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음꽃
가장 가까운 반려몬 전문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들 중에서도 반려몬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사들은 최근 들어 생긴 직종이기에, 이맘때쯤의 그들은 회귀 직전에 비해 실력이 그리 좋지만은 않을 거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당장은 반려몬 전문 병원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급한 대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뛸 수밖에.
“크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단순 소화 불량인 것 같습니다. 뭘 잘못 먹은 듯한데…….”
수의사가 미심이의 상태를 살피며 말을 잇던 사이.
미심이가 살짝 몸을 뒤튼다.
뽀옹-
그리고는 가볍게 방귀를 뀌었다.
집에서 맡았던 그것과 똑같은 고약한 냄새가 진료실 안에 가득 퍼졌다.
“……켁, 켁! 김 간호사 창문 좀!”
냄새가 독하긴 했다.
원래 방귀를 뀌기는 해도 냄새가 이렇게까지 독하진 않았는데.
‘상한 음식이라도 먹었나? 선화가 워낙 애들 먹는 거에 신경 써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정밀 검사 후.
수의사가 모니터 화면 속 미심이의 뱃속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거 보이시죠? 동그랗고 투명한 막 안에 반짝이는 게 있는데. 혹시 집안에서 패물이나 보석 같은 걸 아이가 닿기 쉬운 곳에 두셨나요? 아무래도 그런 걸 삼킨 것 같은데 말이죠.”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미심이다.
때문에, 갖고 놀다가 삼켰을 가능성은 있지만.
‘우리 집에 저런 모양의 패물이나 보석은 없는데 말이지.’
나는 모니터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 느낌이라, 더욱더 유심히 보게 된다.
‘어라? 이거 서리 사막의 얼음꽃 같은데?’
던전 ‘서리 사막’이 소멸하고 나면 주변으로 얼음 파편이 여럿 튄다.
그때, 아주 희귀한 확률로 습득할 수 있는 게 바로 서리 사막의 얼음꽃이었다.
보통 제조 관련 특성을 가진 헌터들이, 상성 속성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에 속성을 인챈트할 때 주로 사용하는 재료인데.
‘대체, 미심이가 이걸 어떻게 삼킨 거지?’
어마어마한 마력이 깃든 물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그마치 얼음 속성 마력이 깃든 아이템 말이다.
어쩌다 미심이가 이 대단한 걸 집어삼킬 수 있었을까.
어제 선화가 애들 데리고 반려몬 동반 카페에 다녀왔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미심이에게 특별한 징후는 없었으니까…….
‘……설마, 그때?’
워낙에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미심이다.
가지고 놀다가 집어삼켰을 가능성이 높긴 했다.
물론, 어디서 이걸 찾았는지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카페 인근에 서리 사막 던전이 존재했었거나, 아니면 재수 없게 다른 지역에서 소멸한 던전의 파편이 미심이의 행동반경 안까지 전해졌다거나.
아무튼.
중요한 건, 이 대단한 물질이 지금 미심이의 뱃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정밀 검사해 보니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지금 소화 불량 정도고. 약 먹으면 이틀 정도 후에 생리 현상으로 빠져나오게도 할 수 있어요. 다만…….”
수의사의 표정이 짐짓 심각하게 굳는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라도 있는 걸까.
“……빼낼 때까지 방귀 냄새가 상당히 독할 겁니다. 방귀 뀌는 횟수도 잦아질 거구요. 보세요. 지금 또 뀌지 않습니까?”
미심이가 자기 방귀 냄새를 맡고 표정을 찡그린다.
마치, 응급실에 오기 전 집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그 표정과 비슷하다.
아까 배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방귀 냄새가 스스로 지독하게 느껴져서 그런 거였나.
폴짝-
미심이가 진료실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움직이는 걸 보니,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움직임이다.
‘……내가 너무 유난 떨었어.’
수의사도 별거 아니란다.
반려몬 키우다 보면 흔하게 있는 경우라고.
“약 지어드릴 테니, 집에서 밥 먹일 때 같이 먹이면 됩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네, 아이의 몸 상태는 건강해요. 체내에 있는 것만 똥, 아니, 대변으로 나오면 말끔하게 나을 겁니다.”
아마, 그렇진 않을 거다.
사파이어의 마력이 체내 곳곳에 뿌리를 내려 시간이 지날수록 흡수가 되기 시작할 테니까.
우리 아이들은 다른 반려몬들과는 달리 가장 특성으로 인한 성장으로 마력 운용이 가능하다.
고로, 미심이 체내의 있는 마력과 사파이어에 깃든 마력이 이미 마력 반응을 어느 정도 일으켰을 거라는 얘기다.
‘아마 지금쯤 마력 반응으로 인해 서리 사막의 얼음꽃이 미심이의 체내에 흡수되는 중일 거고…….’
마력을 운용해 확인해 보니 역시나였다.
소화 불량의 원인도 그로 인한 것일 테고, 사파이어가 뿌리를 내린 상태로 미심이가 흡수하는 중이라면 생리 현상으로는 절대 배출되지 않는다.
‘이거 흡수가 끝날 때까진 시간 좀 걸릴 텐데.’
회귀 전, 내 기억에 의하면 최소 1년은 걸리며.
흡수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흡수되는 마력의 양이 점차 줄어든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효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고로, 일주일 내에 얼음꽃의 마력을 온전히 흡수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 미심이는 장수해야 되니까!’
속설 반, 과학적 근거 반이랄까.
운용할 수 있는 마력치가 높을수록 생물이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이 있다. 회귀 전에도 통계적으로 그러했었고.
기왕 이렇게 행운이 찾아왔는데.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1년은 너무 길다.
흡수를 하더라도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얼음꽃의 마력은 온전히 흡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년 동안 이 독한 방귀 냄새를 맡으면서 살 수도 없고 말이야.’
그때였다.
병원 문이 활짝 열렸다.
“오빠! 미심아!”
뒤늦게 병원에 도착한 선화였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미심이가 많이 아픈 걸로 착각해, 일단 내가 먼저 숲의 신발을 이용하여 병원으로 온 탓이다.
차를 타고 오는 것보단 뛰는 게 더 빨랐으니까.
“흐잉…….”
선화가 울컥했는지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유난을 떤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의사 선생님이 뭐래 오빠? 우리 미심이 많이 아프대? 으응? 왜 대답이 없어? 진짜 많이 위급한 거야?”
“그런 거 아냐.”
“우리 미심이 어떻게든 치료해야 돼! 우리 미심이랑 평생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로 했었잖아. 치료할 수 있는 거지? 그치, 오빠?”
“이, 일단 진정해 봐. 그래야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지.”
“진정하고 들어야 할 만큼 심각한 거야? 아아, 오빠 나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오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까부터 심장도 너무 빨리 뛰는 것 같고…….”
대체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뭔지는 몰라도 엄청 무서운 상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만큼 격하게 걱정을 했다는 것이겠지.
“일, 일단 진정하라니까. 사람들 다 쳐다봐.”
“어떻게 진정을 해! 우리 미심이가 아픈데!”
“의사 선생님이 괜찮대.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냥…….”
“그냥?”
“……똥 싸면 된대.”
“으응? 정말?”
“그리고 나면 방귀 냄새도 예전처럼 양호해진다고 하시더라.”
내 품에 안겨 있던 미심이가 선화의 품으로 번쩍 뛰었다. 그제야 선화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미심이의 몸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엄마 놀랬잖아, 미심아!”
키잉-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무튼 별일 아니라서 다행이야. 얼른 집에 가서 응가 하자! 응가! 그래야 빨리 낫는대!”
키잉!
‘얼음꽃부터 빨리 흡수되도록 만들어야겠는데.’
미심이 방귀 냄새부터 빨리 해결해야만 했다.
안 그랬다간, 또 오늘처럼 선화가 미심이를 아픈 걸로 착각해서 갑자기 울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 * *
김강수는 출근하자마자 자신의 책상이 아닌 준우의 책상으로 향했다.
준우를 지부장실로 올려보내라는 오동수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까라는 건 바로바로 까야 되는데.’
시킨 건 바로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30분이 지난 시각임에도 준우의 책상은 비어 있었다.
“이강수 팀장님, 오셨습니까.”
“오늘도 지각이시네요, 팀장님.”
대원들이 김강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고.
김강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강수는 뭐야? 너희 설마 여태 내 성도 몰라?”
그럴 리가.
팀원들이 히죽거렸다.
얼마 전.
준우의 잡지 홍보 모델 촬영 때, 김강수가 그랬다.
만약 내가 너희들이랑 사진 찍으면 성을 갈겠다고.
“……그래서 지금 내 성을 갈아 버린 거냐?”
“그렇습니다, 이강수 팀장님.”
“맞습니다, 제갈강수 팀장님.”
“미친놈들. 팀장 놀려 먹는 게 그렇게 좋냐? 됐고! 막내 어디 갔어?”
“오자마자 막내부터 찾으셔.”
“설마, 막내 지각이야? 오냐오냐해 줬더니, 아직 새파란 신입이 지각이나 하고 말이야.”
“출근 시간 1시간도 전에 이선호 탐지랑 미리 출근해서, 지금 레이더실에 있습니다.”
“레이더실?”
한동안 비상이 걸리지 않는 사무실이다.
출동이 없으니, 서류 작업 외엔 딱히 업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 두 사람이 함께 레이더실에 있다는 말은.
김강수에게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공략할 던전을 찾고 있다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기특한 녀석들.
저도 모르게 김강수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역시 우리 막내! 너희도 좀 본받아라. 일 없다고 사무실에만 앉아 있지 말고!”
“네, 이강수 팀장님.”
“야, 이왕이면 전강수로 해 줄래? 막내도 전 씨잖아?”
“……그냥 이제 그만할랍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 김강수는 엉덩이를 흔들며 레이더실로 향했다.
* * *
레이더 모니터를 살피던 준우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음꽃 흡수를 재촉하려면, 화염초가 필요한데.’
회귀라는 게 참 용이하긴 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화염초가 얼음꽃 흡수를 촉진시킨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며, 미심이가 얼음꽃을 온전히 흡수하기까지 1년을 내리 기다려야 했을 거다.
화염초가 등장하는 던전은 두 곳.
‘불개미 소굴’과 ‘불곰 서식지’이다.
두 곳 모두 D급 던전 중에서도 난이도가 최상으로 꼽히는 던전들이었지만, 준우는 기왕이면 후자를 원했다.
‘따로 준비해야 될 게 없으니까.’
레이더를 통해 불곰 서식지를 찾았다면, 아마 표정이 밝았을 거다.
동물형 몬스터인 만큼 포식자 칭호를 사용해 쉽게 공략이 가능했을 것이며, 화염초가 위치한 장소도 보스의 바로 뒤편으로 찾기 쉬웠으니 말이다.
“저어, 준우 씨. 죄송해요, 아무리 찾아도 불곰 서식지는 레이더에 뜨질 않네요.”
“이선호 탐지님이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애당초 이 나라에 던전이 없는 거를.”
그나마 불개미 지옥은 찾았다.
그러나, 이 던전은 ‘불 속성 내성’이 필요했다.
불 속성 내성이 없으면 던전에서 전투를 하기가 여간 버거운 게 아니었고, 당장 준우에게 해당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 없다는 사실이 큰 문제였다.
‘속성 내성이 있는 아이템은 귀해. 그거까지 구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굳이 기대를 걸어 보자면 말순이.
막내 처남이 집에 방문한 이후, 말순이는 현재 변이 중 상태다.
만약 말순이가 미심이 때처럼 변이 후에 스킬 등급이 오른다면, 말순이의 화염 방패 특성에 지속 데미지 효과 외에 불 속성 내성이 더해질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너무 도박이다.
마냥 기다리기엔 미심이의 상태,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방귀 냄새가 너무 심하다.
이대로 약 1년 동안 얼음꽃이 흡수되기를 기다린다면, 온 집안에 방귀 냄새에 찌들지도 모른다.
‘선화도 이미 좀 질린 상태고.’
과장 좀 보태면, 조만간 미심이를 피할 것도 같다.
설마, 선화가 그러기야 하겠냐 만은.
“요 기특한 녀석들!”
그때였다.
어딘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는 김강수가 레이더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기, 김강수 팀장님 지각하신 거죠?”
이선호가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각비 5만 원 내셔야 하는데.”
“아아, 지각비. 근데, 그건 내가 아니라 김강수 팀장한테 가서 받아야 될 것 같은데.”
“네?”
“난 김강수가 아니라, 전강수거든.”
“…….”
김강수가 입꼬리를 싹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의 친동생 대하듯 준우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올라가자, 지부장실로.”
“갑자기 지부장실엔 왜 갑니까?”
“너 포상 준댄다.”
“아, 그 홍보 모델 선정된 걸로 준다던 리미트 아이템요?”
순간, 리미트 아이템에 기대를 걸어볼까 했다.
하지만 준우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귀하고 귀한 리미트 아이템 중에 그가 딱 원하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 나타날 가능성은 너무 낮았다.
“왜 이렇게 시무룩해? 지부장님이 포상 준다는데?”
“안 그래도 필요한 게 있긴 한데. 뭘 주신답니까?”
“그건 네가 올라가서 잘 얘기해 봐. 혹시 모르잖아? 특수 장비고 열쇠라도 던져 주실지.”
순간, ‘특수 장비고’라는 말에 준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수 장비고, 거기라면 필요한 걸 구할 수도 있다.’
잡다한 게 많은 창고다.
지부에서도 아무에게나 쉽게 공개하는 곳도 아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면 됩니까?”
어느새 표정이 밝아진 준우가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