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옳지, 잘했어 (93/246)

◈ 옳지, 잘했어

한숨을 길게 내쉰 수재혁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고민이 있는 듯한 표정. 그는 얼마 전 준우와 만나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YB 포탈의 신기술?

- 제가 이번 예빈 학생네 가족을 해결하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설치 시간과 가동 시간 그리고 이동 시간을 최소화했으며, 이동 거리 또한 대폭 강화된 기술입니다.

- 해서?

- 아직 개발 중이며,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한 기술이기에 YB 포탈 측에서도 투자자를 구하고 있답니다. 해당 사안 검토해 보시고, 엑시스 측에서 투자를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후, 사람들을 풀어 정보를 수집했다.

엑시스 측에서 투자를 한다면 필히 막대한 이윤을 거둬들일 수 있는 기술이었으며, 이미 피스 길드 측에서 YB 포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

‘문제는 YB 포탈 신기범 사장이 우리 엑시스에 적대적이란 말이야.’

동혁이 친구의 아버지로 알고 있다.

하지만, 동혁이에겐 호의적이면서도 정작 엑시스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유가 뭘까.’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감정까지는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직접 부딪쳐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모를까, 신기범의 대답은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피스 길드 측에게 뺏길 수밖에 없는 건데.”

길드의 이미지나 자본으로 봐도 엑시스가 우월하다.

그런데도 YB 포탈이 엑시스가 아닌 피스 길드와 접촉을 시작한 걸 보면, 필히 엑시스와 무슨 사연이 있음에 분명했다.

수재혁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본부장실 문을 덜컥 열고 들어왔다.

“거래를 하러 왔따!”

“지금 너랑 놀아 줄 여유 없다.”

동혁이는 흥! 하고는 수재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츄파춥스를 입에 문 채, 당당하게 다리를 꼬고서.

수재혁이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학교는? 설마, 마음대로 결석하고 그러는 거냐?”

“개교기념일이거든.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지금 거래를 하러 왔다니깐?”

“거래는 무슨 거래.”

동혁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수재혁을 바라본다.

이내 추파춥스를 입안에서 꺼낸 녀석이 씩 웃으며 물었다.

“큰형아, 김 비서님이랑 사귀지?”

“…….”

순간, 당황스러울 법도 했으나.

수재혁은 용케 포커 페이스를 해냈다.

‘이 녀석이 뭘 알고 온 건가?’

무덤덤하게 동생을 바라보는 수재혁.

자신을 향해 히죽거리는 모습이 꽤나 얄밉다.

사실, 동혁이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수재혁은 개인 SNS가 없고, 김 비서의 SNS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사진 같은 건 없었다.

카톡 프로필에도 역시나 증거가 될 만한 건 없었다.

‘단순히 심증으로?’

수재혁의 짐작이 맞았다.

동혁이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발리에 갔다는 심증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동혁이는 똘똘했다.

심증을 증거로 만들어 낼 계획이 있었다.

“큰형아가 아니라고 발뺌해도 소용없어. 난 증거가 있거든.”

“무슨 증거?”

“있어 그런 게. 아무튼,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아빠한텐 말 안 할게.”

그렇다는 건.

들어주지 않으면 수태광에게 말하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게 거래 조건이었나.’

증거가 없더라도, 일단 수태광의 귀에 들어가면 난리가 날 거다.

수태광이 수재혁에게 사람을 붙인다면 언젠가는 연애 사실도 들통나게 될 터.

‘당장 아버지도 증거는 없겠지만 결국은 발각되게 되겠지. 수동혁, 머리를 제법 쓸 줄 아는데?’

동혁이가 노린 게 바로 그것이었다.

수재혁에게는 참으로 귀찮아질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께 말하지 않는 조건은?”

“헌터 협회 경기 지부에 예산 지원해 줘. 심 비서 아저씨가 큰형아라면 할 수 있을 거라던데?”

“뜬금없이 웬 협회?”

“피스 길드가 서울 지부에 50억 예산 지원했대. 거기는 이번에 죄다 신형 전투복으로 바뀌었다는데, 경기 지부는 그대로 구형 전투복을 쓰더라고.”

“그래서?”

“난 우리 매형이 구닥다리 전투복 입는 거 보기 시러. 신형 전투복은 매형 같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저 매제를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내 달라?”

“아니. 나도 나중에 경기 지부 소속 헌터가 될 거야. 지금부터 장비를 최신식으로 바꿔 놔야, 나중에 내가 더 편하지 않겠어?”

“매제로도 모자라, 너까지 협회에 입사한다고 하면 아버지께서 난리를 피우실 거다.”

“딴소리하지 말고. 해 줄 거야, 말 거야.”

“50억?”

“100억은 해 줘야지. 피스가 50억을 했다는데, 엑시스 자존심이 있지 똑같이 하려고?”

수재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준우가 엑시스의 사위이고, 자신도 아끼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아무런 명분 없이 100억을 지원하긴 어렵다.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집단이니까.

하지만.

수재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100억 지원해 주지.”

“지, 진짜?”

“네가 나와 김 비서의 관계에 대해 다신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고집불통에 장난기가 다분한 동혁이지만, 한번 뱉은 말엔 책임을 질 줄 아는 녀석이었다.

아버지처럼 남아일언 중천금을 달고 다니는 동생이 아니던가.

‘헤헤, 내가 이겼다. 확실히 큰형아도 아빠한테 김 비서님이랑 사귀는 걸 들키는 게 무섭긴 한가 보네?’

동혁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미 엑시스 측에서 경기 지부에 예산을 지원하기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동혁, 넌 아직 한참 어려.’

그저 동혁이에게 맞춰 주는 거다.

일단, 이걸로 입을 싹 막아 버릴 겸.

수태광과 경기 지부장 오동수와의 친분으로 전략적 협약 관계가 체결된 상황이었고, 다음 달에 예산 지원 관련 기사도 뜰 예정이었다.

그걸 사실을 모르는 동혁이는 단순히 자신의 거래 조건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을 할 터.

“그런데.”

“응?”

“만약 네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내가 100억이 아닌 200억을 경기 지부에 지원해 주마.”

“뭐, 뭐라고? 200억?”

수재혁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이와 YB 포탈 신기범의 딸이 아주 친한 사이라 했던가.

“신기범이라고 알지? 네 친구 아버지 되시는 분.”

“우리 장인어른이신데.”

“……아무튼. 그분의 회사와 사업 하나를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쪽에서 우리 엑시스에 악감정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나 엄청 예뻐하시는걸?”

“그건 너고. 그래서 말인데, 네가 그 이유를 알아낸다면 내가 기꺼이 200억을 경기 지부에 지원해 줄게. 어때?”

수재혁 본인과는 만남 자체도 꺼리는 신기범이지만, 동혁이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친구인 예빈이와 그 어머니를 통해서 뭔가를 알아낼지도.

‘딱히 큰 기대를 하진 않지만…….’

어차피 이미 100억이 아닌 200억을 경기지부에 지원하기로 되어 있다.

수태광과 오동수의 친분도 친분이지만, 회장님 사위인 준우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준우가 특수팀 사건을 해결하고 엑시스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는 수태광이었기에, 하루빨리 사건이 해결되길 하는 바람에 기꺼이 더 많은 액수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그 사실을 모르는 동혁이는 그냥 낚인 거다.

“200억이면 매형이 지금 신형 전투복보다 훨씬 더 멋지고, 성능 좋은 전투복을 입을 수도 있겠지?”

“전투복뿐이겠어? 모든 장비를 최신식으로 쓰게 되겠지.”

“좋았어! 그럼 내가 한번 해 볼게!”

“네 능력을 한번 보여 줘 봐. 기대할게.”

“알았어! 대신 꼭 200억 약속하는 거다?”

수재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녀석, 막내는 역시나 아직도 막내일 뿐이었다.

* * *

징계 위원회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 임경호를 검으로 찌른 건에 대해 보름간 정직 처분을 받았다.

“너무 섭섭해하진 마라. 그래도 지부장님께서 막내 너 배려해서 보름 정도로 끝낸 거니까.”

“괜찮습니다. 저도 징계받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

헌터가 일반인을 상대로 그런 짓을 벌인 건 규정상 잘못된 일이긴 했으니까. 팀장님의 말대로 이 정도면 나름 양호한 결과였다.

딱히 마음이 쓰이지도 않았다.

다음번에도 감히 내 가족을 가지고 협박을 하는 놈이 또 있다면, 그때도 똑같이 해 줄 생각이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못 참지.’

오히려 나보단 팀장님과 팀원들이 더욱 아쉬워했다.

막내가 없으면 팀이 어떻게 굴러가냐, 보름간 무슨 낙으로 사냐는 둥 다들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다.

“보름간 푹 쉬다가 와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푸핫, 어디 좋은 데 여행이라도 가려고?”

“보름 동안 하루 종일 아내랑 붙어 있으려구요.”

“……정직이 아깝다야.”

팀장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보름간의 정직 기간이 나름 달갑기도 했다.

모처럼 선화랑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특수팀이야 이건형이 내가 준 선택의 반지를 사용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기동대는 팀원들의 능력이 꽤 향상되어 딱히 걱정될 게 없었다.

‘한동안 몸을 쉬게 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선화에게는 사정을 숨기고, 그냥 지부장님께서 내 공을 높이 사 특별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괜히 마음 쓰이게 하는 싫어서였다.

“그럼 우리 보름 동안 계속 같이 있는 거네?”

“왜? 싫어?”

“조금 지겹긴 하겠다.”

“그럼 다시 출근할까?”

“농담도 못 해. 모처럼 오빠랑 붙어 있을 수 있게 됐는데, 좋지 않을 리가 있어?”

나도 무척이나 좋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선화의 얼굴을 보름간 실컷 볼 수 있었으니까.

정직 첫날에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서 장인어른 댁에 갔다. 선화는 쉬는 날에 무슨 장인어른을 보러 가냐고 투덜거렸지만…….

‘회귀 전엔 이런 시간이 별로 없었거든.’

장인어른과 셋이 함께 시간을 가졌던 적이 거의 없다.

나도 나지만, 장인어른께서도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었기에.

“잘했다, 아이언! 녀석 참 똘똘하기도 하지!”

처갓집 저택 마당에 들어서자,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와 선화는 놀라운 눈앞의 광경에 우리가 뭔가 잘못 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말 안 듣는 아들놈들보다 아이언 네가 훨씬 총명한 듯싶구나, 껄껄! 자, 이번엔 노란색 공 말고 파란색 공을 가져와 보겠느냐?”

컹컹!

아이언과 공을 가지고 놀아 주는 장인어른의 모습.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아이언이 마당에 늘어진 공들 중 파란색 공을 물어오자, 장인어른께서 녀석의 머리와 배를 미친 듯이 쓰다듬는다.

“껄껄! 어찌 이리 똘똘할까! 엑시스에 들어올 생각 없느냐?”

컹컹!

“좋다고?”

컹컹!

“내 집무실 경비견으로 취직하는 건 어떠냐?”

말이 통하기라도 하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처남보다 장인어른께서 아이언을 더 예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희 왔습니다, 장인어른.”

“……헙!”

아이언과의 놀이에 빠져 계시느라, 우리가 온 것도 모르셨던 것 같았다.

앞으로 몬스터를 혐오한다는 장인어른의 말은 이제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야지.

“봐, 봤느냐?”

“아빠가 반려몬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예전에는 무슨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그냥 동혁이 녀석이 학교 갔을 때 심심할까 봐, 잠깐 내가 대신 데리고 나온 거다! 아이언 요게 계속 집안에서 짖어 대니 시끄러워서 원!”

창피하신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신 장인어른.

평소엔 포커페이스도 잘하시더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민망함을 감추실 수 없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보기엔 좋았다.

아이언도, 장인어른도 몹시 즐거워했으니까.

이런저런 장인어른의 변명을 들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에 딱 맞춰서 왔고, 준비해 온 음식들로 식사를 했다.

“꺼억!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했구나! 특히 이 갈비찜이 맛이 아주 좋았다. 이거 정말로 선화 네가 한 거냐?”

“그, 그럼, 내가 했지! 설마, 어디서 사 왔겠어?”

“요 겉절이도 네가 직접 담갔고?”

“아이, 그렇다니까. 아까부터 계속 내가 했다고 하는데 왜 믿지를 않아?”

“전 서방이 도운 것 같은데. 선화 이 녀석이 요리엔 소질이 없을 터인데.”

“아닙니다, 장인어른. 모두 선화가 직접 한 음식들입니다. 장인어른께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항상 불편하다고 했었거든요.”

“껄껄! 함께 살 땐 부엌 근처에도 안 가던 녀석이 결혼하더니 많이 변했구나!”

장인어른께서 기분 좋게 웃으셨다.

사실, 음식들은 나와 선화가 함께 만들기는 했는데 그냥 모든 공은 선화에게 돌리기로 했다.

‘나도 그게 보기 좋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장인어른과 장기를 뒀다.

이번에도 기가 막히게 져 드렸고, 간단히 술 한잔도 했다.

“앞으로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장인어른.”

“오늘 단 하루만으로도 참 만족스러웠다네. 내 이렇게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가진 게 얼마 만인지. 자네 덕분에 비어 있는 가족들의 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어.”

선화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장인어른께 인사를 건넸다.

“자주 올게, 아빠. 우리 간다?”

“그래. 조심히 가거라.”

밤 9시를 조금 넘긴 후, 장인어른 댁을 나섰다.

선화의 얼굴을 슬쩍 살피니 어딘가 모르게 감상에 젖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원문을 통해 곧장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잠깐 걷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빠. 고마워.”

“응? 뭐가?”

“모르는 척하긴. 우리 아빠 외로울까 봐 이렇게 시간 내준 거잖아.”

“그런 거 아닌데. 그냥 장기 한판 두고 싶어서 온 건데?”

“그런 사람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렇게 음식을 만드셨어?”

“……아침잠이 별로 없어서.”

내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선화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살며시 내 손에 깍지를 낀다.

“나 정말 결혼 잘한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회귀 전에 선화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땐 가정에 소홀했던 나였으니까.

미안함에 괜히 웃었다.

앞으로도 더 선화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회귀 전에 못 해 줬던 것 그 이상으로.

“사랑해, 오빠.”

“내가 더 많이.”

밤공기가 좋다.

산책이 더 하고 싶어졌다.

* * *

산책을 하며 선화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른 아이들은 다 잠들어 있는데, 말순이만 깨어 있어서 따로 불러냈다. 모처럼 함께 산책이나 즐길까 해서다.

날이 더운 탓일까.

갈증이 나서 음료수를 살 겸 편의점에 들렀다.

마침, 반려몬용 우유도 팔길래 그것도 하나 샀다.

“산책하는 반려몬들이 많이 보이네.”

“아빠 집 근처 여기가 원래 반려몬들 산책하기 좋기로 유명하거든. 요 앞에 호수 공원도 있고 해 가지고.”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선화는 말순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었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예쁘게 잘 나왔어?”

“응. 그런데 말순이가 더 예쁘게 나온 거 같은데?”

“에잇, 진짜!”

선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 볼을 세게 꼬집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까지도 카메라에 담았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찍힌 사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진 지워라, 앙?”

“그냥 간직하고만 있을게. 우울할 때 보게.”

“볼 또 꼬집어줘?”

“뽀뽀해 주면 사진 지워 주고.”

선화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요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 몽이야! 몽이야! 그러면 안 돼!”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형견 몸집의 블루 독 한 마리가 이쪽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잔뜩 흥분한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근처에서 산책을 하던 녀석 같은데.

설마, 말순이를 보고 짓는 건가?

‘TV에서 많이 봤는데, 저런 반려몬들.’

블루 독과 레드 독은 상성이 안 좋다.

때문에, 아주 간혹 레드 독을 보면 흥분해서 달려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블루 독은 그렇지 않으며, 앞서 언급했듯 특수한 몇몇 아이들이 그랬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아마 어렸을 때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럴 영향이 컸다.

끼잉-

옆을 보니 다소 겁을 먹은 말순이가 보인다.

이 녀석, 덩치는 산만 해 가지고 가끔 쫄보 기질을 보인다니까.

이해는 한다.

갑자기 웬 녀석이 자신을 향해 짖어대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괜찮아. 아빠하고 엄마 다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눈앞의 블루 독 보호자가 목줄을 잡고 낑낑거린다.

체구가 큰 녀석인지라, 흥분했을 때 다루기가 쉽지 않은 모양.

“선화야, 우리 호수 공원 쪽으로 자리 옮기자. 괜히 무슨 문제라도 생길라.”

막 벤치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블루 독 보호자의 다급한 외침이 재차 들려왔다.

“몽이야아아!”

이런, 블루 독이 목줄을 끊어냈다.

녀석이 말순이가 있는 이곳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며 내달리고 있었다.

커엉! 커엉!

격하게 울부짖는 녀석.

속사정은 모르겠으나,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른 것 같다.

그냥 두면 말순이를 물기라도 할 것 같은데.

왜 TV에서 보면 가끔 그런 사고가 있지 않은가.

‘일단, 저 녀석을 못 움직이게 잡아 두는 게 좋겠지.’

마력을 운용해 봉쇄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선화가 먼저 움직였다.

“쓰읍, 안 돼!”

선화가 말순이와 블루 독 사이를 가로막고 소리쳤다.

고작 그렇게 말 한마디 한다고 남의 반려몬이 그 말을 듣기나 할까.

끼잉-?

그런데, 그 순간.

블루 독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 뭐지, 방금? 어떻게 한 거야?’

설마, 새로운 스킬이라도 생긴 걸까.

어느새 선화는 블루 독을 칭찬하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옳지! 잘했어.”

뭔진 모르겠지만, 나도 칭찬을 해 줘야 할 것 같다.

선화야, 네가 훨씬 더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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