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왕국
불개미 소굴에서 수집해 온 화염초는 으깨서 여과지에 넣었다.
90도가 넘는 뜨거운 물에 천천히 우려냈고, 미심이가 먹기 좋게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키잉-?
냄새를 맡은 미심이가 멀찍이 떨어진다.
식탐이 많아 아무거나 잘 먹는 말순이와는 다르게, 녀석이 유독 입맛이 까다로운 탓이다.
“냄새가 이상해도 먹어야 돼. 평생 독가스 살포하면서 살 거야?”
키잉-
아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선화의 해석에 따르면, 미심이 본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한다.
“……이기적이다 야. 너 방귀 냄새 때문에 공기청정기까지 새로 사려고 했던 우리 마음도 좀 이해해 줘야지.”
선화가 몇 번이고 설득한 끝에.
미심이가 조금씩이나마 화염초 우린 물을 먹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일주일 정도는 계속 먹여야 할 거야.”
“일주일 뒤부터는?”
“그때쯤이면 소화 불량도 싹 나아 있을걸?”
정확히 말하자면, 미심이 체내에 있는 얼음꽃이 화염초와 융화되어 완벽하게 흡수가 될 거다.
선화가 미심이를 잘 타일러 준 덕분에, 화염초 우린 물도 전부 다 먹일 수 있었다.
화염초 우린 물을 복용하는 동안, 미심이는 방귀를 뀌지 않았다. 체내에서 융화가 진행되면서 생긴 증상이다.
‘슬슬 방귀가 나올 때가 됐는데.’
일주일이 지난 오늘.
나와 선화는 미심이의 방귀 소식을 기다렸다.
마치 맹장 수술을 한 환자의 첫 방귀를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뽀옹-
기다렸던 방귀 소리가 들려왔고.
선화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오빠가 가서 냄새 맡아 봐.”
“왜 나한테…….”
“방귀 냄새 호전될 거라고 오빠가 호언장담했었잖아.”
꼭 이런 건 나한테만 시키더라.
나는 조심스레 미심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냄새 안 나는데?”
“엉덩이 쪽에 코 가까이 가져다 대고 맡아 봐야지.”
엉덩이에 코박이라니.
조금 그렇긴 한데, 내가 특별히 선화 말이라 따라 주는 거다.
“그냥 평범한 방귀 냄새 정도.”
“확실해?”
“아이, 진짜라니까. 일로 와서 선화 너도 코박하고 한번 맞아 보면 알 거 아냐.”
“나, 난 괜찮아. 오빠 코를 믿어.”
“에이! 그러지 말고 어디 한번…….”
미심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미심이의 엉덩이를 선화에게 강제로 들이밀었다.
“난 괜찮다니까!”
“좋은 건 같이 해야지. 우린 부부잖아?”
“아잇! 좋은 건 오빠한테 몰아주고 싶어서 그렇지…… 어라? 근데, 진짜 냄새가 양호해졌네?”
“그것뿐만이 아냐. 미심이를 잘 봐 봐.”
얼음꽃 흡수가 완벽하게 끝이 났는지, 미심이의 몸 주변에 붉은 기운이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현상.
이전에도 한번 경험한 적이 있다.
[ 미심이의 성장 정도가 최대치에 도달합니다. ]
[ 미심이가 ‘변이’ 상태에 돌입합니다. ]
그간 미심이를 간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가족들로 인해 가화만사성 효과가 작용한 덕분일 터.
그간 가족들과의 교감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 중인 미심이이긴 했지만, 이번에 얼음꽃을 흡수한 게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붉은 하늘의 열매를 먹였을 때처럼 미심이의 스킬 레벨이 상승하진 않았다.
아직 두 개의 열매가 더 남아 있긴 하나, 아쉽게도 해당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 한 번뿐이었다.
‘스킬 레벨이야 변이가 끝나면 자연히 오르게 될 테니까.’
이전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번엔 단순히 스킬 레벨이 하나 상승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닐 거다.
눈앞의 홀로그램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 ‘변이’ 상태가 완료될 경우. ]
[ 스킬 ‘얼음 속성 부여’를 습득합니다. ]
얼마 뒤.
미심이는 변이를 마쳤고, 꼬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 * *
사미호가 오미호가 됐다.
이렇게 계속 꼬리 개수를 늘려 가다간, 나중엔 정말 구미호가 될지도 모르겠다.
‘구미호가 되면, 광역 은신 같은 것도 가능하려나?’
미심이의 등급은 E등급에서 D등급으로 상승.
스킬 레벨 또한 한 단계 상승했다.
‘이젠 중급 은신 지속시간이 늘어났고.’
무엇보다 스킬 하나가 더 생겼다.
아이템에 얼음 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스킬이다.
쉽게 말해 ‘인챈트’.
속성 상성을 가진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에서 엄청난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검에 얼음 속성을 부여하게 되면, 검의 특성도 그에 맞춰서 변형될 텐데.’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졌다.
테스트 장소야 차원문 내부면 충분하다.
‘근데, 선화가 미심이를 내어 줄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옆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양한 각도에서 미심이의 사진을 찍고 있는 선화의 모습이 보였다.
미심이가 오미호가 된 순간부터 계속 사진을 찍는 중이다.
여러 가지 의상까지 번갈아 입혀가며,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건지는 작업이랄까.
최근에 반려몬 의류 사업을 시작한 선화이기에, 꼬리가 다섯 개나 되는 미심이의 사진은 확실히 도움이 될 터였다.
“좋아요 개수 올라가는 것 좀 봐, 오빠. 대박이지?”
당연히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 꼬리 다섯 개 달린 이미호는 미심이가 유일할 테니까.
“우리 미심이 사진 찍느라 고생 많았어. 일루와!”
키잉!
미심이가 다섯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선화의 품에 안긴다. 선화는 그런 미심이에게 얼굴을 부벼댔다.
“미심이 오늘 고생했으니까, 엄마랑 반려몬 카페 가서 스트레스 좀 풀고 올까?”
반려몬 카페라는 말을 알아들은 걸까.
순간, 오복이들과 말순이가 어디선가 잽싸게 나타났다.
마치 자신들도 가고 싶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화를 바라보는 녀석들.
“……으음, 반려몬 카페 한 마리밖에 못 데려가는데.”
선화의 얼굴에 미안함이 번진다.
카페 특성상 한 마리씩밖에 입장이 안 되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번갈아 가면서 데려가곤 했다.
‘키우는 반려몬이 많으니 이런 게 좀 번거롭단 말이야.’
그나마 은실이의 경우는 좀 낫다.
창문만 열어 줘도 혼자서 비행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돌아오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반려몬 여러 마리를 데려갈 수 있는 카페는 없던데. 끽해야 두 마리 정도가 최대라…….”
선화가 난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인다.
눈앞에서 반려몬 카페를 갈망하는 녀석들의 눈빛이 여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카페보다 차원문 내부가 훨씬 더 넓잖아? 그런데, 왜 카페가는 걸 더 좋아하지?”
“아무래도 요즘 반려몬 카페 시설이 잘되어 있잖아. 가면 어질리티 같은 것도 할 수 있거든. 미끄럼틀 같은 게 있기도 하고.”
“아아, 놀이 기구 종류가 많아서?”
우리 애들이 익스트림한 놀이를 즐기는 모양이다.
하긴, 다른 반려몬들에 비해 마력을 운용하는 아이들이니 보다 활동적이긴 할 테지.
“안 그래도 저번 주에 어질리티 기구 몇 개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계속 배송이 지연된다고 하더라구.”
“그럼 그거 도착하기 전까지는 내가 한번 만들어 볼게.”
“응? 뭘 만들어?”
“까짓거, 내가 놀이 기구 만들어 준다고.”
“오빠가 어떻게?”
“당신 남편은 못 하는 게 없거든.”
우리 아이들이 놀이 기구를 원한다면.
그냥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때마침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생겼겠다.’
미심이의 도움이 좀 필요하긴 했다.
얼음 속성 부여 스킬이라면, 우리 아이들만의 겨울왕국을 만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우우웅-
차원문을 개방했다.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차원문 내부였지만, 때마침 날씨가 적당히 좋다.
선화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보고만 있어.”
일단, 보이지 않는 검의 특성 사용 조건을 갖췄다.
그다음엔 미심이에게 부탁하여 검에 얼음 속성을 부여했다.
[ 해당 아이템에 얼음 속성이 부여됩니다. ]
[ 해당 아이템의 특성이 변형됩니다. ]
[ 특성 ‘냉기의 칼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홀로그램을 확인한 뒤, 곧장 특성을 사용했다.
스윽 -
눈앞의 들판을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촤르륵!
목표로 했던 장소에 얼음 기둥이 치솟았다.
내 키의 1/3 정도 되는 크기랄까.
이거, 생각보다 효율이 뛰어나잖아?
얼음 파편 정도 될 줄 알았는데.
‘미심이의 등급이 더 오르면, 스킬 효율도 분명히 더 높아질 텐데…….’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한들 큰형님에 미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닐 거다.
형님이라면 순식간에 차원문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아무튼.
효율이 좋은 것만은 틀림없었다.
촤르르륵!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살짝 미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핸드폰 사진 속 어질리티 기구들을 보고 만들면, 나름 비슷하게 만드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마력을 운용하는 기술이기에, 마력의 흐름만 잘 이용한다면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얼음 기둥을 쌓아 올릴 수 있다.
무형의 칼날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개념이다.
원하는 타깃에게 칼날을 쏘아 보내듯, 원하는 위치에 얼음 기둥을 쌓는 거다.
‘일단 허들부터 만들고.’
검을 연달아 휘두른다.
적당히 마력을 조절해, 말순이가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얼음 기둥 두 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이번엔 검을 횡으로 그어, 얼음 기둥 두 개를 잇는 가로로 된 기둥을 만들어 냈다.
‘조금 두꺼운데.’
두꺼운 건 검에 소량의 마력을 주입해 갉아냈다.
날카로운 부분은 살짝 다듬어 주고.
열 개가 넘는 허들이 완성됐다.
이번엔 폴 점핑 기구를 만들 차례다.
허들을 만들 때의 방법을 살짝 응용하여 변형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게 좀 어려운데.’
링 점프 기구.
아무래도 둥그런 원형의 모양을 만들어야 해서, 얼음 기둥을 깔끔하게 뚫고 갉아 내는 일에 시간을 좀 들여야 했다.
링 점프 기구마저 완성한 뒤, 내가 알고 있는 어질리티 기구란 기구를 싹 다 만들어 냈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았다.
하나, 하나, 완성해 갈 때마다 녀석들은 이미 그걸 즐기며 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원래 어질리티라는 게 보호자가 핸들러 역할을 해 줘야 하는 건데, 이상하게도 우리 애들은 스스로도 잘 놀고 있었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
“아까 그랬지? 카페에 미끄럼틀도 있다고.”
“응, 오빠. 애들이 미끄럼틀 제일 좋아해.”
그럼 만들어 줘야지.
우리 애들이 제일 좋아한다는데.
오늘 마력을 전부 다 소진하는 일이 있어도, 내가 미끄럼틀까지 어떻게든 만들고야 만다.
서너 시간쯤 흘렀을까.
미끄럼틀에 제법 공을 들인 탓인지, 시간이 꽤 소모됐다.
그래도 미끄럼틀은 완벽하게 완성해 냈다.
‘얼음이라 잘 미끄러질걸.’
미끄러지는 속도가 좀 빠른 편이라, 집에서 푹신푹신한 쿠션 여러 개를 앞에 뒀다.
혹시라도 애들이 다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오빠, 이참에 약간 예술 쪽으로 전향해도 될 거 같아. 이건 뭐 미끄럼틀이 아니라 거의 예술 작품 수준인데?”
선화 말로는 카페에 있는 것보다 훨씬 예쁘고 크단다.
칭찬받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나보다 재주 많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다들 침묵하는데?”
“쫄았구만, 쫄았어. 그럼 내가 우리나라 1등 남편인가?”
“우리나라라니. 세계 1등 남편이지.”
모처럼 선화 앞에서 거들먹거려본다.
솔직히 오늘 같은 날엔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
‘뭐, 미심이가 없었으면 못 할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걸 염려.
결합의 방패에도 얼음 속성을 부여해, 해당 아이템의 변형된 특성을 사용했다.
얼음 보호막.
시너지 효과만큼 효율이 좋지는 않아, 얼음 속성 저항력 강화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추위에 대한 방어 정도는 가능했다.
“일복이! 너 왜 계속 혼자 미끄럼틀 타는 거야? 다른 애들한테 양보 안 해?”
일복이에게 소리를 치자.
녀석이 입을 삐쭉이며 이복이에게 양보했다.
“차례차례 순서 지키면서 놀아야지. 그러면 못 써.”
다음 차례는 삼복이의 차례.
“야, 너 일복이지?”
녀석이 움찔한다.
삼복이와 인식표를 바꿔치기한 일복이가 괜히 딴청을 피운다.
“너희 다 똑같이 생겼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일복이 맞잖아!”
도리도리-
거짓말까지 하는 녀석.
꼬리가 휘어 있는 정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녀석은 분명히 일복이다.
나름 다섯 쌍둥이 중 첫째라고 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양. 나쁜 버릇은 조금 훈계해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나는 훈계를 잘하지 못한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까.
때문에, 선화가 이쪽을 담당했다.
일복이의 조그만 손을 잡아 선화에게 데려갔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한데, 선화의 낯빛이 조금 어둡다.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느껴진다.
“내, 내가 오빠가 만든 것들 너무 예뻐서, 애들 노는 모습 찍어 가지고 조금 전에 메신저 프사로 올렸거든?”
“그랬는데?”
“……직접 봐 봐.”
선화는 대답 대신 핸드폰 화면을 내게 보였다.
누군가에게 온 메시지였다.
- 수태광 주니어: 누나 프사 그때 거기지? 포탈 안에?
- 수태광 주니어: 나도 겨울왕국 갈래! 겨울왕국!
“내가 미처 동혁이 얘를 생각 못 했어. 어떡하지? 얘 예전에 겨울왕국 보고 감동 제대로 받아 가지고, 학교에 올라프 분장까지 하고 갔던 애야.”
“무조건 오겠구만.”
만약 내가 만든 겨울왕국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 계속 찾아올지도 모른다. 올라프 분장까지 하고 학교 갈 정도면, 이곳은 처남에게 그야말로 환상의 놀이터가 될 테니까.
“오늘은 절대 오면 안 되는데.”
“응?”
“오빠가 미심이 치료한다고 엄청 고생했잖아.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준비를 좀 해 뒀단 말야.”
“무슨 준비?”
“장어도 좀 사 두고. 복분자주도 사 놨는데.”
허허, 이것 참.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마치 벌써 복분자주 몇 잔 걸친 것처럼.
“그럼 잘 타일러서 오지 말라고 하자. 처남도 이해해 줄 거야. 다음에 오라고 하면 되잖아?”
“뭐라고 말해야 되지?”
“으음, 큰형님을 팔자. 큰형님이 1초 만에 겨울왕국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우리도 우리의 날은 즐겨야 되니까.
저번처럼 방해를 받고 싶진 않다.
“아니면, 심 비서님한테 부탁을 좀 드려 볼까? 어차피 심 비서님이 동혁이 데리고 올 테니까, 심 비서님한테 아픈 척 연기 좀 해 달라고.”
“그것도 나쁘지 않네.”
이런저런 고민 후, 계획을 막 실행하려던 찰나였다.
선화의 핸드폰에 다시금 진동이 울렸다.
- 수태광 주니어: 똑똑!
- 수태광 주니어: 나랑 눈사람 만들래~~~~?
미치겠다. 아무래도 벌써 도착한 것 같다.
이 정도 속도라면 심 비서님이랑 같이 온 게 아니라, 집에 있는 포탈 시스템까지 이용하지 않았을까.
게이트를 통과해 집으로 향했다.
연달아 현관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선화 네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 봐. 널 무서워하니까, 아마 얼추 알아들을 거야.”
“알았어, 오빠. 내가 잘 해 볼게.”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우리는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활짝 웃고 있는 막내 처남.
광대를 씰룩거리며 한마디를 내뱉는다.
“두 유 원투 빌드 어 스노우맨?”
“……처남 영어 잘하네.”
“이것밖에 할 줄 몰라요!”
선화가 어처구니가 없는지 피식 웃는다.
“자랑이다, 짜식아.”
“근데, 처남. 그건 뭐야?”
처남의 양손에 들린 것들.
한 손에는 웬 과일 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값비싼 위스키 한 병을 들고 있었다.
“과일은 오다가 샀어요! 매형 주려고!”
“……설마 위스키도 산 거 아니지?”
“이건 큰형아 방에서 가져왔어요!”
“……걸리면 우리 다 죽을 텐데.”
꽤 눈치가 있는 처남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처남이 찾아오는 걸 조금 꺼려한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뇌물까지 챙겨 왔겠지.
“매혀엉…….”
처남이 내게 다가와 옷깃 끄트머리를 움켜쥔다.
평소엔 없던 애교까지 섞어 가면서.
“……겨울왕국 저도 가면 안 돼요? 조금만 놀다가 갈게요! 네? 네? 네?”
오늘따라 유난히 존댓말도 잘 쓴다.
평소엔 반존대하는데 말이지.
“얘 끼부리는 거 봐라. 나한테 안 될 거 아니까, 매형한테 가서 저러네.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아? 조금 있으면 너 잠 잘 시간이라고.”
“매혀엉…….”
처남은 선화의 말을 무시하고 오직 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간절한 눈빛이 아까 전 반려몬 카페를 갈망하던 말순이와 오복이들을 닮아 있었다.
슬쩍 선화의 눈치를 살폈다.
고개를 내저으며 어떻게든 돌려보내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진짜 조금만 놀다가 갈게요! 진짜로 조금만!”
“……으음, 그래. 그럼 놀다가 가.”
“우와아앗! 역시 우리 매형!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우리 매형! 큰형아보다 멋있고, 아빠보다 멋있는 매형!”
“오, 오빠!”
“처남 놀다가 집에 가면, 그때 장어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
오늘만 우리가 이해해 주자, 선화야.
처남이 너무 귀엽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