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엄청난 걸 주웠다 (101/246)

◈ 엄청난 걸 주웠다

모니터 화면 속 준우가 포탈 안쪽으로 움직였다.

경매장이 위치한 이곳까지 오긴 버거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추장현의 부하였다.

‘어, 어떻게 보안 마법을 풀었지?’

부하는 이내 고개를 세게 털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경보를 울려야 하나?’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어렵게 마련한 경매 자리다.

추장현이 힘들게 영업을 해 가며 길드 마스터들을 설득했고, 비로소 열댓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모으지 않았던가.

‘경보가 울려서 경매에 차질이 생겼다간, 내 목이 날아갈 거야…….’

모든 사업에는 신뢰가 중요하다.

이쪽 차원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길드 마스터들에게 경매장의 보안이 취약하다는 게 알려지면, 다시는 그들과 사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는 건.

추장현 측 또한 제국의 임무를 완수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뜻이었다.

“뭐야, 저 녀석? 포탈의 보안 마법을 풀었어?”

그때였다.

부하의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부, 부단장님!”

“목소리 줄여.”

부단장이 최대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혹시라도 경매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

“그나저나, 우리 측 보안 마법을 풀 수 있는 수준 높은 헌터가 있었다니.”

“저도 놀랐습니다. 이쪽 차원의 기술로는 앞으로 몇 년은 더 연구해야 가능할 줄로만 알았는데…….”

부단장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들만 알고 있는 보안 마법을 해제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긴 했었던 것이다.

“경매가 끝나려면 아직 30분 정도 남았는데.”

경매를 중단할 수는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꼭 자신들의 파트너를 만들어야만 했으니까.

혹시 몰라 준비해 둔 방어책이 있기는 했다.

버서크 기술 테스트 버전인 녀석들을 이곳까지 오는 길목에 배치해 뒀지 않은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경매장인 만큼.

누군가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살려 둘 수는 없었다.

“단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 건 아닌지…….”

“오늘 행사는 단장님께서 그간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자리야. 괜히 이런 일로 단장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아무리 침입자가 발생했다고 한들.

부단장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침입자의 타입은?”

타입을 묻는 목소리에 부하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답을 못하면, 제대로 상대를 파악조차 못 했다며 갈굼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판테온’ 단원으로서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었고, 기본을 갖추지 못한 단원은 임무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임무 배제란 곧 죽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타입이라면? 아까 그놈 분명히 한 손에 검을 쥐고 있었으니까…….’

서둘러 판단을 마친 부하가 입을 열었다.

“물리 계열입니다!”

“그래?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겠군.”

“그렇게 말씀하심은……?”

부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살기가 가득한 차가운 눈빛으로.

“개들을 풀어야지.”

물리 면역 특성을 가진 버스크 테스트 버전.

피에 굶주려 있던 미친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관악산 인근의 폐공장에서 발견한 포탈.

말순이의 스킬로 도달한 그곳의 포탈엔 내가 아는 무언가와 비슷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늑대인간의 몸에서 빼낸 수정구.’

포탈에 보안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보안 체계가 해당 수정구의 것과 똑같았다.

‘해제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

아직 현대의 기술로는 개발이 불가능하긴 하겠지만, 언젠가는 개발이 될 보안 체계였다.

안타깝게도 효율이 좋지 못해 금방 사장될 테지만.

어찌 됐든.

중요한 사실은 보안의 취약점은 똑같다는 거다.

‘신성 속성과 불 속성의 결합.’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보안을 풀었다.

신성력은 역시 쓸 수 없지만, 이전에 실드 스테이트에서 홀리 체인 마법 함정을 설치할 때 사용하고 남은 게 아직도 수중에 있었다.

‘그나저나, 보호 센터에서 탈출한 곰하고 그 늑대인간 놈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사건의 접점을 찾았기에, 이건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늑대인간 놈의 사건과 조금이라도 공통점이 있다면, 이 일은 지금부터 협회 경기 지부 특수팀이 맡아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으니까.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당연히 혼자보단 여럿이 낫다.

괜히 여기서 다쳐서 집에 갔다간, 선화한테 한 소리 들을 거다. 괜히 선화 마음 쓰이게 하는 것도 싫고.

곧 이건형이 포탈 시스템을 사용해 팀원들과 이곳에 도착할 거다.

가게에서 사용하는 개인용 포탈과는 달리, 한 명뿐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등록하여 사용할 수 있는 포탈이었다.

30분이라는 가동 준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단 그게 빠를 터였다.

크르륵-

괴기한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숲의 신발을 이용해 빠르게 내달리던 나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흐음, 뭐 예상은 했다.

이곳에서 쉽게 뭔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거라고.

때문에, 나도 미리 보이지 않는 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눈앞에 가까워지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아마도 나를 막아설 존재인 듯싶었다.

“초대장을 보여 주시지요.”

포탈 입구가 있던 폐공장과 비슷한 구조의 긴 복도.

그 끝에 한 남자가 개들과 함께 나타났다.

“무슨 초대장?”

“행사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할 초대장.”

손에 쥐고 있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남자에게서 풍기는 마력의 기운이 살기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날 죽일 생각이야.’

단순히 외국인이라기보단, 분위기가 묘하게 닮았다.

특수팀에 붙잡혀 있는 그 늑대인간하고 말이다.

곱게 길을 열어 주지는 않을 테고.

그냥 뚫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스슥-

미심이의 은신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는 재빨리 보이지 않는 검의 특성 발동 조건을 만족시켰다.

“잔재주는 통하지 않습니다.”

복도 내에 검붉은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마, 은신을 간파할 수 있도록 수작을 부린 것 같다.

‘은신이 간파돼도, 딱히 상관은 없겠지.’

애당초 모습을 숨기고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검의 특성을 사용하기 위한 조건일 뿐.

크르르륵!

스무 마리쯤 되려나.

개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보통 개들은 아닌 듯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이빨은 흉하기 그지없었고, 털과 피부는 녹아내린 모습이다.

게다가 날카로운 이빨 주변과 마찬가지로 눈동자는 새빨갛게 변해 있다.

‘마치 좀비를 보는 듯한 기분인데.’

개들을 향해 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무형의 칼날이 녀석들의 머릿수에 맞춰 뿜어진다.

“……어라?”

한데.

무형의 칼날에 머리를 관통당하고 쓰러진 개들이 이내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뭐야, 진짜 좀비라도 되는 거야?’

개들의 머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재차 검을 휘둘러 이번엔 다리를 공격해 봤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재생이 되고 있었다.

물리 계열 공격에 면역을 가진 놈들인 것 같다.

그러니 무형의 칼날이 좀처럼 먹혀들질 않지.

“맘껏 먹어도 좋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좀비견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키우는 개들한테 사람을 먹어도 좋다니.

“당신이 이 녀석들 보호자 같은데.”

놈의 뜻대로 개들의 먹이가 되어 줄 생각은 없다.

“보호자가 말을 그렇게 엿 같이 하니까, 애들 상태가 이 모양인 거야.”

당신, 보호자로서 실격이야.

애들 교육을 잘못시켰다고.

[ 미심이가 스킬 얼음 속성 부여를 사용합니다. ]

[ 해당 아이템에 얼음 속성이 부여됩니다. ]

[ 해당 아이템의 특성이 변형됩니다. ]

재생을 마친 개들이 다시 달려들기 직전.

나는 눈앞에 떠오른 마지막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 특성 ‘냉기의 칼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물리 공격이 안 먹힌다면.

마법 공격으로 전환해서 패 버리는 수밖에.

“……!”

냉기의 칼날에 개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남자의 인상이 잔뜩 구겨지는 게 보였다.

* * *

경매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B급 헌터와 동일한 능력을 가진 곰. 대형 길드들의 힘에 밀려 항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형 길드들에게는 확실히 희망과도 같은 상품임이 틀림없었다.

“20억 나왔습니다, 20억! 더 없으십니까?”

“21억.”

“21억 나왔습니다!”

추장현이 기대했던 액수는 20억.

경매를 지켜보던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21억! 그 이상은 더 없으십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어쨌거나 그의 예상치보다 높은 액수가 나왔으니까.

그런데, 그때.

장내에서 높이 치솟은 한 남자의 손이 추장현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소매 사이로 기이한 문신이 드러났고, 그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30억.”

“30억이라고?”

“너, 너무 과한 거 아냐?”

예상치보다 훨씬 웃도는 액수.

다른 길드 마스터들이 과하다며 웅성거렸지만, 추장현은 혹시라도 그가 마음을 바꿀세라 빠르게 입을 열었다.

“상품의 가치를 아시는 분이시군요. 어느 길드의 수장이신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기대를 저버리진 않을 것이라 확신하죠.”

추장현이 설명을 덧붙였다.

B급 헌터 기준, 계약금과 연봉을 합치면 30억 정도다.

눈앞의 버서크 기술이 탑재된 곰을 30억에 낙찰받으면 헌터를 고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 최대한 멀리 보고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길드 소속 헌터와는 이윤을 나눠야만 합니다. 각 길드마다 배분 비율이 다르긴 하겠지만, 길드가 모든 이윤을 취할 수 없는 것만은 당연한 사실이죠. 하지만, 버서크 기술이 탑재된 이 곰은 다릅니다.”

굳이 이윤을 배분할 필요가 없다.

곰이 던전을 공략하게 되면, 그 모든 이윤은 길드의 것이었다.

“딱 1년. 그 정도만 써먹을 수 있어도 헌터를 고용하는 것 이상의 값어치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이 눈치를 살폈다.

돈이 있다면 더 지르고 싶었으나, 여기까지가 한계다.

“그럼, 30억 낙찰하겠습니다!”

추장현이 씩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그의 계획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낙찰자에게 돈만 받으면 끝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뜨면, 제국의 임무 수행을 위한 첫 발판이 마련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삐이이이이-!

……그 순간, 경매장에 경보가 울려 버렸다.

미소를 띠고 있던 추장현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뭐, 뭐야, 이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고객들인 길드 마스터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협회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개최된 경매장이었고, 단연 불법이었다.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게 밝혀지면 그들의 길드 사업 역시 매장되는 건 당연했다.

“이보시오, 추 선생. 설명이 필요할 것 같소만.”

경매가 30억을 외쳤던 문신을 가진 남자.

그가 추장현을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떠야 할 것 같습니다.”

“실망이오.”

경매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길드 마스터들이 미리 준비된 출구 쪽 포탈을 이용해 자리를 뜨며 한마디씩 흘렸다.

“쯧쯧,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이랑은 얽히면 안 되는 건데…….”

“상품이 좋으면 뭘 하나. 보안이 안 되는데, 보안이!”

급격한 태세 전환이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교포 출신의 추장현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긴 했지만, 제국의 임무 수행을 위해 이곳까지 온 자신이 저딴 것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게 될 줄이야.

바드득!

추장현이 이를 갈았다.

서둘러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부하 녀석이 보인다.

“피, 피하셔야 합니다, 단장님.”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대충 상황은 짐작이 가능했다.

‘설마, 아까 그 침입자 놈의 짓인가? 제국의 보안 마법을 풀어냈다고?’

추장현의 이마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뒤늦게나마 자신이 이쪽 차원의 각성자들을 너무 얕본 것임을 깨달은 거다.

“부단장에게 처리하라고 전해. 침입자가 한 놈이 됐든, 여러 놈이 더 오든 간에 싹 다 죽여 버리라고.”

“그, 그게, 헌터 협회 경기 지부 놈들이 입구 쪽 포탈에 당도했고, 부단장은 이미 앞선 침입자 놈에게…….”

부하 녀석이 말을 더듬는다.

젠장, 설마 부단장이 벌써 당했다는 건가.

갑자기 왜 협회 헌터들이 들이닥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이 무슨 연유로, 또한 무슨 단서로 이곳을 찾아낸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부단장 정도면, 이곳의 B급 각성자보다 월등한 수준인데?’

자신이 아는 바에 의하면.

헌터 협회 경기 지부 소속 중 부단장을 뛰어넘는 능력자는 없었다. 전투 능력만 보았을 때, 자신보다 훌륭한 단원이 아니던가.

그런 부단장이 당했다면, 추장현 역시 상대와 전투를 하여 승산은 없었다. 자신은 전투에 특화된 능력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당장 이곳을 떠야 한다는 부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추장현은 부단장이 당했다는 소식 자체를 부정했다.

나름 엘리트 단원인 그가 협회 소속 헌터 따위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추장현이 모니터실로 움직였다.

부하가 그의 뒤를 따르며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자칫 저희 정체가 발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전에 이곳에서 벗어난 뒤에 훗날을 도모하심이…….”

부단장의 개들도 전부 당했단다.

추장현이 잔뜩 열이 오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개들이 전부 당했다고? 그럼 ‘블러드 스톤’이라도 수거해야 할 것 아냐!”

블러드 스톤.

마석보다 더욱 강력한 마력이 내재되어 있는 제국의 보석이었다.

일반 동물을 버서커로 만들 수 있는 힘의 근원이자.

임무 수행을 위해 제국에서 이곳으로 넘어올 때 가져온 소량의 물질이기도 했다.

“죄, 죄송합니다, 단장님.”

부하는 구태여 설명을 보태지 않았다.

이미 모니터실에 도착한 추장현이 화면 속을 응시하고 있었기에.

“……정말로 저런 놈이 협회에 있었다고?”

화면 속 정신을 잃고 쓰러진 부단장의 옆으로.

반쯤 소멸한 개들의 잔재에서 블러드 스톤을 추출하고 있는 준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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