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가족 같은 사이 (99/246)

◈ 가족 같은 사이

신기범은 시간을 내줄 수 있겠냐는 내 부탁에 흔쾌히 응해줬다.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면서.

“준우 씨 말대로였습니다. 회사 내에 신기술에 관한 비밀을 누설했던 사람이 있더군요.”

“그게 누구던가요?”

“기술 개발팀 직원이자 제 대학 동기였습니다. 브로커를 고용했던 임경호와도 동기였는데, 동기 모임에서 정보를 흘린 모양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찾아내셨군요.”

“아무래도 임경호가 잡혀 들어간 것 때문인지, 그자도 잔뜩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덕분에, 추궁을 하니 쉽게 자백을 하더군요.”

“모쪼록 일이 원만하게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준우 씨 공이 큽니다.”

내가 뭐 딱히 한 게 있나.

비밀리에 개발하던 기술인 만큼, 혹시나 내부에 첩자 같은 게 있을까 해서 언질을 해준 것뿐인데.

“그나저나, 부탁하실 일이라는 게……?”

동혁이가 자랑을 했는지 몰라도, 신기범은 방송에 출연한 선화가 내 아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덕분에 말을 꺼내기가 한층 수월했고,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역시나 핵심은 택배 업체들이 총파업에 들어간 상황이었고, 급한대로 포탈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짧은 시간 내에 설치가 가능함과 동시에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포탈이어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가능할까요?”

“시간적으로 급하신 것 같은데, 당장 설치가 가능한 장비라면……아! 저희가 일전에 출시하려다가 말았던 포탈 장비가 하나 있습니다. 개인용 포탈인데, 작동 기간이 짧다는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었었거든요.”

“작동기간이 짧다면, 얼마나?”

“일주일 정도 버티는 수준이죠.”

일주일이라.

서너 개 정도 여유가 있다면, 나쁘지 않다.

약 한 달 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개인용이어도 상관없지. 어차피 배송이야 내가 아니면 선화가 해야 할 테니, 단체용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중요한 건, 재고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출시하려다가 말았다면 대량 생산은 안 했을 거고, 재고가 남았더라도 처분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회사 내에 재고가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처분하지 않고 남겨둔 게 열 개 정도 될 것 같네요. 준우 씨가 필요하시다면 전부 드릴 수 있습니다. 설치도 무상으로 해드리죠.”

“예?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합당한 금액을 주고 제가 구입을…….”

“저번에 저를 비롯한 저희 가족이 납치됐던 사건, 처음엔 기동대에 접수된 사건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준우 씨께서 직접 나서서 사건에 개입해주셨다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었다.

처남이 하도 부탁을 하기에.

“덕분에 저와 아내, 그리고 예빈이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의 목숨값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겠지만, 이렇게나마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공짜로 받을 생각은 없었다.

신기범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긴 했으나, 급한 대로 상황에 맞는 포탈 장비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려 했었지.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개인용 포탈은 마력 방출을 사용해서 작동이 가능한 장비입니다만.”

“한 달 정도는 거뜬하죠.”

“준우 씨께서 직접 그 많은 양의 마력을 사용하시겠다는 뜻인가요? 이게 생각보다 마력 소모량이 많아서, 서너번 사용하면 탈진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괜찮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어차피 아직 정직 기간이라 힘쓸 때도 없다.

‘마력 아껴뒀다 뭐해, 이럴 때 쓰는 거지.’

모든 마력을 죄다 퍼부어도 상관없다.

선화의 걱정만 덜어줄 수 있다면.

***

다음 날 곧장 선화의 가게에 포탈 장비가 설치됐다.

원래 장비 구입부터 설치까지 꽤 오래 걸리는 일이었는데, 신기범이 특별히 신경을 써준 덕분에 하루 만에 모두 끝이 났다.

“어떻게 포탈로 배송을 할 생각을 했대?”

“내가 워낙 머리가 총명해서 말이지.”

선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가게 창고 쪽에 설치된 포탈 장비를 여러 번 살펴봤다.

아마 포탈 장비를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거다.

“선화야. 여기 손 한번 올려볼래?”

포탈 장비 오른쪽 하단에 있는 작은 수정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장비를 작동시키기 위한 마력 출력 장치다.

“이렇게?”

“맞아, 그렇게. 마력을 방출해서 거기에 주입을 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흐음. 틈틈이 연습을 하긴 했는데, 아직 마력 방출은 좀 어려워서…….”

선화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단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다.

‘과연, 얼마나 늘었을까?’

이전에 말순이를 노리던 블루 독을 막아섰을 때.

위급했던 상황 때문인지, 선화의 손에서 마력이 방출됐었다.

이후로 꾸준히 연습을 해오고 있었으며, 재능이 있던 덕분에 일취월장하고 있는 선화의 실력이었다.

스스슥 -

미약하게나마 피어오른 마력이 수정구에 스며든다.

이전엔 자의로 마력을 다루는 것도 버거웠었는데, 어느새 의지대로 마력을 끌어내는 게 가능해진 듯하다.

‘마력 방출이 어렵기는. C급 헌터들도 반년 이상 걸려야 할 수 있는 수준인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포탈 장비를 작동할 만큼의 마력은 아직 다루질 못하는 것 같았다.

“헤헤, 안 되네.”

“좀 더 연습하면 할 수 있겠는데?”

이번엔 테스트만 해본 거다.

아직 정직 기간이 남았으니 한동안은 내가 배송을 대신 해주면 되는 거고, 그때까지만 선화의 마력 방출 능력을 더 끌어올리면 된다.

“과연 내가 그때까지 할 수 있을까?”

“내 마누라라면 할 수 있을걸.”

선화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내 말이 응원이라도 됐는지, 아까보단 자신감이 생긴 표정이었다.

“어떻게든 해볼게. 계속 오빠한테 기댈 수는 없으니까.”

당장 오늘부터 배송을 시작하기로 했다.

포탈을 사용한다고 고객님의 집안으로 배송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주거지엔 포탈 차단 장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걸 뚫고 들어간다 해도 무단침입으로 잡혀가게 될 거다.

‘그래도, 허가된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아파트나 빌라, 오피스텔.

그리고 대부분의 주거 밀집 지역에는 포탈 사용 허가 구역이 다수 존재했다.

거기까지만 포탈을 이용해서 이동해도 배송을 빠르게 마칠 수가 있었다.

‘빡세게 움직여볼까.’

하루는 바쁘게 지나갔다.

배송지와 가게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래도, 포탈 덕분에 여태 주문 들어온 거 하루만에 싹 다 배송할 수 있었어.’

워낙에 주문량이 많아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선화의 웃는 모습을 보니 어지럽던 정신마저 회복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제 마지막 배송이지?”

“어디 보자, 배송지가……과천이네?”

과천이라는 말에 선화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걸까.

“오빠, 얼마 전에 기사 봤지? 과천 야생 동물 보호소에서 곰 탈출했다는 거.”

“아니. 못 봤는데.”

곰 탈출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네.

예전엔 서울대공원에서도 곰 탈출하더니.

“아무튼. 곰 조심하라고. 과천 시내에 나타났다가, 어디로 사라졌다는데 아직 수색 중이랬어. 아직 못 찾았다는 뜻이라고.”

“걱정 마. 혹시라도 곰 만나면 죽은 척할 테니까.”

“바보야! 죽은 척했다간 진짜 죽어! 죽은 척하면 살 수 있다는 게 사실인 줄 알아?”

나도 농담으로 해본 말이다.

설마 내가 곰을 앞에 두고 죽은 척이나 하겠는가.

“괜한 걱정 안 해도 돼. 잊었어? 나 헌터야, 헌터.”

곰 따위야.

아마 곰이 나한테 쫄아서 도망갈 것 같은데.

“헌터라도 방심하면 안 돼. 호주에서 어떤 헌터가 캥거루 싸움 말리다가 사망한 기사 못 봤어?”

“에이, 뭔 헌터가 캥거루 싸움 말리다가…….”

“정말이거든!”

“그 헌터는 F급이었나 보네. 나는 B급이라 괜찮아.”

“항상 문제는 방심할 때 터진다니까? 만약에 곰 나타나면, 바로 차원문 열어.”

“차원문 열면?”

“내가 애들 데리고 오빠 구하러 갈게. 아까 봤지? 내가 마력 방출 사용하는 거? 곰 한 마리쯤이야, 내가 이 주먹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거든!”

선화가 주먹을 내지르는 자세를 취하며 우쭐거린다.

마력 방출 알려줬더니, 세상 강한 헌터라도 된 착각이라도 하는 걸까.

“선화 너 캥거루 같다.”

“이렇게 예쁜 캥거루 봤어?”

“봤지. 요기 지금 내 앞에.”

선화에게 다시 한번 걱정 말라는 말을 전한 뒤, 포탈 장치를 작동시켰다.

“다녀올게.”

마지막 배송지인 관악산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

그곳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

저녁 식사를 마친 이선호가 벽에 걸린 시계를 응시했다.

이번 주는 기동 3팀이 야간 당직을 서는 날이었고, 슬슬 늦은 출근 준비를 해야 할 듯싶었다.

“아들, 설거지는 그냥 둬. 엄마가 할게.”

이선호가 설거지를 시작하려는 순간, 거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냐. 금방 해.”

“아들이 수선화 씨 싸인 받아주겠다는데, 설거지까지 시킬 수는 없지.”

어머니는 초점이 없는 두 눈으로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사고로 시각 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였고, 그 옆에는 고등학생 여동생이 함께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때마침, 선화가 나오는 방송이 재방송 중이었다.

“엄마, 오빠가 거짓말 한 거면 어떡해?”

“너희 오빠 소심해서 거짓말도 잘못해.”

“소심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된 친구도 한 명 못 사귀었다며?”

설거지를 하던 이선호가 뜨끔했다.

여동생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선화 씨 남편분이랑 엄청 친한 친구라던데?”

“의심스러운데. 오빠, 진짜 엄청 친한 거 맞아?”

“마, 맞아.”

이선호의 어머니는 반려몬 등산 동호회 회원이었다.

눈이 보이질 않아 TV는 보지 못하시지만, 다른 회원들이 선화의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반려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인 만큼.

방송에서 선화가 보여준 반려몬에 대한 애정이 동호회 사람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단다.

어머니는 직접 동호회 사람들의 단체 티셔츠를 걷어서 이선호에게 건넸고, 꼭 단체복에 싸인을 받아다 달라고 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는데…….’

그냥 종이에 싸인 몇 장 받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커다란 쇼핑백 여러 개에 동호회 아주머니들 단체복을 담아서 줄 줄이야.

‘괜히 준우 씨랑 친하다고 했나.’

사실, 친한지 안 친한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시기에 저도 모르게 친하다고 말해버렸다.

그냥 친한 게 아니라.

회사 내에서도 가장 친한 사람이라고.

‘준우 씨가 싸인 못 받아준다고 하면 어떡하지?’

설거지를 마친 이선호가 막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여동생이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박! 오늘 아침에 주문한 건데, 벌써 왔다고?”

이선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여동생이 핸드폰 화면을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택배 말이야. 방금 곧 도착한다고 문자 왔거든! 택배 총파업이라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하루도 안 돼서 도착하다니!”

“뭘 시켰길래 그렇게 방방 뛰는 거야?”

“우리 축복이 주려고 저 방송에 나오는 아티팩트 주문했지! 그 상처 치료되는 손수건 말이야!”

축복이는 어머니의 안내견이자, 식구였다.

앞이 안 보이시는 어머니께서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관악산에서 반려몬 산책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모두 축복이 덕분이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안내견 축복이였고, 어머니가 사고 전부터 익숙하게 산책을 해왔던 곳이기에 그나마 관악산에서는 산책이 가능했다.

산 아래 마련된 산책 코스만 유일하게 즐길 뿐이었지만, 어머니에겐 그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마다 두 분이서 산책을 하던 장소였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 낙이 없어졌다.

일주일 전쯤인가.

보호센터를 탈출한 곰이 관악산 인근에서 발견됐고, 현재 경찰과 보호센터 직원들에 의해 통제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곰 한 마리 찾는데, 뭐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당직 기간 끝나면 내가 나서서 찾아보든지 해야지, 원.’

이선호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

타이밍 좋게 여동생이 간절히 기다리던 택배 기사가 도착했다.

“주, 준우 씨……?”

“이선호 탐지님……?”

놀란 얼굴의 이선호가 멍하니 두 눈을 껌뻑거렸고.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여동생이 이선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묘한 눈빛을 보냈다.

‘준우 씨면, 그분 맞지? 오빠랑 엄청 친하다던?’

마치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

이선호가 창피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제발 준우 씨한테 친한 거 맞냐고 묻지만 말아주라.’

그러나, 입이 방정인 여동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마지막 배송지가 이선호의 집이라는 건.

늦은 시간의 배송인지라 배송만 마치고 돌아가려 했는데, 어머님께서 굳이 과일을 내오셨다.

‘장애가 있으셨구나.’

초점이 없는 두 눈과 걸음걸이를 통해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 사과를 깎는 동작엔 일절 어색함이 없다.

“선호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회사 내에서 일 잘하시기로 소문난 분이시라고.”

“아닙니다.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하는 정도죠.”

“선호 말로는 남들 하는 거에 몇 배는 더 하신다고 하던 데요?”

“하하! 그렇지도 않아요. 겉으로 보면 제가 전부 다 하는 것 같지만, 사실 팀원들이 많이 도움을 주고 있거든요. 특히 이선호 대원님 도움이 가장 크죠.”

“저희 선호가요?”

순간, 이선호가 몸을 움찔하는 게 보인다.

동시에 얼굴 또한 붉어진다. 창피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항상 이선호 탐지님께서 레이더를 이용해 던전 탐색을 해주시거든요. 그게 아니면 애당초 모든 일은 시작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자, 여동생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이선호를 바라본다.

“신기하네. 우리 오빠가 남한테 칭찬을 다 듣기도 하고.”

“사내에서도 선호 씨 칭찬은 항상 자자하죠.”

“두 분이 엄청 친하니까, 괜히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희 둘이요……?”

“오빠가 그러던데. 수선화 씨 남편분이랑 엄청 절친이라고.”

이선호가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가족들에게 나와 엄청 친하다고 자랑을 한 것 같았다.

“단순히 친하다기보단 가족 같은 사이랄까요.”

“오오!”

여동생이 다시 한번 이선호를 신기하다는 바라본다.

이선호의 어깨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은 듯 정색을 한다.

‘기분 좋으면서 괜히 아닌 척하시네.’

계속되는 내 칭찬이 창피한 듯, 이선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주 야간 당직이라고 했었는데, 시계를 계속 보는 것을 보니 출근 시간이 빠듯해진 모양이다.

“죄송해요, 준우 씨. 저희 가족들 때문에 조금 곤란하셨죠?”

“곤란하긴요. 덕분에 과일 맛있게 잘 먹었는데요.”

이선호가 출근길에 나서는 김에 같이 집에서 나왔다.

그는 뭐가 그리 죄송한지, 내게 연거푸 사과를 건넸다.

“어머님이 요즘 산책을 못하셔서 그런지 많이 적적하신가 봐요. 평소엔 엄청 조용하신데, 오늘따라 유난히 말씀이 많으셨던 것 같기도 하고……하하.”

“산책이요?”

“안내견 도움으로 집 뒤에 관악산에선 자주 산책을 하시거든요. 이 집에 오래 살아서인지, 관악산 산책로는 익숙하셔서 산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죠.”

“아아. 그런데 요즘은 왜……?”

혹시 거동이 불편하신가 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관악산에서 무슨 곰이 발견됐다네요. 그래서 통제가 됐는데, 여태 찾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거 때문에 어머님도 유일한 산책로가 막힌 상황이구요.”

“이런.”

선화도 언급했던 그 곰인 것 같았다.

별거 아닌 녀석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이번 주 당직 기간 끝나면 차라리 제가 한번 찾아볼까 봐요. 어머니께서 집에만 계시는 것도 좀 그렇고…….”

“다음 주까지 기다리시게요?”

“그럼요?”

“으음, 제가 대신 그 곰을 한번 찾아볼까요?”

“준우 씨가요?”

이선호에게 기꺼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우린 앞으로 함께 나아갈 팀이 아니던가.

곰 한 마리 찾는 게 딱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머님 얘기 때문인지, 마음이 좀 쓰여서요.”

“저, 저희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기도 했다.

‘변이를 마친 말순이의 능력도 테스트해 볼 겸.’

말순이가 변이를 마치는 모습은 아마 이번 주 방송을 통해 나가게 될 거다.

촬영 도중에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준우 씨께서 저희 어머니까지 생각해주시다니!”

“또 갓준우, 뭐 그런 거 하려고 그러죠?”

“아, 아닙니다.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가지고…….”

“그런 게 무슨 민폐라고. 우리 가족 같은 사이 아닙니까?”

“아아…….”

이선호가 감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얼굴이 뭔가에 가려져 버렸다.

[ 대상과 가족이 되기까지의 예측 시간, 3개월. ]

이선호가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감소하며.

그 사실을 알리는 홀로그램이 떠오른 거다.

‘설마, 지금 내 말 한마디에 저 시간이 대폭 감소한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