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아주 가끔은 놀러 와도 돼 (73/246)

◈ 아주 가끔은 놀러 와도 돼

합성에 필요한 재료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이며.

두 번째는 미노타우르스의 이빨이다.

‘마지막은 마력이 깃든 미궁의 루비.’

이 세 가지를 재료로 합성을 하게 되면, 몬스터를 일시적으로 공략에 의한 소멸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 미로 감옥, 합성 중 98% ]

합성이 완료되길 기다리고 있는 이 미로 감옥은 본디 반려몬 입양의 목적으로 쓰이던 게 아니었다.

다른 재료는 다소 싼 가격이지만, 미궁의 루비가 제법 값이 나가기에 주로 길드나 협회에서 ‘조사’ 목적으로 쓰이는 아이템이었다.

던전 자체를 연구 혹은 조사를 하기 위해선 안전한 환경 속에 던전이 보존되어야 한다.

한데.

몬스터들이 즐비해 있으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미로 감옥에 보스를 처리하지 않고 가둬 둔 채 던전 공략을 안 해 버리는 거지.’

아쉽게도 F급 이하의 던전에만 적용되는 효과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공략한 탐욕의 미궁 레이드는 업턴 던전이었다.

한 등급 위에서 구한 재료들인 만큼, 미로 감옥의 효과 역시 한 단계 상승한 던전에서 적용시킬 수 있었다.

[ 미로 감옥, 합성 완료 ]

잠시 후, 직육면체 모양의 아이템이 합성됐다.

이선호가 기이한 표정으로 나와 미로 감옥을 번갈아 바라본다.

“이걸로 코마 상태의 몬스터가 소멸하는 걸 막을 수 있다구요……?”

“될 겁니다.”

회귀 전에 테이머들이 그렇게 사용하기도 했었으니까.

비록 적용 가능한 던전의 등급이 낮기는 해도, 레드 독을 입양하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아요. 코마 상태의 몬스터를 던전 소멸로부터 막을 수 있다는 게…….”

“아까도 제 말 안 믿는다면서 계속 기도하고 있잖습니까.”

“기, 기도하는 게 아니라, 아까 말했듯이 동굴인지라 손이 너무 시려워서!”

당황했는지 이선호가 전보다 더 많이 말을 더듬는다.

후배인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른다는 게 창피한 걸까.

마치 숨어서 믿는 듯한 느낌이다.

“지, 진짜예요! 제가 수족냉증까지도 있어 가지고…….”

“뭐, 아무튼. 믿든 말든 그건 이선호 탐지님께서 알아서 하시고. 이제 슬슬 마무리하러 가 보죠.”

미로 감옥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보스의 안식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E급 던전 따위 공략하는데 어려울 건 없다.

진입 후부터 지금까지 해 왔듯, 빠르게 마무리할 생각이다.

으르르릉-!

고맙게도 눈앞의 레드 독들이 나를 향해 먼저 달려온다.

숲의 신발을 사용해 놈들의 뒤로 이동하자.

으르릉!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 한 놈이 내게 이빨을 들이민다.

그래, 너로 정했다.

‘일단, 이 녀석은 미로 감옥에 가둬 두고.’

여러 마리를 감옥 안에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정원 초과다.

목적을 이뤘으니.

이제 남은 건 보스를 처리하는 것뿐.

스스슥-

마력을 끌어 올리고.

보이지 않는 검에 그걸 주입시킨다.

스윽-

보스, 리치의 목을 벴다.

놈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자, 이선호가 감탄을 자아낸다.

“뭐랄까. 준우 씨는 일을 참 쉽게 하시는 것 같아요.”

리액션이 좋은 덕분일까.

공략이 끝난 마당에 기분마저 좋아진다.

“아까 합성한 아이템 안에 레드 독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던전 소멸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말도 사실인 것 같고…….”

“이젠 절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숨어서 믿는 건 여기까지.

앞으로 이선호는 날 대놓고 믿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월요일.

준우는 점심 식사를 생략하기로 했다.

4교시 수업을 마친 처남과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입양한 레드 독을 분양해 주지 않으면, 언제 또 갑자기 집을 급습할지 몰라.’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빠르게 처리하는 게 낫다.

저번처럼 분위기 좋은 순간에 불청객이 들이닥칠 수도 있을 테니까.

“막내야. 오늘 점심 짜장 어때? 내가 살게.”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아쉽다. 쿠폰 다 모았는데.”

“저도 아쉽습니다만, 점심은 나중에 같이 해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지. 신경 쓰지 말고 어여 가 봐.”

준우가 사라지자, 김강수가 입맛을 다셨다.

전부터 따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력 방출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팁이 좀 있으면 얻어 볼까 했었는데, 쩝.’

능력치로만 따지자면 준우와 팀장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준우의 가족 구성원의 수가 지금처럼 아홉이라는 가정하에.

하지만.

마력 방출에 대한 테크닉은 준우가 훨씬 우위였다.

‘나도 기술적인 것만 좀 다듬으면, 바로 밑 등급 던전 정도는 혼자서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한참 후배인 준우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사실이 딱히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배움에 있어서 자존심은 그저 쓸데없는 허세일 뿐이기에.

“그나저나, 선호 쟤는 뭐 하고 있는 거냐?”

김강수가 지나가는 부팀장을 잡고 물었다.

부팀장이 이선호 쪽으로 쓱 고개를 돌렸다. 두 손을 꼭 모은 채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글쎄요. 출근한 뒤로부터 틈만 나면 저러던데. 무슨 종교 생긴 거 아닙니까?”

“쟤 무교잖아. 종교가 원래 그렇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거야? 어제까진 멀쩡했는데?”

“뭐, 기도 좀 한다고 멀쩡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그렇긴 한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저건.”

그때, 구내식당으로 향하던 고진희 대원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기도 중인 이선호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아까 선호 씨랑 얘기하면서 살짝 들었거든요. 준우 씨가 알려 준 방법이라네요. 저렇게 하면 마력 방출 사용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뭔 소리야, 그게? 기도하는 거랑 마력 방출이랑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데?”

부팀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연관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모르죠. 아무튼, 준우 씨 말 믿고 저러는 거랍니다.”

고진희 대원은 그 말을 남기고서 식당으로 떠났다.

김강수가 그녀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본다.

“말이 안 되는 소리기는 해. 하지만…….”

“팀장님. 설마, 그 말을 믿는 겁니까?”

“막내가 뻘소리하는 거 봤어? 게다가, 사실상 마력 방출 능력만 따지자면 막내가 팀 내 갑이잖아? 저번에 현장에서 너도 봤을 텐데?”

“에이, 그래도 그렇죠. 기도해서 되는 거면, 신성회 성직자들은 뭐 우주 최강이게요?”

“기도로 가능한 일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거겠지.”

“에에? 진짜 믿으시는 것 같네?”

“선호가 선밴데, 설마 막내가 장난을 쳤을라고?”

“그럼 팀장님도 해 보시든가요. 아, 참! 팀장님 불교지?”

“그치, 내가 불교라 아무래도 기도를 하긴 좀 그렇지.”

팀원들이 모두 점심 식사를 하러 떠났다.

하지만 이선호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기도에 열중했다.

처음엔 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 소멸로부터 몬스터를 보호한 걸 보고 확신했다. 적어도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라고.

무엇보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임에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마력이 짙어진 느낌이 든다.

소심한 성격만큼이나 세심한 감각을 가진 그인지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준우의 말대로 한 달 정도 지나면.

이전과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질 것이리라 믿었다.

‘……갓준우!’

잠시 후.

점심 식사를 마친 김강수가 다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한 칸을 차지한 그는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우스꽝스럽게 앉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기도 자세를 취했다.

‘막내가 그랬다면 분명 뭔가가 있긴 한 걸 거야. 죄송합니다, 부처님.’

김강수는 기도와 함께 천천히 마력을 피워 올렸다.

종교를 바꾼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뒤의 일이었다.

* * *

저만치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 퍼지는 카랑카랑한 외침.

“반려몬 찾으러 왔따!”

막내 처남이 해맑게 웃으며 차원문 내부에 입성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내 쪽으로 달려온다.

“넘어지겠다.”

“어렸을 땐 많이 넘어졌는데, 이제는 안 넘어져요!”

처남, 너 아직도 많이 어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근데, 반려몬은?”

처남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분명히 오늘 입양한 레드 독을 분양해 주겠다고 했는데, 시야에 보이질 않으니 의아할 수밖에.

“저기 온다.”

내가 저 멀리 들판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레드 독 두 마리가 보인다.

한 마리는 말순이고.

다른 한 마리는 어제 입양한 아이였다.

“오오오오오오!”

처남이 격하게 흥분했다.

레드 독이 힘차게 달려오다가, 처남 앞에서 멈췄다.

“쩔어! 말순이보다 더 커!”

보스의 안식처에 있던 아이들 중, 이왕이면 가장 몸집이 큰 아이로 데려왔다. 아무래도 처남이 큰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다.

“처음엔 낯을 좀 가릴 거야. 누나가 심 비서님한테 반려몬 훈련법 알려 드릴 테니까, 수동혁 넌 착실하게 배우고 잘 보살펴 줘야 돼.”

선화가 당부하듯 말했다.

아직 어린 처남인지라,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할지도.

“내가 알아서 잘하께! 유튜브 보면서 공부 많이 했어!”

“그래? 얼마나 많이 했어?”

“어제만 8시간 넘게 했찌!”

순간, 선화가 쥐고 있던 뿅망치가 처남에게 향했다.

‘뿅!’ 소리와 함께 처남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왜 때려!”

“누가 하루에 유튜브를 8시간씩 보래! 눈 나빠져서 나중에 안경 쓰고 싶어?”

“……짜증 나.”

유도 신문이었던가.

새삼 선화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 참! 처남, 이름은 반려몬 이름은 지어 놨어? 앞으로 함께할 식구인데, 이름 정도는 직접 지어 줘야지.”

“그럴 줄 알고! 내가! 지어 놨따!”

기대된다.

과연 작명 센스가 어느 쪽일지.

설마 선화와 같은 촌스러운 느낌 쪽일까.

“아이언!”

“아, 아이언?”

내가 알기로는.

요즘 처남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강철 로봇의 이름이다. 엄청나게 강한 히어로던가.

“푸흡! 야, 수동혁. 아이언이 뭐냐, 아이언이. 작명 센스 하고는.”

“왜? 완전 쩔게 멋있는데?”

“반려몬 이름은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살아. 말순이나 미심이처럼. 너도 그렇게 지어.”

“시른데. 누나나 그렇게 지어.”

“아이언이 철이라는 뜻이잖아? 네 성 앞에 붙여서, 수철이 어때? 딱인 것 같은데?”

“……개극혐.”

선화의 뿅망치 세례가 오늘도 이어졌다.

그래도 오늘만은 처남의 얼굴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그만큼 반려몬을 식구로 맞이하게 된 게 기쁘다는 뜻이겠지.

“처남. 이건 나중에 수철이, 아니, 아이언이랑 친해지면 그때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붉은 하늘의 열매 하나를 소분한 유리병을 처남에게 건넸다.

말순이처럼 변이 상태가 되는 것을 원했으니, 그 기대 역시 충족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수동혁. 매형한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고개를 끄덕인 처남이 나를 향해 해맑게 웃는다.

내가 봐 왔던 처남의 표정 중 가장 밝은 모습이었다.

“전 오늘부터 매형을 인정하기로 해써요.”

“뭘 인정해?”

“내 편으로 인정. 나도 매형 편하기로 했고! 우린 이제 앞으로 같은 편인 거예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로 편들어 주기!”

“뭐, 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야.”

괜찮은 것 같았다. 친해진 느낌도 들고.

아무렴, 회귀 전의 서먹한 사이보다는 훨씬 낫겠지.

“매형! 감사합니다아!”

내가 더 감사하지.

처남이 우리 집에 올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그래도…….

“……가끔 집에 놀러 와, 처남.”

“진짜루요?”

너무 자주만 아니면 돼.

너무 갑자기도 아니면 되고.

그나저나.

반려몬 키우는 거, 장인어른께 허락은 받았으려나.

0