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 낭비면 어때
‘우리 집에 몬스터가 산다.’
한때, 잘나갔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동일 방송국에서 좀 더 시대에 맞게 변형한 버전이다.
박무영 PD의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와 반려몬의 일상을 주로 다루며, 녹화분을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서 시청하며 리액션을 겸한 토크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선화의 첫 촬영은 함께 출연하는 게스트인 오미주 배우의 방송을 시청하는 스튜디오 촬영이었다.
당장 다다음 주에 선화의 방송을 내보내야 하는 만큼, 일정이 빡빡한 탓에 스튜디오 촬영이 먼저 이뤄졌고.
‘내일은 드디어 선화의 일상 촬영이 있는 날이다!’
내가 다 설렌다.
우리 선화가 TV에 얼마나 예쁘게 나올지.
작은방 문을 열자,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선화의 모습이 보인다. 아까부터 계속 조용하기에 뭘 하고 있나 싶었는데.
“내일 PPL 내보낼 의상 만드는 거야?”
“아니. 아마 막방 때 내보내야 할 것 같아. 내일까진 전부 다 만들긴 빠듯할 것 같고.”
아무렴 선화 본인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을 잘 해내고 싶은 것도 선화의 바람이었고.
‘열심이네. 영약 같은 거라도 사다 줘야 하나?’
최대한 선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 일에 열중하고 있는 선화를 두고 먼저 잘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정직 기간이라 딱히 내일 할 것도 없는데.
이렇게나마 선화의 옆자리라도 지켜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저 재료들 왠지 낯이 익은데?’
가만히 등 뒤에서 선화를 지켜본 결과.
의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들이 모두 일반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지금 만드는 그거…….”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방송 출연 기회인데,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 보려고 힘 좀 쓰고 있지!”
“……아티팩트, 맞지?”
“역시 내 남편! 눈썰미가 참 좋단 말야? 경기 지부 엘리트는 달라도 다르다 이건가?”
“수선화 남편 자리 차지하고 있으려면 엘리트 정도는 돼야지.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선화 네가 아티팩트 만드는 법을 어떻게 알아?”
테이블에 놓여 있는 재료들.
전부 던전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던전 부산물들이었다.
아마도 선화가 PPL을 위해 마켓에서 직접 구해 온 것들인 것 같았다.
‘나름 구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는데, 저걸 다 어떻게 구했대? 형님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했나.’
방해 안 하려고 했는데.
대뜸 선화가 아티팩트를 만들기 시작하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태 아티팩트 만드는 기술을 배운 적도 없지 않은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완성품이 어떨지도 모르고. 그냥 이거 보면서 차근차근 해 보는 중이야.”
“그게 뭔데?”
선화가 보여 준 낡은 노트 여러 권.
노트 안에는 각종 아티팩트를 만드는 설명과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어라?”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노트 각각 하단에 적혀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황장미.”
“맞아, 엄마 이름. 아빠랑 이혼하기 전에 나한테 주고 가더라? 내가 손재주는 엄마를 쏙 빼닮아서, 나중에 이걸로 사업하면 잘할 거라면서.”
장모님이 남긴 보물인 셈이다.
장인어른과 별거와 동거를 반복하며, 결국 이혼을 하신 장모님은 현재 런던에 거주 중이신 상태다.
‘유명한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고 계시고.’
보통 디자이너가 아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아티팩트 세공사’가 바로 장모님이셨다.
“최근 엄마 기술에 비하면, 이 노트에 적힌 것들은 그리 세련된 기술들은 아닐 거야. 그래도 내 사업이 아티팩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단 디자인 위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해서.”
“디자인에 성능을 곁들이는 정도?”
“맞아. 오빠가 생각했을 땐 어때? 잘 될 거 같아?”
“잘 되다마다. 아무리 세련된 기술이 아니어도, 장모님 기술이면 일류잖아? 그것도 지금 그 기술은 선화 너만 배울 수 있는 거고?”
노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선화뿐이다.
고로, 장모님의 기술을 이렇게나마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장모님의 딸인 선화가 유일하다는 얘기고.
“이게 성공하지 않을 리가 없지. 대박 아이템인데.”
“근데, 확신을 갖긴 좀 이르긴 해? 아무래도 내가 손재주가 영 별로다 보니까.”
“선화 네가 손재주가 별로라고?”
“그렇지 않아? 그래서, 일단 테스트 삼아 손수건 하나 정도 만들어 보고 성능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아.”
겸손이 너무 지나치시네.
지금 만들고 있는 것만 봐도, 시중에 장모님이 디자인한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데.
‘모전여전인 거겠지.’
부모님이 둘 다 능력 천재다.
그 핏줄이 어딜 가겠는가.
“필요한 재료 있으면 말해. 내가 세상 모든 던전을 다 뒤져서라도 구해다 줄게.”
“말이라도 고맙네.”
“말뿐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줘?”
“푸흡! 됐어. 당장 필요한 거 없으니까, 이번 일엔 오빠가 안 나서도 돼.”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남편이 되어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아내를 위해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화는 사진이나 영상보다 실물이 더 예쁘긴 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예쁜 선화지만,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아무튼, 방송에서 선화가 최대한 더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 * *
촬영은 선화가 잠들어 있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집안에는 스태프들이 미리 설치해 둔 카메라가 도는 중이었고, 선화는 평소에 해 왔던 대로 오전 7시에 칼같이 기상했다.
나는 선화보다 먼저 일어나서 최대한 카메라 사각 쪽으로 자리를 피했다.
편집 시에 편의를 위해, 조금이라도 화면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기상 장면 찍자고 내가 외박을 할 수도 없는 거고.’
박무영 PD에게는 양해를 구했다.
개인 사정이 있어서 나는 방송 출연을 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정직 기간에 방송 나와서 웃고 떠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우리 선화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얼굴이 안 붓는단 말야. 머리카락이 부스스해도 예쁘기만 하고.’
방송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관찰형 예능에도 촬영 시에 스태프들은 집안에 상주했다.
그들은 선화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카메라에 담았다.
사실, 딱히 미팅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선화가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 아이들은 미팅 때처럼 신발 정리를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선화에게 가져다주고, 미심이는 다섯 개의 꼬리를 뽐낼 뿐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완벽합니다! 시청률 고공행진 하는 게 제 눈에 선해요, 선해.”
이번 촬영에 기대하는 바가 큰지, 직접 우리 집까지 나선 박무영 PD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 딴에는 딱히 한 것도 없이 평범한 과정임에도,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다 신비하고 경이로워 보이는 것 같았다.
이미 분량은 뽑을 대로 뽑았다고까지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장소를 옮기기로 했고, 선화는 곧장 출근길에 나섰다.
가볍게 기초화장만으로 출근길에 나섰음에도 불구, 몇몇 남자 스태프들은 작게 감탄을 자아냈다.
쌩얼임에도 불구, 굴욕 없는 미모가 그저 황홀할 터.
‘그래도 그렇지, 다들 너무 힐끗거리신다?’
말순이한테 콱 물어 버리라고 할까, 하다가 참아 줬다.
나야 365일 나날이 발전하는 미모의 아내와 함께 산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거니까.
‘부러우면 그럴 수 있어.’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촬영 카메라는 계속해서 분주하게 돌았으며, 선화의 발걸음조차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 녀석, 오늘도 어김없이 왔네.’
선화가 가게 문을 막 열었을 때.
길고양이 한 마리가 선화를 향해 다가갔다.
언젠가부터 우리 가게에 자주 드나드는 녀석이었는데, 선화가 자주 사료를 준 탓인지 그때부터 그 횟수가 잦아진 듯했다.
“배고파서 왔구나?”
선화는 평소대로 사료를 꺼내 길고양이에게 건넸다.
스태프들은 숨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름 힐링 장면이기도 하고, 프로그램 취지와도 어울리는 장면이기에 최대한 모든 것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너는 왜 맨날 다쳐서 오니?”
선화의 시선이 길고양이의 뒷다리로 향했다.
항상 가게를 찾아올 때면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나 있다고는 했었는데, 오늘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있어 봐. 오늘은 누나가 약 발라 주는 거 말고, 더 좋은 거 줄 테니까.”
선화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게 로고가 박힌, 직접 디자인해 만든 손수건이었다.
아마, 저 손수건이 길고양이에게 씌워지면.
그땐 스태프들 표정이 아주 난리가 날 거다.
‘소량이긴 해도 은실이의 치유 능력이 인챈트된 아이템이니까.’
평범한 손수건이 아니었다.
어제 선화가 잠들기 전에 완성해 낸 첫 번째 아티팩트였다. 연습 삼아 만들어 본 거라고는 했지만, 성능은 기가 막히게 완벽했다.
‘자그마치 장모님 딸인데, 실력이 어디 가겠어.’
게다가.
PPL까지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박무영 PD와는 협의가 된 사항이었다.
자연스럽게 PPL을 할 수 있으면 좋다고 했고, 영 이상하면 알아서 편집한단다.
PPL을 자연스럽게 하는 게 어려우면 자신들이 배치를 해 주겠다고도 했고.
“요즘 날도 많이 쌀쌀해졌는데, 이거라도 하고 다녀.”
선화가 길고양이의 몸에 손수건을 둘러준 그때.
녀석의 다리 주변에 보라색 빛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
따뜻한 장면 분위기가 깨지는 것을 우려하여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는 스태프들이었지만, 할 말들이 굉장히 많은 표정들이었다.
‘놀랍기도 하겠지. 선화가 손수건을 씌우자마자, 상처가 회복됐으니까.’
구하기도 어렵지만, 만들기는 더 어렵다던 아티팩트.
아티팩트 효과 발동 시 나타나는 보라색 빛을 봤으니, 당연히 딱 그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아티팩트로만 끝낼 수는 없지.’
화룡점정이 남았다.
우리 선화를 돋보이게 해 줄 작전이랄까.
“다음에 올 땐 다치지 말고 와야 해.”
선화가 길고양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오복이들이 선화의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저 녀석들.’
질투를 하는 거다.
선화가 생판 모르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자신들도 안아 달라며 관심을 달라고 하는 거랄까.
“아구구! 우리 애기들 지금 질투하는 거야?”
활짝 웃은 선화가 살며시 품을 내줬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다섯 마리의 오복이들이 선화에게 차례대로 안기기 시작했다.
선화의 품을 차지하기 위해 작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대는 오복이들 위로, 화사하게 미소 짓는 선화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촬영을 의식해서 긴장한 탓인지, 여태 표정이 살짝 어색한 느낌이었는데.’
품에 안긴 오복이들 때문에 간지럽기라도 한 걸까.
선화의 얼굴은 촬영 시작이래, 가장 자연스럽고 예뻐 보였다.
‘선화 미모 포텐 터뜨리기엔, 지금이 딱이다!’
나는 스태프들의 뒤쪽으로 살며시 물러났다.
다들 아티팩트는 물론, 단란한 선화와 오복이들의 모습에 취해 있는지라 내가 움직이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잘됐다.
티 안 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스윽-
차원문에서 보이지 않는 검을 꺼낸 후.
미심이와 자연스럽게 합을 맞췄다.
후웅-
무형의 칼날을 가볍게 하늘을 향해 쏘아 보내자.
주변에 퍼진 마력의 여파로, 바람 한 점 없던 이곳에 일순간 작게 바람이 일었다.
스르륵-
오복이들을 바라보는 선화의 애틋한 시선 옆으로.
내가 일으킨 바람으로 선화의 머리카락이 아련하게 흩날렸고.
그와 함께 선화가 입고 있는 치맛자락마저 은은하게 휘날린다.
‘키야! 우리 선화 미모 봐라! 청순 그 자체다!’
방송분에 편집까지 더해지면 아주 기가 막힌 장면이 탄생할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만 봐도 거의 청순 테마의 CF나 다름없는 완벽한 장면이지 않은가.
아티팩트 만드는 데 도움을 못 줬으니, 이렇게나마 최대한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었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와서 참으로 뿌듯했다.
“와아! 아까 그 손수건 아티팩트 맞지?”
“선화 씨가 아티팩트를 만든 거야? 그걸 우리 방송에서 PPL 하는 거고?”
예상대로 스태프들이 잔뜩 들떴고.
감독님은 조연출을 불러 조금 전 촬영본을 살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바람이 적당하게 불었네. 선화 씨 머리카락 흩날리는 장면, 아름다운 느낌으로 잘 살려서 편집해 봐. 느낌 아주 좋다, 이거.”
바람이 적당하게 불 수밖에 없지.
나도 어제 잠 안 자고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오빠, 그게 그렇게 좋아?”
잠시 카메라가 쉬던 그때.
선화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선화 너도 좋지? 방송에 엄청 예쁘게 나올 텐데?”
“그거 재능 낭비야.”
“재능 낭비면 어때. 선화 너한테 한 번 더 반했으면 됐지.”
선화가 요즘 어디서 오그라드는 대사 같은 거 배우기라도 하는 거냐며 나무랐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씩 웃어넘겼다.
회귀 전엔 선화에게 자주 해 주지 못했던 이런 말들.
앞으로 더 많이 해 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