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싸인해드릴까요? (84/246)

◈ 싸인해드릴까요?

선화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과장 좀 섞어서, 볼이 따가울 정도다.

‘봐! 쟤 집에 갈 생각을 안 하잖아!’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자.

“끼얏호!”

얼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처남이 보인다.

앉아서도 타고, 엎드려서도 타고, 측면으로도 누워서 탄다. 참으로 재주가 많은 처남이다.

“말순! 우리 이번엔 같이 타 볼까?”

컹컹!

말순이와도 궁합이 잘 맞고.

“오복이들! 우리 누가 더 빨리 내려오나 시합할까?”

“다쳐도 돼! 어차피 은실이가 치료해 줄 거야!”

“미심아. 내가 썰매 역할 해 줄 테니까, 내 배 위에 올라타 봐바. 무거우면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을걸?”

다른 반려몬과도 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우리 애들도 처남과 노는 걸 꽤 즐기는 느낌이고.

오복이들과 처남의 미끄럼틀 빨리 타기 대결이 시작됐다.

은실이가 날개를 흔들면, 그때부터 시간을 재는 식이다.

“일복이 12초.”

참고로 시간은 내가 재는 중이다.

“이복이 13초.”

미끄럼틀 높이가 꽤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오복이들의 몸이 작아 가벼운 탓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결이랄까.

오복이들이 전부 10초대.

하지만 처남은 남달랐다.

“……처남 7초.”

“이야아앗! 신기록이다아!”

대단하다. 어디서 얼음덩어리를 가져와 품에 안고 미끄럼틀을 탔다. 최대한 속도를 더 뽑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승부욕 하나는 진짜 장인어른 판박이야.’

그때, 선화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쟤 표정 봐. 거의 광기야. 너무 신났잖아? 저 상태면 절대 집 안 가. 그럼 복분자주 다 상한다고.”

“……설마 그렇게 빨리 상할 리가.”

“집에 보낼 방법 좀 강구해 봐. 이러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어.”

하필이면 오늘 심 비서님이 연차를 내셨단다.

그래서 다른 비서분이 임시로 처남을 케어하기로 했는데, 처남이 감시망을 벗어나 포탈 시스템으로 여기까지 온 거다.

‘초짜 비서님이라면 처남을 감당하기 버거울 만도 하지.’

장인어른께서도 업무로 인해 해외 출장 중인 상황.

일단 자초지종은 설명해 뒀다.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처남을 돌봐 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문제는 처남이 집에 가지 않는다는 거다.

선화가 아무리 좋게, 혹은 나쁘게 타일러도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조금만 놀다가 가겠다더니.

아무래도 내가 애교와 뇌물에 낚인 것 같다.

‘뿅망치도 효과가 없고…….’

그만큼 여기가 좋은 거다.

그토록 갈망하던 겨울왕국 아니던가.

“어쩔 수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선화가 비장의 한 수를 내놨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야근을 마친 형님이 도착했다.

“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처남이 형님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하이, 엘사!”

“…….”

“나랑 눈사람 만들래?”

“…….”

와, 하마터면 터질 뻔했다. 형님에게 엘사라니.

얼음을 다루는 형님의 능력과 별명이 너무 찰떡이지 않은가.

역시 처남이다.

감히 형님을 저런 별명으로 부를 생각을 하다니.

초딩이 괜히 무서운 게 아니다.

“……풉!”

“자네, 지금 날 보고 웃는 건가?”

결국 웃음이 살짝 새어 나왔다.

나는 이내 정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수동혁, 집에 가자.”

“난 좀 더 놀고 싶은데?”

처남은 형님에게도 굴하지 않았다.

초딩은 무서운 게 없었다. 엑시스 부마스터인 수재혁이라도 처남에겐 그냥 놀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선화 네가 오늘 많이 힘들었겠어. 동혁이 저 녀석이 꽤 귀찮게 했을 텐데. ”

“아냐. 나름 괜찮았어.”

“괜찮기는.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

그 와중에 선화를 걱정하는 형님이다.

처남에겐 저 녀석이라고 하면서, 선화에겐 자상한 표정과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온도 차가 어찌 이렇게 심한지.

“나 분명히 말해따! 집에 안 간다고!”

“지겹다, 지겨워.”

그리 말씀하신 형님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눈앞에 거대한 얼음 기둥이 치솟았다.

촤르르륵!

얼음 기둥이 금세 괴기한 모습으로 변한다.

아이스 골렘, 몬스터의 형상으로.

“……잘 가, 처남.”

그렇게 처남은 거대한 아이스 골렘의 손에 붙잡혀 이곳을 떠났다.

형님께서는 기왕이면 처남이 모르는 주소로 이사를 가라는 말을 남긴 채, 처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휴우. 역시 큰오빠가 직빵이긴 하네.”

“시간이 좀 지나면, 형님께서도 저렇게 강제로 데려가긴 좀 버거울 텐데.”

“그게 무슨 소리야?”

처남이 각성하면, 장인어른과 같은 불 속성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얼음 속성을 다루는 형님보다 상성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즉, 그때는 처남이 있는 힘껏 반항한다면.

형님께서도 오늘처럼 마냥 쉽게 붙잡아 갈 수는 없을 거다.

“아냐, 아무것도. 좀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복분자주 딸까?”

“괜찮겠어?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오빠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장어도 있다며? 그걸로 체력 보충하면 되지 않을까?”

“헤헤, 그럼 되겠다.”

나는 뒤늦게나마 선화와 장어 파티를 즐겼다.

복분자주 한 병을 다 마시자, 취기가 살짝 돈다.

분위기 한창 좋은데.

설마 또 처남이 들이닥치는 건 아니겠지.

* * *

헌터 협회 서울지부장 방현재는 얼마 전 기이한 정보를 전해 들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락이 걸렸던 우리 서울권의 던전을 최단 시간 내에 공략했다지.’

경기 지부 기동 3팀이 불개미 소굴을 공략한 것에 대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진짜 기이한 소식은 따로 있었다.

- 당시 현장에 있던 저희 팀원이 그러더군요. 200레벨도 되지 않는 헌터가 B급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아마, 지부장님께서도 아시는 얼굴일 겁니다. 왜 저번에 사내 잡지 홍보 모델로 발탁된 그자라던데…….

경기 지부 기동 3팀이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왔을 때.

불개미 소굴 경계를 맡고 있던 서울권 공무원이 등급 측정기를 사용했었다.

최단 시간 공략인 만큼, 그들이 가진 능력이 궁금해서였다.

200레벨이 되지 않음에도, B등급의 능력을 가진 자.

준우에 대한 소문이 서울권에 퍼져, 어느새 지부장인 방현재의 귀에도 들어간 것이었다.

‘아이템과 스킬, 그리고 특성의 효과로 능력치 보정을 받더라도 보통 500대 레벨은 되어야만 B등급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200대에 B등급 능력치에 도달했다는 건…….’

각성 당시, 기본 능력치가 우월했다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만약 그렇다면, 막내라고 불린 그가 가진 기본 능력치는 최소 엑시스 부마스터인 수재혁과 동급 수준으로 봐도 무방했다.

‘경기 지부 따위에 있을 인재가 아니야.’

큰물에서 놀아야지.

적어도 서울 지부 정도는 돼야, 그만한 인재를 품지 않겠는가.

방현재는 그리 생각하며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맞은편의 오동수에게 은근히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듣자 하니 여러모로 대단한 친구더군. 자네가 아주 기분이 좋겠어? 그만한 부하 직원과 인연을 맺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잖나.”

“그렇습니다. 한데, 전준우 대원에 대한 소문이 벌써 서울 지부까지 퍼진 줄은 몰랐네요.”

“뭐, 나도 우연히 들었네. 간만에 자네와 점심 식사나 할 겸 들르긴 했지만, 이왕 경기 지부에 온 김에 인사나 한번 나눠 보고 싶은데 말이야…….”

“선배님께서 전준우 대원하고요?”

“사내 잡지 인터뷰를 아주 인상 깊게 봤거든. 내가 그 친구 팬이라네.”

인사는 무슨.

오동수가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전준우 대원을 서울 지부로 데려가려고 하는 거겠지.’

방현재는 능구렁이다.

오동수가 취임한 이후, 벌써 세 명의 유능한 헌터들을 서울지부로 채 가지 않았던가.

채갔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세 명의 헌터 모두 자의적으로 서울 지부로 근무지 변경을 요청했으니까. 요청한다고 근무지 변경이 전부 가능한 건 아니다.

지원은 자유지만.

서울권에 티오가 있어야 하며, 승인을 해 줘야만 한다.

아마, 그 과정에서 방현재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다.

‘온갖 편의를 봐주겠다며 회유를 했겠지.’

길드에 인력을 뺏기는 걸로도 모자라, 같은 협회 내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능한 헌터들의 실적은 곧 각 지부의 실적이며, 그것이 곧 본청에서 지부장을 평가하는 요소였으니 말이다.

‘쯧, 그렇게 본청으로 가고 싶으실까.’

이번에도 준우를 회유하려고 하는 걸 거다.

팬으로서 인사를 나눈다는 핑계로, 살며시 속내를 드러낼 터.

하지만.

오동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점심시간 직전이라, 사무실에 있을 겁니다. 한번 만나 보시죠.”

“그럴까?”

확신이 있어서였다.

준우가 서울 지부에 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젊은 시절 같은 용병단에 함께 몸담았던 수태광으로부터 준우가 경기 지부에 입사한 이유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위협한 놈들을 직접 제 손으로 잡고 싶어서랬지.’

때문에, 얼마 전에 특수팀에 지원까지 하지 않았던가.

경제적인 이유로 협회에 입사한 건 절대 아닐 거다.

그랬다면 협회가 아닌 엑시스로 들어갔겠지.

장인이 엑시스 회장인데, 미쳤다고 박봉인 공무원을 선택했겠는가?

“같이 내려가 보시겠습니까? 제가 직접 전준우 대원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하핫! 나야 고맙지.”

방현재는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서울 지부장인 그가 미끼만 던진다면, 준우 역시 곧장 서울 지부로 부리나케 달려올 것이라고.

준우가 엑시스의 사위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가능한 착각이었다.

‘어디 한번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 보시지요.’

지난번 서울 지부에 뺏긴 세 명의 헌터들 때와는 달리.

오동수의 표정엔 여유가 넘쳐 보였다.

* * *

기동 3팀 사내 메신저 채팅창 분위기가 분주했다.

느닷없이 지부장 오동수가 서울 지부장과 함께 사무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 이정진 부팀장 : 서울 지부장이 여길 왜 왔지?

- 추재진 대원 :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 고진희 대원 : 혹시 서울권에 무슨 실수라도 하신 분?

- 공현철 대원 : 설마, 서울권에서 차기 홍보 모델 선정을 노리고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 이선호 탐지 : 그럴 거면 차라리 준우 씨를 스카우트하는 게…….

채팅창을 살피던 김강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지막 이선호의 말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막내를 스카우트한다고?’

느낌이 싸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홍보 모델로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인물이자, 레벨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진 헌터였다.

당장 엑시스에 입사해도 부족함은커녕, 차고 넘칠 정도로.

‘……서울권에서 넘볼 만도 해.’

김강수는 불안했다.

준우로 인해 팀 실적 향상은 물론, 팀 자체적으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데, 그런 준우를 서울권에서 채 간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근무지 변경하는 게 제법 까다로운 일이었으나, 서울 지부장이 힘을 쓴다면 그마저도 어렵진 않을 거다.

‘시팔, 갑자기 사람 쫄리게 하네.’

김강수의 불안함은 적중했다.

사무실 내를 살피던 오동수의 시선이 준우 쪽으로 움직였다.

“전준우 대원. 여기 서울 지부장님께서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어요?”

“아, 그게…….”

준우는 당황했다.

곧 점심시간이었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는데, 혹시 점심 식사 같이 할 수 있겠나? 모처럼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먹고 싶은데, 요 앞에 평양냉면 맛있게 하는 집이 있거든.

장인어른인 수태광의 문자였다.

10분 내로 내려가겠다고 했고, 현재 시간이 촉박한 상황.

“잠깐이면 됩니다, 전준우 대원.”

방현재가 웃으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준우가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헌터 협회 서울 지부장 방현재입니다.”

그가 명함을 꺼내 준우에게 건넸다.

순간, 지켜보던 김강수의 눈빛이 더욱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울지부장이 명함을 준다고? 아무한테나 명함 안 주는데?’

방현재가 명함을 주는 것엔 의미가 있다.

단순하게 연락을 트고 지내자는 의미도 있지만.

서울권으로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뜻이 담긴 행동이었다.

‘저 명함 받은 사람들 죄다 서울권으로 넘어갔는데…….’

출셋길의 시작이라는 서울권으로 갈 수 있는 기회는 협회 소속 헌터들에겐 천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준우라도 거절하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김강수가 인상을 잔뜩 구겼다.

사내 채팅창이 아까보다 더 활발해졌다.

- 이정진 부팀장 : 지금 우리 막내 채 가려는 거?

- 고진희 대원 : 잉? 그냥 명함 준 거뿐인데요?

- 추재진 대원 : 저게 서울 지부장님이 스카우트할 때,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게 쓰는 작전 같은 거랍니다.

- 이정진 부팀장 : 2팀 한재인 대원도 저 명함 받고 한 달 뒤에 서울권 갔더랬지 아마.

- 김강수 팀장 :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수태광과 약속을 한 시간까지 5분 정도 남은 상황.

눈앞의 방현재가 뭐라고 말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정작 준우의 귀엔 아무것도 들려오질 않았다.

‘장인어른께서 처음으로 먼저 점심을 먹자고 해 주셨어. 절대 늦어선 안 될 것 같은데…….’

머릿속은 오직 수태광과의 점심 약속으로 가득했고, 시선은 벽에 걸린 시계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전준우 대원. 괜찮다면 잠깐 회의실에서 대화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제가 지금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준우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숲의 신발을 사용한다면, 1분 안에 내려갈 수 있으리라.

“그러지 말고 잠깐 시간 좀 내어 주심이. 사내 잡지 아주 잘 봤어요. 인터뷰가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그걸 보고 제가 전준우 대원의 열렬한 팬이 되어 버렸지 뭡니까!”

“제, 제 팬이시라구요?”

“예! 지금도 마치 연예인을 보는 것 같달까요, 하하핫!”

일전에 선화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내 잡지로 준우가 인기를 얻자, 경고하듯이 했던 말이.

- 오빠, 만약에 오빠 팬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면 말야. 먼저 나서서 싸인 같은 것도 해 주고 그래. 오히려 그게 더 매너일 수도 있어. 나도 멍크 처음 봤을 때 그랬는데, 몇몇 팬들은 괜히 미안해서 싸인해 달라는 말 잘 못 하거든.

- 설마, 내 팬이라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 앞을 봐. 지금도 여기 있잖아.

진짜로 팬이라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아무튼. 선화가 말한 게 ‘매너’라고 했으니, 최대한 매너 있게 행동하고 이 상황을 빠르게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그냥 팬 미팅 정도로 생각하시고, 잠깐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만…….”

“싸인해드릴까요?”

“예, 예? 싸, 싸인이요? 아, 아 뭐, 그래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당황한 탓인지 얼떨결에 방현재가 고개를 끄덕였고.

준우는 빠르게 A4 용지 하나를 가져와 싸인을 해 줬다.

그리고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급한 약속이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아무래도 팬 미팅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배님. 전준우 대원, 어서 가 보세요. 급한 일이라면서요.”

지켜보던 오동수가 나서서, 준우를 보내기로 했다.

어딘가 모르게 매우 흡족한 표정이다.

“그럼, 죄송하지만 먼저 가 보겠습니다.”

준우가 사라졌고.

방현재는 손에 쥔 준우의 싸인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여태 저런 자가 있었던가.

명함을 쥐여 주면, 다들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날뛰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쩝.”

어처구니없어하는 방현재의 뒤로.

기동 3팀의 채팅창이 또다시 분주해졌다.

- 이정진 부팀장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막내가 서울지부장 깐 거임?ㅋㅋㅋㅋㅋㅋㅋ

- 추재진 대원 : 서울 지부장 표정 보세욬ㅋㅋㅋㅋㅋ

- 고진희 대원 : 준우 씨 대단하네. 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 공현철 대원 : 홍보 모델 클라스!

- 이선호 탐지 : 그저 갓…….

팀원들의 반응도 반응이었지만.

제일 신난 사람은 역시나 팀장인 김강수였다.

- 김강수 팀장 : 싸인해드릴까요 ㅇㅈㄹ ㅋㅋㅋㅋㅋㅋ

서울 지부장 방현재도 대단한 사람이긴 했으나.

준우에게 있어서, 엑시스 회장이자 장인어른인 수태광은 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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