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경사 났네, 경사 났어 (105/246)

◈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신비한 알이 블러드 스톤의 마력을 흡수할 거라고는.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인가.’

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보안을 걸어둔 상자 안에 있던 블러드 스톤이었는데, 자그마치 그걸 다 무시하고 흡수를 해버린 거다.

게다가.

사용하는 마력 양에 비례하여 생명력이 감소한다는 치명적인 부작용마저 무시를 해버렸다.

‘드래곤의 가호라.’

대단한 패시브 스킬이었다.

디버프에 면역된다니. 영국 왕실의 수호신이었던 드래곤답게 지닌 스킬마저 범상치가 않았다.

꿀꺽 -

눈앞의 알을 보고 있자니,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갑자기 알에 금기 가기 시작하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부화해버리면 곤란해지는데.’

드래곤은 강하다.

갓 부화한 드래곤일지라도 내가 녀석을 길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때문에, 부화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선화의 금지옥엽 스킬을 사용해 쉽게 길들이는 게 가능했을 테니까.

‘흐음. 가족이 되기까진 아직 5년 5개월이나 남았는데.’

영국 왕실에서는 부화까지 한참 걸렸기에, 당연히 가족이 구성원이 되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블러드 스톤이라는 변수가 생길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드래곤이 부화하지 않았다는 거다.

알껍데기가 두 겹으로 되어 있다.

한 겹이 앞서 벗겨지기 시작했으며, 벗겨지는 속도로 보아 아마 며칠 안에 한 겹은 모두 벗어내지 않을까 싶다.

벗겨진 틈으로 보이는 두 번째 껍데기 역시 비슷한 속도로 벗어낼 거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아마 길어야 일, 이주 안에는 부화를 하게 될 거고.

‘그 안에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으려나.’

변수가 생겼으니 그에 맞는 계획을 마련해야 했다.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쩐지 저번부터 막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뒤늦게 차원문에 들어온 선화가 알을 발견했다.

표정이 매우 밝다. 잔뜩 흥분한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화가 부쩍 많이 기대를 하고 있긴 했지.’

엄청나게 귀여운 몬스터가 태어날 거라면서 말이다.

간절히 기다렸던 만큼, 알이 곧 부화를 마칠 거라는 생각에 방방 뛰기까지 하는 선화였다.

계속해서 벗겨지고 있는 알껍데기.

선화는 그 안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두 번째 안쪽의 껍데기는 바깥의 것보다 얇은 탓에 실루엣이 얼핏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가 머리인가? 이건 팔하고 다리?”

“아마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실루엣마저도 어렴풋이 보이는 정도였기에.

대충 봤을 때,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짧다.

원래 드래곤 새끼가 저렇게 생겼나?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꼭 펭귄 같네. 안 그래, 오빠? 펭귄처럼 생긴 반려몬도 있지 않았어?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뽀로로 엄청 닮은 애 있잖아.”

안경 벗은 뽀로로 느낌이라면 있기는 했다.

내 주관이지만, 실제로 뽀로로가 안경 벗은 것보단 귀여운 녀석이었다.

“헤헤, 얼마나 귀여울까. 팔다리 쪼그만 거 봐. 꼭 사람처럼 생겼어. 오빠 어렸을 때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에이! 무슨 나 어릴 때를 닮아? 내가 어렸을 때 예쁘게 생겼다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내가 오빠 어렸을 때 사진 봤는데? 머리 대따 크던데?”

“팔다리는 길었거든. 머리도 크면서 엄청 작아졌고! 봐봐, 지금은 잘 생겼잖아.”

“으음, 모르겠는데? 잘생긴 사람이 대체 어디 있지?”

“…….”

“설마, 삐쳤어?”

안 삐쳤다. 그냥 삐친 척한 거다.

이러면 뽀뽀해주니까.

쪽 -

역시나.

뽀뽀 받았으니, 다시 활짝 웃어야겠다.

“하여튼, 우리 오빠 가끔 보면 여우 같다니깐.”

피식 웃은 선화가 다시 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알을 요리조리 살피다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대 음악을 한 곡을 틀었다.

“어? 이 음악은……?”

“이거 무슨 곡인지 알아, 오빠?”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G 장조.”

“오오! 기억하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당연히 알다마다. 선화가 임신했을 때, 태교 음악으로 한창 들었던 음악이지 않은가.

그런데, 태교 음악을 갑자기 왜 튼 걸까.

“우리도 슬슬 제대로 준비해야지.”

“무, 무슨 준비?”

“새로운 가족 맞이 준비 말이야! 곧 부화할 텐데, 본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준비할 게 엄청 많다고!”

“그거 예전부터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왔던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이야 입양 혹은 분양돼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지만, 알에서 태어날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태어난 유일한 녀석이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선화의 애착이 유독 강한 것 같았다.

그동안 여러모로 많이 신경을 쓰기도 했으니까.

“일단 캔들부터 좀 사야겠다. 예전에 맘 카페에서 봤는데, 태교에 좋은 캔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캔들까지?”

“당연한 소리를 해? 우리 식구가 될 아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오빠는 침대를 좀 알아봐 줘.”

“애들 침대 말하는 거지?”

우리 집 반려몬 아이들에게는 개인용 침대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침대에서 자는 버릇을 들여서 그런지, 침대를 워낙 좋아하기에 이전에 장만해줬었다.

“이참에 그냥 내가 직접 한번 만들어볼까? 애들 크면서 몸집도 같이 커져서 그런지, 예전에 샀던 게 좁아 보이긴 하더라.”

선화가 저렇게까지 하면서 좋아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선화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나 역시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해주고 싶었다.

“오빠가 침대도 만들 수 있어?”

“이것저것 좋은 재료 구해서 뚝딱 만들면 되는 거겠지, 뭐.”

요즘 유튜브에 그런 거 만드는 것도 많이 나와 있지 않은가. 딱히 못할 것도 없었다.

이왕 좋은 재료 구하는 거 최고급으로다가 구해야겠다.

엑시스 창고에 안 쓰는 것들 많을 텐데, 형님께 달라고 하면 좀 줄 것도 같은데.

“이야, 우리 신랑 능력도 좋아?”

어깨가 슬쩍 올라간다.

역시 선화의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빨리 부화했으면 좋겠다. 그치, 오빠?”

선화가 조심스레 알을 들어 품에 안았다.

흘러나오던 모차르트의 잔잔한 음악 소리가 멎더니, 이내 다른 클래식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뜻하지 않은 홀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 대상과 가족이 되기까지의 예측 시간, 5년 4개월 ]

신비한 알이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어제까지만 해도 5년 5개월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설마, 태교가 통한 건가?’

가화만사성 스킬의 효과는 집 안에서 가족 간의 교감과 성장이 이뤄질수록 더해진다.

알 속의 녀석이 클래식 음악이 썩 마음에 들었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남아 있는 SP를 가화만사성에 투자하여 스킬 레벨을 올릴 경우, 선화의 진심 어린 태교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부화하기 전에 가족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내 예상보다 부화가 빨리 진행된 것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

점심 식사를 마친 선화는 외출을 나섰다.

때마침 휴일인 오늘 새 식구를 위한 캔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무드(MOOD)’ 라는 작은 간판이 달린 캔들샵.

가게 안에 들어서자, 기분 좋은 향기가 선화를 반겼다.

‘태교엔 어떤 향이 좋을까?’

선화는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았다.

비록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알 속에 있는 아이에게 해롭지 않은 좋은 향기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캔들 종류는 많았다.

유명한 샵이었고, 이전에 수재혁에게 김 비서 선물로 이곳의 캔들 하나를 추천해주기도 했었다.

‘김 비서님이 선물 마음에 들어 하셨으려나?’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찰나.

가게 안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아가씨?”

진짜 김 비서가 그곳에 있었다.

막 계산을 하려고 했는지, 캔들 하나를 손에 쥐고서.

“김 비서님! 오랜만이에요.”

“그러니까요. 모처럼 쉬는 날이라 잠깐 들렀는데, 여기서 아가씨를 뵐 줄은 몰랐어요.”

간단히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선화의 눈에 김 비서가 손에 쥐고 있는 캔들이 보였다.

‘내가 큰오빠한테 추천해줬던 캔들이잖아? 다행히 그때 선물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내심 흐뭇해진 선화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애써 아무것도 모르는 척 김 비서를 향해 물었다.

“김 비서님께서도 여기 가끔 오시나 봐요?”

“부 마스터님께서 이전에 여기서 선물을 하나 해주셨었는데, 참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마침 저도 지인에게 선물할 일이 있어서 간만에 방문했죠.”

김 비서는 쇼핑을 마치려던 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선화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게를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이지 않은가.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이라도 가까워져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아가씨께서도 선물 하시려구요?”

“아뇨! 저는 제가 쓰려고 괜찮은 걸 찾아보는 중이에요.”

향과 설명을 꼼꼼하게 살피던 선화가 멈칫했다.

마음에 드는 캔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응?’

김 비서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건 바로 그때였다.

선화가 고른 캔들이 범상치 않았기에.

‘저거 임산부들이 태교용으로 사용하는 캔들이잖아?’

여자의 직감이라는 게 반응했다.

분명히 선화는 자신이 직접 사용할 캔들을 사러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 비서는 다소 놀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연스레 선화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 마스터님이 아가씨께서 평소에 외출할 때 힐을 자주 애용하신다고 했었지. 그런데, 오늘은 굽이 낮은 컨버스를 신으셨어.’

선화 생일 때, 수재혁의 말을 참고해서 구두를 선물했던 김 비서였다.

당시 선화 반응을 떠올려보면 힐을 좋아한다는 그 말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신발이야 언제든지 바꿔 신을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선화의 한쪽 손 위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신의 배를 감싸 안듯이 잡고 있지 않은가.

마치 어디선가 종종 보아온 임산부의 모습처럼.

‘……설마, 진짜로 임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 비서가 두 눈을 번뜩였다.

엑시스에 역대급 경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점심에 매운 떡볶이를 먹어서 속이 좀 쓰렸다.

선화가 잠깐 배를 감싸 안고 있던 이유다.

하지만.

당사자의 이유가 어찌됐든, 경사로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서, 선화가 임신을 한 것 같다고?”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냥 직감일 뿐이라. 부 마스터님께는 별말 없었어요?”

“선화는 나한테 별말 없었는데?”

커플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저런 얘기를 다 나누고 하는 거지.

김 비서에게서 어제의 일을 전해 들은 수재혁 역시 이 이야기를 대충 넘겨들을 수는 없었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 위험이 커서 대부분 잘 알리지 않는다고들 하니까…….’

그저 김 비서가 봤던 사실만으로 선화의 임신 사실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제 준우 역시 자신에게 이상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 형님, 실례가 안 된다면 엑시스 창고에서 재료 아이템 몇 가지 좀 구입할 수 있겠습니까? 마켓에 갔더니, 필요한 것들이 죄다 매진이라.

- 뭐가 필요한데?

그렇게 비싼 재료들도 아니었다.

엑시스 창고에 널리고 널린 것들이었고, 그냥 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중요한 건.

그 재료들의 쓰임새였다.

- 작은 침대를 좀 만들려구요.

- 침대?

- 뭐, 그냥 애기들이 누울 수 있는 정도?

김 비서에게 전해 들은 얘기.

거기에 어제 준우와 나눴던 대화까지 더해지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저번에 선화 나오는 방송 보니까, 가게가 많이 바쁜 것 같던데…….”

“아무래도 잠깐 일을 쉬게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지금은 홀몸이 아니니까.”

하지만, 섣불리 나서기가 좀 꺼려졌다.

어쨌든 선화의 남편인 준우가 있지 않은가.

‘뭐, 선화 일하는 거에 대해선 알아서들 상의를 하고 있겠지.’

당장은 무엇보다 이 소식을 가장 기다리고 있을 사람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수재혁은 곧장 회장실로 향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 놀라지 마시고 들으십쇼.”

“갑자기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잠시 당황한 수태광이었지만, 이내 수재혁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그의 입가에는 평생의 모든 기쁨을 다 담아낸 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단 말이지?”

“예.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이미 수태광의 머릿속은 손주를 볼 생각으로 가득했고, 손주가 태어나면 뭐부터 해줘야 할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이기까지 했다.

“껄껄! 벌써 효과가 온 것이야! 내 생각보다 아주 빠르구만 그래!”

“효과요? 무슨 효과 말씀하시는 겁니까?”

며칠 전, 준우에게 복분자주를 실컷 먹였다.

그리고 준우는 자신에게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전했었다.

“아차차! 생각해보니 그건 말이 안 돼!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효과를 볼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무슨 효과를 말씀하시는 건데요?”

“전 서방이 이미 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야. 내가 언질을 하기 전부터 말이지. 그저 대견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구만, 껄껄!”

“아니, 그러니까 뭔지 좀 알려주시고 웃으세요. 사람 궁금하게 혼자 웃지 마시고.”

수태광은 수재혁의 말이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두 귀를 막은 채로, 오직 손주와 함께하는 자신의 세상 속에 갇혀버린 탓이다.

“손주 녀석을 위해 뭐부터 준비해야 하나?”

“…….”

“아니지, 아니지. 우리 전 서방 몸 보신할 것을 더 보내야겠지! 선화 녀석 옆에서 단단히 지켜야 할 테니까! 껄껄껄!”

“…….”

답답해하는 수재혁은 보이지도 않았다.

덥석 책상 위의 핸드폰을 집은 수태광은 당장 준우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크흠! 곧 할애비가 될 사람이 바보처럼 횡설수설할 수는 없지.”

너무 흥분한 상태라 말이 잘 안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럴 땐 문자를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나 : 거, 사람 참! 이러기 있나?

- 나 : 반전 매력이 철철 넘치는구만! 아주 기특해!

- 나 : 다음번에는 미리 말해주게. 그땐 꼭 명인의 술 효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테니 말일세!

잠시 후.

신비한 알과 함께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던 준우에게 뒤늦은 답장이 도착했다.

- 나를 존경하는 사위 : 예?

- 나를 존경하는 사위 : 다음 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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