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기우뚱 (103/246)

◈ 기우뚱

이선호는 생각했다.

만약, 준우가 아니었더라면 어머니께서 꽤 오랫동안 산책을 즐기시지 못하고 집에만 계셨어야 했을 거라고.

단순히 곰 한 마리가 탈출한 게 아니라, 특수팀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다.

‘준우 씨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관악산 통제가 꽤 오래 지속됐을 거야.’

모처럼 이선호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나왔다.

여동생과 안내견인 반려몬 축복이도 함께.

‘어라?’

그런데, 산책로 입구에 웬 공무원증을 찬 남자들이 보였다.

아직 통제 중인가? 분명히 통제가 끝났다고 했었는데.

이선호가 입구에서 머뭇거리자.

중년의 공무원이 다가와 말했다.

“산책로 이용하셔도 됩니다.”

“아아, 저는 설마 아직 통제 중인가 해서.”

“통제는 일전에 다 풀렸구요, 저희는 산책로 보수 때문에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응?”

고개를 끄덕인 공무원이 순간 멈칫했다.

퇴근 후 급하게 산책을 나오느라 미처 빼지 못한, 이선호의 목에 걸려 있는 공무원증 때문이었다.

‘헌터 협회 경기 지부 기동 3팀? 민원 넣은 사람이랑 똑같은 부서네?’

여러 차례 민원을 넣은 사람이 있었다.

산책로 보수 공사와 주변을 좀 깔끔하게 정리를 해 달라고.

그간 관악산 산책로에 대한 민원이 많아서, 안 그래도 해당 민원들을 처리하려고 하긴 했었다.

그리고 보수 공사 도중에 민원을 넣었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분이랑 같은 팀이시네요?”

“그분이요?”

“산책로 보수 민원 넣으신 분들 중 한 분이 경기 지부 기동 3팀 소속이었거든요. 저번에 여기서 만났었어요. 그분이 마침 무슨 곰 관련 사건인가? 아무튼, 그 일 때문에 관악산 인근을 조사하고 계셨거든요.”

“아?”

“한창 보수 공사 중인데, 쓱 오시더니 글쎄…….”

공무원이 산책로 입구의 안내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보수 공사 중 새로 만들어진 점자 안내문이 있었다.

“……안내문하고 산책로 지도에 점자를 좀 새겨 달라고 하시더군요. 기왕이면 음성 지원되는 걸로.”

뜬금없이 민원을 넣은 사람이라고 밝히기에, 감시라도 나온 줄 알았다. 기동대 소속 헌터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이선호의 어머니를 의식한 듯.

공무원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간 산책로 이용하시는 데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저희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아, 아니에요. 공무원분들 일 많으신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요.”

“역시 같은 공무원이라 그러신지 이해심이 깊으시군요. 모쪼록 즐거운 산책 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산책로는 저희가 각별히 신경 써서 관리할 테니, 너무 걱정 마시구요.”

이선호는 어머니와 함께 보수된 산책로를 거닐었다.

종종 널브러져 있던 쓰레기들은 깔끔하게 정리가 됐고, 데크와 의자 곳곳에 튀어나와 있던 날카로운 못들도 사라졌다.

벤치는 새 걸로 교체가 되었으며, 비나 눈을 피할 수 있는 가림막까지 설치되기도 했다.

‘여태 내가 민원을 넣었을 때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는데, 준우 씨가 민원을 넣자마자 공무원들이 바로 움직이다니.’

민원을 넣은 사람은 준우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신과 같은 팀 소속이고, 곰 관련 사건으로 관악산에 왔다면 특수팀이었을 테니까.

기동 3팀 소속 특수팀 인원은 준우밖에 없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야.’

사실은 그간의 민원들이 쌓여서 공무원들이 움직인 것이지만, 당장 이선호는 준우의 언급에 착각을 하고 있었다.

엑시스 사위라는 타이틀이 더해져, 준우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진 상태의 이선호였기에 가능한 착각이었다.

뭐, 준우가 여러 번 민원을 넣은 건 사실이긴 하지만.

아무튼.

점자와 음성이 지원되는 안내문과 지도는 어머니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산책 나오니 참 좋네.”

어머니가 기분 좋게 웃으시며 말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아까 그 공무원분이 얘기하던 사람 말인데.”

“준우 씨일 거예요, 아마.”

“역시 저번에 우리 집에 왔던 분이 맞지? 너랑 무척 친하다던.”

이선호가 어색하게 웃자, 어머니가 그의 손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훌륭한 사람 같더라. 어쩐지, 인상이 참 좋더라니.”

“……?”

이선호는 순간 의아했다. 인상이 좋다니?

앞이 안 보이시는 어머니께서 준우의 얼굴을 봤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가. 목소리나 말투만 들어도 짐작이 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엄청난 능력인걸요? 저 말고 어머니께서 헌터 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얘는 농담도!”

“하하핫!”

낯을 많이 가려 사람들 앞에서 크게 웃지 않는 이선호였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달랐다. 간만에 제대로 웃는 모습이랄까.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간 준우 덕분에 능력도 향상됐고.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마냥 받기만 할 수는 없었다.

준우에게 조금이나 보답을 해야 할 텐데.

고민을 거듭하며 산책을 마무리하는 이선호였다.

* * *

퇴근까지 한 시간쯤 남았을 때.

이선호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 오늘 퇴근 후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녁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요.

갑자기 웬 저녁 식사?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선화한테 미리 말을 하고 흔쾌히 수락을 하기로 했다.

내성적인 이선호가 내게 먼저 식사 제안을 했다면, 필히 엄청난 고민과 걱정을 거듭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어구이 집이네요? 제가 장어 좋아하는 거 어찌 아시고.”

“저번에 제수씨 방송 나왔을 때, 본방 사수했거든요. 제수씨가 인터뷰 중에 그러시더라구요. 남편분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장어라고.”

아아, 그렇지.

그때 작가가 인터뷰 때 비슷한 내용을 질문했었구나.

아무튼.

이선호 덕분에 퇴근 후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게 됐다. 집에 가는 김에 선화 것도 좀 포장해서 가야지.

‘물론, 그건 내돈내산으로다가.’

특별히 할 얘기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이선호는 별 얘기 없었다.

그냥 소주 몇 잔 마시며 여러모로 고맙다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계속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술자리인 줄 알았다.

자리를 막 뜨기 전, 이선호가 뜬금없이 한마디를 내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준우 씨. 저 특수팀 지원하려구요.”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 하나란다.

내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나야 땡큐지.’

안 그래도 유능한 탐지 계열 헌터가 필요하던 차다.

늑대 인간 놈들을 잡아넣기 위해선, 놈들보다 먼저 균열 핵을 찾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협회의 장비가 있다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레이더를 다룰 줄 알고, 그에 관련된 특화 능력이 있는 이선호라면 필히 도움이 될 터였다.

문제가 있다면 당장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랄까.

하지만, 다른 헌터들을 쓰자니 어딘가 찜찜하다.

정치권에도 연루되어 있던 협회였는데, 혹시라도 놈들과도 연관된 자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뭐, 이선호 능력이야 내가 끌어 올리면 그만이니까.’

타인의 능력을 끌어 올린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나라면 그나마 조금은 쉽지 않을까.

[ ‘이선호’가 가족 구성원으로 추가됩니다. ]

얼마 전에 떠오른 홀로그램.

이선호가 가족 구성원이 되었기에 쉬워진 일이었다.

협회 사무실을 집으로 설정하고, 가화만사성 스킬을 사용해 그의 성장을 돕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스킬 레벨을 올린다면 성장 속도 또한 더 빨라질 테니까.

“일단, 팀장님 추천서가 필요한데…….”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이선호 탐지님의 힘으로 안 된다면,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 드릴 테니까.”

“……갓준우.”

이제는 익숙해진 이선호의 찬양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당연히 장어구이는 따로 챙겼다. 이게 집에서 그냥 구워 먹는 것보단, 가게에서 숯불로 구워야 제맛이거든.

‘선화가 좋아하겠지?’

선화도 장어구이라면 환장한다.

맛있는 건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전해 줘야 하는 법.

나는 서둘러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섰다.

차원문을 통해 귀가를 한다면 당연히 더 편하겠지만, 하루 최대 지속 시간이 2시간이기에 반려몬 아이들에게 양보를 하는 편이었다.

특별히 꼭 사용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차원문 안에서 뛰어놀 수 있게 배려를 하는 것이랄까.

‘근데, 오늘은 아무도 날 안 반겨 주네?’

말순이나 오복이들이 가장 먼저 뛰쳐나오기 다반사건만, 오늘따라 집안이 유독 조용했다.

당연히 선화도 장어구이를 반길 거라는 생각에 잔뜩 기대했는데.

‘……우리 선화, 잠들었구나?’

거실에 반려몬들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다.

애들 역시 놀다가 지쳐 잠이 들었는지 거실 곳곳에 퍼져 있었고, 선화는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그간 가게 일이 바쁘긴 했지. 많이 피곤했을 거야.’

방송도 탔겠다.

아티팩트 주문량이 많기도 하고, 찾는 손님들도 많아져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을 거다.

얼마 전까진 내가 일을 도왔다지만, 요 며칠은 그럴 수도 없었으니까.

‘알바라도 뽑아야 하나?’

나는 선화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일단 침대에 누일 생각이었다.

“흐응, 언제 왔어?”

“방금.”

품에 안긴 선화가 눈을 뜨며 물었다.

내가 너무 격하게 들어 올렸나. 아무래도 장어를 너무 많이 먹은 듯하다.

“맛있는 거 먹었나 보네?”

선화는 내 목과 얼굴 주변에 코를 가져다 대고는 킁킁거렸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자연스레 입술이 움직인다.

“안 돼! 뽀뽀하려고 그러지?”

“왜? 설마, 술 냄새나서 그래?”

이상하네.

술기운은 마력으로 싹 날렸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화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내가 먼저 할 거야.”

부드러운 촉감이 입술에 전해진다.

흐흐, 이 맛에 신혼생활 하는 거지.

“응?”

선화를 안고 침실에 들어선 그때였다.

침대 위, 정육면체로 된 기계 안에 놓인 알이 보였다.

일전에 장인어른이 주고 가신 드래곤이 잠들어 있는 신비한 알이며, 가끔 선화가 부화를 촉진시키겠다며 이불에 감싸둔 채 애정을 보내기도 했었다. 바로 오늘처럼.

“왜 그래, 오빠?”

이불에 감싸 두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딱히 놀랍진 않았다. 다만, 뭔가 이상한 게 있어서였다.

“알 색깔이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변하다니? 그대론데.”

“예전엔 그냥 흰색이었는데, 오늘은 살짝 노란빛이 나는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오빠 혹시 술 취했어?”

나는 고개를 강하게 내저었다.

술기운은 이미 다 날려 보냈고,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다.

[ 대상과 가족이 되기까지의 예측 시간, 5년 5개월 ]

여태 가화만사성 효과로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줄이긴 했으나, 얼마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홀로그램상으로는 딱히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느껴지는 마력 반응도 특이점이 없다.

그런데 왜 유난히도 오늘따라 색이 달라 보이는 건지.

그냥 기분 탓일까. 아님 술기운을 덜 날렸나?

‘……난 또 부화 직전의 징조 같은 건 줄 알았네.’

물론, 신비한 알이 가족 구성원이 된다고 해서 당장 부화를 하는 건 아닐 거다. 그저 그런 기대를 했을 뿐이지.

‘홀로그램도 좀 아쉽네. 아직 가족이 되기까지 5년이 넘도록 남았다니.’

해당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는 처음의 홀로그램에 비하면 빠르게 줄어들긴 했다.

다만.

이선호도 가족 구성원이 되었겠다, 조금 더 욕심이 났던 것 같다.

신비한 알 속 드래곤까지 더해지면, 요 며칠 새에 모든 능력치 레벨을 2씩 올릴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서 씻고 와!”

“씻고 오면?”

“일단 불은 꺼야겠지?”

그래, 너무 욕심은 부리지 말자.

가족 구성원 한 명 추가된 것만으로도 엄청 빠르게 강해진 거다.

“뭐 해, 빨리 씻고 오라니까?”

나는 불 끄는 게 참 좋드라.

막 샤워실을 향해 뛰어들어 가려는 찰나.

기우뚱-

신비의 알이 움직였다.

이전에도 살짝 움직인 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그때보다 더 격한 움직임이었다. 알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았는가.

“자, 잠깐만! 얘 방금 움직였어!”

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지만, 선화는 못 믿는 눈치다.

미처 보지 못했거나 아직도 내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오빠, 빨리 안 씻고 오면 나 확 먼저 자 버린다?”

답답하다.

내가 진짜 분명히 봤는데.

“잘 봐 봐. 진짜 움직였다니까 그러네?”

알을 들어본다. 그리고 다시 내려놔 본다.

좌측에 뒀다가, 이번엔 우측에 놔 봤다.

하지만, 알은 미동이 없었다.

날 거짓말쟁이로 몰고 싶기라도 한 걸까.

“……나 진짜 그냥 잔다?”

“쩝, 분명히 움직였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똑같았다.

마치 뭐에 홀린 기분이다.

그냥 포기하고 빨리 가서 샤워나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선 순간.

“오빠아아! 얘 움직였어어어!”

이번엔 선화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조금 전의 나보다 더욱더 놀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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