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탐정 수동혁
팀원들과 국밥집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하다가.
처남의 전화를 받고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매형이라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서럽게 느껴져서였다. 대충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반 친구가 실종됐다는 얘기 같은데…….
- 도와줄 거지? 꼭 도와줄 거죠? 그쵸?
반말을 하던, 존댓말을 하던, 하나만 하던가.
일단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식당에 손님이 많아 소란스러웠기에, 조용한 곳에서 다시금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할 것 같았다.
“엑시스는 이번에 무슨 대규모 레이드라도 있나 본데.”
“갑자기 웬 대규모 레이드요? 뉴스 뜬 거 없던데.”
“없다니. 방금 메인 기사 하나 떴는데?”
식사를 하던 팀원들이 수군거렸다.
부팀장님이 핸드폰으로 엑시스 관련 기사들을 찾아, 나를 포함한 팀원들에게 보여 줬다.
< 엑시스 공격대 ‘백호’ 서울 본부에서 긴급 회동 >
< 레이드 준비 중인 것으로 추정 >
< 백호, 모처럼 사냥에 나서다 >
“어라? 진짜네?”
“백호는 어지간하면 잘 안 움직일 텐데.”
“재혁 님, 아, 아니, 수재혁 부마스터가 직접 이끄는 공격대잖아요. 아마 그만큼 난도가 높고, 공략이 까다로운 레이드겠죠.”
팀원들이 추측성 의견을 내놓았고.
가만히 얘기를 듣던 팀장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호가 움직일 정도면 최소 B급 레이드 던전일 텐데.”
“B급은 무슨. A급은 되어야 할걸?”
“난도가 높은 B급 레이드 같은 경우는 백호 3군쯤 되는 공격대가 움직이는 경우도 있어요.”
“아무튼, 한동안 또 백호 얘기로 세상이 떠들썩하겠네요. 저번에도 세계 최초로 ‘설산’ 던전 공략해서 난리였잖아요. 이번엔 또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뤄 낼지…….”
“추측성 말고. 혹시, 뭐 자세히 아는 거 없어?”
그때, 팀장님과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나한테 대답을 갈구하는 눈빛이다.
“저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꼭 그런 건 아닌데. 막내 너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쩝…….”
팀장님이 아쉬워하며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나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내가 엑시스의 사위라는 걸 알고 계실 테니까.
얼마 전, 선화에게 들었다.
엑시스 본사에서 고진희 대원과 마주쳤었다고.
‘그래도 다들 엄청 티 내지는 않네.’
내색하는 일이 있어도 조금 전 팀장님 정도다.
내 눈치를 조금씩 보는 것 같은데, 날 배려해서인지 최대한 이전처럼 대해 주려는 것 같았다.
‘여기가 엑시스도 아니고, 굳이 내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아마, 엑시스가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리라.
어찌 됐든 나 역시도 팀원들의 배려에 딱히 엑시스 일가라는 건 티 내지 않았다.
적당한 때에 장인어른께서 직접 공식 발표를 하기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백호가 왜 갑자기 긴급 소집된 걸까. 장인어른께서도 레이드로 부재중이지만, 형님께서도 지금 김 비서님과 발리에 계실 텐데…….’
불현듯 일전의 일이 떠오른다.
회귀 직후, 로열파크 실드에 균열이 일어났을 때.
‘그때도 선화의 전화 한 통에 엑시스의 백호가 움직였었지.’
막내 처남이 형님께도 연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 때문에 백호가 움직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를 마치고 형님께 전화를 걸자.
- 수동혁 그 녀석 아버지 닮아서 고집이 어마어마해. 당장 문제 해결해 주지 않으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역시나 형님의 언질이 있었던 거다.
납치된 막내 처남의 친구를 찾아내려고.
막내 처남에게 마냥 엄격한 것처럼 보여도 나름 다정다감한 형님이셨다. 그저 표현이 아주 서툴 뿐.
생각해보면 표현이 서툰 건 다 장인어른을 닮은 것 같다.
물론, 애교 넘치는 우리 선화는 빼고.
“그래도 백호를 움직이신 건 조금 과한 처사 같습니다, 형님. 만약 막내 처남의 친구가 납치된 것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범인의 경계심이 커져 수사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미 언론에 노출된 상태다.
백호가 소집된 이유가 해당 사건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범인들 역시 지금보다 더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3군만 해도 타 길드 1군의 전력에 맞먹는 백호이지 않은가.
- 백호를 움직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닙니까? 기사가 그렇게 떴던데.”
- 그냥 비서실에 연락해서, 감 좋은 녀석들로 몇 명 꾸려서 사람 좀 찾아 달라고 부탁한 건데.
아무래도 오보였던 모양.
기자들이 대충 감대로 기사를 쓴 것 같다.
‘하긴, 회장님인 장인어른까지 부재중이시니 확대해석할 만도 하지.’
언론에 노출이 된 이상 엑시스 측에서 움직이는 건 좋지 않다. 괜히 일을 더 키워서 좋을 것도 없을 것 같고.
“형님, 막내 처남 일은 제가 조용히 해결하겠습니다.”
모처럼 김 비서님과 한껏 여행을 즐기고 계실 텐데.
행복한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지.
- 괜찮겠어? 매제도 할 일 많을 텐데.
“물론입니다. 형님께서 즐거운 시간만 보내고 오실 수만 있다면야, 뭔들 못하겠습니까.”
핸드폰 너머로 형님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내 아부가 썩 나쁘진 않으신 것 같았다.
형님이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참에 점수를 크게 따놓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막내 처남까지 이번 일로 내게 마음을 열게 된다면, 형제 둘 다 나의 가족 구성원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일석이조지.’
아무렴, 가족 일인데 못할 것도 없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 그럼, 수동혁 그 꼬맹이 케어 좀 부탁할게.
“대신 기념품 사 오셔야 합니다?”
- 알았어. 기가 막힌 걸로 사다 줄게.
통화를 마친 나는 곧장 팀장님께 외근 보고를 올렸다.
* * *
경찰의 지원 요청이 있으면 협회 소속 현터는 얼마든지 수사 협조가 가능하다.
문제는 그와 반대로 경찰 측의 요청이 없다면, 멋대로 지원이나 협조가 거의 불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의 사건을 맡는 경찰들이었고, 수사 과정에서 각성자와의 접점이 없을 경우, 과잉수사 혹은 과잉 진압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이 앞서 기동대에 직접 협조 요청을 했다.
타이밍 좋게 경찰의 협조 요청이 수사과가 아닌, 직접 나에게 온 것은 형님의 문자 한 통 덕분이었다.
- 해당 지역 경찰서장님과 친분이 좀 있어서. 잘 말씀드려 놨으니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외근을 나오는 것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팀장님께서 흔쾌히 수락을 해 주셨으니까.
- 만약 범인과 마주치게 됐을 때, 놈이 일반인이고 흉기를 들고 있지 않다면 되도록 막내 네가 제압하려고 하진 마라. 과잉 진압 얘기 나오면 곤란해지니까, 경찰들한테 맡기라고.
나는 팀장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되짚으며 일단 예빈이라는 학생의 집으로 향했다.
예빈 학생의 집은 현재 경찰 조사 중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실종 신고를 하셨고, 집안 수색을 허락해 준 상태였다.
집 앞에 있던 경찰관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곤 다가온다.
내게 말을 걸려던 그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리며 소리쳤다.
“야, 야! 꼬맹아,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고 그러면 안 돼!”
갑자기 내 옆에서 튀어 나간 막내처남 때문이었다.
경찰들이 처남을 제지하기 시작했고, 처남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꼬맹이 아닌데요.”
“네가 꼬맹이지 그럼 뭐야?”
“내 이름은 수동혁, 탐정이죠.”
아무래도 만화를 못 보게 해야 할 것 같다.
어디서 코난 비슷하게 옷까지 입고 따라온 걸 보면, 만화에 너무 푹 빠져 사는 것 같달까.
“헌터 협회 경기 지부 기동대에서 지원 나왔습니다.”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 말하자.
경찰들이 반색하며 물었다.
“수재혁 부마스터님의 동생분이시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서장님께서 각별히 신경 써서 모시라는 명령이 있었……?”
“수재혁 동생은 전데요.”
“아?”
처남이 경찰관을 힐끗 보며 말했다.
경찰관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이렇게 어린 남자아이가 수재혁 부마스터의 동생이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하는 법이니깐요.”
“…….”
하도 고집을 부리기에 처남을 데려왔다.
예빈 학생이 여자친구라고 하니, 혹시 이번 사건에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 예빈이네 집안에 비밀 공간이 있어요! 예빈이네 가족 말고는 저밖에 모를걸요? 분명히 내가 도움이 될 거예요!
처남이 여자친구가 가족을 제외하곤 자신에게만 알려 준 고급 정보가 있다며 떠들어 댔다. 그래서 일단 데려와 본 거다.
“들어가요, 매형. 한시가 급하니깐.”
“……그래.”
처남의 리드에 집의 안쪽으로 향했다.
예빈 학생의 집은 단독 주택으로, 경찰관들의 말에 따르면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다.
게다가.
마당 CCTV에 예빈 학생네 가족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있는데, 나오는 장면은 없다.
고로 집 안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현재 수사에 난항을 겪는 중이었다.
‘집의 마당과 인근 주변의 CCTV에도 특이 사항은 없다고 했고.’
처남은 마치 자신의 집인 양 집안 곳곳을 살폈다.
집안의 구조를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내부 창고에 숨겨진 작은 공간까지도 내게 일러 줬다.
‘어쩌면, 진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2층으로 향한 처남이 내게 손짓한다.
마치 엄청난 비밀을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여기가 예빈이 방이에요.”
“이 집에 많이 와 봤어?”
“장모님이 자주 초대해 주셨거든요.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말도 이짜나요? 헤헤.”
어린 처남이 그렇게 말하니, 괜히 웃긴다.
나는 애써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참고 물었다.
“예빈 학생이랑 결혼하려고?”
“당연하죠!”
“장인어른이 쉽게 허락해 주실까? 아무나 며느리로 받으실 분이 아닌데. 나도 상견례 이후에 엄청 힘들었거든.”
“나는 달라요. 우리 아빤 내 말에 껌뻑 죽으니까.”
“……그래, 좋겠다.”
배시시 웃은 처남은 방 안의 책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책장에는 수백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부모님이 사다 주신 책인지, 아니면 방 주인이 진짜 책 읽는 걸 좋아하는지까진 몰라도, 처남의 표정이 비장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놀라지 말고 잘 봐요, 매형.”
처남이 책장의 책들을 하나둘 빼기 시작했다.
무슨 규칙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되짚어 가며 행동하는 모습이다.
이윽고.
수십 권의 책이 들쑥날쑥해진 순간.
우우웅-
책장 앞에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커다란 포탈을 만들어 냈다.
“어때요? 놀랐죠?”
“……조금.”
솔직히 꽤 많이 놀랐다.
책장이 포탈을 소환하는 열쇠 같았는데, 중요한 건 그 이전엔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 정도 포탈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 현재 우리나라에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려 봤을 때, 향후 몇 년은 더 지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예빈이 아버님이 혹시 무슨 일하시는 줄 알아?”
“포탈 시스템 만드는 업체 사장님이랬어요.”
이번 사건과 부모님의 일이 관련이 있는 걸까.
아무튼. 처남이 집안에 숨겨진 포탈 시스템을 알고 있었다는 건,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감지하지 못할 포탈 시스템이라면, 경찰은 물론 어지간한 협회 수사원들도 찾아내기 힘들었을 테니까.
“마당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집 안에는 없어요.”
“그래서, 처남?”
“아까 경찰 아저씨가 그랬자나요. 밖에서 누가 들어온 흔적은 없다고.”
“그랬지.”
“예빈이네 가족이 집으로 들어간 다음, 밖으로 나오는 장면도 없었댔죠.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아무런 일도 없이 집안에서 슝 하고 사라질 순 없자나요?”
“이 포탈을 역이용해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누군가 침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처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내가 생각하는 걸, 9살짜리가 똑같이 생각하다니. 확실히 또래에 비해 똘똘하긴 하다.
“어땠어요, 명탐정 수동혁의 추리가?”
“나쁘지 않았어.”
“매형, 우리 엄청 잘 맞는 거 같은데. 협회 그만두고, 나랑 탐정사무소 차리는 거 어때요?”
“장인어른께서 싫어하실 것 같은데.”
“아까 말해짜나요. 아빤 내 말이면 껌뻑 죽는다니깐. 내가 메인 탐정이고, 매형이 내 보조로 조사관 하면 아마 세상의 모든 사건은 우리 둘이서 모두 해결할 수도 있을…….”
“시끄럽고. 일단 포탈 반대편으로 넘어가 보자.”
어쨌거나, 장인어른의 피는 못 속이는 모양.
자신이 도움이 될 거라는 처남의 말이 마냥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