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매제 (88/246)

◈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매제

땅을 보고 돌아오는 길.

수재혁이 수태광에게 문득 물었었다.

- 만약, 3분 안에 실드가 뚫려 버리면요?

- 동생을 위해 수고한 대가로 휴가라도 보내 주랴?

사실, 그런 의도로 물은 게 아니었다.

실드가 뚫리면 정말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보낼 거냐고 물었던 거지.

아무래도 선화가 집을 짓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으니, 그걸 만류하는 게 조금은 신경이 쓰였던 탓이다.

선화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동생을 아끼는 오빠로서 하고 싶은 걸 말려야만 하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 휴가는 무슨. 다음 달에 있을 레이드 준비로 저 많이 바쁩니다. 현장도 직접 가야 하고요.

- 내가 대신 해 주마.

- 아, 아버지가 직접요? 현장 뛰신다고요?

- 너보단 내가 낫지 않겠느냐. 하지만, 이것 하나만 명심해라. 실드 테스트 대충 하고 넘어갈 생각 마.

- 대충하다니요.

- 네 딴에는 선화가 섭섭해할까 적당히 하려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실드 그 자체야. 실드가 널 버티지 못한다면, 선화도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해.

사실, 어느 정도 적당히 하려고 하긴 했다.

인공 실드가 자연 실드와 동급 수준이 된다는 건 현재의 기술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얼추 인공 실드 최고급 수준 정도만 되면, 아버지하고 선화와 타협점을 찾아볼까 했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다.

다름 아닌, 수태광의 ‘휴가’ 언급 때문이었다.

“부마스터님. 아까부터 뭘 그렇게 히죽거리십니까?”

“아, 아냐, 아무것도.”

회사에 복귀한 후, 계속 휴가만 떠올리고 있던 그였다.

김 비서와 오붓하고도 행복한 해외여행이랄까.

투욱-

수재혁의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은 김 비서가 다음 달에 있을 레이드 건에 대해 막 브리핑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으음, 김 비서도 해외여행 좋아하나?”

“여행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근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그냥. 요즘 좀 쉬고 싶어서.”

“이번 달 스케줄 꽉 차 있습니다. 당장 다음 달에 있을 레이드도 준비해야 하구요.”

원래 다른 공격대에게 넘기려고 했었다.

수태광과 상의해서 스케줄이 여유 있는 팀장급에게 말이다.

B급 레이드지만 난이도가 꽤 있었고,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공격대장 자리인 만큼 까다롭게 선정할 필요가 있었다.

한데.

수재혁은 이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수태광이 직접 레이드를 뛰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

“최근에 가고 싶은 여행지라든가, 그런 거 있나?”

“발리?”

“왜 하필 발리야?”

“그냥, 전부터 부마스터님하고 같이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였어요. 신혼여행 분위기도 나고.”

“시, 신혼여행……?”

“쉬고 싶으시다면서요. 휴양지 느낌 좋지 않아요?”

“좋네. 조만간 가도록 하자고.”

“조만간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올해는 해외여행을 갈 만큼 부마스터님 스케줄이 여유롭지 못해요. 부마스터님이 바쁜 거면, 저 역시 바쁠 테고.”

“그럼, 나만 한가해지면 된단 얘기네?”

“저야 부마스터님 휴가시면, 서류 업무만 미리 처리해 놓고 연차 쓰면 되는 거니까…….”

김 비서는 의아했다.

스케줄이 꽉 차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법한데, 그럼에도 계속 휴가를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전부터 해외여행 가고 싶었는데, 부마스터님이 워낙 바쁘셔서 못했었는데…….’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면 기분이 좋을 것만 같았다.

수재혁과의 발리 여행을 상상하자, 김 비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김 비서는 발리 가면 뭐부터 하고 싶은데?”

“그야 당연히…….”

“당연히?”

“사진 찍어야죠. 예쁘게 입고.”

“사진? 발리까지 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고작 사진 찍는 거야?”

“고작이라니요. 여행 중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잖아요. 지금부터라도 몸매 관리해야 하나?”

“갑자기 웬 몸매 관리? 굳이 그런 거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발리 가서 비키니 입으려면 해야 돼요.”

“비, 비키니?”

“부마스터님이 사진 찍어 주실 거잖아요?”

“어…… 그…… 그래야지.”

김 비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마냥 차가운 사람 같아도, 이럴 때 보면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다.

“혹시 모르니까 비키니 몇 벌 더 사 놓을까 봐요.”

“내가 사 줄까?”

“됐어요. 부마스터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연봉 좀 세거든요.”

수재혁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는 게, 괜히 실드 테스트를 하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고마워, 매제. 해외여행 잘 다녀올게.’

이 순간, 진심으로 준우가 고마운 수재혁이었다.

올해 스케줄이 꽉 차 있는 관계로, 이번 기회가 아니면 김 비서와의 해외여행도 불가능했을 테니까.

‘선화네가 땅을 사지 않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기회였잖아?’

이미 실드 테스트를 승리하기라도 한 듯.

오늘 밤 수재혁은 김 비서와 발리를 여행하는 꿈을 꿨다.

* * *

실드 테스트하는 날은 2주 뒤다.

장인어른께서 실드를 설치하는 기간을 고려해, 날짜를 그때로 조정해 주셨다.

물론, 진짜로 업체를 이용해 실드를 설치할 건 아니다.

오복이들의 보금자리 특성으로 배리어를 만들 생각이었다.

‘예전엔 장인어른을 3분 정도 버텼던 오복이들의 배리어지만, 지금은 오복이들도 예전보다 성장을 했단 말이야.’

장인어른이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지만, 그래도 S급 헌터를 상대로 3분씩이나 버텼다는 건 어마어마한 성과다.

그리고 지금의 오복이들은 최소 열 배 이상은 성장했다.

비록 몸집은 그때의 두 배밖에 되지 않았지만, 능력이 체구에 정비례하진 않았다.

다다다닷-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복이들이 뛰쳐나오는 게 보인다.

“나를 반기는 건 아닐 테고…….”

오복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샤넬 백으로 향했다.

차원문을 열어 달라는 뜻이었다.

고로, 녀석들이 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아닌 차원문이었다. 차원문을 열어야만 오복이들의 취미 생활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배리어를 쌓는 게 취미인 오복이들이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즐겨 하는 놀이의 방식이랄까.

‘문제는 배리어를 더 이상 쌓을 데가 없다는 거고.’

현재로서 배리어를 겹겹이 쌓는 건 10겹이 한계다.

녀석들이 가진 특성 레벨에도 한계가 있듯이.

집안에는 이미 배리어를 쌓을 만큼 쌓았고, 그 넓은 차원문도 최근에 한계에 부딪혔다.

때문에, 차원문 내부의 배리어는 내가 부숴 줘야 했다.

그래야만 녀석들이 다시금 배리어를 쌓을 수 있을 테니까.

“이거 부숴 달라고 나 기다린 거지?”

아니라고 해 주기를 살짝 기대했건만.

끄덕끄덕-

다섯 쌍둥이는 그렇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녀석들이 원하는 놀이의 방식이었다.

“거기서 기다리지 말고, 가서 밥 먹고 있어. 시간 좀 걸리는 거 알잖아?”

지금의 나는 장인어른이나 큰형님 정도의 헌터가 아니다.

오복이들이 겹겹이 쌓아 올린 배리어 한 면을 뚫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는 10겹의 배리어 한 면이 있었고.

이걸 내가 뚫으려면 최소 1시간은 걸린다.

콰앙! 콰앙! 콰앙!

그나마 보이지 않는 검의 특성을 사용해서 시간을 조금 단축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오래 걸리는 건 사실이다.

파지직!

배리어가 조금씩 부서지며, 주변에 파편이 튄다.

집에 쌓아 올린 배리어를 부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서.

1시간 좀 안 되게 걸렸으려나.

어느새 밥을 먹고 다시 차원문 안으로 들어온 오복이들이 꼬리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섯 쌍둥이 모두가 취미 생활을 즐기진 않았다.

즐겁게 배리어를 쌓아 올리는 건 오복이 한 마리가 유일했다. 그리고 나머지 넷은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뽈뽈뽈뽈-

네 마리가 배리어를 쌓는 오복이 주변을 빙빙 돈다.

부럽지만, 그냥 이렇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모양.

“조금만 참아. 주말에는 너희들 모두 신나게 놀 수 있게 해 줄게.”

녀석들이 오복이에게만 취미 생활을 양보한 이유는 단 하나다.

‘오복이가 막내니까.’

다섯 마리가 동시에 배리어를 쌓아 올리면, 배리어 한 면은 금방 만들어진다.

배리어를 쌓는데 한계가 있으니, 그 시간을 온전히 막내에게 양보하는 거다.

형들이 막내인 오복이를 배려하는 느낌이랄까.

녀석들이 참으로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마냥 배리어만 부수고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다른 아이들도 케어를 해 줘야 하며, 선화와도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틈틈이 배리어를 부숴 주고는 있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내보내, 배리어를 만들게 할 수만도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오복이들을 일반 몬스터로 착각을 한다든가, 혹은 반려몬을 기피하는 사람들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우리 새집 지을 땅에 갈 건데, 거기선 배리어 실컷 쌓아도 돼. 아마 그땐 오복이한테만 양보 안 해도 될 거야. 땅이 엄청 넓거든.”

휘리리릭-!

오복이들이 동시에 꼬리를 돌려대기 시작한다.

마치 헬기 로터 돌아가듯이.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오늘 간식은 이거야.”

나는 오복이들에게 ‘벽돌 무늬 토파즈’를 건넸다.

일전에 탐욕의 미궁 정산으로 많은 아이템들을 보상으로 받았었는데, 그때 받았던 것들 중 하나였다.

‘쓸 만한 건, 이 토파즈가 마지막이겠구나.’

오복이들, 그러니까, 키피들의 능력은 녀석들이 섭취하는 마력이 담긴 물질에 의해 달라진다.

일종의 영양식이며, 물질에 깃든 마력에 비례하여 오복이들이 쌓는 배리어의 위력에 시너지가 생긴다는 거다.

‘벽돌 무늬 토파즈 정도면, 형님을 3분 정도 버티는 것도 마냥 불가능하진 않을 거야.’

한 겹으로는 안 되겠지만.

10겹이라면 가능성은 있다.

주말이 다가왔다.

나는 오복이들과 함께 새집을 지을 땅으로 향했고.

[ 일복이가 전용 스킬 보금자리를 사용합니다. ]

[ 이복이가 전용 스킬 보금자리를 사용합니다. ]

….

오복이들은 물 만난 듯 배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 * *

얼마 전에 여윳돈으로 잔금까지 치렀겠다.

오복이들이 내 땅에서 실컷 놀이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녀석들이 신나게 즐기는 사이.

땅 곳곳에 10겹의 배리어가 한 면, 두 면씩 쌓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실드 테스트 날이 다가왔다.

“……그러니까, 내가 저 쪼끄만 녀석들이 쌓은 배리어를 부숴야 한다는 거지?”

“네. 형님께서 배리어 부숴 주시면, 더 오래 놀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아할 겁니다.”

형님은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작디작은 오복이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실드를 뚫어야 한다는 게, 영 미안한 모양이다.

“작다고 얕보면 큰코다치기 마련이지.”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셨다.

일전에 오복이들이 쌓아 올린 배리어를 겪어 보셨던 탓에, 그 배리어가 얼마나 튼튼한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신 말일 것이리라.

하지만 형님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다.

내가 반려몬의 스킬과 특성을 개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건 일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설마 실드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하셨던 것 같다.

“진짜 그냥 부숴도 괜찮은 건가? 저 녀석들이 실망하면 어쩌려고? 막 울거나 그러진 않겠지?”

“큰오빠! 오복이들은 배리어 부숴 주면 좋아한다니까?”

“이러면 내가 전력을 다하기가 좀 애매한데?”

“아오, 진짜! 빨리 시작하기나 해!

큰형님께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 표정은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할 건 하려는 모양.

“3분, 타이머 준비됐지?”

선화와 김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실드 테스트의 타이머 담당이다.

“기대되는군.”

장인어른께서 볼을 씰룩였다.

무슨 기대를 하시는 걸까. 배리어의 방어력이 궁금하신 걸까, 아니면 형님의 능력이 궁금하신 걸까.

“시작한다?”

형님께서 서서히 마력을 피워 올렸고.

동시에 타이머의 버튼이 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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