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내조는 이렇게 하는 거다 (95/246)

◈ 내조는 이렇게 하는 거다

박무영은 프로그램 메인 작가와 함께 준우의 집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약속 시간에 늦을까, 손목의 시계를 수없이 확인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초조해 보였다.

“안 늦겠지?”

“아직 30분이나 여유 있어요.”

차가 조금 막혔다.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차까지 막힐 줄이야.

- 선화 씨 섭외하는 거 절대 후회 안 할 거야. 형도 그 집에 가 보면 알겠지만,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테니까.

빨간색 신호를 바라보며, 박무영은 멍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세계적인 아이돌답게 감이 좋은 동생이다. 그런 동생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기대가 될 수밖에.

“다반려몬 가정이라고 했었죠?”

“그렇다더라. 반려몬 여덟 마리를 키운다던데.”

“한 마리 키우기도 힘든데, 여덟 마리씩이나. 대단하네요.”

메인 작가는 그리 말하면서도 표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다 반려몬 가정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금 걱정이 돼요. 이전에도 다 반려몬 가정을 섭외했을 때 기억나시죠?”

“기억나지. 최악이었어. 네 마리 키우는 가정이었지, 아마?”

“그때도 레드 독이 있었어요. 워낙 식탐이 강한 종이라 촬영 전부터 걱정을 했었는데, 역시나였죠.”

반려몬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식탐이 강한 레드 독 한 마리가 갑자기 자신의 사료를 지키기 시작하더니, 다른 반려몬들과 싸움이 났다.

유혈 사태까진 번지지 않았으나 촬영을 진행하기엔 무리였다.

반려몬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식탐이 많은 레드 독이 카메라와 낯선 사람들까지 있어서 더 예민해진 탓이란다.

“이번에도 레드 독이 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걱정이 앞서네요.”

“뭐, 일단 가 보자고. 아직 출연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다행히도 막혔던 길은 금방 뚫렸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전에 준우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앞서 메인 작가가 했던 말 때문인지 박무영도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현관 벨을 누르자.

화사한 원피스 차림의 선화가 그들을 맞이했다.

“KBC 예능 PD 박무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선화 씨. 동생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멍크 씨가 제 얘기를요?”

“반려몬 전문가나 다름없으신 분이라고. SNS에서 한창 핫하신 분이시잖아요? 실력은 이미 영상을 통해 충분히 봤습니다, 하하핫!”

멍크의 친형인 박무영이다.

게다가 적절한 아부까지 더해져 시작부터 선화의 호의를 샀다.

“안에서 얘기 나누시죠.”

준우가 거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거실로 들어서는 와중에도 박무영의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우영이 녀석 말대로 반려몬이 총 8마리.’

개중에 은실이와 미심이는 뮤턴트였다.

영상 속에서 봤던 말순이는 사실 뮤턴트가 아니었지만, 몸에서 빛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뮤턴트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박무영 일행은 본격적으로 섭외와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본적으로 방송 출연에 관한 것부터 촬영 시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

“아이들이 참 많네요. 보통 다 반려몬 가정에선 질서 문제로 가끔 소란이 일기도 한다던데…… 응?”

메인 작가가 여태 염려하던 부분을 언급하려던 순간.

그녀의 시선이 쪼르르 어디론가 향하는 오복이들을 향했다.

‘뭐, 뭐야, 이거?’

갑자기 현관을 향해 움직이는 오복이들.

녀석들이 신발장의 신발을 정리하는 모습에 메인 작가는 놀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반려몬이 신발 정리를 한다고……?’

놀라운 장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화가 내온 과일을 집으려는 박무영이 테이블 위를 살폈을 때, 포크가 하나 모자랐다.

그런데.

난데없이 은실이가 날개를 펄럭이더니 주방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끼이-

낯가림도 없는지, 은실이는 박무영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자신이 주방에서 물고 온 포크를 그의 손에 툭 하고 떨어뜨렸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메인 작가는 조금 전 자신이 꺼내려 했던 다 반려몬 가정의 문제점 얘기를 더 이상 꺼낼 수가 없었다.

미심이는 여러 개의 꼬리만으로도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내는 와중에, 다른 아이들 역시 너무나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아니, 이건 질서정연하단 말로는 표현하기도 버거워. 여태 수년간 촬영을 하면서 이런 반려몬 가정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잖아?’

박무영의 볼을 연신 씰룩였다.

동생의 말이 진짜 사실이었다. 무엇을 기대하던 상상 그 이상이 될 거라는 그 말이.

“PD님 잠시만요. 죄송한데, 지금 아이들 식사 시간이라.”

“아아, 네!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평소 하시던 대로 하셔도 됩니다. 저희 프로그램이 원래 일상을 담는 방송인지라, 이런 장면들도 미리 확인할 수 있으면 좋거든요.”

선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여덟 마리의 사료를 각각 담아서, 거실 한편에 내려놓았다.

자연스레 박무영과 메인 작가의 시선이 반려몬들에게 향했다.

아무래도 이전에 다 반려몬 가정 촬영 때도 식사 당시에 문제가 발생했던지라, 눈여겨보는 중이었다.

쪼르르-

여덟 마리의 반려몬들이 사료 앞에 일제히 섰다.

한데, 사료를 앞에 두고도 미동이 없었다. 그저 반듯한 자세로 선화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뿐.

식탐이 많다는 레드 독인 말순이조차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화의 입만 집중해서 보고 있지 않은가.

“먹어.”

이내, 선화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그때를 기다렸다가 각자 제 사료를 찾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툼? 견제?

다 반려몬 가정의 그 흔한 문제점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완벽한 반려몬 가정의 모습이랄까.

“이야, 정말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키셨습니다. 저도 나름 수년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나름 이쪽에 전문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껏 이렇게 완벽한 가정은 본 적이 없어요.”

“대, 대단하네요. 혹시 반려몬 훈련 교육이라도 따로 받으신 거예요?”

박무영과 메인 피디의 반응을 살피며, 준우가 씩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놀랄 만도 하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화 씨.”

박무영이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선화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선화는 섣불리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 미리 맞춰 둔 대로 준우를 쓱 바라볼 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은 준우가 대신했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무엇이든 간에 뭐든지 들어주리라.

준우를 바라보는 박무영의 표정은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 * *

미팅을 마치고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길.

메인 작가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괜찮을까요, 감독님. 아무래도 저쪽에서 제시한 조건을 전부 수용하기엔 좀 버거울 것 같은데.”

“어떻게든 해 봐야지. 아까 못 봤어? 선화 씨하고 선화 씨네 반려몬들 섭외만 하면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야.”

“그건 그렇긴 하죠. 저도 여태 저렇게 교육 잘 받은 반려몬들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과연 저게 교육으로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이고. 아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니까.”

방송국으로 복귀하는 내내 박무영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다.

심히 들뜬 기분을 자신의 표정으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 아내가 사업을 하나 진행하고 있어요. 반려몬과 보호자의 커플티를 제작하는데, 그걸 PD님 방송에 PPL로 내보낼 수 있을까 해서요.

박무영은 준우가 내건 조건을 떠올렸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 그걸 놓치지 않는 준우였다.

게다가, 선화가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는 사업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고 싶었고, 그게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PPL이 겹쳐요. 이미 ‘펫토피아’에서 출연자들 의상 협찬받기로 했잖아요.”

메인 작가가 말했다.

펫토피아 역시 보호자와 반려몬의 의상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이미 업계에서 유명할 대로 유명한 업체이기도 했다.

“다다음 주, 경쟁작인 SBC 프로그램에 한나라 씨 나온다는데. 선화 씨 말고 다른 출연자로 이길 자신 있어?”

“어, 없죠.”

“여태 신발 정리하는 반려몬 본 적 있어?”

“……없어요.”

“포크 가져다주는 반려몬은?”

“……그것도 없구요.”

“꼬리 다섯 달린 이미호는?”

“…….”

주차를 마친 박무영이 차량 문을 세게 닫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힘 조절을 못 한 거다.

“PPL이 뭐 대수라고? 내가 봤을 때, 선화 씨만 섭외한다면 한나라 이기는 건 문제도 아니야, 이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PPL 건은 선화의 이상으로 대체해 내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방송국 건물로 복귀하는 박무영이었다.

* * *

박무영이 내 조건을 받아들였다.

조금이라도 선화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 봤는데, 용케 그게 먹힌 모양이다.

‘하긴, 내가 감독이어도 이만한 대박 아이템을 놓칠 리는 없지.’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우리 집 반려몬들의 수준은 이미 반려몬이 아닌, 거의 사람 수준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이다.

방송에 나간다면 이만큼 파격적일 수는 없으리라.

“진짜 오빠 머리 좋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우리 가게 의상을 PPL 할 생각을 했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항상 그런 고민을 달고 사는 남편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지.”

“……어쩜 그렇게 징그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도 할 수가 있어?”

“사랑의 힘이랄까.”

선화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표정은 무척이나 밝다.

자신이 힘들게 준비한 사업이 보다 좋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어찌 그게 좋지 않겠는가.

“떨린다. 모레부터 바로 촬영 시작이네.”

“일찍 자. 자그마치 TV에 나오는 건데, 피부 상하면 안 돼.”

“팩 하고 자야겠다. 오빠도 같이할래?”

선화와 나란히 팩을 하고 누웠다.

살며시 손을 잡아보니, 묘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직 촬영은 시작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긴장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긴장을 좀 풀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걱정이네.”

“뭐가?”

“우리 선화 방송 타면, 남자들 난리 날 거 아냐? 거의 아이돌 뺨치는 미모인데, 팬덤도 생길 거고.”

“푸핫! 뭐어?”

“깔짝대는 남자들한테서 마누라 방어하려면 아주 피곤해지겠어. 방송할 때 꼭 밝혀라?”

“뭘 밝혀?”

“유부녀라고 꼭 밝히라고.”

“아이고! 걱정할 것도 많다. 절대 오빠 피곤해지는 일 없거든?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선화는 그렇게 말했지만.

모레 촬영이 시작됐을 때, 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한나라 씨보다 더 예쁘지 않아?”

“아이돌 연습생 출신인가? 미모가 장난 아닌데.”

선화를 처음 본 스태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촬영장의 몇몇 스탭들은 괜히 선화 주위를 돌며, 말이라도 한번 걸어 보려고 용을 쓰는 게 보였다.

‘이것들이!’

제법 잘생긴 스태프가 선화에게 다가간다.

그가 복숭아 아이스티를 건네려는 순간.

파앗-

나는 숲의 신발을 사용해, 재빨리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복숭아 아이스티를 후다닥 가로챘다.

“죄송한데, 제 아내가 복숭아 알러지가 있어서요.”

“아, 아내요? 결혼하셨었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얼른 저리 가라.

우리 선화 앞에서 깔짝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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