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대체 못하는 게 뭐야? (76/246)

◈ 대체 못하는 게 뭐야?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던 선화가 멈칫했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서 최초로 마스크 팩을 출시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이 브랜드 원래 마스크 팩은 안 팔았었는데?’

말 그대로 해당 브랜드의 최초다.

선화는 관심을 갖고 좀 더 깊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도 엄청 많이 쓰는 팩이라고?’

연예인들은 물론,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후기 또한 상당히 좋다. 안 좋은 평을 찾기가 힘들 정도.

준우가 그토록 좋아하는 수지가 협찬을 받은 이후.

여전히 해당 제품을 사용 중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뒤, 구하기 힘든 제품이 되어 버리기까지 했다.

‘……오빠 홍보 모델 예선 나가기 전에, 팩이라도 좀 해 주고 싶은데.’

선화가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운이 좋게 아직 해당 제품의 재고가 있다는 매장을 찾아냈다.

‘후우, 운 좋게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남아 있던 재고 딱 하나를 구했다.

안 그래도 잡지 모델 본 걸로 준우를 섭섭하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쓰였었다.

‘나름 어렵게 구한 팩인데, 오빠 마음이 이걸로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

문득 팩을 한 채로 누워 있을 준우를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난다. 뭔가 귀여울 것 같았다. 다 큰 어른이 어제 같은 일로 질투하는 것도…….

‘연애할 때도 오빠가 별거 아닌 일로 막 질투하고 그랬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질투가 묘하게 기분이 좋기도 했다.

준우의 질투가 애정으로 느껴졌으니까.

“……어?”

매장을 나서려던 선화가 멈칫했다.

입구에서 아주 낯익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서, 선화 네가 여긴 웬일이야?”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지. 오빠야말로 여자 화장품 브랜드엔 뭐 하러 온 거야?”

선화와 마주친 수재혁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마치 엄청난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아, 음…… 그, 그게…….”

선화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김 비서가 보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해당 화장품 브랜드에 연락해서 그냥 몇 개 만들어 달라 할걸.’

수재혁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구하기 힘든 마스크 팩일지라도.

다만, 데이트 도중에 너무나 갑자기 벌어진 일이며.

마스크 팩 재고가 인근 매장에 남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 비서가 다급하게 수재혁을 끌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김 비서 역시 선화와 마찬가지로 귀한 마스크 팩 구하기에 혈안이었던지라,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던 탓이다.

“설마, 두 분 연애하는 사이……?”

“……그래.”

비밀 연애가 끝이 났다.

선화가 목격한 이상, 수태광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대애애박!”

수태광이 알게 되면 뭐라 할까.

준우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아, 여태 난관을 겪지 않았던가.

“저, 저기 선화야. 아직은 아버지한텐 말씀드리지 않았으면…….”

“걱정 마. 나 입 무거운 거 몰라?”

“……부탁한다. 너도 겪어 봐서 알잖아.”

“내가 설마 아빠한테 말하겠어? 김 비서님 곤란해지실 텐데.”

수재혁과 김 비서 모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적어도 수태광의 앞에 서려면, S급 던전에 들어갈 만큼의 멘탈 관리가 필요했다.

“아무튼. 축하해요, 김 비서님. 아니지. 새언니?”

“새언니라. 듣기 좋네요. 고맙습니다, 아가씨.”

선화와 김 비서는 죽이 잘 맞았다.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느낌이랄까.

‘뭔가 엄청난 약점을 선화한테 잡혀 버린 것 같은데.’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두 여자 사이.

오직 수재혁만 홀로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 * *

기도를 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이선호의 전도로 고진희 대원까지 기도에 참여했다.

‘이러다 진짜 교회처럼 될지도.’

내가 알려 준 마력 운용법이 너무 파급력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내 분위기가 마냥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공현철로 인해 오늘은 최근 들어 가장 시끄러웠다.

“들었어요, 준우 씨. 감히 제 얼굴에 도전을 했다고.”

“……얼굴에 도전을 한 건 아니고요.”

“준우 씨도 한 잘생김 하니까, 제가 기꺼이 도전은 받아 줄게요. 다만, 패배 뒤의 실망은 책임 못 집니다.”

내가 홍보 모델 예선에 나가겠다는 말을 전해 들은 뒤, 공현철이 계속 나를 견제 중이다.

언젠가부터는 피부에 좋다는 마사지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팀별로 예선은 한 명만 참가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가 나갈 건데? 이거 나름 중요한 문제야. 우리 팀에서 홍보 모델 선발되면, 팀 전체에 포상금 떨어지는 거 다들 알지?”

부팀장님이 말했다.

물론, 예선이 아닌 최종 발탁이 되어야만 한다.

“부팀장님, 너무 설레발치시는 거 아닙니까.”

“저 공현철이 설레발이 현실이 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번에 예선 탈락해 놓고는 무슨.”

“지금 제 피부를 보십쇼! 눈부시지 않습니까?”

“아, 시끄럽고. 규정대로 투표해. 잘생긴 사람이 나가.”

“그럼 제가 당연히 이길 텐데요? 준우 씨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패배하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공현철. 너 그거 자신감이 아니라 근자감이야.”

어쨌거나, 나와 공현철 중 한 명만 나갈 수 있다.

누가 나갈지 정해야 하긴 했다.

“가위바위보 해.”

“너무 시시하잖습니까.”

“그럼 뭐 해? 빨리 대충 하고 끝내. 공현철이 저거 시끄러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

가위바위보가 제일 깔끔하고 좋긴 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방법이었으니까.

“……마탄 사격 어떻습니까?”

그때, 공현철이 말했다.

동시에 팀원들이 야유를 한다.

“공현철이. 너무한 거 아니냐?”

“맞아요. 좀 이기적인 듯싶습니다. 공현철 대원님 마탄 사격 아마추어 선수 출신 아닙니까?”

“외모 평가로 투표를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준우 씨가 상처를 받을까 봐…….”

안 받아. 내가 이길 것 같아.

그나저나 공현철이 간절하긴 한 모양이다.

선출 종목까지 언급하는 걸 보면.

“별론가요, 준우 씨?”

공현철이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눈빛에서 간절함이 뚝뚝 떨어진다.

“야, 막내야. 하지 마라. 백 퍼 네가 진다.”

“맞아요, 준우 씨. 공현철 대원님 저래 보여도 사격 실력 하나는 경기 지부 탑이에요.”

“공현철 대원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신입한테 사기를 치시려고 하네.”

“그만큼 간절하다는 거지.”

팀원들이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하죠, 마탄 사격.”

“지, 진짜로요?”

자기가 하자고 해 놓고, 오히려 놀란다.

내가 정말로 수락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지는 게임을 승낙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뭐, 내가 뒤늦게 참가한다고 해서 뒷북친 느낌이 있기도 하고…….’

딱히 그렇게까지 미안한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홍보 모델 기회는 팀원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나도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어제 장인어른이 가족 구성원이 됨으로써, 모든 능력치가 10레벨씩 상승하지 않았던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테스트도 해 볼 겸.’

공현철이 아마추어 선출이랬지.

근데, 나도 한땐 총 좀 쏴 봤다.

* * *

팀원들과 함께 협회 건물 내 사격장으로 향했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마탄총을 손에 쥐었다.

다시 한번 점검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낸 그때.

- 마님: 대박인 거 알려 줄까?

- 마님: 큰오빠랑 김 비서님이랑 사귐ㅋㅋㅋㅋ

선화한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흐음, 어쩌다가 형님은 선화에게 비밀 연애를 들킨 것일까.

‘어제 보니, 장인어른께서도 대충 눈치를 채고 계신 것 같던데…….’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선화랑 내가 결혼할 때보단 나았던 것 같다.

- 마님: 오늘 퇴근하고 일찍 와!!

- 마님: 내가 팩 해 줄게! 엄청 비싼 거야 이거!

선화가 팩까지 해 준다는데.

예선까진 어떻게든 나가 줘야지.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보관함에 넣었다.

그리고는 사로에 입장했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게임 아닙니까?”

“불공평하긴 하지. 선출이랑 비선출 싸움인데.”

“그냥 이해하자, 얘들아. 현철이 쟤가 저번부터 홍보 모델 하고 싶어 했잖냐.”

“그래도 설마 자기 최애 종목인 마탄 사격으로 내기를 할 줄이야…….”

등 뒤로 팀원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같이 우려에 가득 찬 목소리들이었다.

“……미안합니다, 준우 씨.”

“뭐가 말입니까, 공현철 대원님?”

“아, 아니, 나는 진짜 준우 씨가 승낙할 줄 몰랐거든요? 그냥 가위바위보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괜찮습니다. 저도 사격 좀 하거든요.”

“좀 많이 잘했으면 좋겠는데.”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공현철 대원님도 전력으로 상대해 주세요. 나중에 딴말하기 없어야 하니까.”

“후후, 진짜 전력으로 합니다?”

“네, 그렇게 하셔도 전 미련 없이 승패 인정하겠습니다.”

그제야 공현철도 미안한 마음을 떨쳐 낸 듯했다.

덕분에 나도 뒷북친 게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사격감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야. 회귀 직전에도 길드원들이랑 내기 삼아 자주 하기도 했었고…….’

협회 내 사격장이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아직 모르거나, 전투 관련 특성이나 스킬이 없는 헌터는 마탄총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탄총은 마석으로 만들어진 마탄을 사용하며, 헌터가 가진 마력 능력치에 비례한 파괴력을 가지는데.

‘그 마력을 폭발적으로 방출시켜, 격발 시에 마탄총에 주입시키는 게 테크닉이지.’

테크닉보다는 헌터가 가진 마력 능력치 레벨이 가장 중요하다. 마탄총은 거기에 더 영향을 받게 제작되어 있었으니까.

“그럼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1사로의 공현철이 첫 순서였다.

마탄 사격 규칙은 간단했다.

‘사격장 양측 포구에서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표적을 명중시켜 부수면 끝이긴 한데…….’

뒤쪽 순서에 나오는 표적일수록 단단하다.

마력은 마탄총을 쏠수록 소모되는 것에 반해, 오히려 더 부수기 힘든 표적이 등장한다는 거다.

삐이-

사격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동시에 사격 고글을 올려 쓴 공현철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탕! 탕! 탕! 탕! 탕!

좌측 포구에서 세 개.

우측 포구에서 두 개.

모두 정확히 명중했고, 또한 파괴됐다.

이윽고, 다시 격발.

연달아 열 번의 총성이 울렸다.

‘좀 쏘네?’

마력을 계속해서 전력으로 운용하는 걸 보면 벅찰 만도 한데, 그걸 테크닉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저번에 능력치 테스트 때 보니까, 마력 능력치는 7레벨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딱 아마추어 수준의 마력 레벨이었다.

마탄 사격은 프로 입단 전까지는 마력 능력치 레벨을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테크닉으로만 승부를 한달까.

능력치를 올리는 건 SP를 모아 둔 뒤, 차후에 해도 늦지 않다.

프로 입단에 실패할 경우 그간 올린 마력 능력치로 인해 얻는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마법 계열 헌터가 아닌 이상, 마력 능력치보다는 다른 쪽에 투자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일 테니.’

그럼에도 공현철은 아마추어 시절의 테크닉으로 여태 한 발도 놓치지 않고 모든 표적을 파괴했다.

슈우웅-

어느새 포구에서 마지막 다섯 개의 표적이 쏘아졌다.

1사로를 보니, 이쯤 되니 공현철도 마력이 달리는 것 같았다.

피잉-

결국, 아쉽게도 마지막 표적을 놓쳤다.

그래도 마흔 개 중 서른아홉 개 명중.

“후아…….”

공현철이 고글을 벗으며 씩 웃는다.

승리를 직감한 거다.

“미안해요, 준우 씨. 내가 다음번에 꼭 다른 기회 있으면, 그땐 준우 씨가 잘하는 걸로 양보할게요. 진짜, 진짜 미안해요! 이번만 나한테 양보해 줘요!”

아직 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설레발은.

나도 한때 총 좀 쐈거든?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회귀 전, 엑시스에 막 입사했을 때.

나도 내게 맞는 무기가 뭔지 몰랐다. 큰형님께 관련 훈련을 받기 전까지 마탄총이 내 주 무기였다.

그래도 공현철보다는 테크닉이 부족하긴 할 거다.

아마추어라도 선출은 선출이니까.

‘하지만, 마력 능력치는 내가 더 높아.’

며칠 전까지는 공현철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거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가족이 된 지금은 아니었다.

무려 10 이상은 차이가 날 거다.

아마추어 때는 테크닉으로 어찌어찌 승부를 봤을지 모르겠으나, 결국 프로의 마탄 사격은 마력발이 제일 크다.

탕! 탕! 탕! 탕! 탕!

초반 다섯 개의 표적을 가뿐히 파괴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 별반 어려운 건 없었다.

“오오오! 준우 씨 뭐야? 왜 이렇게 잘해?”

“시팔. 막내는 하다 하다 사격까지 잘하네. 도대체 쟤는 못하는 게 뭐야?”

등 뒤에서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새가 없다. 이기기 위해선 집중해야 한다.

양측 포구에서 이번엔 열 개 표적을 한 번에 날려 온다.

나는 재빨리 총구와 방아쇠를 움직여, 표적을 따라갔다.

‘이제 남은 표적은 총 다섯 개.’

앞서 두 개 표적이 먼저 출현했고.

마력을 더 끌어 올려 부숴 냈다.

“……?”

그런데, 나머지 세 개의 표적이 한데 몰렸다.

그릇과도 같은 모양의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어, 어? 저거 겹치면 표적 강도 올라가지 않아?”

“남은 세 발로는 안 될 텐데요. 최소 다섯 발은 쏴야 할 텐데…….”

바로 지금이.

장인어른으로 인해 상승한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릴 때였다.

허공에 겹쳐진 세 개의 표적을 공현철 또한 보았는지.

그가 짐짓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 준우 씨. 아무래도 지금 포구 기계 오류 같은데, 저는 괜찮으니까 그냥 이번 게임 무효로 하고 다음번에 다시 하시는 게…….”

그럴 시간 없어요.

선화가 팩 해 준다고 일찍 오랬단 말입니다.

퍼어엉!

단 한 번 방아쇠를 당기자.

겹쳐 있던 세 개의 표적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