘쳤다.
그렇다는 건 선화가 나로 인해 행복했다는 것일 터.
내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염원 레벨이 오르기 위해서는 선화의 행복 지수가 핵심이었으니까.
‘행복하다니 참 뿌듯하기는 한데.’
그 염원 레벨을 모두 주방 도구에 사용할 줄은 몰랐다.
주방 도구의 특성들을 점점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 음식은 맛이 갈수록 훌륭해졌고, 선화는 더욱 요리의 재미에 깊이 빠져든 상태였다.
덕분에.
휴일인 오늘, 나는 배가 고플 틈이 없었다.
아침 식사부터 점심까지 선화가 만든 수많은 요리로 배를 채웠기에.
‘손이 큰 것도 장인어른 닮은 건가?’
음식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것저것 다 만들어서 먹여 주고 싶다며, 할 수 있는 건 죄다 해 줬다. 안 해 본 것도 유튜브 보고 따라서 만들어 주기까지 했고.
당연히 맛은 일품이었다.
과장 하나도 안 섞고, 아침에 먹었던 된장찌개는 회귀 전에 맛봤던 재래 된장 장인의 것과 가히 견줄 만했다.
요리도 템빨로 가능한 건가.
아니지, 템을 잘 쓰는 것도 선화 능력이겠지.
“좀만 기다려, 오빠! 고기만 구우면 저녁 메뉴도 준비 다 끝나거든?”
“천천히 해도 되는데?”
“천천히 하긴. 우리 오빠 배고플 텐데.”
배가 하나도 안 고프다.
아침, 점심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 탓에 배가 고플 틈조차도 없었다.
“근데, 저녁을 벌써 먹어?”
“왜? 설마, 먹기 싫어?”
“하, 하핫! 그럴 리가!”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다지만, 배가 부른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도저히 먹기 싫다는 말은 못 하겠다.
‘저렇게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데, 어찌 먹기 싫다고 할 수 있을까.’
선화는 이유식을 먼저 만들어 가져왔다.
수린이가 먹기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엄마가 엄청 열심히 만든 건데. 이거 엄청 맛있어, 수린아? 엄마 봐봐. 냠냠, 아구 맛있다! 우리 수린이도 한번 먹어 보자!”
“맘마! 맘마!”
수린이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선화가 만든 이유식 역시 맛이 일품이겠지만, 수린이의 시선은 이유식이 아닌 오직 한 곳을 향해 있었다.
바로 주방.
조금 전, 선화가 구운 스테이크가 있는 곳이었다.
‘자그마치 드래곤인데, 이유식이 성에 찰 리가.’
뭘 먹여도 잘 먹는 수린이었다.
드래곤의 체질 덕분에 문제가 될 것도 하나 없었다.
“맘마! 맘마!”
“고기는 안 돼. 탈 난단 말야.”
“맘마아아아!”
“고기는 나중에 더 크면 먹자? 알았지?”
드래곤의 체질과 식성에 대해 말을 설명을 해 줬음에도 불구, 선화는 이유식만을 고집했다.
뭐, 이해는 한다.
엄마들의 마음은 그런 것일 테니까.
‘겉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아이니, 걱정이 되는 거겠지.’
이유식을 눈앞에 두고 펼쳐진 실랑이는 금방 끝이 났다.
내가 나서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몇 번 보이자, 결국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수린이였기에.
막상 먹기 시작하면 또 잘 먹는다.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표정으로 말이다.
“아구구, 우리 수린이 예쁘게 잘도 먹네?”
“싹 비웠어. 엄청 맛있나 봐.”
“아마, 내일은 더 맛있을걸?”
식사를 마친 수린이가 트림을 했다.
용트림치고는 다소 소리가 작은 것 같다.
이윽고.
이번엔 우리의 저녁상이 펼쳐졌다.
“……이걸 둘이서 다 먹는 건가?”
스테이크가 부위별로 있다.
각종 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디저트까지.
많아도 너무 많은데.
“우리 오빠 배고플까 봐, 맘껏 먹으라고 준비했지.”
TV로 살짝 시선을 돌리자.
체격 좋은 사람들이 먹방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 다 우리 집에 와도 절대 못 먹을 것만 같은 양인데 말이지.’
그래도 막상 먹으니 또 들어가긴 했다.
음식이 워낙 맛있는 탓이리라.
“억지로 안 먹어도 돼. 사실 내가 연습하고 싶어서 한 것들이니까, 배부르면 남겨도 괜찮아.”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했었는데.
다 먹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맛있게 먹어야지.
“꽤 많이 남았는데, 정말 괜찮아?”
“괜찮다니까. 다 이해해. 세상에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있긴 있지.”
“에이. 진짜로?”
문득, 칸나가 떠올랐다.
그녀의 특성 중 하나는 ‘미식가(美食家)’.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먹는 양이 엄청났기에 잘 먹는 사람 하면 항상 떠오르던 녀석이었다.
“아마, 이것보다 더 많은 양도 순식간에 먹어 치울걸?”
“그, 그게 가능해?”
미식가 특성은 사용자의 기호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록 강해지는 효과가 있다.
선화의 요리라면, 오히려 칸나가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칠지도 모르겠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엄청난 미식가이기도 하지.”
“오! 그럼 나중에 꼭 우리 집에 한번 모셔 와! 내가 만든 요리 진짜 맛있냐고 좀 물어봐 보게!”
나는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 칸나에게 꼭 한번 집에 초대하겠다고도 했었는데, 그 약속도 못 지킨 것 같다.
‘뒤늦게 지켜야 할 약속이 많네.’
* * *
며칠 뒤.
칸나와 교류팀이 한국에 도착하는 날.
“교류팀 입국 예정 시간이 미뤄진단다.”
“왜요?”
“연착됐대. 아마, 조금 전에 김포 공항 인근에서 발견된 ‘스피토’들 때문인 것 같은데.”
“아아, 그래서 공항 내 인파도 통제를 시작한 거군요.”
스피토는 손톱만 한 크기의 모기처럼 생긴 D급 몬스터로, 사람의 피를 흡수하고 각종 디버프를 전이시키는 녀석들이었다.
공항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스피토들이었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스피토 제거가 완벽하게 끝날 때까지 연착이 된 듯싶었다.
‘설마, 이러다가 오늘 입국 안 하는 거 아냐?’
선화가 미식가의 평가 좀 받아오라며 칸나의 도시락까지 싸 주지 않았던가.
만약, 칸나가 오늘 입국하지 않으면 선화의 도시락이 상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래도 내가 나서는 게 낫겠어.’
선화의 도시락이 상하게 둘 수는 없지.
스피토들쯤이야. 그래 봤자, 한낱 벌레들일 뿐이었다.
* * *
미나토자키 칸나.
열일곱의 소녀는 김포 공항행 비행기가 연착됐다는 소식에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떡하지?’
비행기야 얼마가 연착되던 크게 상관없다.
교류팀 일정이야 각 국가의 협회들끼리 알아서 다시 조율을 할 테니까.
중요한 건.
칸나의 문제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배가 너무 고프잖아.’
연착이 되면서 시간이 지체됐다.
그 말은 곧, 밥 먹을 때를 놓쳤다는 거다.
미식가 특성을 가진 칸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모든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식성(食星)’을 체내에 저장할 수가 있었다.
맛의 기준은 오직 본인의 입맛이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수록 강해진다는 효과 자체만 봤을 때는 참으로 복에 겨운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엔 장단이 존재하는 법.
‘배고파서 현기증 날 거 같아.’
과장된 표현이 아닌, 칸나에겐 정말로 현기증이 났다.
허기가 지면 질수록 체내의 마력이 요동을 쳐, 이상 징후가 생기기 때문이다.
체내에 저장해 둔 식성을 사용한다면 현기증 정도는 무마시킬 수 있겠지만, 그건 혹시 모를 비상시를 위해 일단 남겨 둬야만 했다.
[ 허기가 극심하여 능력치 하락합니다. ]
[ 능력치 하락과 동시에 빈혈 증세를 동반합니다. ]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배고픔으로 인한 어지러움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건지.
‘큰일 났다! 점점 더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단순히 현기증만 동반하는 게 아니었다.
허기가 지속될수록 배고픔의 정도도 심해졌다.
어쩌면, 지금의 식욕은 일반인의 열 배가량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맛없다고 느끼게 되면, 오히려 증상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식당의 음식들을 대량으로 포장해 왔거늘.
‘젠장! 기내에서 먹을 것까지 준비해 뒀는데, 하필이면 연착이 되는 바람에.’
줄줄이 이어진 연착으로 준비해 둔 음식마저 동이 났다.
워낙에 유명하고 바쁜 식당이었던지라, 당장 주문을 하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냥 교류팀 일정을 포기해야 되나?
즐겨 찾던 식당으로 뛰어갈까?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김포 공항에서의 문제가 해결돼, 곧 한국으로 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파됐다.
- 식충이 같은 녀석. 그깟 배고픔조차 이겨 내지 못할 만큼 자제력이 부족해서야, 쯧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검의 기본이라 했거늘. 칸나, 넌 검을 쥘 자격조차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양아버지의 질책이 떠올랐다.
‘이번 교류팀에서조차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나는 집에서 쫓겨나고 말 거야.’
양아버지는 일본에서 꽤 영향력 있는 길드 마스터였다.
세상 그 누구보다 검에 진심인 사람이며, 그밖에 모든 것엔 매정한 가부장적인 남자였다.
칸나의 어머니가 재혼함으로써 얼떨결에 길드에서 검을 배우게 됐다지만, 검에 재능이 없었다.
나아가, 어머니께서 병으로 돌아가신 이후로는 찬밥 신세까지 되지 않았던가.
양아버지가 어머니께서 병상에 누워 계실 때, 지금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렇게 쫓겨날 수는 없어. 꼭 내 손으로 그 남자를 길드 마스터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말 거야.’
칸나 인생의 첫 번째 목표였다.
양아버지와 그 자식들을 자신들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꼴 보기 좋게 내쫓아 버리는 것. 그 전엔 절대로 그 집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두 번째 목표야 차차 정하도록 하고.
의지를 다잡은 칸나가 저장해 둔 식성을 사용해 심해지는 현기증과 배고픔을 완화시켰다.
‘한국에도 맛집은 많아.’
맛집 목록까지 작성해 오지 않았던가.
급한 대로 모아 둔 식성을 사용한다면, 2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은 배고픔을 참아 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일단, 버텨 보는 거야.’
비상시를 위해 남겨 둔 식성이지만, 양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니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작 2시간이야. 참을 수 있어!’
한국 협회의 배려로 교류팀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짧은 시간의 비행이었지만 기내식까지 제공됐다.
“칸나, 넌 안 먹어?”
“저는 괜찮아요.”
팀원 중 한 명이 물었다.
사실,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다.
자칫 먹었다가 맛이 없으면 오히려 더 허기가 질 테고, 현기증과 식욕 또한 더 심해질 테니까.
‘……맛있나?’
그런데, 기내식을 먹는 팀원들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어지간해선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는 칸나였다. 미식가가 괜히 미식가겠는가. 입이 그만큼 까다로우니 미식가지.
‘나도 한번 먹어 볼까?’
주변의 팀원들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였을까.
저장해 둔 모든 식성을 사용해 포만감을 채웠음에도 불구, 허기가 급속도로 지기 시작했다.
‘비행시간이 짧으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가 식욕이라 했던가.
결국, 굶주린 칸나는 식욕에 지배당하고야 말았다.
가진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칸나의 식탐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거다.
눈앞에서 누군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걸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그녀에게 고문과도 같았다.
“저, 저도 먹어 볼래요.”
결국, 기내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조그마한 스테이크와 샐러드, 과일로 이루어진 양식으로다가.
‘우, 우웩! 어떻게 음식이 이렇게 맛없을 수가 있지?’
하지만, 역시나였다.
기내식이 까다로운 칸나의 입을 맞출 수 있을 리는 만무.
[ 허기가 극심하여 능력치 하락합니다. ]
[ 능력치 하락과 동시에 빈혈 증세를 동반합니다. ]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것 같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현기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느낌이다.
‘배,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항로 인근에 공중형 몬스터인 ‘프테라노돈’이 출몰했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비록 한 마리뿐이라지만, 공중형 몬스터라 상대하기 까다로워 시간이 꽤 걸릴 터.
백악기 시대의 익룡과 같은 그 이름이 들려오자, 칸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아, 한국 도착하면 꼭 맛집부터 가야지.’
칸나가 어떻게든 버텨 내 보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행기는 장장 5시간 동안 허공을 배회했다.
* * *
유명한 국내 아이돌이 일본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오늘 밤에 귀국을 한다던가.
입국장 근처에는 그들의 팬으로 보이는 인파가 가득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팀장님이 손목의 시계를 살핀다.
스피토 문제는 내가 해결을 했다지만, 재수 없게 프테라노돈까지 항로에 출몰하면서 교류팀의 입국이 상당히 많이 늦어졌다.
“곧 나올 겁니다. 지금 수하물 찾고 있을 거예요.”
“후우,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줄줄이 이어진 연착과 공중형 몬스터의 출몰.
군부대의 도움으로 프테라노돈은 최대한 빨리 처리가 되긴 했으나, 거의 하루를 다 쓰다시피 했다.
‘칸나 녀석, 배 엄청 고팠을 텐데.’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칸나야 자신의 단점을 감춘답시고 남들에게 특성에 대한 언급은 안 했겠지만, 나는 녀석의 특성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우리도 피켓 같은 거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피켓이요?”
“봐라. 다들 피켓 들고 있잖냐.”
팀원들이 주변을 둘러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빠’라는 호칭과 함께 꾸며진 피켓과 선물 혹은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오늘 귀국하는 아이돌 기다리는 겁니다.”
“우리도 아이돌만큼 중요한 사람 기다리는 건데?”
“쪽팔려요, 팀장님. 무슨 피켓까지…….”
팀원들의 대화를 듣다가 문득 움찔했다.
피켓은 아니지만, 나도 막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내 손에 들었기 때문이다.
“막내야. 뭐냐, 그건?”
“아, 이거…….”
도시락이었다.
선화가 칸나 주라고 만들어 준.
“웬 도시락? 차라리 피켓이 낫지 않냐?”
“흠, 흠!”
조금 쪽팔리긴 했다.
피켓 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 유일무이하게 도시락을 들고 서 있어서 그런지, 좀 더 내가 부각되는 것 같달까.
옆에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마저 느껴진다.
살짝, 도시락을 등 뒤로 숨길까 하던 그때.
“나, 나온다!”
팀장님의 외침과 동시에 입국장 문이 열렸다.
그리고 주변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
입국장에서 나온 아이돌을 향해 몰려가는 팬들과 기자들.
우리는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교류팀을 찾았다.
다들 낯선 얼굴들인지라 팀원들은 다소 헤매는 모습이었으나, 내 눈엔 단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런, 곧 쓰러지겠어.’
회귀 전에 내가 알던 모습보다 통통하긴 했다.
풋풋한 느낌이었지만, 얼굴은 그대로다.
비틀거리며 입국장에서 나오던 칸나가 멈칫한다.
눈가와 코 주변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건, 배고픔이 가장 극에 달했다는 증거다.
킁킁-
내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자.
자동으로 코끝을 벌렁이는 녀석이 너덜너덜한 팔과 다리를 힘겹게 움직이며 중얼거린다.
“……맛있는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