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 싶은 거 다 해
평화로운 휴일 오후.
고진희는 기동대 전투복이나 활동복이 아닌, 모처럼 치마를 꺼내 입었다.
평소에 안 하던 화장까지 마친 그녀는 곧장 외출을 나섰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엑시스 본사.
‘차가 좀 막히는 것 같은데. 설마, 늦진 않겠지?’
협회의 헌터가 엑시스 본사에 갈 일이 뭐가 있겠냐만.
고진희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경의 대상이자, 그녀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선화가 멍크를 덕질한다면.
고진희가 덕질하는 대상이 바로 수재혁이랄까.
아마 그녀의 사내 컴퓨터 비밀번호가 수재혁의 생일이라는 건, 아직도 아무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수재혁의 열렬한 팬이라는 건 비밀이었으니까.
‘팀장님이 아시면 엄청 놀리실 거라고. 생각만 해도 끔찍해.’
헌터들 중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한 수재혁이었다.
그가 다루는 얼음 속성 스킬들이 화려하기도 했지만, 빼어난 외모와 중저음의 목소리도 한몫했다.
특출난 능력에 반해 가끔 보여 주는 허당미도 팬들에겐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아무튼.
고진희는 수재혁의 팬카페인 ‘수재혁명’의 부회장으로서, 팬카페 회원들과 함께 오늘 저녁에 있을 레이드 지원에 나섰다.
무력적인 지원이라기보단.
수재혁이 레이드 진행 도중, 그의 공격대원들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명품 도시락 지원에 나선 거다.
굳이 직접 전달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수재혁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벌써부터 떨리네.’
엑시스 본사 앞.
팬카페 회원들이 속속히 모이기 시작했고, 이어 많은 양의 도시락을 실은 승합차도 도착했다.
엑시스 비서실 측과 미리 약속을 잡아 둔 일정인지라, 시간이 되면 수재혁이 이곳으로 나올 것이다.
‘후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긴장이 되지?’
유난히 더 떨리는 오늘이다.
긴장감 때문인지, 아무래도 화장실에 다녀올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몸을 비우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서둘러 팬카페 회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어?”
주차장 화장실에서 나온 고진희가 걸음을 멈췄다.
운이 좋았는지 저 앞에 수재혁의 차가 세워져 있던 탓이다.
‘대애애애박!’
횡재다. 이게 횡재가 아니면 뭐가 횡재란 말인가.
차에서 수재혁이 내리는 게 보였고, 고진희는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어 다른 차에서 내린 누군가가 먼저 수재혁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서, 선화 씨 아냐? 아닌가? 아니라기엔 너무 닮았는데…….’
일전에 준우의 홍보 모델 촬영 때 한번 만났었다.
그때 통성명을 한 게 전부이긴 하나, 나름 안면을 트긴 했다.
‘가까이 가 볼까?’
거리가 좀 멀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거라도 본 듯, 고진희가 주차장 벽에 몸을 은폐해 가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갔다. 말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온다.
“선화 네가 길드엔 웬일이야?”
“아빠가 잠깐 들르라고 해 가지고. 무슨 보약 지어 놨다고 가져가라던데.”
“보약? 누구 건데?”
“누구 거긴. 당연히 내 남편 거지.”
“회장님이 아들 보약은 지어 줄 생각은 영 못 하시나?”
“그러게 아빠한테 애교도 좀 떨고 그래. 장기라도 자주 둬 드리든지.”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그럼 뭐, 내 남편은 한가하다는 뜻이야?”
대충 들어 보니 선화가 맞았다.
두 사람은 무슨 사이일까. 살짝 티격태격하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상당히 가깝게 느껴졌다.
너무 갑작스런 조합인지라 고진희도 제대로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준우의 아내가 왜 여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설마 가족? 에이, 아니겠지.’
가족이라기엔 얼굴이 너무 안 닮았다.
수재혁은 엑시스 회장인 수태광을 닮은 반면에, 선화는 어머니 쪽을 닮았으니까.
‘공통점이 영 없는데…… 가 아니라, 있잖아?’
두 사람 이름의 성이 같다.
선화만 놓고 봤을 때, 수재혁이 가족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수재혁이 보통 인물도 아니고 그런 상상을 어찌 해 볼 수나 있겠는가.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지금.
오만가지 상상이 고진희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잠깐만. 선화 씨가 우리 재혁 님하고 가족인 거면, 준우 씨는 뭐가 되는 거야?’
선화가 엑시스 회장의 딸일 테니.
당연히, 준우는 엑시스 회장의 사위가 된다.
아직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상상만으로도 고진희의 두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휘둥그레졌다.
“우리 대화를 엿듣는 쥐새끼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수재혁이 마력으로 고진희의 존재를 감지했다.
“……!”
고진희가 발아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그곳에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 * *
수재혁이 마력을 피워올렸지만.
뒤늦게 선화가 고진희를 발견하곤, 수재혁에게 그녀를 지인으로 소개했다. 덕분에 별탈 없이 주차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재혁 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어. 그렇게까지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상황이 급박하여, 미처 두 사람의 관계는 묻지 못했다.
사실상 다짜고짜 그런 걸 묻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고진희가 어제 일을 떠올리고 있던 사이.
김강수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선호, 아직 멀었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나 지금 심장 쫄려 죽겄다.”
“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무슨 얼굴 하나 대조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려?”
이선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양손은 바쁘게 움직이며, 얼굴 대조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있었다.
“만약 고진희 네 말이 진짜 사실이면…….”
이건 진짜 대박이다!
김강수는 애써 뒷말을 삼켜 냈다.
고진희에게서 어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준우가 엑시스 회장의 사위일지도 모른다는.
‘하긴, 생각해 보면 막내가 엄청 비범해 보이긴 했어. 애당초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녀석이 평범한 집안 사람일 리가 없잖아?’
아직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김강수는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듯했다.
만약 여기서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다면, 그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증거는 고진희가 구해 온 약 15년 전, 수재혁의 아카데미 졸업사진 중 하나.
수태광을 포함해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으며, 수태광의 품에 안겨 있는 1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얼굴과 선화의 얼굴을 대조 중이었다.
선화의 사진을 구하는 건 쉬웠다.
얼마 전, 준우와 함께 사내 잡지 메인을 장식했었으니까.
“고진희, 근데 넌 수재혁 부마스터 졸업 사진을 어떻게 구한 거야? 15년은 더 지난 사진일 텐데.”
“그, 그게…….”
수재혁 갤러리에 자주 떠돌아다니는 사진이다.
가끔 사진 일부가 짤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차마 갤질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이선호 탐지님 덕분에 얼굴 대조가 가능하다는 게 중요하지.”
“흐음, 그렇긴 하지.”
김강수가 단순해서 다행이었다.
이선호가 기동대 편입 전, 수사과 사무직 업무를 하면서 얼굴 대조 프로그램을 배워 뒀다는 건 더 다행이었고.
준우의 가족 관련 서류를 떼어 본다면 다소 쉽게 알아낼 수도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그건 본인이 아니면 불가했다.
“……다 됐습니다.”
그때, 이선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당히 놀란 표정이다.
“얼굴 대조 결과는?”
“배, 백 프로 일치합니다.”
“역시나구나. 막내가 그냥 복덩이가 아니었어.”
팀원들의 얼굴은 다들 하나같이 멍했다.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 믿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그, 그러니까, 지금 제수씨가 수태광 회장님의 따님이라는 거죠?”
“야. 제수씨라니.”
“그럼요?”
“사모님이라고 불러야지.”
김강수가 히죽 웃고는 말을 이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이거 일급 비밀이다.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하지 말어. 재수 없으면 막내 타 팀이나 길드에 뺏길 수도 있다. 저번만 해도 서울 지부장이 들러붙었는데, 막내 집안까지 소문이 나 버리면 진짜 감당 안 된다.”
“옙!”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 김강수였다.
‘엑시스의 사위가 왜 협회 소속으로 있는 거지? 최소 엑시스에서 임원급 자리 하나는 찰 수 있을 텐데 말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엑시스에 비해 한참 박봉인 협회 소속으로서, 특수팀까지 지원해 굳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건지.
‘아무튼. 만약의 경우라도 우리 복덩이를 다른 녀석들이 채 가는 것만은 절대 없도록 해야 돼.’
이미 김강수의 마음에 쏙 들어온 준우였고.
오늘 일로 경각심마저 생겼다.
물론, 그건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준우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엑시스에도 사내 잡지가 있다고 들었다. 헌터 협회 잡지보다 판매량이 월등하다던데, 잘하면 내가 엑시스 홍보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준우 씨는 처가댁에 자주 가겠지? 거기 가면 재혁 님 얼굴 원하는 만큼 볼 수 있을 거고. 좋겠다. 재혁 님이랑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갓준우 님께 배울 게 산더미인데, 엑시스로 가버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우리와 정이 있는데 갑자기 퇴사하거나 그럼 안 되는데, 쩝.’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다들 묘하게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건 김강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 되겠다. 특수팀으로 가자.”
준우는 오늘 특별 수사팀 합류 명령을 받고, 해당 본부로 출근을 한 상태였다. 지금쯤 교육이 한창일 터.
“특수팀으로 가자구요? 지금요?”
“시팔. 거물급 막내 어디 못 가게 꽉 붙잡으려면, 우리가 가서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
* * *
어제 특수팀 합류 명령이 떨어졌다.
합류 첫날은 오늘은 특수팀 본부에서 기본적인 강의와 사건 브리핑이 이뤄졌고, 출근하자마자 나는 사무실이 아닌 강의실로 향했다.
오전 내내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특수팀의 역할과 늑대 인간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그간 자료들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점심시간이네요. 나머진 점심 먹고 마저 할까요?”
“네, 그렇게 하죠.”
교육과 사건 브리핑 담당은 팀장인 이건형이 맡았다.
내가 특수팀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직접 하기로 했다고 한다.
점심은 근처 부대찌개 집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 주문을 마치고 핸드폰을 꺼내자,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보였다. 선화에게서 온 메시지다.
- 마님 : 오빠ㅎㅎ 잘 아는 공인중개사 있다고 했지?
- 마님 : 내친김에 이번 주에 집 알아보러 가까?
- 마님 : 수요일 콜? 마침 수요일에 건물 수도 공사한다고, 어쩔 수 없이 가게 문 닫아야 하는데ㅎㅎㅎㅎㅎ
출근 전, 아침에 나눈 이사 관련 대화의 연장선이었다.
전부터 집이 좁아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고, 최근 들어 그 불편함이 조금 더 많아진 탓이다.
‘전부터 선화가 계속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었고.’
불편함의 원인은 당연히 우리 식구들이었다.
식구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랄까.
미심이가 변이를 마치고 몸집이 조금 커졌다.
오복이들 전보다 성장했으며, 은실이도 마찬가지다.
아마 말순이도 곧 변이를 마치면 안 그래도 큰 몸이 더욱 커질 터.
확실히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식구들이 많은 만큼 나 역시 그 생각을 계속했었고,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열파크 실드 집값이 최고점을 찍을 때까지.’
초고속으로 집값이 상승하던 로열파크 실드인지라, 내가 알기론 지금쯤 최고점을 찍었을 거다.
더 이상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달까.
큰집으로 이사를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선화가 만족할 만한 집을 사 주려면, 돈은 많을수록 좋다.
‘로열파크 실드 두 채 다 팔면 충분할 것 같긴 한데…….’
당장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다소 급해 보이는 선화의 메시지였지.
- 마님 : 수요일 괜찮은 거지?
- 마님 : 집 보러 갈 생각에 핵설렘ㅎㅎ
흐음, 이번 주 수요일이라.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수요일은 이미 팀장님께서 휴가를 내신 상황이다.
하필이면 이번 주 수요일은 우리 팀이 당직 순번인지라, 한 명 외에 휴가가 불가능했다.
‘사모님께서 그날 친정 간다고 하셨지.’
집에서 맥주나 실컷 마시면서 게임을 즐긴다고 했다.
이제 와 갑자기 휴가를 방해하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식사 다 하셨으면, 사무실 한번 가 보시겠어요? 오전 내내 교육하느라, 아직 사무실 못 보셨잖아요?”
“그럴까요?”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주 2회는 이곳으로 출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내가 사용하게 될 특수팀의 사무실이었다.
“응?”
그런데.
왜 여기 기동대 팀원들이 와 있는 걸까.
“김강수 팀장님?”
이건형도 의아해했다.
팀장님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그곳에 있었으니 당연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우리 준우 왔니?”
팀장님이 내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저 말투는 뭘까. 굉장히 징그러운데.
“점심은 먹었니?”
자리로 다가가자, 팀장님이 물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아까 먹은 부대찌개가 도로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다.
“내가 네 자리 깨끗하게 싹 청소해 놨다. 한번 봐 주겠니?”
“……왜 그러세요, 갑자기. 설마 제 자리 청소하려고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평소에도 날 예뻐하고, 잘해 주긴 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과한 느낌이었다.
‘특수팀 첫 출근 기념 선물인가?’
일단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아 책상을 살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나머지, 의자에 앉다가 몸이 살짝 삐꺽거렸다.
“왜 그러니?”
“티, 팀장님 말투 좀 제발.”
“크흠! 알았다, 알았어. 아무튼,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는 거냐?”
“그냥 의자가 낯설어서 그래요. 기동대 사무실에서 쓰던 의자랑 달라서.”
“의자가 불편하다고? 야! 추재진이! 가서 의자 좀 바꿔 와라!”
“예, 알겠습니다!”
아니, 진짜 다들 왜 이래.
특수팀 첫 출근이 뭐 이리 대단한 거라고.
“준우 씨. 이거 별거 아니지만 받아 주시겠습니까? 제가 한정판으로 구매한 비비 크림인데, 특수팀 임무 수행 중에 쓰시면 좋을 것 같아서.”
“…….”
공현철이 내게 비비 크림을 건넸다.
매우 아끼던 것 같은데 이걸 내주다니.
근데, 특수팀 임무 중에 비비 크림이 왜 필요하지?
“준우 씨. 이거…….”
이번엔 고진희가 다가와 말했다.
한 손에 커피 여러 잔이 든 캐리어를 들고서.
“뭐,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요.”
아메리카노, 모카, 바닐라라떼 등등.
그마저도 아이스와 핫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감사하긴 한데, 너무 많아요. 다 같이 마시도록 하죠.”
내성적이던 이선호도 오늘은 목소리를 냈다.
그가 내 머리 위 전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너무 어둡네요. 업무 볼 때 눈 상하겠어요.”
“예?”
“주, 준우 씨처럼 빛이 나는 사람에겐 밝은 곳이 어울려요.”
마지막에 ‘갓준우’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무슨 몰래카메라인 건지, 유난히 팀원들이 이상했다.
마치 내가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
흐음, 그냥 즐겨야겠다.
내가 언제 또 이런 대접을 받아 보겠는가.
장난스레 팀장님을 향해 한마디를 던져 본다.
“사무실 공기가 좀 탁하네요.”
“공기청정기 하나 놔 줘? 보급팀 목 좀 조르면 가능할 것 같은데.”
“저희 팀 예산으로 가능한 겁니까?”
“안 되면 내 사비 털면 되지 않겠냐. 우리 막내 특수팀 업무까지 겸하려면 힘들 텐데, 하고 싶은 거라도 다 해야지. 또 뭐 하고 싶어? 뭘 원해?”
“이야, 그럼 에어프라이기도 하나 가능하겠습니까? 가끔 간식 먹을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공현철이. 에어프라이기 하나 주문해라.”
농담으로 뱉은 말을 죄다 진심으로 받아준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좀 더 센 농담을 던져 봤다.
“혹시, 저 이번 주 수요일에 휴가 써도 됩니까?”
“……뭐?”
역시 이건 안 되는 모양이다.
내가 휴가를 쓰게 되면, 팀장님께서 휴가를 반납해야 할 테까.
사모님께서 친정에 가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팀장님이 잔소리 없이 집에서 술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하루가 될 텐데, 쉽게 포기할 순 없겠지.
“막내야. 나 휴가 반납하기로 했다.”
“예, 예? 왜요?”
“와이프가 없는 빈집은 외로워서 상상도 하기 싫거든.”
나는 뒤늦게 선화에게 답장을 보냈다.
잘하면, 이번 주 수요일에 집 보러 갈 수 있을 것도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