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장모님께 약속했어 (98/246)

◈ 장모님께 약속했어

회귀 직전.

선화를 제외하고, 나랑 가장 가까웠던 가족을 꼽으라면 단연 장모님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장모님과 가까워지기 이전이며, 장모님께서 온전히 내게 마음을 오픈하지 않은 이상 다소 서먹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회귀 후에도 가끔 안부 인사를 드리고는 했지만, 오늘처럼 먼저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도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장모님께서 문득 물으셨다.

- 방송 봤네. 전 서방은 아예 안 나오던데?

“선화가 주인공인지라, 포커스를 그쪽에 맞췄습니다.”

직장에서 정직 처분받았단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기에.

- 그랬구나. 반려몬이랑 같이 산다는 얘기는 선화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뮤턴트가 있는 줄은 몰랐어.

장모님의 말투는 여전하셨다.

장인어른처럼 딱딱하다가도, 또 언제는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어투였다. 참 묘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선화가 반려몬을 참 좋아해서요. 장모님께서도 반려몬들 참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 좋아하지. 그 영감탱이랑 살면서 단 한 번도 키워 보진 못했지만.

“…….”

훅하고 들어오는 ‘영감탱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다소 살벌한 어감의 그 영감탱이가 누굴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전 서방, 생각보다 아주 용하네? 그 영감탱이가 그걸 그냥 뒀을 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선화가 좋아하는 건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보니…….”

- 기어코 영감탱이 말을 거역하고 반려몬을 키우기로 한 거야? 자그마치 여덟 마리를?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장인어른도 이제는 몬스터를 혐오하는 게 아니라, 아주 좋아하신다고 대답해 드려야 하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괜히 배신감 느끼실라, 그냥 그건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라 판단했다.

“운 좋게 선화의 뜻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럼, 영감탱이랑은 아예 척을 쳤겠는데?

“아, 아닙니다. 장인어른께서도 저를 아껴 주시고…….”

- 아끼기는 개뿔. 꼰대 같은 그 양반이 잘도 그러겠다. 자기 말 거역하면 냅다 화부터 내는 사람이, 무슨!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다.

하긴, 이혼하시고 장인어른과 만난 적이 없으실 테니까 그럴 만도 했다.

‘장인어른 변한 모습 보시면 놀라시겠어.’

아이언 엉덩이 쓰다듬고 있는 장면을 보여 드린다면, 필히 멘붕에 빠지실 것이리라.

아무튼.

장인어른 얘기를 계속 꺼내서 좋을 건 없다.

친히 먼저 전화를 주셨는데, 기분이라도 좋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긴장도 조금 풀렸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도 떨림이 멎었다.

회귀 전에도 장모님을 겪어 봤는데.

고작 전화 한 통에 벌벌 떨 수는 없지.

“그나저나, 장모님은 여전히 목소리가 고우시네요. 요즘 따로 목 관리라도 받으시나요?”

- 관리야 꾸준히 받지.

“필라테스도 꾸준히 하시면서, 몸매 관리도 잘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선화랑 함께 계시면 아마 사람들이 언니라고 착각할 정도로요.”

너무 노골적인 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장모님께는 먹힌다.

장인어른이 은근한 아부를 선호하신다면.

장모님께서는 대놓고 떠는 아부를 좋아하시거든.

- 호호! 내가 필라테스 하는 건 어찌 알았대?

“예전에 기사보고 추측했습니다. 런던에서 브랜드 런칭하셨을 때, 화이트 수트 입으셨잖아요? 그 수트 핏이 관리를 안 하고는 나올 수가 없는 핏이거든요. 저는 무슨 영화배우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 전 서방, 나한테 관심 많구나?

“그럼요. 장모님께 관심받으려면, 저부터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아부가 썩 마음에 드신 거다.

- 아무튼, 잘했어.

뭘 잘했다는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네, 장모님. 감사합니다.”

- 내가 뭘 잘했다고 한 건지 알아들은 거야? 못 알아들으라고 한 말인데.

장모님을 알기에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하진 않겠지만.

방송을 통해 보셨을 거다.

선화는 원하지만, 장인어른의 반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

그 대부분의 것들이 방송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변화가 나로 인한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 아니셨을까.

- 아무튼, 선화에겐 지금처럼만 해 줘. 나 없는 동안 잘 챙겨 주고.

“옙! 선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 여전히 대답 하나는 씩씩하게 잘하네. 그럼 끊는다.

통화를 마치고, 잠시 장모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 했던가. 회귀 직전, 그 말을 몸소 실천해 주신 분이 바로 장모님이셨다.

‘그리고, 이혼 전과 후의 확연히 다르신 분이셨지.’

두 분이 재결합하기 전까지는 장모님께서 장인어른의 기에 눌려 사셨다고만 생각했다.

충분히 그런 오해를 할 정도로 장인어른의 기가 셌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장모님이 배려를 해 주시며 살았던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건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이고, 다소 까칠하신 장인어른께 일일이 맞춰 주시며 살다가, 뒤늦게나마 제 삶을 찾아서 떠나신 장모님이셨던 거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쿨한 것 같으면서도 배려심이 깊은 사람.

또한, 자신만의 개성이 확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바로 장모님이었다.

“……누구랑 통화를 그렇게 해?”

그때, 잠깐 잠에서 깬 선화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장모님.”

“엄마? 갑자기 왜?”

“그냥. 선화 너 행복하게 해 주래.”

“우리 엄마가 그런 말 할 사람이 아닌데?”

“네가 많이 보고 싶으신가 보다.”

장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선화를 잘 챙겨 주라고.

그 말이, 곧 한국에 돌아오시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데, 장모님 핸드폰 번호 언제 바뀌었어?”

“이틀 전인가, 삼 일 전에. 핸드폰 잃어버려서 바꾸는 김에 전화번호도 바꿨대. 아빠가 자기 번호 알고 있는 게 싫다나, 뭐라나.”

흐음, 조금 마음이 아프다.

장인어른께선 계속 장모님 번호를 갖고 계실 텐데.

* * *

선화의 방송분은 총 2회분으로 아직 2회차 방송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가게는 손님들로 미어터졌다.

가게를 필요에 의해 방문하는 손님들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저 선화를 한번 보겠다고 모여든 손님들도 상당수였다.

“우리 선화 완전 대스타 됐네.”

“덕분에 아티팩트 주문량도 많고. 그치, 오빠?”

선화가 기분 좋게 웃었다.

가게를 찾은 수많은 손님들로 인해 오늘 하루 심히 힘들었음에도 불구, 표정은 아주 좋아 보였다.

자신의 인기는 물론 일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랄까.

준우는 그런 선화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루 종일 가게에 남아 선화를 도왔다.

그때였다.

“저어, 택배 기사인데요…….”

마감 직전, 택배 기사가 가게를 방문했다.

주문 들어온 아티팩트 물량을 채우기 위해, 앞서 발주했던 제작 재료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가게 밖에서부터 이곳저곳을 살피던 택배 기사는 가게 내부를 역시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선화를 발견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와아! 진짜구나? 배송지 주소 보고 설마, 설마 했었는데, 진짜 수선화 씨 가게네?”

택배 기사가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가게 주소야 방송 타면서 알려졌기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호, 혹시 싸인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방송 보고 너무 팬이 되어 가지고.”

“물론이죠.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선화의 팬이 많이 생겼다.

준우가 만들어 낸 청순 파워로 수많은 남성 팬들이 생겼더랬다.

유부녀인 걸 밝혔음에도, 오늘 하루 가게에 찾아와 선화의 싸인을 받아 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방송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선화가 택배 기사를 향해 싸인을 건넸다.

화사한 미소를 직접 마주한 택배 기사는 생각했다. 방송보다 실물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으시네요. 괜찮으시면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저야, 주시면 감사…….”

택배 기사 역시 웃으며 대답을 하려는 찰나.

“……응?”

가게 한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준우와 눈이 마주치자 택배 기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지? 째려보는 건가?’

짐작하건대.

방송을 통해 남편 얼굴이 공개가 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가 남편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 방송 마지막 인터뷰에서 선화 씨가 뭐라 했드라?’

남편인 준우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인터뷰 당시.

선화는 남편을 협회 소속 헌터로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었다.

- 연애할 땐 몰랐는데, 같이 살다 보니까 질투가 많은 사람이더라구요? 근데, 그 질투가 밉지가 않아요. 뭔가 저를 더 좋아해 준다는 느낌만이 강하게 드는 질투랄까.

중요한 건, 그다음 질문이었다.

방송 나가고 선화의 인기가 많아지면 남성 팬들이 많이 생길 텐데, 남편분께서 과연 좋아하실까요? 라는 질문.

- 글쎄요. 다 이해하니까 괜찮을 거라고는 했어요. 아무리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도, 설마 협회 소속 헌터가 되어 가지구 사람들한테 해코지 같은 걸 하진 않을 테니까요. 아마, 그렇겠죠?

선화는 농담식으로 한 대답이었다.

당시 작가들도 웃음으로 그냥 넘긴 수준.

하지만.

준우의 표정을 본 택배 기사는 마냥 농담이라고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냥 싸인 한번 받으려고 한 건데, 뭐 이렇게 살벌해…….’

사실, 준우는 그냥 코를 한번 찡그렸을 뿐이다.

조금 전 말순이 녀석 털이 코에 닿는 바람에 아주 잠깐.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택배 기사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오해를 산 것뿐이었다.

“배송 온 물류들은 어떻게 할까요? 가게 안쪽에 놔드릴까요?”

택배 기사가 괜히 준우의 눈치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준우가 대답을 대신했다.

“재료들이 좀 무거워서, 차에서 내리려면 조금 힘드실 텐데. 제가 대신 할게요.”

준우의 배려였다.

힘들게 택배 기사가 나르는 것보단, 헌터인 자신이 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밤늦게까지 고생하시는데, 조금이라도 안에서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또 운전해서 가셔야 하잖아요?”

다른 기사들은 준우가 짐을 날라 준다고 하면 좋아했다.

굳이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고, 헌터인 준우의 움직임 자체가 경이로워 보는 재미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완강하게 거부하는 택배 기사가 그저 의아한 준우였다.

“혹시 어제처럼 괜한 사고라도 발생할까 봐 그런 거라면,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래 봬도 꽤나 건강하거든요!”

“사고요?”

준우의 의아함이 더해진 것은 그때였다.

“네, 그 사고 때문에 내일부터 저희 싹 다 파업이거든요.”

“파, 파업이요?”

그 말을 들은 선화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당장 이번 주부터 제작을 마친 아티팩트들이 주문자들에게 배송이 되어야 했다. 만약 파업 기간이 길어지면 곤란해진다.

서둘러 검색을 해 본 결과.

총파업의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고다.

그에 대한 대책 마련과 노동 조합 인정을 요구하는 총파업이었다.

“남편분 덕분에 마지막 배송 힘들이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준우에 대한 오해를 풀었는지 택배 기사가 돌아갔다.

하지만, 선화는 좀처럼 표정을 펼 수가 없었다.

“이거 파업이 얼마나 길어질까? 찾아보니까, 내일부터 수도권은 아예 배송이 안 된다는데.”

“지방 쪽은?”

“몇몇 업체에서는 배송을 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너무 한정적이야.”

방송하랴, 가게에서 손님 맞으랴.

그간 선화의 인지도 때문에 정신없이 흘러간 나날들이었다.

파업 관련 기사는 오늘 오전에 올라왔고, 미처 그걸 찾아볼 여유가 없던 상황이었다.

“배송을 늦출 수는 없겠지? 총파업인 거, 고객님들도 아실 텐데 이해해 주지 않을까?”

“이해는 해 주는 사람들이 있겠지. 근데 아닌 사람들도 있을걸.”

고객들은 각양각색이다.

이런 상황에도 컴플레인 거는 사람도 종종 있다.

‘쓰읍. 이맘때쯤, 한 달 가까이 택배 총파업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파업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

처음엔 고객님들께 배송이 지연된다고 안내를 하더라도, 그게 계속 번복되고 늦춰지면 주문 취소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거다.

이유야 어찌 됐든, 배송 지연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주문 취소 건들.

“방송 나가고 아티팩트는 첫 배송인데, 시작부터 일이 꼬이네…….”

안타까워하는 선화의 모습이 준우의 눈에 밟혔다.

모처럼 새로운 걸 시작하려는 이 상황에, 시작부터 문제가 발생하다니.

일단, 선화의 말대로 지방 쪽은 한정적이긴 해도 배송이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누구는 배송해 주고, 누구는 안 해 줄 수도 없는데. 괜히 이런 걸로 문제 생겼다가 가게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수도 있고.’

방송 PPL로 최대한 좋게 제품이 보인 마당에 그걸 다시 깎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내가 발로 뛰어서 배송할까?’

준우라면 가능하긴 했다.

물론, 그가 유능한 헌터라도 시간과 힘은 들겠지만.

‘선화를 위해서잖아? 못할 것도 없지.’

그러나 준우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상 파업이 길어지면 준우가 정직 해제가 되고, 출근을 하게 되면 또 문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처음엔 배송을 해줬다가, 또 못 해 주는 셈.

준우가 쓸 수 있는 휴가 역시 제한이 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도 선화의 가게 배송이 잘 이뤄지게끔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그냥 일단 되는 대로 배송해 보고, 안 되는 것들은 양해를 구해야지. 그때 가서 양해를 구해도 안 되면 환불 처리 해 드리고…….”

“아니.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택배 기사님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능할지도.”

순간, 준우가 씩 웃어 보였다.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장모님께 선화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목숨 걸고서라도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어떻게든 지켜야지!’

선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준우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 YB 포탈 >

CEO 신기범

신기범이 언젠가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준우는 그걸 이번에 받아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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