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이사를 가야겠다 (86/246)

◈ 이사를 가야겠다

기동 3팀의 소란 아닌 소란이 끝이 났다.

그들은 제발 돌아가 달라는 준우의 부탁에 아쉬움을 가득 안고 자신들의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건형은 준우를 세상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다루던 그들의 모습이 의아했었다.

무엇보다 마냥 거칠기만 했던 김강수가 준우를 제 자식처럼 아끼는 모습은 정말이지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김강수가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을 듣고서, 왜 그렇게까지 준우를 애지중지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시팔, 넌 알고 있었지? 막내가 엑시스 회장님 사위라는 거. 어쩐지 예전부터 전준우, 전준우 하면서 찬양하는 노래를 그렇게 부르더만.

이건형도 몰랐다.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애당초 준우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스카우트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엑시스 회장님의 사위가 협회 따위에 입사할 리는 없을 테니까.

‘이제야 그간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는군…….’

지나치게 우월한 준우의 능력은 물론이며, 이건형과 같은 날에 수재혁 부마스터가 직접 그의 가게까지 찾아와 스카우트 제안을 했던 것까지.

게다가, 엑시스가 독점하고 있던 탐욕의 미궁에 공격대장으로서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제는 완벽하게 이해가 됐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정말 대단한 사람.

이건형은 그런 준우를 빤히 응시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그렇게 쳐다보시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아, 아닙니다.”

준우는 자료들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 특수팀에서 늑대 인간에 대해 조사한 것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크게 진전은 없었다.

“놈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이야기 말고는 일절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그런 얘기라도 했기에 언어 해석본이라도 만들어 내긴 했지만, 녀석의 목적이나 배후에 대해서는…….”

“저번에 제가 드렸던 수정구의 문구는요?”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가 특수팀 외에는 공유되지 않기에, 특수팀 합류가 결정된 다음에야 늑대 인간의 몸에서 빼낸 수정구를 이건형에게 건넸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다 빨리 전달을 하고 싶었으나, 만약 특수팀 합류가 불발되면 단서만 제공한 채 사건엔 관여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협회의 힘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판단했기에, 마냥 맡겨 놓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협회 내에 놈과 한패가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최성국 때 일만 보더라도, 협회 내에 정치권이 연루되어 있었지 않은가.

“준우 씨께서 건네주신 수정구의 문구에 대해선 해석을 마쳤습니다. 당부하셨던 대로 저 혼자 직접 언어 해석본을 사용하여 해석했구요.”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번거롭긴요. 당시 놈이 나타났던 그 균열에서 어찌 단서를 찾아낸 건지 그저 놀라움 따름입니다.”

준우는 애써 웃어넘겼다.

일일이 설명하자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동안 증거를 숨긴 것이었으니까.

“저희 팀이 수색할 당시만 해도 단서가 될 만한 건 없었는데, 역시 엑시스의…….”

“엑시스요?”

“아, 아닙니다. 아무튼. 준우 씨께서 수정구를 제공해 주신 덕분에 오히려 수고를 덜었습니다.”

언어 능력에 특화된 헌터들이 만들어 낸 해석본.

해당 헌터들이 직접 하는 것보단 시간이 좀 더 걸렸겠지만, 아직까진 완벽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이건형뿐인지라 보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수정구는 통신구의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준우가 보안을 풀어낸 해당 통신구에는 상대방이 보낸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 지금으로부터 열 번째, 해와 달이 공존하는 곳 >

핵심 내용은 이것이었다.

앞뒤로 짧은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기도 하였으나, 이건형의 말에 의하면 인사치레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접선 위치를 알려 준 겁니다.”

“하아, 해와 달이 공존하는 곳이라.”

준우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난해한 말이었고, 딱히 힌트가 될 만한 것도 없었다.

“일종의 암어 같은 거 아닐까요? 조직끼리만 알 수 있는…….”

“팀장님의 능력으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건형이 늑대 인간의 기억 속에서 ‘해와 달이 공존하는 곳’ 에 대한 힌트를 찾아내는 거다. 그렇게 되면 일이 한결 쉬워진다.

하지만 이건형은 고개를 내저었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하다는 뜻이다.

“시도를 해 봤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역부족입니다. 놈과 제 능력 차이 때문인지, 제 능력 자체가 적용되질 않아요. 가끔 적용되긴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의 기억만 읽는 것만 가능할뿐더러, 그마저도 계속 끊기는 바람에…….”

“으음, 그럼 팀장님의 정신계 능력만 좀 더 강화시키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까?”

“가능성은 있죠. 그래서 저도 해당 스킬 레벨을 올리려고 틈틈이 던전을 돌고는 있는데, 300레벨을 넘어서니 도통 레벨이 오를 생각을 안 하네요.”

레벨이 올라야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SP를 모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버겁단 얘기다.

‘시간도 엄청나게 걸릴 거고.’

준우가 샤넬 백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이건형 앞에 들이밀었다.

“그거 팀장님이 쓰세요.”

“제가 감히 이걸 어떻게 씁니까?”

“김영란법 때문에 그러신 거면 걱정 마시구요. 특수팀에 기증하는 걸로 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이 귀한 걸 기증해서 되겠냐 이 말입니다!”

“안 될 게 뭐 있나요. 국가를 위해서 하는 일에 쓰겠다는 건데.”

국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준우와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놈의 목적이 나였는지, 우리 가족인지, 아니면 엑시스인지는 아무것도 몰라. 그걸 알아내 해결하기 전까지는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어.’

이건형은 감동했다.

그가 손바닥 위의 반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 선택의 반지 - 리미트 >

* 등급 : A-

* 속성 : 빛

* 효과 : [ + 체력 Lv.3 ] [ + 마력 Lv.3 ]

* 특성 : [ 리미트 : 선택 강화 Lv.1 ]

마법계, 정신계.

두 계열 중 한 가지 계열을 선택하여, 해당 계열의 모든 스킬 레벨을 무려 10레벨이나 상승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아이템이다.

계열 선택은 번복할 수 없으며.

지속시간은 사용 직후부터 한 달이었다.

“이거 저번에 포상으로 받으신 거죠? 사내 잡지 모델 발탁되시면서…….”

“맞아요. 근데 마땅히 쓸 곳이 없어서, 그냥 가지고만 있었어요.”

특수 장비고에서 오동수가 준 개인 포상 말고, 본청에서 준 공식 포상이었다.

“준우 씨 노력으로 받은 포상인데 이걸 제가 될지 의문이네요. 게다가 이 아이템, 특성을 한번 사용하고 나면 더 이상 사용 못 하게 되는 거잖습니까.”

“괘념치 말고 쓰세요.”

이건형은 내심 감탄했다.

한 달용이기는 하나, 리미트 아이템을 이리도 기꺼이 내어 주다니.

‘역시는 역시인가. 재벌가의 사위는 나 같은 사람하곤 씀씀이 자체가 다르구나.’

이건형의 눈빛이 번뜩였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자신의 힘만으로 꼭 해내겠다는 의지다.

준우가 이 정도까지 도와줬으면, 팀장으로서 제대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준우 씨, 이만 퇴근하십쇼.”

“예? 갑자기요?”

“팀장의 권한으로 퇴근시켜 드리겠습니다.”

“아직 퇴근하려면 네 시간은 더 남았는데요?”

“그냥 퇴근하세요. 팀에 리미트 아이템 기증한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은 충분히 했습니다. 아니, 한 달 치 일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흐음, 그래도…….”

“팀장의 명령입니다.”

“팀장님께서 정 그러시다면야, 뭐.”

준우는 더 이상 빼지 않기로 했다.

퇴근 후에 중요한 약속을 잡아뒀기 때문이었다.

‘강철 아저씨한테 약속 시간 앞당기자고 해야겠네.’

* *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선화와 얘기가 나온 김에 바로 이사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로열파크 실드 최고점은 지금이야.’

최근 아파트 신고가를 확인해 본 결과.

내가 가진 두 채의 평수 기준으로 각 35억 정도.

던전과 몬스터가 도래한 이래, 인간이 살 수 있는 안전 구역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걸 감안해도 많이 오른 셈이다.

물론, 아파트 값은 앞으로도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5억쯤 더 오를 거다.

‘중요한 건, 몇 년 뒤부터 자연 실드로 인한 거품과 그 5억이 다시 빠진다는 거지.’

인공 실드 기술이 향상되는 영향도 있다.

몇 년 뒤가 되면, 인공 실드 기술이 자연 실드에 꽤 근접하게 발달할 테니까.

그래도 30억 정도 오른 거면 많이 오른 거다.

개인적으로는 오를 만큼 오르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같은 가격에 집을 팔아야 한다면, 지금 파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당장 집을 판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면, 선화가 원하는 새집을 구한다든가.

“정말 집 내놓으실 겁니까?”

“네.”

“그것도 두 채 다?”

“각 35억 선에서 최대한 빨리 처분하고 싶습니다.”

강철의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한 뒤부터, 그가 계속해서 묻고 있는 말이었다.

의구심이 들 만도 할 거다.

아직도 오름세인 집을 느닷없이 처분한다는데, 공인중개사 입장에선 이상한 게 당연했다.

‘나도 회귀 안 했으면 안 팔고 갖고 있었겠지.’

아니지.

회귀 전엔 집값 오르는 경험도 해 보지 못하고 팔았었다.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니, 정말이지 가슴이 아프다.

“흐음, 팔고 싶으시면 파셔야죠.”

“안 말리시네요?”

“예?”

“자연 실드 생기기 전에, 그땐 제가 집 안 판다고 했을 때 엄청 말리셨잖아요.”

“크흠! 그래서 그때 한 수 배운 뒤론 귀인분께는 말을 아끼기로 했습니다. 제가 덕분에 로열파크 실드 안 팔고 여태 갖고 있지 않습니까? 집값으로 재미도 좀 봤고…….”

이번엔 내가 팔라고 해도 팔 수 없을 거다.

주식도 마찬가지겠지만, 계속 오르는 게 보이면 오히려 더 팔기가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떨어지면 빠르게 손절하는 사람이 더 많지.

한창 오르는데 그럴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두 채 다 팔고 뭐 하시려구요?”

눈치를 살피던 강철이 물었다.

마치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다.

“로열파크 실드 같은 좋은 집을 팔고 사야 될 만큼 더 좋은 집이 있는 겁니까?”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눈을 반짝이는 강철이다.

당연히 회귀까지 한 내가 바보 같은 짓은 안 하겠지만, 아마 내가 지금 말을 해 준대도 믿을 수는 없을 거다.

“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아, 넵! 물론입죠!”

강철이 서둘러 지도를 펼쳤다.

나는 지도를 살피며, 경기도 김포와 강화도를 잇는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이쯤에 살 생각입니다.”

“여기…… 깡촌인데? 개발 호재가 있지도 않고요?”

“조용한 동네죠. 농사짓는 어르신들도 많이 사시고.”

원래 선화의 말대로 집을 알아보려 했다.

기왕이면 반려몬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드넓은 마당이 있고, 풍경이 좋고, 인프라도 좋으며, 출퇴근도 용이한 주택으로…….

하지만, 모든 조건에 맞는 주택을 구하긴 어렵다.

만약 구한다고 하더라도 선화의 ‘취향’까지 고려할 순 없을 거다.

‘예전에 뭐랬더라? 유럽 감성이라고 했지.’

아니다. 유럽의 시골 감성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런 선화의 취향대로 내부 인테리어는 할 수 있다고 쳐도 외관까지 건들기는 번거롭다.

그래서 생각을 살짝 바꿨다.

이왕이면 선화가 더 좋아할 법한 방향으로.

“제가 어지간하면 터치 안 하려고 했는데, 여긴 귀인분께서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집은 없을 겁니다. 주택을 직접 지으신다면 모를까…….”

“그래서 지으려구요.”

“예?”

“여기 이쯤에 땅을 알아봐 주세요. 건축 허가 난 부지로. 평수는 대략…….”

“자, 잠깐만요. 여기가 경기도 김포하고 붙어 있기는 해도 사실상 강화도에 속한 지역인데, 수십 년간 집값 오르는 꼴을 본 적이 없어요.”

“잘 아시네요?”

“저 공인중개사입니다? 장모님하고 와이프가 강화 토박이이기도 하고.”

“복비는 넉넉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복비가 문제가 아니라. 이거 실거주 목적입니까? 아니면, 투자 목적입니까? 후자라면 좀 더 생각을 해보심이…….”

“둘 다요.”

나는 알고 있다.

집을 짓겠다는 사실을 선화가 매우 좋아하리란 것과.

이 지역 집값이 오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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