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우리 형 (89/246)

◈ 우리 형

주어진 시간은 딱 3분.

그 3분 안에 배리어가 뚫리게 되면, 준우는 수태광과 약속한 대로 집 짓는 걸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오복이들의 토파즈에 깃든 마력을 이용해 시너지를 낸다고는 하나, 마냥 승리를 확신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A급 헌터 중에서도 최정상급인 수재혁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준우의 얼굴은 여유로워 보였다.

‘만약, 배리어가 뚫린대도 장인어른을 설득할 방법은 있어.’

적당한 수준까지만 버텨 주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이 배리어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보여 준다면, 수태광은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기는 수재혁도 마찬가지였다.

엑시스 부마스터인 자신이 고작 반려몬 몇 마리가 만들어 낸 배리어를 뚫지 못할 거란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약해졌다.

타이머가 작동하고 30초쯤 지났을 때.

‘진짜 이걸 이렇게 막 부숴도 되려나…….’

배리어 뚫기에 열중하던 수재혁의 시선이 살짝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쌓아 올린 배리어를 바라보고 있는 오복이들이 있었다.

‘……저 녀석들 눈빛이 너무 슬퍼 보이는데.’

뭐랄까.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이 부서지는 걸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전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점차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재혁은 몰랐다.

오복이들의 그 표정이 배리어가 부서진 뒤, 또다시 배리어를 쌓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렘 가득한 오복이들의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이 설렘의 뜻이라는 건, 오직 가족인 준우와 선화만이 알고 있는 듯했다.

‘살살해도 3분 안엔 그냥 부서질 것 같은데.’

수재혁이 방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건.

1분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오복이들의 표정에 낚이기라도 한 걸까.

이쯤 되면 배리어에 금이 갈 만도 한데,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일전에 어떤 업체에서 했던 인공 실드 테스트 때와 비교하면 이미 부서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어라? 왜 이래, 이거?’

어림잡아 2분 정도 지났을 무렵.

수재혁은 불안한 마음에 마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쩌어어억-

냉기가 가득하던 발밑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가 이제야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마법 속성 계열을 다루는 헌터는 특성이나 스킬을 사용하는 것보다 마력 날 것의 힘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파괴력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었다.

때문에, 화려한 특성과 스킬 대신 오로지 마력만을 강하게 피워 올렸다.

비록 광역 공격이 아닌 단일 공격밖에 불가하겠지만, 배리어의 중심부를 뚫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쩌어어억-

강렬한 마력이 배리어 중심부에 집중될수록.

수재혁의 발밑 주변은 더욱 넓은 범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형님께서 방심한 덕분인가. 진짜로 3분 안에 막아 낼 수도 있겠는데.’

여유롭던 준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진짜로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 탓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심했다고 한들, 수재혁은 수재혁이었다.

파지지직-!

배리어에 금이 갔고.

이내 부서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막판에 전력을 다하긴 했어도, 시간이 간당간당할 것 같은데.’

헛웃음을 친 수재혁의 시선이 오복이들을 향했다.

오복이들이 꼬리를 헬기 로터처럼 돌려대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마치 수재혁 본인을 표정으로 낚았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 같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시간은?”

수태광이 김 비서를 향해 물었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배리어가 수재혁을 얼마나 버텨 냈느냐 하는 것이었다.

“2분 59초입니다, 회장님.”

김 비서가 타이머를 보여 주며 대답했다.

안도의 한숨을 뱉어낸 수재혁이 선화에게 고개를 돌렸다.

타이머는 한 개가 아닌, 두 개였기 때문이다.

‘2분 59초.’

선화의 옆에 있던 준우가 먼저 타이머를 확인한다.

역시나 김 비서와 마찬가지로 딱 1초가 모자랐고, 선화는 안타까움에 울상이 된 얼굴로 준우에게 속삭였다.

“오빠, 그냥 3분이라고 할까?”

“장인어른께서 타이머 확인하실 텐데?”

“실수로 리셋 버튼 눌렀다고 하면…….”

준우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석을 부리는 선화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장인어른의 흐뭇한 표정을 보아하니 결과가 마냥 나쁜 쪽으로 흘러갈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우의 예상대로.

수태광은 내심 감탄을 하고 있었다.

‘2분 59초. 일전에 내가 선화의 가게에서 파괴했던 배리어랑 비교했을 때, 수십 배 이상 강화된 것임엔 틀림없군.’

무엇보다.

인공 실드 업체에서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의 발전 속도가 인상적이었다.

이와 같은 발전 속도라면, 어쩌면 몇 달 내에 자연 실드에 버금가는 배리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여튼,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재주가 있다니까.’

수태광이 저만치 서 있는 준우와 눈이 마주쳤다.

3분을 버텨 내지 못하면 당장 다른 집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 여유롭게 미소를 띠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오히려 다 잘될 거라는 듯, 선화를 다독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마, 배리어의 발전 가능성을 두고 자신을 설득하려고 했었던 것 같았다.

‘결과가 이 정도쯤 나오면, 설득도 크게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터.’

가끔 보면, 미래를 보는 재주라도 있는 것 같은 사위다.

그게 아니라면 독심술 같은 거라든지.

“전 서방. 배리어 성능은 잘 봤네.”

“예, 장인어른.”

“자네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알 것 같으니, 긴 말은 안 함세. 아까 그 배리어로 선화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목숨을 걸고 약속할 수 있겠는가?”

“전 이미 결혼식 때, 혼인 서약하면서 선화에게 목숨 내놓기로 했습니다.”

“껄껄! 그렇단 말이지? 집을 짓는 데까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혹시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땐 장인어른을 상대로 3분을 버틸 수 있는 배리어를 만들어 놓겠습니다.”

“크으, 패기 한번 좋구만.”

원하던 대답이었다.

설득은 이미 배리어의 발전 가능성으로 충분히 되었고, 단지 사위의 의지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 그럼 이제 진짜 집 지을 준비 하면 돼? 설계사도 알아보고, 조경이나 이런 것도 좀 구상하고?”

“해도 돼. 장인어른께서 허락하셨잖아.”

“헤헤, 벌써 집들이할 생각에 설렌다. 집들이는 한 열 번 정도 할까 하는데, 어때 오빠?”

“백 번 해도 돼. 질릴 때까지.”

“진짜지?”

수태광은 좋아하는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금 옆에 있는 준우가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두고 싶었지만.

안전에 대한 노파심에 걱정이 앞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길 하는 바람이었다.

“아빠 나 내일 당장 설계사 미팅할 거야. 나중에 진짜 딴말하면 안 된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했느니라.”

“무슨! 아빠 맨날 말 바꾸잖아. 오빠도 사위로 인정 안 한다면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으읍!”

준우는 서둘러 선화의 입을 막았다.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크흠! 아무튼, 재미있는 경험 했네. 조만간 또 보세, 전 서방.”

“들어가십시오, 장인어른.”

선화가 또 허튼소리를 늘어놓을까.

서둘러 회사로 복귀하는 수태광이었다.

* * *

동혁이의 등굣길.

심 비서가 백미러로 뒷좌석을 쓱 살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도련님?”

“뭐가요?”

“오늘 참관 수업 말입니다. 다들 부모님이 오실 텐데, 도련님께서만 부모님을 대신해 제가 참석하게 되니…….”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동혁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백미러 속 심 비서를 향해 웃어 주고는 손에 쥐고 있던 ‘슈퍼 몬스터’ 카드 팩을 뜯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아빠는 바쁘니깐요.”

“그래도…….”

늦둥이인 동혁이인지라, 또래 부모님들에 비해 수태광이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로 인해 친구들이 아빠보고 할아버지냐고 놀릴 거란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의젓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누가 뭐래도 아빠가 훌륭한 헌터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었고, 동혁이에겐 세상 자랑스러운 사람이었으니까.

“아빠가 없어도 수업하는 데는 문제 없잖아요. 아빠도 바쁠 텐데, 이런 걸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참 대견스럽습니다, 도련님.”

“헤헤, 저도 다 컸거든요. 이해할 수 이써요.”

신호가 걸리자, 심 비서는 계속해서 동혁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닌 척하지만 참관 수업이 여전히 마음에 걸려서였다.

평소라면 이렇다 할 대화 주제가 없었겠으나.

오늘은 슈퍼 몬스터 카드가 있었다.

동혁이가 평소에 즐겨 보는 카드 배틀 애니메이션이었고, 심 비서가 출근길에 선물로 사다 준 것이었다.

“나머지 카드 팩은 왜 안 뜯으시는 겁니까?”

“이, 이건…… 음…… 그, 그런 게 있어요.”

선물한 건 총 열 팩이었다.

동혁이는 그중에 딱 다섯 팩만 뜯고는 나머진 그대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예빈 양 주시려구요?”

“……헤에.”

여자친구 주려고 아껴 둔 모양이다.

1학년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였는데, 2학년에 올라오면서 사귀게 되었다나 뭐라나.

‘요즘 애들이 빠르긴 빠른 모양이야. 나 때는 초등학교 때 연애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연애라고까지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동혁이의 연애는 순수하고 풋풋했다.

오늘은 참관 수업인지라 심 비서가 예빈이를 픽업하진 않았지만, 항상 등하굣길을 함께 하는 두 아이들이었다.

학원도 같이 가고.

슈퍼 몬스터 카드 게임도 같이하며.

방학 때는 항상 동혁이네 집에서 모여 놀고는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예빈 양이 도련님께 평생 좋은 친구가 되어 줬으면 좋겠네.’

귀여운 녀석들.

심 비서는 흐뭇하게 웃으며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교실로 가시죠, 도련님.”

“갑시다아! 교실로!”

동혁이는 예빈이에게 카드 팩을 나눠 줄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좋아할 예빈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설레기도 했다.

교실에 도착한 심 비서는 내부를 천천히 살폈다.

혹시라도 동혁이만 부모님이 오지 않은 게 아닐까, 괜한 걱정이 앞서서였다.

‘어라? 예빈 양 부모님도 안 보이시네?’

안면을 튼지라, 예빈이의 부모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 임박했음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오고 계시는 중인가? 곧 수업 시작할 텐데.’

진짜 문제는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불구.

예빈이의 부모님은 물론, 예빈이도 교실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도련님께서 걱정이 크시겠는데, 이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가방 속 카드 팩을 만지작거리는 동혁이가 눈에 밟혔다.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굣길, 동혁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빈이가 전화를 안 받아요. 카톡도 안 되고.”

“별일 없을 겁니다, 도련님. 아마 친척 집에 갔다거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 걸 거예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걱정 마십쇼. 내일도 연락이 안 되면, 제가 예빈 양 집에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너무 찌질해 보이자나요.”

“……음?”

“저 나름 쿨한 남자란 말이에요.”

“……아?”

“그래도, 내일도 연락 안 되면 심 비서 아저씨가 장인 장모님께 연락 좀 해 봐 주세요. 제가 직접 연락드리면 부담스러우실 수도 이쓰니깐.”

“자, 장인 장모님이라………무, 무튼, 그렇게 하겠습니다.”

별일 없겠지. 동혁이는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가 자주 그러지 않았던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예빈이는 다음 날도 등교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등교를 안 한 지 이틀이 더 지났다.

학교에 예빈이네 가족이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 비서 역시 오늘 아침에 동혁이의 담임에게서 그 소식을 익히 들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도련님의 상심이 클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소문은 빠른 법.

반 아이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져 버렸다.

“야! 수동혁! 니 여친 실종됐대!”

“실종이 뭐야?”

“사라져따고! 나쁜 사람들이 납치해 간 거지!”

“납치는 뭔데?”

“멍청아! 생선!”

“그건 넙치고, 이 멍청아!”

쉬는 시간, 친구들이 떠들어 대는 사이.

수학 문제집을 풀던 동혁이가 손을 부르르 떨어 댔다.

“심 비서 아저씨가 얌전히 수학 문제 풀다 보면, 예빈이가 돌아올 거라고 했지만…….”

펜을 내려놓은 동혁이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대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따!”

“뭐 어떻게 하게?”

“남친인 내가 직접 구하러 간다!”

“어디 있는지 알고? 경찰들도 못 찾고 있다는데?”

“그, 그야…….”

패기 좋게 벌떡 일어난 동혁이지만.

사실상, 9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기껏해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랄까.

“너네 아빠가 엑시스 마스터라매? 아빠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렇지! 우리 아빤 세계 최고의 헌터! 아빠라면 예빈이를 금방 구해 주실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태광은 연락이 되질 않았다.

며칠 전에 수재혁이 배리어를 3분 내에 부숨에 따라, 수재혁을 대신해 레이드를 나섰기 때문이었다.

수태광과 최 비서 단둘이 여유롭게 마실이나 즐길 겸 떠난 레이드였기에, 최소 내일은 되어야 돌아올 거다.

“너네 형이 엑시스 부마스터라매?”

“그렇지! 우리 큰형은 세계 두 번째 최고의 헌터! 큰형이라면 예빈이를 금방 구해 줄 수 있을 거야!”

동혁이는 서둘러 수재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역시나 냉담했다.

“엘사? 나 올라프인데. 혹시 지금 어디야?”

- 발리. 왜?

언제나 그렇듯 미적지근한 목소리였다.

동혁이가 최대한 빠르게 용건을 말했고, 수재혁은 논리정연하게 동혁이가 해야 할 일을 짚어서 대답해줬다.

- 학생의 본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 일은 네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라진 사람을 찾는 건 경찰이 해야 할 일이지, 학생인 네가 할 일이 아니라고.

“그, 그치만……!”

- 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셨지. 항상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해야 한다고. 네가 감당할 만한 사건이 아닐뿐더러, 넌 아직 너무 어려.

“…….”

-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넌 네 본분에 충실하도록. 괜히 문제 일으켜서 경찰 수사에 혼선 주지 말고.

“…….”

- 말썽부리지 마, 수동혁. 알았어?

동혁이가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친구들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너네 아빠 정말로 엑시스 마스터 맞아?”

“큰형아가 부마스터라는 거, 혹시 거짓말 아니지?”

“동혁이 너, 형 두 명이나 더 있다며?”

실제로 마주친 적이 없고, 말로만 들었으니 못 믿을 만도 했다. 정작 동혁이도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딱히 없기도 했고.

뭐 어쩌겠는가.

아빠는 바쁘고, 큰형은 항상 자신에게 엄격한 것을.

수재혁이 동혁이에게 엄한 건, 늦둥이인 동혁이가 혹여라도 버릇이 없어질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걸 아는 동혁임에도 오늘은 다소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형이 두 명이 더 있긴 한데…….”

“그럼 그 형들한테 전화하면 되잖아?”

“……전화해도 안 될 거야.”

그들 모두 이번 일에 나설 만한 상황이나 위치가 아니며, 큰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걸 동혁이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 동혁이에겐 또 한 명의 ‘우리 형’이 남아 있었으니까.

동혁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다시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제발 받아주기를 바라면서.

통화음이 지속되다가…….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을 때.

“매혀어어엉!”

동혁이가 꽉 다문 입술을 떼어 내며 서럽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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